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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이야기를 더 보태겠소.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의 인민일보가 지적한 바 한류의 본질은 유가사상이 맞소.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오. 정확히 말하면 유가의 미학과 그 미학을 토대로 한 유가의 문화라오.
 
결론적으로 우리의 문화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첫째 더 보편적이며 둘째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오. 그렇다면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는 아세아에서 우리보다 보편적이지 못하며 열등한가? 그렇소.
 
일본의 미학은 한마디로 불교의 선종(禪宗)의 미학이라 할 수 있소. 일본을 이해하려면 선종을 이해해야 하오. 문제는 우리의 선종과 일본 선종은 다르다는 점이오. 한국 선종이 귀족적, 엘리트적이라면 일본 선종은 서민적, 민중적이오.
 
왜 그런가? 필자는 원효성사의 영향이라고 보오. 원효가 의상과 자장을 대표로 하는 신라 왕실의 귀족불교를 보다 서민적인 민중불교로 바꾸어 놓았는데 그 영향은 한국 보다 일본에서 크게 나타났던 것이오.
 
한국불교는 유교의 탄압을 받아 민간에서 포교를 하지 않는 산중불교로 변질 되었소. 그래서 만해가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것이오. 그런데 조계종은 만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갔소.
 
조계종은 더욱 더 엄격한 산중불교가 되었소. 한국불교의 새 흐름을 만든 사람은 경허와 효봉, 만공, 한암, 성철들이오. 하여간 한국불교와 일본불교는 둘 다 선종이 대세인데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하여간 일본 불교는 선종이지만 우리가 아는 수행 중심의 엄격하고 권위적인 선종과 다르오. 일본 스님은 대처를 할 뿐 아니라 머리도 제법 기르고 민중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자유분방하게 생활하오.
 
특히 에도 말년에 일본 불교는 관료화 되어서 매우 타락했소. 명치유신 때 조선의 성리학을 배운 유가가 중심이 되어(막부를 축줄하고 천황을 떠받드는 대정봉환의 중심사상이 왜란 때 강항으로 부터 전해진 성리학임은 물론이다.) 도쿠가와 막부와 결탁하여 타락한 불교를 맹공격한 예가 있소.
 
그러한 이유로 만해가 민중들과 거리가 멀어진 조선의 산중불교를 혁파하고 보다 민중들에게 다가서는 포교 중심의 불교를 하자는 운동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 반대로 되었던 것이오.
 
중국이나 일본의 스님이 용맹정진하는 한국의 선방에 오면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달아난다 하오. 조계종 특유의 엄격하기 짝이 없는 지독한 선풍은 경허, 효봉 이후 그 유명한 성철과 청담의 봉암사 결사로 하여 진작된 것이오.
 
그런데 문제는 선종의 용맹정진하는 지극한 경지를 일본의 스님들은 민간에 전파했다는 점이오. 일본 스님들은 타락하여 대처하고 포교하며 자유분방한데 비해 대신 일본의 민중들에게 선종의 엄격하고 지극한 경지를 가르친 것이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도(茶道)이오. 일본의 다도는 선종에서 나온 것이오.
 
다도 뿐만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무사도와 결합되어 일본문화의 모든 분야는 어떤 지극한 경지를 탐하는 특징이 있소. 심지어는 야꾸자들도 스스로를 극도(極)라 칭하는데 이는 선종의 영향을 받은 것이오.
 
예컨대.. 일본의 시 하이쿠가 그렇소. 5.7.5의 열일곱음으로 시 한편을 지어야 하는데 이것은 선시(禪詩)와 같소. 일본인들이 원래부터 이런 짧은 단가를 불렀던 것은 전혀 아니오. 원래는 일본인들도 길게 늘어지는 장가를 불렀소.
 
이어령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주장하였는데 상당부분은 오해요. 전혀 그렇지 않소. 일본인은 축소지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종의 가르침을 일상화 하고 있는 것이오. 문제는 일본 선종이 검소와 간략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이오.
 
그래서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검소하고 간단하고 질박하고 작아졌소. 그것이 경쟁적으로 되었소. 선종의 미학이 난잡하고 어수선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오. 선종의 가르침이 말이나 글자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을 반대하고 시각적으로 간명하게 표현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오. 이것이 일본의 장인정신으로 발전하였소.
 
카마쿠라 이후 일본 선종은 막부와 결탁하였소. 즉 선종이 국가의 통치기관의 하부조직 노릇을 한 것이오. 말하자면 스님이 곧 막부의 관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오. 스님의 임무는 막부의 지시를 받아 백성들의 신분상승 열망을 차단하고 민중들에게 자포자기의 체념을 심어주는 일로 되었소. 이는 서구에서 기독교가 왕실의 지배기구로 타락하여 백성들에게 노예근성을 심어주었던 바 니체가 화를 버럭 내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것과 같소.
 
그래서 일본 스님들은 백성들에게 신분상승을 꾀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맡은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하며.. 장인이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가르친 것이오.
 
그래서 일본의 민중들은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에 도전하기는 커녕 각자 가문의 직업을 세습하며 그 분야의 최고가 되려고 노력해온 것이오.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소.
 
아래 신문기사가 참고가 될 것이오.
 
 
 "한국인, 中·日과 달리 귀족적" [한국일보 2005-02-03 16:46]
 
 "'코리아' 민족은 양반들뿐만 아니라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들조차도 귀족의 티가 흐른다. 체격과 외모 면에서도 일본인, 중국인들과 비교해 매우 귀족적이다."
 
100년 전 한국을 여행하고 연구한 헝가리 민속학자의 글이 뒤늦게 조명을 받고 있다. 문화일보는 3일 1929년 발로그 베네데크 바라소시(1870∼1945)라는 헝가리 민속학자에 의해 부다페스트에서 출판된 '코리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단행본의 일부 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에서 바라소시는 한국인들은 일본인과 중국인들에 비해 매우 귀족적이라고 소개하고 특히 "특히 여성들은 일본, 중국 여성들보다 훨씬 미모가 뛰어나다. 또한 머리 전체를 뒤로 땋아 넘긴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은 헝가리 여성들의 머리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여 퍽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하략)한국아이닷컴 뉴스부 reporter@hankooki.com
 
 
한류는 한마디로 한국인은 중, 일과 달리 귀족적이며 그러한 한국인의 귀족적인 품성을 만든 것은 선비정신 곧 유가사상과 그 미학과 그 미학이 반영된 문화라는 말이오. 그래서 한류가 인기인 것이오.
 
한마디로 한류는 덜 귀족적인 중. 일이 더 귀족적인 한국을 본받으려는 것이오. 이는 프랑스문화가 프랑스인의 귀족적인 취향을 반영하고 있는 것과 같소.
 
결론적으로 전여옥이 보지 못한 일본인이 있고 이어령이 보지 못한 일본인이 있다는 말이오. 그것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아니라 선종지향의 일본인이오. 선종을 모르고서 일본은 논할 수는 없소.
 
물론 필자가 일본 선종을 잘 아는 것은 아니므로 이쯤 해 두는 것이오. 하여간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이후 많은 일본 분석서가 있었으나 핵심을 짚어준 책은 없소. 일본 선종을 모르기 때문이오. 축소지향이란 말은 사실이지 비과학적인 표현이오.
 
그렇다면 중국은 뭔가? 중국은 유교의 나라가 아니라 도교의 나라이오. 도교를 모르면 중국을 이해할 수 없소. 한국 선종이 귀족취향인데 비해 일본 선종이 서민취향 이듯이.. 같은 선종이라도 판이하게 다르듯이.. 중국의 도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와 장자의 그 도교가 아니오. 전혀 아니라오.
 
그렇다면 중국의 도교는 무엇인가? 식도락과 방중술과 불로장수를 추구하는 쾌락주의, 현실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도교이오. 도박 좋아하고 돈 좋아하고 하룻밤 맛난 음식을 위해 전재산을 탕진하는 중국인 말이오.
 
그렇다면 이것이 도교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도교하면 노자의 역설, 장자의 우주론, 신선사상, 풍수지리설인데.. 이것과 진시황의 불로초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실은 전혀 상관이 없소.
 
상관이 없는데 왜 상관이 있는 것처럼 되었는가? 그 이유는 도교가 글자를 반대했기 때문이오. 당시 도사들은 곧 의사였소. 그런데 중국의 의사들은 원래 책을 쓰지 않소. 의술을 자신만의 비방으로 해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전수했던 것이오.
 
유가가 책을 저술하고 학교를 지었던과 대비가 되는데 도가는 의술을 연마했고 이를 무공으로 발달시켰소. 한국에서 공부(工夫)는 곧 학문을 연마하는 것인데 중국에서 공부(工夫)는 무공을 연마하는 즉 쿵후이오.
 
즉 중국인들은 원래 책을 펼치는건 공부가 아니고 의술이나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것이오. 물론 중국에도 의서가 있지만 이는 나중 유가의 영향에 의해 집성된 것이오.
 
필자의 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이 다 같은 중국은 아니오. 법가는 중국의 북방 오랑캐들이 만든 것이고 유가는 중국의 북쪽 황하지역의 농경민이 만든 것이고 도가는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서 일어난 것이오.
 
도교는 중국 하고도 남쪽 변방지역의 사상과 문화이오. 지금은 호남성이 중국의 중심에 있지만 당나라 때만 해도 중국 남부지역은 개척되지 않은 정글이 많았소. 남만이라 불리는 이민족들이 살았다 말이오. 이곳이 도교의 본고장이오.   
 
이곳에는 문자가 늦게 보급되었기 때문에 태상노군 노자를 시조로 하는 무수한 사이비종교 곧 민간종교가 번성하였소. 무협지에 흔히 묘사되는 정파와 사파의 대결은 대개 중국 남부 정글지역의 민간종교의 무리를 말하는 것이오. 그들은 의술과 무술과 종교를 일치시켰던 바 중국 역사상 무수히 일어난 민중반란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오.
 
정리하면 중국의 유가가 관료적이고 조정 중심이고 황하지역 중심이고 중앙집권적이고 귀족적이라면, 도가는 양자강 지역 중심이고 반정부적이고 지방분권적이고 민중적이라는 특징이 있소.
 
양자강 지역을 중심으로 방사라 불리는 사이비(이들은 도교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글자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중심이었음)들이 무수히 출현하여 민중을 선동하며 반조정적인 발언을 일삼았기로 역대의 중국 조정은 이들을 무수히 탄압하고 압살하였던 것이오.
 
황건적의 난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소. 황건적이 도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도교의 교리와는 별로 관련이 없소. 황하지역과 양자강지역은 말이 달랐으므로 실제로는 서로 다른 민족간의 인종갈등이라고 보는 것이 맞소.
 
유가가 학자이며 책을 가졌던데 반해 그들은 의사이며 책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소. 결론적으로 중국문명의 정체성은 유가보다 도가에 기울어 있으며 도교문화는 중국 하고도 남부지역에서 번성하였고 그들은 반정부적, 반권위적, 반귀족적, 서민적, 쾌락주의적, 이기주의적, 현실주의적, 불로장수와 식도락과 방중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 된 것이오.
 
조선시대 중국으로 건너간 사신들은 중국의 저급한 문화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소. 저울을 품속에 넣고 다니며 물건을 흥정하는 서민적인 중국의 귀족들은 유가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한국의 선비들과 달랐던 것이오.
 
이러한 중국의 서민적인 풍속이 청나라 오랑캐의 지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중국의 전통문화라는 말이오.
 
결론적으로
● 유가사상은 아세아의 공통된 코드이다.
● 일본 문화에는 일본 선종의 미학과 그 문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 중국 문화에는 중국 도교의 미학과 그 문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 중국의 도교와 일본의 선종은 보다 서민적이며 한국의 유교문화는 귀족적이다.
● 한류는 유교라는 아세아의 공통된 문화적 코드를 기반으로 보다 서민적인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보다 귀족적인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주성치의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에 묘사되고 있듯이 중국인들은 뻥이 세다오. 그 중국식 뻥의 배경은 도교문화라오. 중국 무협지의 배경도 도교문화라오. 다만 도교문화일 뿐 도교 그 자체(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와는 별 관련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오.
 
도교문화는 노자, 장자를 넘어서는 중국 민간신앙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소. 이들이 황화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북방 유교세력과 인종적으로 대립하였기로 음양오행, 한의학, 풍수지리, 연단술, 신선술, 불로장수, 쾌락주의, 식도락, 방중술, 양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 잡다한 것을 망라하며 중국인의 뼛속 깊숙히 침투하여 인민일보가 비판하여 말하는 중국 TV방송의 '기상천외한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있는 것이오.
 
이만하면 백범 김구선생이 왜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제압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는지 알만한 것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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