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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35 vote 0 2005.09.08 (21:35:42)

지폐로 보아도 퇴계는 1000원이고 율곡은 5000원이다. 학자들도 퇴계 보다는 율곡을 더 쳐주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요상하게도 근자에 보면 퇴계만 인기가 있고 율곡은 인기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퇴계가 외국에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특히 퇴계의 영향을 받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퇴계사상 비슷한 아류는 외국에도 많으나 율곡사상은 특별히 한국에만 있다는 점이다.

율곡은 어떻게 말하면 1.5원론이고 나중 일원론으로 발전하였는데 아세아의 유교는 본래 2원론이고 일원론은 유별나게 한국에만 있다. 물론 1원론의 시조는 고봉 기대승이다.(엄밀히 말하면 기대승과 율곡은 일원론의 맹아단계이다.)

한국에서 특히 기독교가 전파되고 또 동학이 등장한 배경에는 이러한 율곡에서 서경덕 그리고 최한기로 이어지는 무신론 경향의 일원론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동학은 명백히 기독교 영향을 받았고, 기독교와 일원론은 공통점이 있다. 화담 서경덕은 무신론자라 해서 북한에서 추앙하고 있다.)

결론인 즉 중국, 일본과 차별되는 한국유교의 고유한 정체성은 일원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다. 그 일원론이 동학으로 꽃을 피우고 또 기독교사상의 발빠른 흡수로 연결되고 있다.

각설하고 막부를 종식시킨 일본의 대정봉환은 명백히 퇴계사상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대개 유교의 영향을 부인하고 있다. 일본은 아세아에서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한 별종이므로 오히려 유럽과 유사하다는 거다.

뭐 지들이 아세아가 싫고 유럽이 좋다면 그렇다 치고, 하여간에 일본이 태평양전쟁으로 몰락해 버린 이유는 유교를 배우되 퇴계를 겉멋으로 살짝 배웠을 뿐, 율곡을 배우지 않은 때문이라고 필자는 진단한다. 퇴계의 명분론이 극단주의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율곡은? 일원론에 가깝다. 일원론은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 음과 양으로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일원론은 기(氣) 일원론이다. 기는 조화하므로 반상의 차별이 없고 남녀의 분별을 부정하며, 하늘과 땅을 통일하고 음양을 본래의 하나로 환원한다.(동학의 평등사상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사실이지 음양은 없다. 빛은 그 입자가 있어서 태양에서 지구까지 날아오지만 어둠은 그 실체가 없어서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다. 어둠은 빛의 결핍을 의미할 뿐인 즉 빛을 설명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기가 존재할 뿐이며 그 기의 운행에 따른 성과 쇠를 음양으로 설명할 뿐 본래 음과 양이, 또 남자와 여자가 혹은 하늘과 땅이 별도로 나뉘어 각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발상법이 중요한 것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원론은 다르다. 이원론은 남자와 여자, 하늘과 땅으로 크게 나누어 한번 질서를 잡아준 후 뒤로 빠진다. 미시조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극단적으로 가게 되어 있다.

미국경제가 살아난 이유는 그린스펀이 금리라는 잣대로 미시조정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부단한 개입을 부당하고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근혜의 작은정부론이 그러하다.

국가가 개입해서 안된다. 정부가 나서면 안된다. 지식인이 나서면 안된다. 시민단체도 안 된다. 시장에 맡겨놓아야 한다. 자율에 맡겨야 한다. 민간에 맡겨야 한다. 이러한 논리의 배후에는 항상 이원론적인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 이원론..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천하의 질서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선비는 나아가 한번 크게 질서를 잡아주고 곧 낙향해서 후학을 키워야 한다.

● 일원론..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지속적으로 미시조정을 해주어야 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키는 하나 뿐이다. 그것이 일원론이다. 일원론은 그 하나의 키가 좌현과 우현을 동시에 관리하므로 선장이 한시라도 배에서 손을 뗄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이 커진다.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조슈와 사츠마의 하급무사들이 유럽 상인으로부터 신무기를 사들여서 퇴계사상을 명분으로 막부를 접수했다. 처음 그들은 잘나갔지만 곧 폭주했다. 아무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왜인가? 역할을 딱 나누어 버렸기 때문이다. 퇴계의 이원론이 음과 양, 남과 여, 하늘과 땅, 양반과 상놈으로 금을 긋고 참견하기 없기로 규칙을 정해버렸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그들도 금을 긋고 역할을 나눈 결과 브레이크 없는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 군부는 심지어 해군과 육군으로 나누어서 서로 싸우기도 했다. 같은 군부끼리도 금을 긋고 역할을 나누고 서로 ‘금 넘어오기 없기’를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한 패전이었다.

참여할 것인가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 원칙적으로 참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참여는 한번 들고 일어났다가 곧 그만두는 것이다. 단발성 참여다.

필자가 항상 주장해 마지 않는 시행착오에 따른 오류시정의 개념, 피드백의 개념, 쌍방향 의사소통의 개념, 미시조정의 개념은 일원론의 것이다. 이는 부단한 개입, 부단한 감시, 부단한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이원론은?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면 되고 재벌은 열심히 돈벌면 된다는 식이다. 남자는 열심히 직장다니고 여자는 열심히 아기 키우면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역할을 딱 나누어 버리면 애초에 충돌의 여지가 없어진다. 그러니 문제가 없고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어떤 일에 착수하는 초기에 잠시동안은 유효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는 사실이다.

선장은 키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돌리지만 그것은 배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만 왼쪽의 파도와 오른쪽의 바람에 각각 맞설 뿐이다.

헤엄치는 물고기는 꼬리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젖지만 실제로 물고기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꼬리가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몸통은 항상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역사를 통찰하여 보건대 필자의 경험칙으로 말하자면 어떤 새로운 흐름이 등장할 때 초반에는 반드시 이원론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이때 이원론의 방법을 적용하여 재빨리 구획을 나누고, 담장을 쌓고, 역할을 분담하는 쪽이 승리한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지나면 반드시 그 쌓았던 담장을 도로 허물고, 나누었던 포지션을 도로 없애며, 전체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팀이 최후에 승리하게 되어 있다. 축구라도 그렇다. 초기에는 포지션을 잘 나누는 것이 전술이었지만 지금은 각자가 멀티플 플레이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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