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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421 vote 0 2023.05.08 (12:17:33)

진짜 경주법주.. 경주교동법주
가짜 경주법주.. 금복주

Jay Tak
11시간 
윤모가 일본 총리의 방한 기념 만찬 자리에 '경주법주 초특선'을 냈다고 한다. 정말 그 다운 선택이어서 그 일관성만큼은 인정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신감있게 무식을 드러내는 그 한없는 천박함 말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준비한 반주는 한국식 청주(淸酒)인 '경주법주 초특선'이다. 경주법주 초특선은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담근 술로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우리 청주 가운데 손꼽히는 명주로 알려져 있다."라고 모 신문에서 썼던데, 대통령이 무식하니 기자도 사실확인이라고는 한 점 한 획도 할 생각이 없는 세상 무식쟁이여도 뒤탈이 없는 모양이다.
경주법주 초특선은 일본 술이 못 되어 안달인, 일본식 청주(세이슈)다. 아니, 지금 현재 국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주세법상 청주'는 좀 거칠게 말해 모두 일본식 술이다. 일제시대에 유래한, 쌀알에 누룩곰팡이를 접종해 만든 가루누룩, 즉 입국과 정제효모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몇 천 년에 걸쳐 멀쩡히 만들어 먹던 맑은 술, '청주'는 일본의 '세이슈'에게 자리를 내주고 뜬금없는 '약주'라는 이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조선 땅에서 술과 관련된 세금을 좀 더 잘 뜯어 가고, 술 만드는 일본인 사업가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1916년에 주세령을 공포하면서, 조선의 '재래방법'으로 만드는 술은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주세령은 미군정,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에 계승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전통 누룩을 1% 이상 함유하고 있으면 '청주'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약재가 한 톨도 안 들어갔어도, 약 냄새는 커녕 곡물의 청명한 향 만을 풍기고 있어도 '약주'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
'쌀 표면을 79%까지 깎아내 담근'다고? 도정률로 술의 좋고 나쁨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일본 술이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명주는 도정률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로지 '백세작말'(백 번 씻어 가루를 내다)이라 하여, 잘 씻어 불순물을 없앨 뿐이다. 곡물에서 전분질의 핵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부분이 갖고 있는 복잡한 풍미 역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선 꼭 있어야 하는 요소로 본 것이 우리 조상들이다. 좋은 생선의 좋은 부위 한 점 잘 썰어 간장에만 찍어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들과, 상추에 깻잎에 회 여러 점을 놓고 마늘에 쌈장에 풋고추에 초장에 와사비까지 넣어서 한 쌈 싸먹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은 술빚기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과도할 정도로 도정률이 높은 쌀에 집착하는 것과, 도정하지 않은 쌀을 그대로 쓰는 것,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평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복잡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복잡함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간 것이 우리술이라는 점은 꼭 지적하고 싶다.
기시다에게 '경주법주 초특선'을 접대한 것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술이 사실상 진짜 우리 명주의 이름을 빼앗다시피 한 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피해를 입은 술은 국가무형문화재 86-다 호로 지정되어 있는 '경주교동법주'이다. 경주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만들어 온 가양주이다. 원래는 이 쪽을 '경주법주'라고 불렀다. 그 유래에 대한 기록도 명확하다. 숙종 대에 임금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술을 빚는 사옹원의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궁중의 양조법을 집안의 아낙네들에게 가르친 것이 그 시초다. 조선 시대를 관통해, 해방 이후에도 지역 최고의 명주로 이름을 떨치던 경주법주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박정희 때다. 전통주를 밀주라는 명목으로 신나게 때려잡던 박정희가 갑자기 외국에 자랑할 우리 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경북 구미 출신이었던 그는 이전부터 경주법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전까진 '탁약주제조에 있어 양곡사용금지'라는 대통령령으로 쌀로 술빚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지만, 경주법주에 대해 특혜를 베풀기로 했다. 다만, 대량생산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진짜 경주법주는 그렇게 뚝딱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성격의 물건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제법을 대폭 변경하지 않고서는 대량생산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문중에서는 그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고, 결국 이 미션은 대구를 대표하는 희석식 소주업체, '금복주'에게 맡겨진다. 이들은 일본식 세이슈 제법을 적극 도입해, 일본식의 '경주법주'를 대량 생산해내기에 이르렀고, 아예 자회사를 따로 차려 '(주)경주법주'라고 이름붙이고 그 상표권을 나라에 등록해 버린다. 최씨문중이 오랫동안 만들어 오던 자신들의 술을 '경주법주'라고 부르는 것이 불법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금복주는 박정희와 그 휘하의 국세청의 비호 아래, 금복주판 '경주법주'를 위한 특별히 제정된 세법의 혜택까지 받아가며 경북에서 승승장구한다. 그동안 술도, 이름도 빼앗긴 최씨 문중은 오랫동안 질곡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진짜배기 경주법주가 부활한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된, 1986년의 '향토술 담그기'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 때였다. 오랫동안 이들을 괴롭혀온 박정희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최씨문중의 술은 오로지 실력으로, 여러 심사와 블라인드테이스팅을 통과해 세 가지의 국가 무형문화재 술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다만 상표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경주교동법주'라고 바꿔야 했다. 가짜 왕자가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어, 진짜 왕자가 개명을 해야 했던 서글픈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복주판 '경주법주'의 역사도 제법 되었고 그간 이뤄진 기술발전도 있으니 이젠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명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다만 '경주법주 초특선'은 '우리 청주의 명주'가 아니라 '일본의 다이긴죠급 세이슈에 도전장을 내민 한국에서 만든 세이슈'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부러 그런 술을 한일정상간의 회담에서 마신다? 나찌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의 총리가 독일 총리의 방문에 맞춰 정통 독일 제법으로 만든 뮌헨식 바이스비어를 '이스라엘 최고의 명주'라며 소개하는 꼴이다.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게다가 백 번 양보해도, 정상회담장에 술을 내는 영예를 얻는 업체는 기업윤리 면에서나 사회공헌 면에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우리나라의 양조기업들을 대표할 수 있는 업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 때는, 정부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초청된 식음료 관련 종사자가 행사 직전 전과 조회에서 가벼운 법 위반을 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어, 결국 그 사람이 주방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일을 한 것 자체가 기록으로도 남겨지지 않고 보도도 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금복주? 기사 검색 조금만 해 보시라. 이 회사가 지역에서 얼마나 지저분한 짓을 많이 했는지 끊이지 않고 나온다. 결혼한 여직원 퇴직 종용에, 홍보대행사에 대한 불법 금품 갈취에, 아르바이트 학생 성희롱까지 아주 다채롭다.
윤모는 '더 완벽한 일본 술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금복주판 경주법주 초특선이 아니라, '진짜배기 경주법주', 교동법주를 만찬상에 냈어야 한다. 너희들이 그토록 없애고 싶었던 조선의 '청주'는 면면히 살아남았고, 이렇게 훌륭한 맛을 내는 술이라며 들이밀었어야 한다. 교동법주는 찹쌀과 누룩가루, 샘물로 밑술을 만들고 밑술에 찹쌀고두밥과 생수를 혼합해 본술을 담근 뒤 50일 동안 독을 바꾸어가며 숙성시켜 만든다. 입에 머금으면 복숭아같이 녹진하고 솜사탕처럼 가벼운 향이 혀를 감싸온다. 300년 넘는 세월이 담긴, '진짜의 맛'이다. 가짜 대통령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가는 맛이니, 그의 혀에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수도 있겠다.
덧) 금복주 경주법주는 제발 '신라 화랑들이 마시던 술'운운하는 마케팅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영남 = 신라'라는 등식 때문에 떠올리게 된 마케팅인 것 같은데, 너무나 안이하다. 무슨 화랑들이 도정률 79%의 사케를 마시나. 그리고 엄밀히 말해 최씨집안 경주법주의 유래는 조선 중기에 궁중에서 빚어 마시던 '향온주'다.
그리고 분노에 차서 늦은밤에 긴 글을 올렸지만 이렇게 긴 글에는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을 것이다. ㅠㅠ

프로필 이미지 [레벨:7]레인3

2023.05.09 (12:30:13)

대구에서는 경주법주를 사서 제삿상에 올리더군요.


지지 기반 지역에 아부한 행동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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