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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공관병의 이의제기에 부쳐 -

미국 독립 당시 미국인들 중 30프로 정도가 독립노선을 지지했다고 한다. 나머지 70퍼센트에 달하는 절대 자수의 미국인들은 여전히 여왕폐하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여왕을 잃는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하자 모두 그들의 새로운 아버지인 워싱턴을 숭배하게 되었다. 여왕에 충성을 바치는 충신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100여년 후 남북전쟁의 결과로 흑인 노예들은 해방되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옛 주인에게 되돌아 갔다고 한다. 그들에게 자유는 생소하고 어색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유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다.

그 흑인들의 자발적인 노예행을 아름답게 생각한 한국의 어떤 독재자는 바른 생활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실었던 것이다.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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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손등을 덥는 긴 소매옷을 입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청년에게 충고했다.

“이보게 젊은이. 그 옷 소매가 너무 길지 않나. 자네는 자네 체격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네.”

노인은 가위를 갖고 와서 청년의 옷소매를 자르려 했다. 청년은 매우 창피해 하며 줄행랑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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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결코 잊지 못한다. 독재자에 대한 나의 분노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담임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이렇게 풀이했다.

“요즘 철부지 대학생들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물들어서 함부로 민주주의를 말하고 다니는데 이건 잘못된 거지. 미국인들은 키가 크지만 한국인들은 키가 작다구. 미국식 민주주의는 한국인에게는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은 거야. 대통령 각하께서 10월 유신을 선포하신 뜻이 거기에 있지.”

그 흑인 노예들에게는 유신독재를 환영한 일부 한국인들과 같이 자유가 불편한 것이었다. 자유민이 된다는 것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듬해 봄에 뿌릴 씨앗을 자신이 결정해야 하고 제 손으로 수확한 면화를 판매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했지만 실로 농사를 알지 못했다. 이는 핸들을 잡지 않고 운전자의 옆에 동승해서는 백번 가도 길을 외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 다니는 길을 기억하려면 반드시 자신이 핸들을 잡아야만 한다.

그들은 밭에 무엇을 뿌려야 할지 또 가을에 어디에 팔아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충분한 토지도 없었다. 또 모든 노예주가 악질은 아니었다. 착한 노예주들은 흑인 노예들을 제 자식처럼 잘 대해 주었고, 그들 흑인 노예들에게 있어서 백인 노예주를 잃는다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잃는 것과 같았다.

물론 훗날 그들은 다시 백인 노예주를 떠났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예신세를 자신의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기에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며칠 전 공관병이라는 해괴한 보직의 병사가 장군을 고발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군에는 당번병이니 테니스병이니 하는 황당한 보직이 있다. 왜 민주화 시대에 이런 터무니 없는 보직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자발적 노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지 당번병은 많은 혜택을 받는다. 휴가를 가도 남들의 두배를 간다. 공관병은 장군의 집에 종살이를 하지만 대신 장군의 식사를 할 수 있다. 장군을 위한 요리의 절반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갈 것이다.

마찬가지다. 장군들이 공관병이라는 법에 없는 보직을 두는 것은 병사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병사들은 공관병의 꿈을 꾸고 테니스병의 꿈을 꾼다. 보직은 좋은 거다. 휴가는 두배고 훈련은 빠진다. 뿐이랴. 불침번도 면제고 야간근무도 면제다.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에도 당번병이 있었다. 당번병은 여성처럼 예쁘게 생긴 병사가 선발되는 것이 부대의 관례였다. 그 병사는 커피를 나르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충분한 휴가를 비롯한 많은 특전을 누리고 우대를 받았다.

당번병을 선망하는 병사도 많았다. 그러나 그 당번병은 내게 푸념하곤 했다. 세상에 별의 별꼴을 다 보는 엿 같은 보직이 당번병이라고. 그런데 장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장군의 면전에서는 아부하여 휴가라도 챙겨보려고 기를 쓰면서 돌아서서는 딴소리 한다고 말하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미국인들의 절대 다수는 그들이 어버이로 믿고 따랐던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한 번 워싱턴이 승리하자 졸지에 아버지를 바꿨던 것이다.

착한 흑인 노예들은 다시 노예주에게로 돌아와서 노예되기를 간청했지만 자신은 노예를 해도 자신의 딸들과 아들들까지는 노예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은 모두가 착한 백인 노예주의 농장을 떠났던 것이다.

한국의 당번병들은 어떻게 아부를 해서 휴가라도 얻어보려고 커피를 열심히 타곤 했지만 돌아서서는 자존심 상해하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자유를 원한다. 결국은 자유가 승리한다.

30년 전 긴 소매의 옷은 잘라서 우리의 몸에 맞추어야 하는 것처럼 미국식 민주주의는 우리의 몸에 맞는 한국식 유신독재로 바꾸어야 한다고 가르쳤던 선생님은 지금 뭐라고 말씀 하실까?

지금 독재자의 딸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딴나라의 자발적 노예들은 예전의 노예주를 찾아 다시 노예로 부려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그들도 집에는 키우는 자식이 있을텐데 그러고서 제 자식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100년 전 일본의 침략자들과 한국의 친일분자들은 한국인들은 원래 인종적으로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결코 청나라에 대한 사대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착한 일본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곤 했다. 빌어먹을 그 말이 맞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흑인 노예들이 일시 예전의 노예주를 찾아가 노예되기를 간청했지만 결국은 키우는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여 다시 그 농장을 떠났듯이 한국인들도 훌쩍 커진 2세들의 체격에 걸맞게 그 민주주의의 수준을 맞추고 말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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