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과 노무현
최장집의 방식은 참여지성의 모범이 될 수 없다.
최장집의 말은 범진보 진영의 논리틀 안에서는 대략 맞는 말이지만, 대통령께 말하는 형식을 빌어서 실제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는 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공허함이 있다.
그의 의도는 자신의 생각을 청와대의 정책에 반영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논리의 정합성을 유지하여 먼 훗날 ‘그때 그 시절에 그래도 최장집이 있었지’ 하는 괜찮은 추억 하나를 남겨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전쟁이다. 신자유주의가 나쁜건 사실이지만 전쟁이 나쁘므로 전쟁을 미워하자는건 우리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전쟁은 부시가 먼저 도발해왔고 우리의 할 일은 응전하는 것이다.
불행이 일어난 이유는 범 지구 차원의 에너지 위기를 맞아 네오콘이 발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경제환경의 변화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 지구는 지금 위기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상황에서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먼저 덮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왜 노동자 농민이 전담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할건 인정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제기할 수 있다.
노동자가 대한민국의 공동이익을 위해서 이 전쟁에 협력하는 대신으로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일어난 전쟁을 일부러 못본척 하면서 고통분담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악화된 경제환경을 인정하고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전쟁에 협력하는 대신, 복지확충이라는 반대급부를 얻어낼 수 있게 하는 리더십이며, 그 리더십을 노무현 대통령이 행사할 의지가 없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으나, 경제전쟁이라는 환경의 변화 자체를 부인하는 태도로는 애초에 대화가 안 된다.
대화는 단절, 소통은 불능! 벽 보고 말하기 게임.
최장집은 참여정부와의 소통을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최장집의 말은 대략 맞는 말이기에 일단은 들어둘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민주화 과정이라는 역사성을 무시하고 기업의 CEO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기를 지지해준 세력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해야만 역사가 바로 간다.
노무현 대통령도 15년 전에는 기업가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100프로 노동자 입장에 서서 말하곤 했다. 그 시점에서는 그것이 옳았다. 이제는 대통령이 되니까 대통령 입장에서만 말한다. 그 역시 옳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측면에서 보자면
1) 노동자는 노동자 입장만 말하고 기업가는 기업가 입장만 말하는 경우
2) 노동자 입장과 기업가 입장을 반반씩 섞어서 말하는 경우
어느 쪽이 더 진실을 잘 전달할까?
정치는 어차피 선택이다. ‘평화냐 전쟁이냐’ 우리는 부단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일단 하나를 선택하면 그 노선으로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한 쪽의 입장은 뻔히 알고도 버려야 한다.
노동자 입장을 선택했으면 기업가 입장은 알고도 눈을 감아야 하고, 기업가 입장을 선택했으면 노동자 입장은 알고도 눈을 감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그래야만 적어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반씩 섞어서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A와 B의 두 방법이 있다면, 먼저 A를 시도해보고 안되면 B를 시도하는게 맞지 AB를 반반씩 섞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죽을 쑤려면 확실히 죽을 쑤는게 맞고 밥을 지으려면 확실히 밥을 짓는게 맞다. 어떤 경우에도 죽밥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최장집은 최장집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만 말이 일관되게 가서 적어도 절반의 진실은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결론적으로 최장집은 절반의 진실을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20년 전 변호사 노무현이 노동자 입장만 말했듯이, 최장집 역시 나머지 절반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지만 그 부분은 최장집의 책임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도는 옳지만 역사의 큰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며, 애석하게도 우리가 대통령을 도울 방법은 많지 않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CEO다운 대통령의 방법이 눈 앞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대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일정부분 후퇴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범개혁세력의 입지는 약화될 것이며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으려다가 모범사례를 잃어버릴 것이다.
한의학의 방법을 쓰는 노무현 의사
대한민국이 병에 걸려 있는데, 두 의사의 의견이 다르다면 먼저 A의사에게 전적으로 맡겨보고 치료가 안될 경우, B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명확한 임상사례를 만들어서 후학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된다.
노무현 의사는 어떻게든 치료하겠지만 그 방법은 한의사의 방법이어서 본인이 명의로 이름을 날리되 후학들이 따라배울 수 없다.
양의.. 병을 치료하든 못하든 확실한 자료가 남고 그것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역사성이 있다.
한방.. 병은 치료되었는데 명의의 명성만 남고 제자들은 스승의 방법을 재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차악을 선택한 끝에 부단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통해서 모범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어디선가 나타난 초인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해주면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경험이 없어서 언제나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게 될 뿐 민주주의는 나아가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의사처럼 치료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 혼자가는 것이지 범개혁세력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모로 가도 병만 치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그것은 역사의 방식이 아니다.
최장집의 방법은 참여지성의 전범이 아니다
필자의 결론은 지식인 입장에서 대통령을 비판할건 비판하되, 그리하여 자료를 남겨두어 훗날의 본보기가 되도록 하되, 일단은 지도자의 방법을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 참여지성의 의무라는 것이다.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그 부분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평가하되 일단은 그 흐름을 끊어서는 안된다. 왜인가?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기세로 결판이 나는 것이며 기세를 끊는 것은 최악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은 리더의 사소한 오류를 트집잡아 이 전쟁에서 기세를 끊고 흐름을 막고 사기를 떨어뜨려 대사를 그르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단지 졸병노릇 하기 싫다는 이유로.
말은 최장집이 맞고 행동은 노무현이 맞다. 최장집의 말은 기억해 두었다가 훗날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척도로 삼아야 하고, 노무현의 행동에는 지금 참여해야 한다. 노무현은 CEO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유권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노무현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