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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676 vote 0 2007.07.17 (14:47:49)

[개인적인 글입니다]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하기

깨달음은 우주와의 합일이다.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하기다. 안테나가 있어야 감응할 수 있다.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성을 포착할 수 있는 직관의 능력이 계발되어 있어야 한다.

자연은 밀도가 걸려있는 닫힌계 내부에서의 안정성을 지향한다. 그것이 자연의 완전성이다. 자연은 그 완전성으로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완전한 한 알의 씨앗을 뿌리고 완전한 한 송이 꽃을 피워낸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인간의 행동 또한 계의 완성을 지향한다. 완성을 목적할 때 긴장하고 완성에 성공할 때 이완된다. 자연의 완전성을 포착할 때 반가움을 느끼고 그 완전성과 공명하여 받아들일 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인간은 만날 때 긴장하고 소통할 때 이완된다. 긴장과 이완은 인간의 행동이 하나의 계를 이룸이다. 긴장과 이완의 1 사이클이 행동의 1 단위가 된다. 이때 행동을 촉발하는 기쁨과 종결하는 자랑스러움이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인간의 행동이 온전한 계를 형성할 때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한다. 완전한 긴장으로 감응은 촉발되고 완전한 평정으로 교감은 진행되고 완전한 릴렉스로 소통은 보상된다.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할 수 있는 동그라미가 완성되어야 한다.

완전히 긴장한다는 것은 나의 내부에서 전체와 부분, 중앙과 지방, 두뇌와 몸통, 정신과 육체의 합일이 직결로 연결되어 계를 형성함이다. 그러한 완전한 합일의 경지에서 온전히 외부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전체와 부분, 중앙과 지방 사이에 밸런스가 이루어져 외계와의 무리없는 소통이 완전한 릴렉스로 전개될 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반면 밸런스의 유지에 실패하고 소통이 막힌다면 어색하고 부끄러워진다.

왜 인간은 긴장하는가? 인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이 외부세계와의 교감에 있어서 하나의 단일한 계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자연의 완전성에서 유도된 동그라미에 맞서는 내 안의 동그라미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 온전한 긴장이 하나의 동그라미로 완성될 때 자연과 교감하며 더 큰 동그라미로 나아간다. 우주와의 합일로 전개된다. 역으로 자연의 완전성이 인간과의 교감하면서 나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동그라미를 깨운다.

만날 때 떳떳하고 대화할 때 자연스럽고 받아들일 때 자랑스럽다. 만남에 의해 소통이 촉발될 때의 온전한 긴장이 떳떳하고, 소통이 진행될 때의 완벽한 밸런스가 자연스럽고, 소통하여 받아들일 때의 완전한 릴렉스가 자랑스럽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가 여기에 있다. 신(神) 앞에서 단독자로 삶과 죽음을 넘어 실존의 동그라미를 완성함이 자유라면 삶 안에서 드라마를 완성함이 사랑이고 일상에서의 생활을 완성시키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는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넘는다. 나와 세계를 하나의 계로 통일하여 완성한다. 사랑은 나의 삶 안에서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동을 의미롭게 완성시킨다.  

당신의 일상은 자연스러운가? 떳떳한가? 완성되어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하다. 당신의 삶을 통털어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자연스러운가? 완성되어 가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사랑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세상 전부와 맞서는 지점이 있는가? 자연과의 감응에서 미(美)를, 공동체와의 소통에서 선(善)을, 진리와의 접속에서 진(眞)을 완성하여 가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자유다.

깨달음은 당신의 일상을 행복으로 완성시키고, 당신의 삶을 드라마로 완성시키고, 당신의 실존을 세계정신의 일부로 완성시킨다. 그렇게 끝없이 동그라미를 그려나간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우주로 확장시킨다.

당신 내부의 동그라미로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한다. 긴장과 이완이라는 모뎀으로 접속한다. 부끄러움과 떳떳함이라는 안테나로 송신하고 수신한다. 그렇게 인간은 세상 전부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접속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삶의 조각조각 나누어진 장면들 하나하나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여 동그라미를 완성시키기다. 그것이 성공할 때 자랑스러움으로 보상받고 실패할 때 부끄러움으로 징벌된다.

인간은 만날 때 긴장한다. 긴장의 크기가 기쁨의 크기다. 만나서 관계를 맺으며 밸런스를 유지한다. 밸런스가 평정에 도달할 때 자연스럽다. 그리고 소통하며 받아들일 때 이완된다. 릴렉스가 된다. 그럴 때 자랑스럽다.

긴장과 평정, 이완의 1 사이클이 동그라미를 완성시킬 때 내 안에 하나의 이야기가 세팅된다. 그 이야기를 모뎀으로 삼아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한다. 자연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때 당신은 완전히 릴렉스가 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판단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자연은 본래 완전하며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이미 해체되어 그 완전에서 멀어진 것이다. 인간에게는 해체되기 전의 본래의 완전성과 감응하는 안테나가 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 떳떳함과 자랑스러움이 그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하는 안테나다. 자신의 일상적 행동 하나하나가 매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창피해질 것이다. 어색해질 것이다. 죽고싶어질 것이다.

인간이 자기 내부에 ‘이야기’를 품을 때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할 수 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피할 수 있다. 그럴 때 스위치가 켜지고 안테나가 작동을 시작한다. 긴장과 이완의 1 사이클에 그 스위치가 있다.   

내 안에 ‘이야기’를 품는다는 것, 내 안의 ‘동그라미’를 완성시킨다는 것은 다음 단계의 프로세스를 안다는 것이다. 전모를 보고 전체과정을 안다는 것이다. 긴장과 평정과 이완이 하나의 카테고리를 이룸을 안다는 것이다.  

완전한 깨어있음으로 완벽한 밸런스를 거쳐, 온전한 릴렉스와 만나 동그라미를 완성시킬 때 그 1사이클의 진행에서 내 마음의 결이 얻어진다. 조개가 진주를 품듯이 그것을 품고 그것을 키워나간다.

그것은 길을 떠나온 이가 출발점과 목적지를 알고 그 사이에서 나의 현재 위치를 아는 것과 같다. 나침반을 가진 것과 같고 등대를 바라봄과 같아 갈림길을 만날 때 언제라도 판단할 수 있다. 진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완전한 긴장, 완전한 깨어있음을 연습해야 한다. 그로부터 전개하여 완전한 평상심, 완전한 밸런스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로소 완전한 이완, 완전한 릴렉스가 가능하다.

의식적으로 긴장한다면 깨어있음이 아니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면,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불완전하다. 그것은 중앙이 지방을 통제하지 못하고 명령이 중간에 반사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이창호의 침착한 한 수 처럼 돌부처의 마음으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전체 경로를 완전히 한 줄에 완전히 꿰어내는 것이 참된 긴장이다. 곧 중앙이 지방을, 두뇌가 몸을, 전체가 부분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는 상태다.  

그럴 때 명령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명령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중간에 메아리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소통, 나의 내부에서 전체와 부분의 소통, 명령하는 두뇌와 수용하는 몸의 소통이 완벽한 밸런스에 도달한다.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준다면 이미 중앙이 지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기합을 주고 호통을 치고 눈을 부라린다면 전체가 부분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긴장이 자각된다면 불완전한 긴장이다.

0.1초의 찰나에 먹이를 낚아챌 수 있는 맹수의 날렵함을 얻어야 한다. 관절과 근육이 완벽하게 통제되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서는 결코 날렵해질 수 없다.

완벽한 긴장은 고흐가 미친듯이 그릴 때, 연주자가 신들린듯이 두드릴 때, 작가가 밤을 새며 원고를 쓸 때 그 무아지경에서 얻어진다. 중앙이 지방을 완벽하게 통제하므로 명령이 중간에서 메아리를 일으키지 않아 나를 의식할 수 없다.

중앙이 지방에 가하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 두뇌의 명령에 대한 근육의 저항에 의해 나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작용이 소멸된 상태, 나를 버리는 데서 완전한 긴장이 얻어진다. 자연과의 온전한 소통에 의해 가능하다.  

명령이 중간에서 반사되지 않고, 울혈을 일으키기 않고, 결절을 일으키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될 때 그 완벽한 긴장은 완벽한 이완으로 전개된다. 외계로의 완벽한 전달이 외계로부터의 완벽한 수용을 낳는 것이다.

이때 인체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다. 완전히 나른해진다. 완전히 릴렉스가 된다. 그럴 때 자연에서 전해져오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볼 수 없는 그림이 잡힌다. 자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한 완벽한 몰입, 완벽한 평정심, 완벽한 릴렉스의 체험이 있다면 화가 났을 때라도, 이웃과 다툴 때라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라도, 언제라도 그런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마음을 리셋할 수 있다. 재부팅할 수 있다.

그럴 때가 우주와 내가 직결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투수가 투수판을 밟는다면 그 힘이 지구의 중심축까지 전해졌다가 다시 되돌아나온 느낌이다. 나의 내부에서의 순환이 나와 우주와의 순환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종교인은 기도에서 그것을 구하고 지식인은 인류의 집단지능과 접속함에서 그런 기분을 얻는다. 우주와 내가 한 편이 되고 세상과 내가 한 팀을 이루고 역사와 내가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기다.

우주 안에서 내가 해야할 일을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마땅하고 떳떳하고 자연스럽다. 비굴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다. 예술가들은 창작의 몰입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연인과의 사랑에서 그것을 얻는다.

이미 그것을 체험하고 있느냐다. 그 일 사이클이 진행되는 각 단계를 알고 있느냐다. 지금의 내가 그 동그라미 안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아느냐다. 필요한 때 언제라도 그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다.

만약 그것을 깨닫는다면, 내 안에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과 온전하게 감응할 수 있다면, 필요한 때 자유자재로 그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 모든 문제를 다 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은 자연의 완전성과 교감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나의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난반사를 억제하고 모두를 한 줄에 꿰어내는 능력이다. 마침내 우주와 하나가 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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