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882 vote 0 2005.02.28 (15:11:15)

아제님의 글을 업어옵니다.

 
과연 이창호다. 5연승으로 농심배 6연패의 신화가 완성되었다. 이창호는 농심배에서 총 30연승.. 한번도 지지않았다.. 불패라면을 출시하겠다는 농심 관계자의 농담아닌 농담.
 
"도대체 이창호와의 대국에 무엇을 조심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졌는지 모르게 바둑은 어느새 끝나있다."
 
세계는 이창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의 별명처럼 그는 진정 천하무적 돌부처인가. 해설자가 탄식하듯 중얼거린 말이 포착된다.
 
"참.. 자유롭네."
 
왕레이 8단과의 대국에서.. 우상귀 화점에 놓여있는 흑에게 걸쳐간 이창호의 90번째 수. 이창호가 입구(口)자 걸침을 한 것이다. 입구자 걸침은 아예 책에 없다.
아마추어 10급도 저지르지 않을 실수.
 
인터넷 바둑이라면 마치 마우스미스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수는 국면에 딱 맞는 절묘한 포인트 였음이 밝혀지는데..
 
이창호는 자유롭다. 그의 바둑에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 자유는 내적인 순수를 표상한다. 그는 어떤 권위나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당위의 정석’, ‘기존의 권위’를 버리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미학을 찾아낸다.
 
자유는 과학이다. 방종이 아니다. 저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맘대로 하려는 그 맘을 버리고 순리를 따른다.
 
어쩌면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괴로움일 수 있다. 법칙이 그를 압도한다. 자유는 여러 경우의 수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딱 ‘이 한 수’다.
 
자유는 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유에 의해 내가 포로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그 완전한 구속.. 그 정확한 구속을 보고 우리는 감탄한다.
 
"참 자유롭구나.."
 
아하.. 자유는 참 정확한 것이구나.
아하.. 자유는 딱 하나인 것이구나.
아하.. 자유는 외길이구나.
 
[아제오록 중에서]
 

 
‘이창호의 바둑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독일이 2차대전에서의 만행에 사과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자동차를 팔아야 하고 영국에 맥주를 팔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 수상이나 덴노가 개인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적은 있지만 그 나라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기관은 의회인데, 일본의회가 아직도 사과하지 않은 것이다.
 
배경을 말하면.. 일본 특유의 유럽숭배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그들은 16세기에 처음 접한 난학의 매력에 빠진 후 500년간 그 전통을 고수해 왔다. 세계 최고의 와인 전문가는 프랑스가 아닌 일본에 있을 정도가 되었다. 구찌나 루이뷔통의 최고 소비시장은 일본으로 되었음은 물론이다.  
 
유럽에 배울 것이 있고 한국이나 중국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이나 중국의 시장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날로 크고 있다. 일본은 중국시장의 대두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는 크다. 문화로 보면 일본과 중국은 거의 모든 면에서 충돌한다.(외국에서 중국유학생과 일본유학생이 위생문제로 마찰하면 한국유학생이 말려줘야 한다.)
 
여전히 사과하지 않은 일본
어디를 가도 그 지역의 문화적 중심지가 있다. 유럽이라면 프랑스 하고도 파리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미학 때문이다.
 
미학은 자기 일관성과 내적인 완결성을 추구한다. 그런데 나라가 크고 대륙이 넓으면 일관되고자 해도 일관될 수 없다. 내부적으로 완결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적절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찾지 못한다.
 
지역마다 의견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미학이란 작품성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세계는 하나의 명료한 가치기준을 획득하기를 원한다.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혼돈에 빠져 있어서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상품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 프랑스방식, 혹은 ‘파리 에티켓’이 표준으로 되는 것이다.
 
그 표준을 선점한 자는?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그것은 영국인이 영어를 세계화 해서 얻는 무형의 이득과도 같다. 미국인이 미터법을 버리고 파운드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프랑스 표준을 시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이에 대응하여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하는가? 일본이 아시아의 표준이 되도록 그냥 방치해야 하는가?
 
중요한건 가치의 표준인 미학
일본은 실수했다. 일본의 실수는 유럽에 사대하느라 아시아를 우습게 본 나머지 일본문화로 아시아문명의 표준을 삼을 전략을 강구하지 않은 것이다.(17세기 일본도자기 선풍 이후 유럽에 일본광풍이 몰아친 적이 있다. 예컨대 고흐의 인상주의는 일본의 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일본의 유럽사대주의는 이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가 유럽문화의 표준이 된 이유는? 그들이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이 자국의 문화를 위하여 기울이는 노력은 감동스러울 정도이다. 예컨대 초컬릿이라면 영국제 밀크초컬릿이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프랑스인은 고집스럽게 영국제 밀크초컬릿을 거부한다. 미국제 햄버거도 먹지 않는다.
 
맛이 없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우월감에 기초한 오기로 먹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영국제 밀크 초컬릿이 프랑스식 초컬릿보다 맛있다는 사실은 프랑스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몇년 전 하나 남았던 마지막 영국레스토랑이 장사가 안되어 파리에서 철수했다. 영국음식은 원래 맛이 없으므로 영국제 밀크 초컬릿도 먹을 것이 못된다는 식이다.)
 
영국이 영어를 세계화 하여 얻는 것을 프랑스는 와인이나 치즈 따위로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중국인들에게 한글을 사용하라고 압박해야 하나? 된장과 김치를 세계화 시켜야 하나? 아니면 바보같이 필리핀과 인도를 본받아 영어공용화나 따라해야 하나?
 
이창호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은?
중국이 바둑을 잘하지 못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중국기원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축구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조금 실력이 되는 사람은 곧 오만방자 해져서 제왕과 같은 대접을 받으며 권위를 세우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게 된다고 한다.
 
이창호는 겸손하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분위기가 엄숙하고 진지하다. 왜인가? 이는 한국인들의 합리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두 가지 가치관이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고 하나는 실용주의다. 합리주의는 예의 미학적 완결성과 자기 일관성을 추구한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그냥 알맹이만 빼먹고 희희낙락한다.
 
일본문화가 아세아의 표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지나친 실용주의적 사고 때문이다. 그들은 아세아 합리주의의 원천인 유교주의 가치관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다.(지난번에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메이지유신의 철학적 배경이 된 사상은 한국의 퇴계사상이었던 바, 왜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 유학을 전하고 돌아온 강항에 의해 전해진 결과로서 일본에서 유교주의가 잠시 반짝한 경우이다. 퇴계 성리학은 신유교로 그 이전부터 일본에 있었던 백제 왕인박사의 구유교와 완전히 다르다.)
 
중국인들도 실용주의다. 그들은 돈 좋아하고 요리 좋아하고 노름 좋아한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광요가 중국인의 근성을 거지근성이라 질타하고 중국인의 심성을 뜯어고치기에 심혈을 기울였는데(예컨대 중국인은 거리에서 침을 잘 뱉는데 이광요는 물경 수십만원의 벌금을 매겼다.) 딱 하나 못고친 것이 중국인의 도박습성(특히 마작)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는? 합리주의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영국하면 베이컨의 경험론이고 프랑스 하면 데카르트의 합리론이 아닌가? 합리주의란 무엇인가?(경험론은 실용주의다. 그 실용주의의 극단은 미국식 햄버거주의다.)
 
프랑스의 합리주의란 이런 것이다. 영국제 밀크 초컬릿이 분명 맛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음식문화에는 지켜야 할 격식이 있는 것이며, 또 코스가 있고 규칙이 있는데 그 규칙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안먹는다는 것이다.
 
미국식의 실용주의란 이런 것이다. 음식이 맛만 있으면 격식 따위 따질거 없이 햄버거든 샌드위치든 무조건 하고 먹고본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을까? 물론 일장일단이 있다. 프랑스인은 요리에 격식 따지다가 뒤처졌고 미국인은 햄버거로 시간을 절약하여 앞서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식 실용주의의 장점 중 하나는 스타를 인정한다는 거다. 한 가지라도 잘 하는 것이 있으면 그가 성격이 모가 났건, 이전에 범죄자였건 혹은 피부색이 어떻건 간에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식 합리주의의 폐단도 있다. 열 가지를 다 잘해도 ‘인간성이 어떻다 오만하다, 선배를 업신여긴다’ 하고 시비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필자의 글은 한국적 합리주의가 잘났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이 한국인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중국바둑이 분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식 실용주의가 지나쳐서 중국의 스타들이 한국식으로 진지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오만해졌기 때문이다.(미국은 워낙 경쟁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스타들이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라도 있다. 지금 중국의 스타들은 어리광만 늘어서 미국식의 오만함만 있고 그 열정은 없다.)
 
표준을 장악하는 자가 먹는다
지난번에 말한 바 있지만 일본문화는 불교선종의 문화이고, 중국문화는 도교의 문화가 대세인데, 선종이나 도교는 아세아에서 문화적으로 일반화되지 않고 있다. 유교만이 아세아의 공통적 코드가 될 수 있다.
 
요는 어떤 시기, 특정한 영역의 문화의 표준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정도의 내적인 긴밀성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나 그 표준을 만들 수는 없다는 말이다.
 
패션이면 빠리, 음악이면 비엔나 하듯이 그 문화적 표준의 내적인 완결성과 일관성은 작은 나라, 혹은 작은 도시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국과 같이 큰 대륙(일본도 작은 나라가 아니다.)이라면 그런 일관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이며, 중국과 일본은 땅덩이가 커서 그러한 집중이 어려운 것이다. 서울이면 명동이 패션의 중심이듯이 작은 구역에서 그러한 집중이 가능하다.
 
한국은? 한국은 상대적으로 최적화에 가깝다. 그러므로 아세아의 문화적 표준을 한국이 더 쉽게 달성해내는 것이다. 한국이 아세아의 명동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진지하다
한국영화는? 진지하다. 적어도 홍콩영화나 일본영화보다는 80년대 최루가스 마시고 민주화의 터널을 헤쳐온 한국영화가 진지하다. 그 때문에 한국영화가 뜨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 역시 상대적으로 진지하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가부장문화의 잔재(단점도 물론 있지만)가 진지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한국의 바둑이 성공하는 이유는? 역시 진지하기 때문이다. 진지한 이유는? 합리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합리주의란? 간단히 ‘미학적 표준주의’라 할 수 있다. 하나를 바꾸면 전체를 다 바꾸려는 습관 말이다.(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몸살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은 민주화 하나 만으로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 한다. 이는 한국인의 본성이므로 어쩔 수 없다.)  
 
물론 실용주의의 장점도 크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신문명의 도래라는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는 표준을 잡는 자가 먹는 법. 표준 세우기 잘하는 우리의 장점을 묵혀 둘 이유가 없다.
 
자동차의 표준은 독일, 패션의 표준은 프랑스, 전자제품의 표준은 일본.. 세계의 소비자들은 이런 식으로 기억한다. 물론 나라마다 제각기 장점이 있지만 소비자들의 기억력은 이 정도이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대의 표준은? 한국이 먹어야 한다. 그럴 수 있고 또 진지한 합리주의자들인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아세아의 관문인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이 거기에 적당하다.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별은 별이 아니다
한반도의 모양은 출항하는 배의 모양을 닮아 있다고 한다. 그 어떤 것도 소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한 하나의 관문을 거쳐야 하며, 그 관문은 그 배후지가 되는 세계 전체를 집약한다.
 
오랫동안 일본이 아세아의 관문이었지만 서구는 일본관문에서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제사 한국이 그 관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일인이 벤츠와 맥주를 팔기 위해 과감하게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듯이 우리도 과감하게 독재시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심기일전, 새롭게 동기부여 하고 백범이 말한 문화강국의 외길로 떨치고 나서야 한다.
 
별은 스스로 빛날 수 있어야 별이다. 남의 조명을 빌리려 해서 안된다. 한발 짝 앞서가는 남에게 배우는 것도 좋지만.. 그 배우려고 하는 정성이 지나쳐 응석이나 부리며 빌붙으려 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자기 내부에서 에너지의 핵을 형성하여 동기부여 하는 즉 전일성을 획득하므로써 미학적으로 완성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자생적인 철학이 나와줘야 하고 한국 안에서 토착이론이 나와야 한다.
 
왜 백범인가? 백범이 얻은 모든 것은 당신의 내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서는 상놈 출신이라 벼슬을 못한다 하여 중인이라도 되고자 잡학을 배웠고, 커서는 유학자 고능선 선생에게서 유교를 배웠고, 동학 접주를 하면서 보은까지 걸어가서 동학을 배웠고, 국모보수 후 마곡사에 은신하며 불교를 배웠고 나중 고향으로 돌아가 해주에서 교육운동에 투신하면서는 기독교를 배웠고 상해에서는 좌파와 합작하면서 사회주의를 배웠다.
 
그는 모든 것을 배웠지만 그 어떤 외래의 사상에도 자신의 심지를 내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이 그의 내부에서 어우러져 인격적으로 완성되었다. 백범의 사상이야말로 토착이론이며 자생적인 철학이라 할 것이다.
 
백범이 덕분에 얻은 것은 접근경로이다. 외부에서 주입된 것을 얻은 자는 경로를 모른다. 그들은 단지 그것을 얻었을 뿐 어떻게 그에 도달하는지 그 과정을 모른다. 접근경로를 모른다면 결코 재현할 수 없다.
 
과학의 의미는 재현에 있다. 책상머리 이론에서 취한 것을 실험실에서 재현해 보일 때 과학은 연금술과 구분되어 비로소 빛나는 것이다. 재현할 수 없다면 무의미 할 뿐이다. 요즘은 들뢰즈니 라캉이니 소쉬르니 탈근대 바람이니 운운하는 모양인데 그걸로는 유식한 척 단어나 몇개 줏어섬기는 시간강사가 될 뿐 의미없다.
 
토착이론이 아니고서는, 또 우리의 내부에서 동기부여 하여 얻은 자생적 철학이 아니고는 겉보기 흉내나 낼 뿐 접근경로를 모르므로 결코 그 미학을 완성할 수 없고, 그 미학이 완성되지 않으면 결코 그 표준을 쟁취할 수 없고, 그 표준을 쟁취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전파할 수 없고, 그러므로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없고 표준을 장악한 자가 얻는 프리미엄을 취할 수 없다.
 
자유인의 길은 외길이다
우리는 자유롭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이창호의 바둑이 그러하듯이 자유로운 자의 가는 길은 도리어 낭떠러지 벼랑끝 외길이 되는 법이다. 우리는 외길을 가는 것이다. 한국의 표준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 그 하나의 길 말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308 눈팅들이 국참연을 접수해야 한다 김동렬 2005-03-24 16039
1307 신득용교수의 칼럼을 읽고 김동렬 2005-03-23 13802
1306 국참연이 불쌍하다 김동렬 2005-03-23 14252
1305 “김두관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김동렬 2005-03-22 17582
1304 유시민과 장영달을 지지함 김동렬 2005-03-22 14890
1303 유시민 배제에 신기남 아웃 김동렬 2005-03-10 15808
1302 조선 홍준호의 서프 보고서 image 김동렬 2005-03-09 13832
1301 한승조는 미쳤다 김동렬 2005-03-08 14446
1300 조선, 한승조 주필은 어때? 김동렬 2005-03-08 14140
1299 실용주의는 자살운동이다 김동렬 2005-03-04 13531
1298 이명박 쿠데타 순항중 김동렬 2005-03-02 15440
1297 이문열의 인간실격 김동렬 2005-03-02 15485
» 이창호의 이 한수 김동렬 2005-02-28 14882
1295 한나라당 너 마저도 김동렬 2005-02-28 14085
1294 박근혜와 이명박의 천하대전 김동렬 2005-02-24 15408
1293 단식에 대한 이해와 오해 김동렬 2005-02-23 14034
1292 유시민은 안된다? image 김동렬 2005-02-21 14983
1291 조기숙 청와대에 입성하다 image 김동렬 2005-02-19 13847
1290 조기숙님의 청와대 입성 image 김동렬 2005-02-19 5395
1289 유시민 잘 하고 있나 김동렬 2005-02-17 13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