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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26 vote 0 2011.09.11 (13:57:25)

 

 



5분만에 끝내는 철학강의

 

수학은 1 대 1로 대응시켜서 짝짓는 분석법이고 철학은 반대로 모형적 사고를 통하여 그 나누어진 것을 통짜덩어리로 합쳐서 인식하는 방법이다. 이건 뭐 1초만에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다.

 

철학은 대개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다. 세상에 철학자들이 많지만 알아듣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왜? 실은 지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철학은 모형인데 지들도 제대로 된 사유의 모형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원으로 보면 생각(think)에는 속, 쏘다, 찌르다는 뜻이 있다. thorn, through, thought, thank로 전개되는데 가시처럼 속으로 쏘다, 속으로 쏘아서 관통하다는 뜻이다. 머릿속을 찌르면서 동시에 사물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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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생각하는 기술이다. 생각하는 방법은 사건의 내부를 찌르면서 관통하는 것이다. 사건의 내부를 관통하는 것은 인과율이다. 원인에서 시작되어 결과로 끝나기까지 사건의 속으로 찌르고 들어가며 관통한다. 그 시간의 인과율을 공간적으로 구축해 놓은 것이 모형이며 모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철학이다.

 

현대철학의 중심에 구조주의가 있다. 구조주의는 20세기 사상계를 지배했던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판, 극복하고 있다.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칸트철학을 비판, 극복하고 있고, 칸트철학은 중세의 교부철학을 계승하고 있고, 교부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표절하고 있다.

 

모든 것의 뿌리는 이데아론이다. 이데아론은 간단히 시간적인 순서로 전개되는 인과율을 공간적으로 구축해놓은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질료와 형상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이데아론이 최초의 생각모형이다.

 

생각은 화살처럼 사건을 관통하는 것이며, 그 화살은 시간을 따라 진행하며, 그것을 공간적으로 구성하여 일정한 모형을 도출하는 것이 철학이다. 플라톤이 처음 그것을 해낸 것이다.

 

질료와 형상으로 나누어 각각 이름을 붙였지만 본질은 화살이다. 질료와 형상으로 둘이 아니고 화살 하나다. 그 하나의 화살을 얻은 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반면 질료따로 형상따로 따로노는 사람은 배의 이물과 고물이 각각 따로 움직여 방향을 종잡지 못하듯 바람따라 파도따라 흔들리며 헤매게 된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망각한다. 봄에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데 가을이 되면 꼭 분쟁이 일어난다. “심봤다!” “어? 그거 사실은 내가 봄에 심어놓은 장뇌삼인뎅?” “증거있어?” 질료따로 형상따로 나누어진 것이다.

 

모형적 사고를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 본래의 화살 하나로 환원시킬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주워섬기기 사고가 있었다. 주워섬기기는 그리스의 다신론이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의 신 때문이다. 불화하는 이유는? 불화의 신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잘 사는 이유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건의 숫자만큼 신의 숫자가 생겨난다.

 

비너스란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비너스가 아름다운 이유는 복을 받아서 그 복이 몸에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미인이 되고자 한다면 신전에 돈을 바치고 비너스 신의 발등에 키스하며 비너스의 복을 빨아들이면 된다. 비너스 신전의 제사장이 그걸로 대박을 냈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이라면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원인이 하나씩 생겨나므로 너무 많다. 허무해지고 만다. 무당집 푸닥거리와 같다. 아무리 액을 막아도 사방팔방에 새로운 액이 나타난다. 온갖 급살을 다 맞고, 온갖 부정을 다 타고, 온갖 잡귀가 다 침노해온다. 부적을 붙여도 붙여도 끝이 없다.

 

한 줄에 꿰어 사고해야 한다. 하나의 화살을 찾아야 한다. 이 방면의 원조는 물 일원론의 탈레스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물 일원론이 굉장한 영감을 주지만 저 높은 곳에 있어서 단지 영감만을 줄 뿐이고 현실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물 일원론은 막연한 논리적 당위일 뿐 윤리, 도덕, 정의, 선악과 같은 구체적 현실에 대입시키기는 어렵다.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은 모순형태로 존재하며 대개 흑백 이분법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최초로 쓸모있는 모형을 제시했다. 흑과 백,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여당과 야당,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처럼 이분법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의 온갖 모순과 바로 통한다. 그 둘을 하나의 화살에 꿰어낸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를 차용한 것이 교부철학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곧 신이고 영혼이고 천국이며 신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윤리와 도덕의 근거가 되고 선과 악의 구분선이 된다는 것이다. 저 높은 곳에서 신의 화살이 우리를 쏘고 있다는 것이다. 영혼이라는 형태로 우리 몸 안으로 그 화살이 침투해 왔다는 것이다.

 

허무한 상상에 불과하다. 이를 억지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것이 칸트의 순수이성, 실천이성 어쩌구 하는 이야기들이다. 신의 이데아가 우리 몸에 들어와 있는게 이성이라는 거다. 다 상상이고 보이는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실존개념이다. 이데아는 저 멀리 천국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말만 그럴듯할 뿐 결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그래서 어쩌라구? 시니컬해지고 만다. 현실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뿐 똑부러지는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마르크스는 과학으로 도피하고 있다. 그 이데아는 과학의 법칙이라는 거다. 과학이라는 화살이 인간을 쏘고 있다는 것이다. 딴 데서 신통한거 찾을 거 없고 과학적 법칙만 알면 된다는 거다. 그러나 역시 허무할 뿐이다. 인간의 삶과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개념 역시 남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교회나 사찰에서 뭔가 삶의 답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침묵할 뿐이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관심사일 뿐이고 삶은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구조주의는 언어학으로 출발한 그룹과 인류학으로 출발한 그룹이 있는데 미학적 완전성을 답으로 제시한다. 이데아는 미학적 완전성이다. 미학이 인간을 쏘고 있다. 인간은 이미 그 미학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삶을 완성시키려고 하고 삶의 일관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명제가 중요한 것은 서구 백인 기독교문명 중심의 과학우월주의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과학대로라면 과학의 진보가 곧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게 되고, 따라서 호주의 애보리진이나 남아메리카 부족민의 삶은 가치없는 것이 되고만다. 과학에서 벗어난 가난한 삶, 질박한 삶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어느 지역 어떤 문명이든 내재한 자기완결성이 있고 고유한 완전성이 있고 그에 따른 가치가 있다는 거다. 이게 이상하게 전개되어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으로 치달아 북한정권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마르크스의 중앙집권식 사고에 저항하는 정도의 의미는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미학이다. 이데아는 미학이다. 모든 인간은 미학의 화살을 맞았다. 그러므로 그 삶을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문명을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공동체를 완성시키고자 하고 그 방향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지역 어떤 세계든 독립적인 완성형이 있다. 한국문화는 한국문화대로의 자기스타일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면 서구문명만 가치있고 한국문명은 쓸모없는 것이 되지만 구조주의로 보면 그렇지 않다.

 

부족민은 부족민대로, 미국문명은 미국문명대로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인류보편의 공통스타일도 있고 한 개인의 자기스타일도 있다. 각자 자기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인류공통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구조론의 이상이다. 한 지류를 흐르더라도 바다를 보고 방향을 잡아 흘러가야 한다는 거다.

 

그냥 자기 스타일, 자기 개성만 강조하는 식으로는 고립되고 만다. 물론 자기 스타일을 완성해야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의식하고 21세기라는 공통코드 안에서 자기의 분명한 좌표를 확립해야 한다. 어느 골짜기를 작게 흐르더라도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미학이 최종적인 이데아이며 찍어주는 정답이며 똑부러지는 최종결론이며 그것은 계 안에서의 완성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이고 가치이고 옳은 것이고 선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정의고 그 모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필자의 구조론적 입장이다. 서구 구조주의 철학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같은 궤도 안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형적 사고를 통하여 미학에 도달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반합을 동일한 공간에 포지셔닝 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정-반에서 합으로 가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만다. 인과율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회로는 공간적 구축이다. 봄에 스위치를 켜면 가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들어온다.

 

봄이 지나고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시소의 이쪽이 오름과 동시에 저쪽은 내린다. 물가가 오르면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시장원리는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에 동조하고 있다. 동시에 공명하고 있다. 시간간격을 두지 않는다.

 

천칭저울의 좌우는 동시에 움직인다. 원인이 지나고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한다. 그러므로 미학이어야 한다. 미학은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다. 동시에 움직이므로 미학이다. 오케스트라의 합주는 1백개의 악기가 동시에 소리를 낸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제 목소리를 낸다.

 

그것은 미학의 모형이며 그것을 이미 얻었다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이미 풀린 것이다. 형님 먼저 아우 나중으로 순서대로 줄세워서 질서를 정하기는 쉽다. 재벌이 먼저 먹 고 남은 것을 중소기업이 먹는다. 주인이 먼저 먹고 남은 것을 하인이 먹는다. 그러나 이래서는 아름답지가 않다. 동시에 같이 먹으면서도 그림을 만들어야 진짜다. 그것이 예술이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각 악기가 한 파트씩 따로 고유한 제 목소리를 내다가 어느 한 순간의 절정에 도달해서는 일제히 정상으로 치닫는다. 모든 악기와 모든 목소리가 한 순간에 극한의 절정을 넘어가는 것이다. 숨넘어가듯이 넘어간다. 각기 때로 완성되었던 것이 한 순간에 집약된다. 그것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화살을 맞아야 한다.

 

플라톤부터 시작된 재래의 이원론은 결국 시간적 순서를 매기는 것이다.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다는 식이다. 임금이 먼저 먹고 남긴 것을 신하가 먹는다. 질서가 정연하지만 아름답지가 않다. 딱딱하게 죽어있다. 앞서가는 자는 앞서가고 뒤져가는 자는 뒤져간다.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위도 없고 아래도 없이 한 순간에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한다. 베토벤의 운명이라도 그렇다. 각자 제 목소리를 내다가 절정에 도달해서는 한 순간에 콰콰콰쾅 하고 쏟아붓는다. 그 순간에 차별은 없다. 질서를 뛰어넘은 질서가 있다.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화살을 맞은 인류는 모두 한 배를 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각자 자기 포지션에서 각자 자기스타일을 개성있게 완성하면서도 운명의 한 순간에는 모든 화력을 일제히 한 지점에 쏟아붓는다. 극을 넘어선다.

 

그 화살그림 하나를 얻은 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수학으로 낱낱이 쪼개진 것을 한꺼번에 한덩어리로 모아낼 수 있다. 세상은 마이너스로 가므로 애초의 완전성이 이데아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11.09.11 (19:50:57)

전송됨 : 트위터

구조론은 육신의 눈, 마음의 눈을 넘어 영안을 뜨는 것이오. 

덕분에 오늘도 날아가는 화살에 몸을 실었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이상우

2011.09.19 (00:23:57)

좋은 책들이란게 그랬소. 책내용에 빠져 몰입하여 실컷 재미를 얻으면서도 헤메고 고민하고 다시 읽고...

결국 한 줄로 요약되더이다.  그 한 줄이 안보이면 책읽은 것도 헛것. 물론 그 한줄이 없는 책이 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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