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7.18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으로 촉발된 교육 위기의 상황에서 추모집회와 정당한 교육권 보장 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를 보니 교사의 자살 비율이 우리나라 평균 자살 비율보다 2배가 높다고 하네요.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갈수록 교직 근무여건이 악화되고 있어서 괴로워하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학교폭력 문제해결력, 학부모상담력이 만렙인 저도 요즘엔 힘이 부치네요. 그나마 저는 견디지만,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어디 조직이나 부적격자는 있고 부적격 교사는 퇴출되야 마땅하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실수가 아니라도 끊임없이 악성민원을 제기하고, 학부모의 무분불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가 고통당하는 것은 저도 더 이상 볼 수 없네요.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인 9월 4일에 교사들은 추모행동을 하려고 했고, 학교장이 교직원과 학부모의견을 수렴해서 재량휴업일로 진행하고, 방학을 하루 늦추어 하루 더 수업하기로 했었는데, 이주호 장관이 파면, 해임, 형사처벌 운운하며 교육감과 학교장들을 압박하여 다수의 학교들의 재량휴업을 운영을 취소하였고,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과 집회 준비팀도 교육부의 강경대응 기조에 행사와 집회 철회를 철회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이 위축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교육부가 교사들을 겁박하고 과도하게 탄압하는 것에 분개하여 다양한 방향으로 9월 4일(월) 공교육 멈춤의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교조가 아닌, 교사들을 중심으로 평일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진국에 비해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이 한참 떨어지는 대한민국에서 교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알 수 없지만, 이번 교사들의 외침이 대한민국 교육의 큰 전기가 될 것입니다. 

아래 글은 선생님들을 위해 쓴 글이지만, 교사 입장에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하는지 참고가 되실까 하여 공유합니다.  


 

<모두가 아픕니다. 절대 죽지 말고 살아서 만납시다>

어제 개학 전 전직원 출근일이라 출근을 했다. 밥 먹기 전에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얘기하다가 방학 중 아이와 문자 메시지를 나누다가 있었던 일을 재미삼아 하려는데, 갑자기 아이 이름이 생각이 안났다. 불과 열흘 전 일인데.. 그래서 샘들한테 "제가 왜 이러죠?" 라고 얘기하다가 반 애들 이름을 떠올리는데 23명의 아이 중 단 한 명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반 애들 이름이 기억이 안날 수가 있지? 순간 내가 내 자신이 무서워졌다. 치매인가? 오히려 작년 애들 이름은 기억이 났다. 여러 명.. 얼굴만 보면 다 이름 댈 정도로. 그런데 올해 우리반 애들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 안날 수가 있을까?

돌이켜 보니 지난 40 여일 동안 시달렸다. 여행을 가도 그때 뿐이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밤에 불을 켜고 잔다는 느낌이랄까? 꿈도 많이 꾸고 눈물도 자주 났다. 방학 중 방송 출연만 4회, 토론회 2회, 강의 3회, 기고 2회, 교육부 매뉴얼 회의 3회, 기자 인터뷰는 십 수 차례. 인디스쿨 TF팀 2곳에서 자문역할과 몇 번의 줌의회, 그리고 몇 번의 공식적인 자리들.

너무 힘들어서 어제는 기자가 연락했지만 받지 못했다.

내가 상담해 드렸던, 과거 아동학대로 고소 당했다가 고통받았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무죄나 불기소였다. 그러나 장기간 고통 속에서 아픔을 겪던 분들이 많고 정상적으로 회복된 분들은 적다. 예전처럼 의욕적으로 교육활동을 하시지 못하더라. 무죄를 충분히 다툴 수 있음에도 명퇴를 선택한 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교육부와 교육청은 무관심했고 다수의 교장들은 학부모보다 교사를 먼저 아동학대를 신고했고, 심지어는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교장에게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고 얘기해도 이 사실을 해당 선생님께 알리지 않았다.

언제 닥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많은 악성 민원을 감내하다 소진되고, 학교폭력이라 명명된 애들간의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교사만 갈려나갔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는 교단에서 쫓겨났다. 심각한 문제행동으로 수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교사는 얻어맞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교사도 또 맞고 학부모에게 시달리고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 학생을 다룰 줄 모른다며, 학부모에게 사과하라며 관리자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관리자일수록 교사를 지원하기는 커녕 자신은 손을 놓는다. 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요청하면 역민원을 핑계대며 덮기에 일쑤다. 그러면서 역시 아무런 지원을 안한다. 그런데 교사를 이런 상황에서 바보처럼 묵묵히 교실을 지킨다. 애들한테 미안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렇다. 교사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교사들이 이번에 서이초 선생님의 참혹한 죽음에 너도 나도 일어났다. 집회를 계속 이어갔고 이렇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호응할 줄은 나도 몰랐다. 이미 7월 말 부터 서이초 선생님의 49재인 9월 4일까지 기다려보고 국회와 교육부가 제대로된 대책을 내놓길 바랬지만, 결과는 미흡했고 선생님들이 가장 원했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방지는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법안만 소위원회에서 통과되었을 뿐이다. 생활지도권에 좀 나은 부분이 있으니 이 또한 무분별한 아동학대신고를 막기란 역부족이다.

이제 며칠이면 9월 4일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법령에서 보장하는 학교장재량휴업일을 무력화시키고, 적반하장 격으로 9월 4일 연가, 병가 불허, 집회참여 시 파면, 해임, 형사고발로 협박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참석 교사에 대한 영상 채증과 휴대폰 위치 추적으로 엄벌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집회의 목적은 임금인상도, 휴가 확보도 아닌, 서이초 선생님에 대한 마지막 추모와 교사의 생존권 확보 촉구다. 그동안 교사들이 안아파서 병가를 안쓴 것이 아니라, 아파도 참아서 병가를 안쓴 것이다. 그런 교사에게 무례한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모욕과 같은 짓을 교육부가 자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사들의 처절한 외침보다 윤석열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 고 채상병 사망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오직 수사에만 전념한 수사단장 박대령을 대하는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국방부의 태도만 봐도 교사들에게 어떻게 할지는 뻔히 보인다.

학교와 교육청을 갈라치기 하고, 교사와 관리자를 갈라치기하고, 곧 교사와 부모들을 갈라치기하고 , 급기야 교사와 교사를 갈라치기 한 후, 살기위해, 우리 교육을 살리기위해,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서기 위해 용기있게 나선 교사들을 무참히 짓밟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 그들의 직무유기와 권한남용이 가려질테니까 말이다.

며칠 전 밤에 혼자 거실에서 앉아있다가 문득 검은 베란다 창문을 바라 보았다. 순간 드는 생각이 "혹시 내가 창밖으로 뛰어들면 세상이 좀 바뀔까?" 라는 생각이 난생 처음 들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아,이래서 사람들이 자살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현실은 너무 괴로운데, 돌파구는 안보이고, 지켜주고 도와줘야 할 사람이 등을 돌리다 못해 나를 공격할 때 결국 선택할 것은 죽음 밖에 없다.

이러다 내가 더 이상해지겠다. 9월 4일을 그냥 지나칠 자신이 없다. 교단에 계속 당당하게 서기 어려울 것 같다. 또 다시 억울하게 지옥같은 고통을 당하는 교사의 울부짖음을 듣고 싶지 않다. 또 다시 교사의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나는 9월 4일에 집회에 참석할 것이다. 아파도 참석할 것이다. 여태껏 방학 마칠 때 즈음 아이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자살을 떠올린 것도 거의 처음이다. 고통 속에 있는 나를 멈춰야 한다. 바로 세워야 한다. 오늘 처음으로 정신과를 떠올렸다. 9월 4일 교단에 설 자신이 없다. 7월 18일 대한민국의 교육은 죽었고 그것이 나를 부여잡고 있다.

학폭업무 8년, 학폭담당교사 멘토링 7년, 학폭사안처리 현장지원 5년, 교권상담 7년을 한 나도 지금이 너무 무섭고 괴롭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교장도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교육부다.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을 넘어 상처를 헤짚고 자기 살자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움을 시키고 있다. 이러니 교사들은 궁지에 몰렸다.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결코 죽지 마시라. 무기력하게 당하지만 마시라. 부당한 억압에 굴하지 말고 오직 선생님 자신의 선택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우리교육을 살릴 수 있는 그 선택을 하시라. 그것이 선생님과 나,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부디 살아 남아 교사로서 당당하게 9월 4일 이후에 다시 만납시다!

*9월 2일(내일-토) 집회는 7차 집회에서 9월 4일(월)은 평일 집회이고, 교육부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감, 교장의 압박이 큰 상황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WHn4wLy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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