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렬컬럼] ‘박근혜간첩’은 안녕하신가? |
불쌍한 원희룡, 고진화, 배일도 |
‘돈 키호테’의 부하였던 ‘산초 판사’는 나중에 작은 성의 영주가 되었다고 한다. 산초 판사의 성문을 통과하는 자는 누구나 병사의 검문을 받아야만 했다. 산초판사의 율법에 의하여 문지기 병사의 질문에 거짓으로 대답하는 자는 즉시 목이 달아났다고 한다. 어느 이방인 순례자가 말했다. “나는 목이 잘려 죽기 위해 이곳에 왔소” 이 말이 참이면 문지기 병사는 그 순례자의 목을 자를수 없다. 목을 자르지 않으면 그 순례자의 말은 거짓이 된다. 그렇다면 목을 잘라야 한다. 그런데 목을 자르면 도로 참이 된다. 그렇다면 이미 잘라진 목을 도로 붙여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잘라진 목을 도로 붙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렇다면 병사는 그 순례자의 목을 잘라야 한다는 말인가 자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투사는 산초판사의 성을 방문한 순례자와 같다. 산초 판사의 법률은 원초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법이 잘못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겨보여야만 한다. 실상 이 경우는 사람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법이 사실을 어긴 것이다. 양심수는 감옥에 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유죄이다. 그러나 그가 갇혀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그는 무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판결은 산초 판사가 ‘그 이방인 순례자의 목을 쳐라’고 판결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논리학에 따르면 후건이 전건을 결정할 수 없다고 한다. ‘산초 판사’의 성문을 통과하는 이방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 순례자가 그 문지기의 질문에 대답한 다음에 결정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가보안법 상의 불고지, 회합, 누설, 통신의 죄라는 것은 대부분 행위 후에 결정이 되고 있다. 예컨대 간첩이 잡히기 전에는 불고지가 성립하지 않는다. 불고지가 죄라고 하나 그 죄를 저지르는 당시에는 그것이 죄일 수 없다. 당국은 당장이라도 박근혜씨를 간첩죄로 처벌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당국이 박근혜씨를 간첩죄로 처벌한다면 그 순간 대한민국 국민 4천만에게는 동시에 불고지의 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후건이 전건을 결정하는 셈이다. 이는 사람이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법이 사실을 어긴 것이다. 생각하면 이렇듯 진리를 어긴 법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신을 형벌하는 방법이 이러하다. 생사람을 잡아놓고 네가 해명하면 될거 아니냐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저 따위 궁리나 하면서 제 딴에는 그래도 꾀를 내었다고 의기양양하다. 하기사 전여옥, 박근혜, 한선교 따위는 그래도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용하게 그 위치까지 올라간 스스로가 대견할 것이다. 슬픈 것은 원희룡, 고진화, 배일도, 이재오, 김문수, 김덕룡, 심재철 이런 인간들이 이 상황에서 실성한 사람마냥 허허 하고 억지 웃음짓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김민석의 견제구에 말려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에 입당했다는 원희룡의 불쌍한 저항은 애처롭기도 하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지금이 그 때이다. 여기서 더 죄를 지으면 설사 나중 참회하고 개혁진영으로 돌아온다 해도 공업용 미싱으로 폐기된 김홍신 꼴을 면치는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