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존재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다. 우리는 길 위에 내던져진 존재다. 모르고 휩쓸려 가다가 문득 생각하게 된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우리는 어디서 출발했지? 길은 출발하고 연결하고 도착한다. 우리는 에너지의 두 가지 성질을 알고 있다. 열역학 제1법칙이 연결이라면 열역학 제2법칙은 도착이다. 에너지의 최초 출발에 대해서는 모른다. 출발(에너지) - 연결(변화) - 도착(물질) 어원으로 보면 에너지는 '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물질은 겉에서 일하고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 안은 출발점 안이다. 에너지는 출발하기 전에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 안에서는 결정하고 밖에서는 전달한다. 안에서 결정하는 것은 유체이고 밖에서 전달하는 것은 강체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강체의 세계뿐이다. 유체의 세계에 대해서는 모른다. 유체 (내부 에너지) - 강체 (외부의 물질) 우리는 여지껏 세상의 절반만 봤다. 우리는 밖에서 전달하는 강체의 세계에 주목했을 뿐 안에서 결정하는 유체의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존재의 안쪽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자발성의 힘 세상은 유체 아니면 강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강체의 세계, 물질의 세계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유체의 세계, 에너지의 세계다. 유체는 결정하고 강체는 전달한다. 전달은 쉽다. 눈으로 보면 된다. 결정은 어렵다. 유체는 결정한다. 에너지는 결정한다. 내부에서는 결정한다. 어떻게 결정하는가? 에너지는 닫힌계 내부에 갇히고, 갇히면 간섭되고, 간섭되면 성질을 가진다. 우리가 모르는 유체의 성질은 셋이다.
1. 자발성이 있다. 에너지는 출발 - 연결 - 도착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두 번째 연결과 세 번째 도착이다. 우리가 모르는 첫 번째 출발점 내부에서 에너지는 유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존재를 결정하는 유체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자발성 - 바람은 저절로 불고, 물은 저절로 흐르고, 불은 저절로 탄다. 상호의존성 - 엄마곰이 가면 새끼곰은 따라간다. 머리가 가면 꼬리가 간다. 하나가 가면 모두가 간다. 조절가능성 - 모든 변화는 어떤 둘의 만남에 의해 일어나며 그곳에 만남의 접점이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는 어떤 둘이 만나는 접점의 간격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노즐이 있다. 촉이 있다. 날이 있다. 물은 수압을 조절할 수 있고 기름은 유압을 조절할 수 있다. 에너지는 내부 조절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둘이 만나는 순간 우리는 긴장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흥분한다. 그것은 무의식의 압박에 의한 것이다. 마음은 집단의 압박을 조절할 수 있다. 밸런스의 힘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모든 변화는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존재의 자궁이다. 인류는 에너지라는 말로 얼버무렸을 뿐 그 자궁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사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외부를 알되 내부를 모른다. 강체를 알되 유체를 모르고, 전달자를 알되 결정자를 모르고, 물질을 알되 에너지를 모르고, 상대성을 알되 절대성을 모른다. 우리는 존재의 반을 모른다. 우리가 아는 세계 - 외부, 전달자, 강체, 물질, 상대성 우리가 모르는 세계 - 내부, 결정자, 유체, 에너지, 절대성 강체는 외부의 작용에 의해 두 방향으로 가고 유체는 내부의 압력에 의해 한 방향으로 간다. 두 방향으로 가면 상대성이고 한 방향으로 가면 절대성이다.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체의 세계는 역설이 작용한다. 우리가 헷갈리는 이유이다. 일상의 경험적 직관과 어긋난다. 항상 의도와 반대로 된다. 풍선효과와 같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나온다. 몰래 슬그머니 나온다. 모든 것의 근원에 밸런스의 복원력이 있다. 유체는 닫힌계 내부에 압력이 걸려 있으므로 스스로 복원한다. 우주는 밸런스의 복원력에 의해 언제나 불안정에서 안정으로의 한 방향으로 간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 고정관념이 모두 무너지는 세계다. 건드리면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가고 가만 놔두면 제 위치로 돌아와 있다. 그 세계의 여행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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