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는 권력측의 필요에 의하여 신격화된 영웅주의를 강조했다. 이순신은 독재의 입맛에 맞게 왜곡되었다. 민주화 이후 영웅의 신격화를 부정하는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었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각각 개성을 지닌.. 나름대로 한 칼씩 하는 멋쟁이 영웅이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지금 TV에 방영되고 있는 김탁환 원작 ‘불멸의 이순신’도 드래곤볼류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아서.. ‘모두가 개성있는 영웅’ 이라는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예컨대 일본만화 슬램덩크엔 변사또 같은 악당이 없다. 모두가 저잘난 영웅이다.)
오다, 토요토미, 도쿠가와가 각각 개성이 다른 일본의 영웅들이듯이.. 이순신과 원균이 둘 다 조선의 영웅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의 실용주의 관점을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에 억지 적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진실로 말하면.. 한국에는 한국의 시선이 있다. 한국의 관점으로 보아야 진짜가 보인다.
조선은 유교국가다. 유교주의가 강조하는 역할모델이 존재한다. 그것은 공자선생의 군자모델이다. 이순신은 스스로 군자(君子)가 되려고 노력했다.
우선 장군의 이름부터 삼황오제 시절 순(舜)임금의 신하가 되라는 뜻에서 순신이다.(순신의 둘째형은 요신, 아우는 우신.. 각각 요임금과 우임금에서 따옴.)
이순신은 이상적인 유교주의 가치관을 실천하려 했으므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주의를 이해해야 한다.(송두율이 말하는 바 내재적 접근의 관점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이순신은 유교의 이상에 도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이며 원균은 거기서 많이 빗나가 있다.(일본풍의 실용적 관점은 틀려먹은 것이며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즉 한국적 합리주의 정사론(正邪論)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21세기 이 시대에 바른 관점은 어떤 것일까? 샤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두고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묘사했지만 그가 남긴 ‘게바라 일기’는 실수투성이 게바라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샤르트르는 어설픈 영웅주의자였을까?(샤르트르가 말한 완전이 주사파의 품성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은 물론이다.) 무엇이 완전한 인간의 모습인가?
결론적으로..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있다. 물론 그 완전은 신의 얼굴을 한 완전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완전이어야 한다. 신의 관점으로 보면 체 게바라는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지만..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그는 완전에 가깝다.
그런데..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혁명에 성공해서 독재자가 되었다면? 카스트로처럼 100살 가까이 장수했다면? 그 역시 한심한 독재자에 불과했을 수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결론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미학적 관점이란 특정 부분을 발췌하여 범위를 좁혀놓고 본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기의 웃는 얼굴은 천사와 같다. 기저귀에 싸질러놓은 거시기는? 그건 논외로 한다. 완전한 인간이라 해서.. 방귀도 예술적으로 우아하게 뀌는건 물론 아니지만.. 그건 논외로 하는거다.
영웅적인 결단을 내려야 했던, 몇몇 인상적인 장면으로 한정하여 볼 때 그는 완전한 인간이다.
무엇이 완전인가? 다만 역사의 시험대에 올랐을 때 영웅적 결단을 내렸는가다. 사실이지 타고난 악당도 평범한 하루는 있다. 악당이 악당으로 된 것은 그가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다.
조영남도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면 그 역시 훌륭한 한 명의 연예인이었을 것이다. 조영남은 시험에 들었다. 전여옥처럼 요령있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된통 걸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는 멋지게 그 시험을 통과했다.
임종석, 정청래, 송영길 등은? 그들 역시 시험에 걸리지 않았다면.. 훌륭한 386정치인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재수없게 시험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손석희처럼 영리하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 시마네현 의원을 박살낸 멋쟁이 손석희.. 사전에 완벽한 준비를 했다.
● 산케이에 걸려 된통 당한 쪼다 조영남..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는 불공평한 것일 수도 있다. 손석희가 커닝페이퍼(?)를 마련했다면 조영남은 필기구도 준비하지 않고 시험장에 간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가 인간을 시험하는 방식이라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유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영악하게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철부지 386들은.. 멍청하게 떼로 몰려다녔다.
그렇다면? 원균은 용맹한 장수다. 이순신은 영리한 장수다. 일본식 실용주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개성이 다른 장수들이다. 그러나 한국적 합리주의로 보면? 이순신이 멋쟁이 손석희라면 원균은 쪼다 조영남이다.
완전함이란 무엇인가? 과거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었다. 에디슨은 헛간에서 병아리를 품었고, 워싱턴은 도끼로 나무를 찍은 사실을 고백했으며, 링컨은 비에 젖은 책을 돌려주었고,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칼싸움만 하고 놀았다는 식이다. 틀렸다. 진정한 완전함은? 준비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교주의 가치관 하의 역할모델에 있어서 이순신은 완전한 인간이다. 원균은? 뭣도 아니다. 그는 쪼다 조영남이다.
물론 이순신도 많은 잘못들을 범하고 있다. 이순신의 헛점을 대략 생각나는대로 열거해보기로 하자.
● 녹둔도 시절 상관이었던 이일장군과 충돌한 점.. 이순신은 지나치게 깐깐한 인간이었다. 그는 성격이 모나기가 유시민과 같았다. 괘씸죄에 걸려 백의종군하게 되었다.(실제로는 지휘권을 그대로 행사했음, 처벌은 상징적인 것.)
● 왜적을 가장하여 피난민을 등쳐먹은 농민들을 참수한 점.. 이순신장군의 잔인한 면모는 도처에서 관찰된다. 그러나 전장에서 장수의 냉정함은 필수다.
● 서열이 더 높은 원균을 따돌리고 단독장계를 올린 점.. 당시의 시대 분위기는 당쟁의 영향으로.. 파가 다르면 상대방을 소인배라 하여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유교 선비의 오만하고 독단적인 면이 이순신에게도 있다.(도처에서 발견되는 이순신의 독선적인 태도는 그 시대의 분위기로 이해해야 한다.)
● 잘못을 저지른 동료 관리를 맹비난 한점.. 그는 독하기가 유시민을 뺨친다. 난중일기에는 다른 관리를 비난하는 대목이 이상하게 많다.(개인의 일기장이니까 자기 본심을 그대로 적었다고 봐야. 개혁에 소극적인 동료의원을 구박한 유시민과 비슷.)
● 부산포에서의 전공을 가로챈 점.. 부산포 해전은 육지의 의병이 먼저 불을 질렀고 이순신이 동시에 바다에서 공격했는데 이순신은 이를 자기의 공적으로 삼아 장계를 올렸다. 이걸로 선조임금의 눈 밖에 났다.(의병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 또는 우연의 일치. 그런데 이순신은 유별나게 자기 부하들을 챙기는 면이 있다. 그 영향으로 이순신 부하들이 모두 원균을 미워해서 나중 통제사가 된 원균이 부대를 장악하지 못하고 지휘에 실패한 측면도 있다.)
● 부산 앞바다에서 정유재란을 막지 않은 점.. 작전권을 위임받아 전장에 나선 장수는 임금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다.(이순신은 충성스런 신하라기 보다는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잘못된 것은 따르지 않았다.)
이순신은 깐깐하고 냉철한 장수였다. 그는 자기 부하들은 끔찍하게 아꼈으나 다른 장수들과는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동료의 잘못을 냉혹하게 비판하여 왕따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일벌백계를 위해 서슴없이 부하를 참수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순신 장군의 이런 점들이 단점일까? 천만에! 유교주의 가치관으로 보아야 한다. 유교주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이순신과 근접해 있었던 것이다.
공사를 구분하되.. 사적영역에서 자기 부하들은 끔찍이 아끼고.. 공적영역에서 상관의 잘못도 서슴없이 질책하는.. 이것이 진정한 유교 선비다.
신격화된 영웅과 인간적인 영웅
이순신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예컨대.. 이순신장군이 노량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선조의 지위를 위협해서 역적으로 몰렸을 수 있다. 그런 시대였다. 신무왕을 즉위시키고 팽 당한 신라의 장보고처럼.. 정치에 휘말려 안좋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니까.
그러나.. 알려진 역사기록만을 검토할 때 나는 이순신의 오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유교주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근접하여 있다.
이순신.. 냉정한 인간이다. 물론 그에게도 눈물이 있고 인간미가 있다.(난중일기에는 곡하는 장면이 많다. 이순신은 걸핏하면 울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엄격한 예절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눈물을 강조하는 사회였다. 요즘 사람들이 조선시대 선비들 보다 훨씬 적게 운다.)
공적 영역에서 냉철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인간미가 넘치는.. 그런 모습은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시민도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이순신과 원균이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두 영웅이라는 TV의 시각(정확히는 김탁환의 관점)은 일본만화 슬램덩크류 실용주의 관점이며.. 송두율의 율 접근을 쫓아 한국의 유교주의 정사관으로 볼 때, 이순신은 멋쟁이 손석희에 가까운 전형적인 영웅이고 원균은 쪼다 조영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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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영웅은 있다. 영웅주의는 신격화된 고전적 영웅주의에서 보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더 세련된 현대적 영웅주의로 변하여갈 뿐이다.
영웅이란? 운명적으로 역사의 시험대에 올랐을 때, 영웅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긴장하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역사가 당신을 시험하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 탄신 460돌에 생각해 보았다.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각각 개성을 지닌.. 나름대로 한 칼씩 하는 멋쟁이 영웅이었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지금 TV에 방영되고 있는 김탁환 원작 ‘불멸의 이순신’도 드래곤볼류 일본 만화의 영향을 받아서.. ‘모두가 개성있는 영웅’ 이라는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예컨대 일본만화 슬램덩크엔 변사또 같은 악당이 없다. 모두가 저잘난 영웅이다.)
오다, 토요토미, 도쿠가와가 각각 개성이 다른 일본의 영웅들이듯이.. 이순신과 원균이 둘 다 조선의 영웅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본의 실용주의 관점을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에 억지 적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진실로 말하면.. 한국에는 한국의 시선이 있다. 한국의 관점으로 보아야 진짜가 보인다.
조선은 유교국가다. 유교주의가 강조하는 역할모델이 존재한다. 그것은 공자선생의 군자모델이다. 이순신은 스스로 군자(君子)가 되려고 노력했다.
우선 장군의 이름부터 삼황오제 시절 순(舜)임금의 신하가 되라는 뜻에서 순신이다.(순신의 둘째형은 요신, 아우는 우신.. 각각 요임금과 우임금에서 따옴.)
이순신은 이상적인 유교주의 가치관을 실천하려 했으므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주의를 이해해야 한다.(송두율이 말하는 바 내재적 접근의 관점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이순신은 유교의 이상에 도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인물이며 원균은 거기서 많이 빗나가 있다.(일본풍의 실용적 관점은 틀려먹은 것이며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즉 한국적 합리주의 정사론(正邪論)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21세기 이 시대에 바른 관점은 어떤 것일까? 샤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두고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묘사했지만 그가 남긴 ‘게바라 일기’는 실수투성이 게바라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샤르트르는 어설픈 영웅주의자였을까?(샤르트르가 말한 완전이 주사파의 품성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은 물론이다.) 무엇이 완전한 인간의 모습인가?
결론적으로..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있다. 물론 그 완전은 신의 얼굴을 한 완전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완전이어야 한다. 신의 관점으로 보면 체 게바라는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돈키호테형 인간이지만..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그는 완전에 가깝다.
그런데..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혁명에 성공해서 독재자가 되었다면? 카스트로처럼 100살 가까이 장수했다면? 그 역시 한심한 독재자에 불과했을 수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결론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미학적 관점이란 특정 부분을 발췌하여 범위를 좁혀놓고 본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기의 웃는 얼굴은 천사와 같다. 기저귀에 싸질러놓은 거시기는? 그건 논외로 한다. 완전한 인간이라 해서.. 방귀도 예술적으로 우아하게 뀌는건 물론 아니지만.. 그건 논외로 하는거다.
영웅적인 결단을 내려야 했던, 몇몇 인상적인 장면으로 한정하여 볼 때 그는 완전한 인간이다.
무엇이 완전인가? 다만 역사의 시험대에 올랐을 때 영웅적 결단을 내렸는가다. 사실이지 타고난 악당도 평범한 하루는 있다. 악당이 악당으로 된 것은 그가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다.
조영남도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면 그 역시 훌륭한 한 명의 연예인이었을 것이다. 조영남은 시험에 들었다. 전여옥처럼 요령있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된통 걸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는 멋지게 그 시험을 통과했다.
임종석, 정청래, 송영길 등은? 그들 역시 시험에 걸리지 않았다면.. 훌륭한 386정치인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재수없게 시험에 걸려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손석희처럼 영리하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 시마네현 의원을 박살낸 멋쟁이 손석희.. 사전에 완벽한 준비를 했다.
● 산케이에 걸려 된통 당한 쪼다 조영남..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는 불공평한 것일 수도 있다. 손석희가 커닝페이퍼(?)를 마련했다면 조영남은 필기구도 준비하지 않고 시험장에 간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가 인간을 시험하는 방식이라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유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영악하게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철부지 386들은.. 멍청하게 떼로 몰려다녔다.
그렇다면? 원균은 용맹한 장수다. 이순신은 영리한 장수다. 일본식 실용주의 관점으로 보면 그냥 개성이 다른 장수들이다. 그러나 한국적 합리주의로 보면? 이순신이 멋쟁이 손석희라면 원균은 쪼다 조영남이다.
완전함이란 무엇인가? 과거엔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었다. 에디슨은 헛간에서 병아리를 품었고, 워싱턴은 도끼로 나무를 찍은 사실을 고백했으며, 링컨은 비에 젖은 책을 돌려주었고,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칼싸움만 하고 놀았다는 식이다. 틀렸다. 진정한 완전함은? 준비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교주의 가치관 하의 역할모델에 있어서 이순신은 완전한 인간이다. 원균은? 뭣도 아니다. 그는 쪼다 조영남이다.
물론 이순신도 많은 잘못들을 범하고 있다. 이순신의 헛점을 대략 생각나는대로 열거해보기로 하자.
● 녹둔도 시절 상관이었던 이일장군과 충돌한 점.. 이순신은 지나치게 깐깐한 인간이었다. 그는 성격이 모나기가 유시민과 같았다. 괘씸죄에 걸려 백의종군하게 되었다.(실제로는 지휘권을 그대로 행사했음, 처벌은 상징적인 것.)
● 왜적을 가장하여 피난민을 등쳐먹은 농민들을 참수한 점.. 이순신장군의 잔인한 면모는 도처에서 관찰된다. 그러나 전장에서 장수의 냉정함은 필수다.
● 서열이 더 높은 원균을 따돌리고 단독장계를 올린 점.. 당시의 시대 분위기는 당쟁의 영향으로.. 파가 다르면 상대방을 소인배라 하여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유교 선비의 오만하고 독단적인 면이 이순신에게도 있다.(도처에서 발견되는 이순신의 독선적인 태도는 그 시대의 분위기로 이해해야 한다.)
● 잘못을 저지른 동료 관리를 맹비난 한점.. 그는 독하기가 유시민을 뺨친다. 난중일기에는 다른 관리를 비난하는 대목이 이상하게 많다.(개인의 일기장이니까 자기 본심을 그대로 적었다고 봐야. 개혁에 소극적인 동료의원을 구박한 유시민과 비슷.)
● 부산포에서의 전공을 가로챈 점.. 부산포 해전은 육지의 의병이 먼저 불을 질렀고 이순신이 동시에 바다에서 공격했는데 이순신은 이를 자기의 공적으로 삼아 장계를 올렸다. 이걸로 선조임금의 눈 밖에 났다.(의병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 또는 우연의 일치. 그런데 이순신은 유별나게 자기 부하들을 챙기는 면이 있다. 그 영향으로 이순신 부하들이 모두 원균을 미워해서 나중 통제사가 된 원균이 부대를 장악하지 못하고 지휘에 실패한 측면도 있다.)
● 부산 앞바다에서 정유재란을 막지 않은 점.. 작전권을 위임받아 전장에 나선 장수는 임금의 명령도 거부할 수 있다.(이순신은 충성스런 신하라기 보다는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다. 상관의 명령이라도 잘못된 것은 따르지 않았다.)
이순신은 깐깐하고 냉철한 장수였다. 그는 자기 부하들은 끔찍하게 아꼈으나 다른 장수들과는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동료의 잘못을 냉혹하게 비판하여 왕따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일벌백계를 위해 서슴없이 부하를 참수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이순신 장군의 이런 점들이 단점일까? 천만에! 유교주의 가치관으로 보아야 한다. 유교주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이순신과 근접해 있었던 것이다.
공사를 구분하되.. 사적영역에서 자기 부하들은 끔찍이 아끼고.. 공적영역에서 상관의 잘못도 서슴없이 질책하는.. 이것이 진정한 유교 선비다.
신격화된 영웅과 인간적인 영웅
이순신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예컨대.. 이순신장군이 노량에서 전사하지 않았다면? 선조의 지위를 위협해서 역적으로 몰렸을 수 있다. 그런 시대였다. 신무왕을 즉위시키고 팽 당한 신라의 장보고처럼.. 정치에 휘말려 안좋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 역시 인간이니까.
그러나.. 알려진 역사기록만을 검토할 때 나는 이순신의 오류를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유교주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에 근접하여 있다.
이순신.. 냉정한 인간이다. 물론 그에게도 눈물이 있고 인간미가 있다.(난중일기에는 곡하는 장면이 많다. 이순신은 걸핏하면 울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엄격한 예절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 눈물을 강조하는 사회였다. 요즘 사람들이 조선시대 선비들 보다 훨씬 적게 운다.)
공적 영역에서 냉철한 모습을 보이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인간미가 넘치는.. 그런 모습은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시민도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이순신과 원균이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두 영웅이라는 TV의 시각(정확히는 김탁환의 관점)은 일본만화 슬램덩크류 실용주의 관점이며.. 송두율의 율 접근을 쫓아 한국의 유교주의 정사관으로 볼 때, 이순신은 멋쟁이 손석희에 가까운 전형적인 영웅이고 원균은 쪼다 조영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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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영웅은 있다. 영웅주의는 신격화된 고전적 영웅주의에서 보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더 세련된 현대적 영웅주의로 변하여갈 뿐이다.
영웅이란? 운명적으로 역사의 시험대에 올랐을 때, 영웅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긴장하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역사가 당신을 시험하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 탄신 460돌에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