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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967 vote 0 2011.08.04 (22:43:53)

 


마이너스 하나로 설명해야 한다.

 

세상은 마이너스라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므로 우리는 전부 한 줄에 꿰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고 그 진행의 각 단계에 스위치를 설치하여 대상을 통제할 수도 있다.

 

 

46.JPG  

야구선수들이 공을 주고 받는다. 축구선수들이 공을 돌린다. 이때 주는 것은 있어도 받는 것은 없다.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관념일 뿐 자연에 없다. 자연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으므로 줄 뿐이다.

 

받는 행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축구라면 논스톱 패스다. 패스를 연결하는 중에 공을 멈춰 세운다면 좋지 않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플러스가 있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47.jpg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다. 폭포 아래에는 깊은 소가 형성되어 있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아래의 소(沼)가 손을 벌리고 공손하게 물을 받지는 않는다. 물은 그냥 일방적으로 떨어진다.

 

자동차 연료를 절약하는 경제운전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이들을 모두 공부한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간단히 한 마디로 정리해 준 사람이 있었다. ‘운동에너지를 잃어먹지 말라.’ 필자는 대번에 이해했다.

 

고갯마루에서 자동차가 감속될 때 엑셀을 밟아 가속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내리막이다. 이때 고민하게 된다. 기름을 아끼기 위해 고갯마루에서는 엑셀을 밟지 말아야 하는가?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엑셀과 브레이크 둘로 판단하면 벌써 복잡해진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기름을 아끼는 방법은 가능한 한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것이다. 엑셀은? 상관없다. 신경쓰지 말라.

 

신호등에 빨간불이 보이면 미리 엑셀에서 발을 뗀다.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기 위해서다. 중요한 점은 브레이크만 확실히 결정하면 엑셀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거다. 마이너스만 집행하면 플러스는 자동이다.

 

외야수가 공을 받을 때 어디서 받을까 고민할 필요없다. 받는 위치는 공이 결정한다. 그냥 공이 오라는 데로 따라가면 된다. 마이너스는 자신이 결정하지만 플러스는 항상 타인이 결정해준다.

 

만년필 잉크를 언제 갈아넣을 것인가? 내가 고민할 필요없다. 플러스 문제는 만년필이 알아서 결정해준다. 잉크가 안 나오면 그때 넣어주면 된다. 플러스는 고민할 필요없이 기계적으로 결정되어 통보된다.

 

이 법칙은 식당에서도 회사에서도 어디에서도 적용된다. 브레이크만 결정하고 엑셀은 잊어라. 주는 것만 신경쓰고 받는 것은 잊어라. 두 가지로 판단하지 말고 한 가지로 일원화 시켜 판단하라.

 

오르막길에서 엑셀을 밟아 가속해도 상관없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만 밟지 않는다면. 물론 내리막길에 과속방지 단속카메라가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만큼 밟으면 된다.

 

어떤 일의 설명이 양방향으로 전개되어 헷갈릴 때는 상부구조가 있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가야 한다. 반드시 배후에 숨은 상부구조가 있으며 상부구조에서는 양방향이 아니라 한 방향 전개이다.

 

폭포 아래의 소에서는 물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 잠시 헷갈리지만 한 단계 위의 폭포를 보면 물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히 답이 나와준다. 헷갈릴 때는 일단 거기서 빠져나와서 고개를 들어 한 단계 위의 높은 곳을 보라.

 

다이어트로 설명할 수 있다. 살을 빼려면 일단 굶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조언한다. 무턱대고 굶지는 말라고.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먹으라고. 헷갈리기 시작한다. 먹고 어떻게 살을 빼?

 

상부구조는? 몸의 자율조절기능이다. 밥을 굶으면 인간의 몸은 흉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여기고 당이 들어올때마다 허리에 지방을 저장한다. 굶느라 너무 늦게 밥을 먹으면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잠이 쏟아진다.

 

몸은 인체기능을 떨어뜨린 다음 인슐린을 분비하여 당을 최대한 지방으로 전환한다. 굶다가 살찐 사람 많다. 몸이 버티기 때문이다. 식사량을 줄이되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몸은 풍년이므로 지방을 저장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혈당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신진대사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 칼로리를 소모하므로 당연히 살이 빠진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운동을 하면 부어서 근육에 수분이 저장된다. 일시적으로 체중이 늘어나는 수가 있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소모한 칼로리 만큼 체중이 줄어들어야 맞잖은가?

 

하드트레이닝을 하면 몸은 인간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동생활을 한다고 여긴다. 이동하는데 장애물은 무거운 살이다. 이동생활에 방해되는 살을 버려야 한다고 몸이 판단하므로 조깅을 하면 살이 빠진다. 그러므로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30분 뛰면서 1000칼로리 소모하는 것보다 1시간 걸으면서 800칼로리 소모하는 것이 더 다이어트에 낫다.

 

단순히 생각하면 밥을 굶고 운동을 한 만큼 기계적으로 살이 빠진다고 생각되지만 실천해보면 초기 단계에는 그렇지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시적인 반동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착각한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깊은 소(沼)에 고였다가 충분한 에너지를 얻은 다음 빠져나간다. 소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 일시적 반동이 일어난다. 뛰려면 움츠려야 한다. 그 움츠리는 과정이 반동이다.

 

움츠리는 것을 보고 대세의 방향이 바뀐줄로 착각하고 역사의 진보를 포기한 채 보수꼴통 쪽에 붙으면 곤란하다. 1파가 지나간 다음 2파가 치고나가기 전에 움츠리지만 상부구조로 보면 연속동작이다.

 

수비수가 공을 잡아서 1루로 던지기 전에 잠시 멈추지만 방향을 바꾸기 위한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동작을 멈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기 전체의 흐름을 보라는 말이다. 굼뜬 수비수에게 속은 것이다.

 

지금과 같은 보수의 득세도 잠시의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의 방향성을 판단하는 눈을 얻어야 한다. 전체로보면 한결같이 마이너스로 간다. 플러스는 없다. 진보도 보수도 모두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다.

 

포텐셜 개념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한 계단씩 에너지의 위상이 떨어지며 그 계단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음 단계의 진행을 준비하는 동안 작은 반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호흡조절에 불과하다.

 

물은 소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밸런스를 이룬 다음에, 센터가 결정된 다음에, 리더가 선출된 다음에,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성이 결정된 다음에 갑자기 포텐을 터뜨린다. 운동선수도 어느 시점에 갑자기 기량을 발휘한다.

 

그 동안은 실력이 저축된다. 2군선수가 1군에 올라와서 꾸준히 출장기회를 보장받을 때 어느 순간 갑자기 실력이 확 늘어나는 것이다. 밸런스가 잡힐때까지 실력발휘는 유보되는 것이다

 

왜 반동이 일어나는가? 움직이면 에너지 중심이 쏠린다. 한 계단을 떨어질 때마다 다시 에너지 중심을 형성해야 한다. 운동의 진행방향은 반드시 센터에서 결정하므로 센터를 구축하느라 멈추게 된다.

 

45.JPG  

반동은 정동을 위한 밸런스 조절에 불과하다. 그것이 내부에서 관측하면 물이 폭포를 거슬러 반대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류에 편승하며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은 역사의 방향이 바뀐 줄로 착각한다.

 

한 걸음 발을 빼고 멀리서 보아야 방향성이 보인다. 제 1파 다음에 제 2파가 치고나갈 동안 잠깐의 숨고르기는 에너지 중심을 새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선두와 후미간의 늘어진 간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PS..

마이너스는 작용, 플러스는 반작용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항상 세트로 다니므로 인간은 작용만 확실히 결정하면 되는데 반작용까지 신경쓰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여기서 마이너스 원리 하나만 제대로 알아도 크게 벌어가는 것이다. 일생에 투입되는 스트레스 비용을 반으로 줄인다.

 

내가 잘해도 행여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없다. 남이 잘못 아는건 남이 신경쓸 일이고 내가 잘할것만 신경쓰면 된다. 인생의 고민은 99퍼센트 이런 것이다. 내가 양심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는데 상대방이 못돼먹어서 나를 의심하고 끝내 용서하지 않으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다. 내 문제만 제대로 실천하면 된다. 걍 웃어주면 된다.

 

사실이지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았다. 내가 할 일은 일단 하고 나머지는 신의 책임이다. 나는 구조론을 쓰고 신은 적당한 때 그것을 퍼뜨린다. 내가 구조론을 완성했느냐가 중요할 뿐, 그것이 세상에 어떻게 알려질 것인가를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다. 세상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나를 완성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내가 상대를 사랑했는데 상대가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제대로 사랑했느냐가 중요하다. 할 일(마이너스)만 신경쓰고 그 보답(플러스)은 신경쓰지 말자. 보답은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확률의 형태로 어딘가 저축된 거다.

 

내일 옷을 안입고 출근할까 걱정할 필요없다. 발가벗고 출근하는 넘은 없다. 날이 춥기 때문이다. 옷을 입는 플러스는 저절로 해결된다. 그러나 똥은 싸고가야 한다. 가다가 중간에 똥싸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확실히 마이너스 하고 가자.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1.08.05 (10:14:01)

ps의 나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를 확실히 구분하는거.  이거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지? 나도 글케 살아왔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5 (10:28:57)

이것만 잘 해도 인생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오.

세상살이 이야기 들어보면 대부분 남의 고민을 자기가 고민하고 있소.

 

내가 공을 정확히 던졌는가만 신경쓰면 그 뿐

저쪽에서 내 공을 제대로 받았는가는 확률에 넘기면 그 뿐.

 

예컨대 얇은 주머니에서 1백만원을 빼 쓴다면 큰 고민이 되지만

인생전체의 총 수익 10억에서 빼 쓴다고 하면 고민이 안 되는 것이오.

이런 일이 인생에 몇 번 일어나는가 확률만 챙기면 되니까.

 

상부구조로 보면 간단히 정리가 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5 (20:31:44)

 

나의 문제와 타인의 문제가 한데 뒤섞여 있었던 적이 있었소.

어쩌면 모든 괴로움의 시작은 한데 엉켜있다는 라는 것인것 같소.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ㅋㅋ^^;

 

그런데 어디까지가 나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몫인지 쉽사리 구분이 안될 때도 있소.

자신이 선택해야 될 부분이 자신의 몫이고 자신의 선택권을 넘어서 버리는 부분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구분해야 할 때... 어찌보면 인간이 냉정하다. 라는 지점이기도 하여, 그렇게 타인에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타인이 냉정해 보인다라고 하는 것과 자신이 냉철하게 선택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인데...이 부분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소. 또한 그러한 것들은 타인의 시선들이 간섭을 하려 드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오.

 

분리하고, 구분하려는 것과 뭉덩거려 섞여 버리려고 하는 것에서, 시선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이며, 대체로 뭉덩거려 버리려는 시선들은 끈적거리는 유대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1.08.06 (21:08:44)

내 문제와 타인의 문제를 분리해서 머릿속으로 정해야 한다면, 기냥 냅두는게 편할지도.

이건 기냥 유전자가 정하는거요.

생각으로 정한다는게 넘 신기하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7 (02:58:21)

 

유전자가 정한다는 것을 좀 더 풀어서 설명해주시오. ^^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1.08.07 (10:37:02)

그런 성향으로 태어난다는 거요.

 

그렇게 안태어났다면,  뭔가 깨달음이 필요한데,

그게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예를들어 엄마가 죽었다.

나는 엄마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느낄 것이나  그 슬픔은 간결한 것이요.

내안의 다른 슬픔을 작동시키는 요소들과 합체시켜 슬픔덩어리를 키워서 즐기거나 하지 않는 것.

엄마의 죽음 자체는 나의 문제가 아닌것이요.

엄마가 왜 죽었을까 부터 시작해서,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빠나 형제들에 대한

미움이나 평가따위를 내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런건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성향으로 정해진다는 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1.08.07 (22:14:42)

 

'

그런 성향으로 태어난다는 거요.

 

그렇게 안태어났다면,  뭔가 깨달음이 필요한데,

그게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예를들어 엄마가 죽었다.

나는 엄마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느낄 것이나  그 슬픔은 간결한 것이요.

내안의 다른 슬픔을 작동시키는 요소들과 합체시켜 슬픔덩어리를 키워서 즐기거나 하지 않는 것.

엄마의 죽음 자체는 나의 문제가 아닌것이요.

엄마가 왜 죽었을까 부터 시작해서,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빠나 형제들에 대한

미움이나 평가따위를 내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런건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성향으로 정해진다는 거요.'

 

................................................................................................................................................................................

 

 

이 문장들 전체가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혹은 알고자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되네요.

이러한 것이 자동으로 되는 사람은 그런 성향이 이미 발현되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이오.

거기에 깨달음이 가교 역할을 하겠지만....

 

이러한 상황을 보는 것에서 냉정과 냉철이 같이 존재하고 있다고도 보이오.

행위하는 자의 입장에서의 냉철과 그 행위를 지켜보는 자의 입장에서 보는 냉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같은 것을 다르게 전달 받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되오.

그리고 냉철과 냉정의 차이를 가르는 것은 감정이 지나치게 개입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라고 생각도 되오.

감정의 절제를 의식적으로 하는 사람과 자동으로 되는 사람의 차이가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사람은 어느 순간에 상대의 감정의 선을 자기도 모르게 읽어버릴 때가 있다고 보이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을 읽어버리게 되는 것과 자기 감정에 천착하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보이오.

이것 역시 구별이 되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구별되어 감정이 서로 섞이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얽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보이오.

어쨌든 그 감정의 선을 읽어버리게 되었을 때, 그 읽혀진 감정이 자기 감정이 될 때도 있고 거리를 유지하고 보는 경우도 있다고 보이오. 이건 조절의 문제라고 보이오. 조절의 밸런스를 맞춰주면 되오. 그런데 이 역시 깨달음의 문제일 수도 있소.

자신이 생각했다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로 자동으로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겠으나, 결대로 가면 자동으로 일어난다고 생각되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반드시 생각을 하고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되오. 

 

보통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것, 그것이 제대로 발현이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이오. 이것은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집착한다던가? 혹은 감정을 속이거나 혹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환경과의 교감이 안좋을 때라고 생각되기도 하오.

그리고 때로는 발현이 안되어야 좋은 경우들도 있을 수도 있다고 보이지만...

타고난 성향으로 정해진 것들은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발현되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보이고, 타고난 성향에서 자동적으로 발현되는 것들이 환경과의 교감에서 그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는 고립되는 성향으로 흐를 확률도 있다고 보이오. 그러나 긍정적인 경우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끌고 가기 때문에 환경과의 교감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보이오.

 

태어날때부터 세상과의 주도권을 유리하게 갖고 있는 것과 후천적인 각성 혹은 자각을 통하여 세상과의 주도권을 자기쪽으로 돌리는 것에서...., 주도권은 선택권을 자기가 행사한다는 것이므로..., 선천적인 것의 발현의 시기에서 어떤 계기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소. 그것이 사막을 건너는 문제일 수도 있고, 살면서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 자신의 성향을 자각할 수도 있다고 보이오. 누구나 다 깨닫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못 깨닫는다고 할 수도 없소. 단지..조금의 차이는 있다고 보이오. 그래서 관점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id: 느닷없이느닷없이

2011.08.05 (23:34:55)

출근 전에 똥을 싸야 좋다는 말씀은 정말 공감 100%입니다! 도중에 밖에서 똥싸면 정말 피곤합니다...!!!

 

'일시적인 반동에 속지말자!!!' 머리로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도 막상 매번 그대로 실행하기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마음은 벌써 그 반동을 느끼고 몸은 이미 반응을 하고 있더군요.

 

좀 더 멀리 앞을 내다보고 운전을 하라는, 운전학원 강사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글이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6 (09:44:53)

일시적인 반동도 필요하니까 있는 겁니다.
반동이 나쁜게 아네요.
반동을 합리화 정당화 하고 논리를 만들어 내는게 나쁘죠.
실용이 반동인데 실용도 필요합니다.
급할때는 비상한 결단도 요령도 속임수도 가능해요.
문제는 그 속임수를 참이라고 사기치고 거기서 머무르는 겁니다.
일회용으로 반동하고 밸런스 잡고 얼른 빠져나오면 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잘 없죠. 유시민 정도나 그렇게 하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8.06 (09:57:01)

역사에는 항상 정동과 반동이 있습니다.
정동만 하면 센터가 붕괴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정기적으로 센터를 교체합니다.
강남이 지고 신도시가 뜨는거죠.
구문명이 망하고 신문명이 뜨고 서구가 망하고 동양이 뜨고.
아니면 이보전진후 일보후퇴를 합니다.
계속 진보하려면 이보전진후 센터교체라는 고차방정식을 써야합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구역에서는 일시적인 반동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관성의 법칙, 인간은 한번 한 짓을 반복하는 습성이 있다는거.
계속 반동하며 정당화 논리를 만드는거.
그러므로 필요한 반동은 바보들에게 시키고 우리는 정동만 하는거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6]태곰

2011.08.10 (16:54:35)

"할 일(마이너스)만 신경쓰고 그 보답(플러스)은 신경쓰지 말자. 보답은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확률의 형태로 어딘가 저축된 거다"


좋은 말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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