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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에 쓴 저의 칼럼을 인용하겠습니다.

이미 문제는 확대되었습니다. 이제는 방폐장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백성은 또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의 문제로 비화되고 만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민주주의를, 국가를, 정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밝혀지는 단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정치적 해결이냐 원칙적 해결이냐’ 좋습니다. 대통령 말대로 정치적 해결이 아니라 원칙적 해결을 해야합니다. 그 원칙은 방폐장의 원칙, 혹은 주민의사수렴의 원칙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의 원칙입니다. 그만치 사태가 확대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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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맘 때였다. 당시 나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이다. 2002년 정몽준과의 단일화 협상 때도 그랬다. 벼랑끝까지 가서 바닥을 확인하고 오는 것이다. 초읽기에 몰려도 태연하기가 태산과 같았다.

그러나 시위는 점점 격화되는데 청와대는 태연자약하기 그지 없고 박주현수석은 “부안에 내려가서 시민단체 어른들 만나봤는데 반응이 별로 나쁘지 않던데?” 이런 말씀이나 하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당시 필진들이 박수석을 만나 이 문제로 대판 싸웠다.)

나로서는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사실 나는 이런 일 터지면 위장병 도진다. 대선 때도 탄핵때도 그랬고 부안때도 연정때도 그랬다. 이젠 나았다.)

타짜의 원칙들 중 하나는 상대방이 가진 밑천의 전부를 끌어내는 것이다.(비유가 이상하지만 양해를) 무엇인가 하면 그 당시 부안문제를 뒤에서 얼렁뚱땅 수습했다면 오늘 핵폐기장 주민투표는 실패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피해갈 수 없는 절차일 수 있는 것이다. 사패산 문제도 그렇고 천성산 문제도 그렇다. 갈등을 뒤로 적당히 무마하지 않고 갈등의 원인을 속속들이 파헤쳐서 모든 국민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과연 이 방법은 옳은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치인은 왜 뽑아놓았나? 그런 문제는 잘난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협상해서 스님들 편의 좀 봐주고 어떻게 뒤로 해결하면 안되겠나..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들리는 바 사패산 보상금도 스님들이 나눠가졌다는 소리 나오고.. 천성산 도롱뇽도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꼬리치레 도롱뇽이 천성산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서식지 파괴설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사패산의 갈등이 필요했다고 본다. 지율스님의 단식이 필요했다고 본다. 왜인가? 이것이 일을 처리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절차고 이것이 민주주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절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절차를 정치인들의 밀실거래에 넘겨버리고 속편하게 살고싶어 한다. 그런 절차 일일이 다 지키자니 피곤하다. 그냥 이명박이 불도저로 밀어붙여버리면 쉽자나.. 이런 거다.

과연 그럴까? 나는 부안군민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설사 부안군민들이 환경단체의 잘못된 정보에 속아서 반대했다손 치더라도 이런 중요한 문제를 밀실에서 수군수군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게 하고.. 공적인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낸 그 자체로 부안군민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선진국에는 징벌적 배상금제도가 있다. 소비자가 기업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면 막대한 배상금을 뜯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일종의 파파라치 비슷한 거다. 소비자가 기업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서 막대한 돈을 뜯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제도가 선진국 상품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미꾸라지를 양식하는 수조에 가물치 한 마리를 넣어놓았더니 비실비실하던 미꾸라지들이 매우 건강해졌더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사회가 발전하는 원리가 해커와 보안업체의 끝 없는 대결과 같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도전, 환경단체의 감시, 소비자단체의 개입,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말이다. 다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 풀어놓고 기업의 자율에 맡겨놓으면 오히려 기술개발 안한다.

이것은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말하자면 노무현 패러다임이다. 진작에 세상이 바뀌어 있으니 우리도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노조, 환경단체, 소비자단체, 시민단체, 정부,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상호감시와 견제를 인정해야 한다. 그동안 이런 것을 귀찮아 하고 편법을 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어쨌든 사패산-지율스님-부안투쟁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대한민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얻은 것이고 그 과정에 부안군민과 지율스님의 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알아야 한다. 절차는 중요한 거고 절차를 어기면 2배의 피해가 온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그만치 세상이 바뀐 것이다.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밀실에서 흥정하고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2003년 왜 대통령은 부안사태가 충분히 악화되기를 기다렸을까? 어찌 그렇게 태연자약 할 수 있었을까? 속으로는 아파하면서도 겉으로 태연한척 한 것일까? 필자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그렇게 해야지만 이것이 국가의 문제로 되고, 절차의 문제로 되고, 민주주의의 문제로 환원되고, 철학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2003년 필자의 칼럼에 쓰인 그대로.. 이제는 방폐장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백성은 또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철학의 문제로 비화된 것이며.. 우리가 민주주의를, 국가를, 정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이렇게 밝혀진 것이다.

만약에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패산 문제를 조계종과의 뒷거래로 마무리 짓고 지율스님의 투쟁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부안문제를 적당히 얼버무렸다면? 이명박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면?

그랬다면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 올라갔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이런 문제를 불도저로 해결하지 않고.. 진도 못 따라오는 국민들 기다려 주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불도저를 버리고 한국민주주의의 성숙 방식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모두가 승자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 절차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갈등을 충분히 겪어야만 얻어진다는 것, 피흘림을 감수하는 투쟁이 없이 그저 얻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 선진국도 300년간 줄기차게 싸워서 얻어낸 경험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 갈등을 두려워 해서 안된다는 것, 사패산의 지루한 공방, 국민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는 듯한 지율스님의 단식.. 부안군민의 투쟁.. 이러한 것을 소모적인 갈등이 아니라 생산적인 갈등으로 승화시켜 낼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은 필요하고 절차도 필요하며 바로 그렇게 상처에 새겨놓고 진도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그래야지만 사패산의 스님도, 지율스님도, 부안군민도, 경주시민도 모두 승리자일 수 있다는 그러한 인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까짓거 공사 몇 년 늦어지면 어때! 핵폐기장 좀 늦게 만들면 어때. 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절차를 세우는게 더 중요하지.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노무현 대통령의 고집의 승리다.
부단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겁내지 말자.
아프면서 크기를 두려워 말자.
싸움을 피하지 말자.
이것이 노무현 패러다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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