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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403 vote 0 2011.02.02 (02:53:45)

 

평화의 세력전

전쟁의 형태에는 동원전, 기동전, 돌파전, 조직전, 세력전이 있지만 이 중에서 야전에서 벌어지는 실전은 네번째 조직전 단계에서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다.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더 이상의 전술은 없다. 조직전 단계에서 결코 지지 않는 전쟁, 이상적인 전쟁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조직전 단계까지 통달했다면 전투의 신이라 불러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싸워서 이긴다면 본질에서는 이미 지고 들어가는 셈이다. 싸우지 않고 이겨야 진정한 승리라 할 것이다. 싸워서 힘으로 이긴다면 겉으로 굴복할 뿐 패자가 속으로는 승복하지 않는다. 패자는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라 여기고 은밀히 칼을 간다. 상대가 결과에 승복하게 해야 진정한 승리다. 무조건 승복하라고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훔쳐내는데 성공해야 한다.


전쟁의 형태를 논하는 의미는 정의와 불의의 판별에 있다. 국민이 가진 에너지를 얼마만큼이나 전장에 동원할 수 있느냐를 구분하여 좋은 시스템과 나쁜 시스템을 가려낼 수 있다. 좋은 시스템이 더 많은 민중의 에너지를 전장에 동원하여 나쁜 시스템을 이긴다. 공동체의 구성원 개개인의 자발적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정의다. 그리고 막판에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한다.


싸움은 단지 무력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종교와 문화는 국민의 마음까지 동원할 수 있고, 자본이나 사상은 지혜까지 동원할 수 있다. 국민의 마음과 지혜까지 완벽하게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정의다. 싸움은 피아간에 일어나지만 마음과 지혜는 너와 나를 하나로 합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와 사상과 자본은 국경을 넘어 그 이상의 막강한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는 고대부터 이미 다국적화 되었고, 사상 역시 국경을 넘어 냉전의 형태로 동서 양진영이 힘겨루기를 한 전례가 있으며, 자본 또한 점차 다국적화 되고 있다. 그에 비한다면 무력에 의존하는 싸움은 아주 작은 것이다.


조직전 다음에 세력전이 있다. 그러나 전투는 조직전에서 완성되고 세력전은 전장에서의 싸움을 넘어서는 또다른 싸움이다. 세력전은 싸우지 않고 이기게 하는 것이다. 상대를 마음으로 심복시켜 내는 것이다. 전쟁을 끝막고 궁극적인 평화가 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전장 안에서 판별할 수 없는 국가시스템의 문제다. 전장 안에서는 언제나 패왕 항우가 고조 유방을 이겼다. 유방의 승리는 실상 전장 바깥에서의 외교협상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것이 세력전이다.


우수한 국가체제를 가진 군대가 세력전을 구사하여 열등한 국가체제를 가진 군대의 조직전을 꺾는다. 그리고 자기네가 정의임을 선포한다. 그러나 야전에서 벌어지는 1회의 전투에서는 세력전이 조직전을 꺾을 수 없다. 세력전은 1회의 전투가 아니라 여러 전투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성립하는 장기전에서 관측되는 양상이다. 유럽이라면 30년 전쟁이나 백년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이 오래되면 전투력이 우수한 군대가 아니라 시스템이 우수한 군대가 승리하게 되며 그 군대는 보다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1회의 전투로 논한다면 한니발이 최강이지만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꺾었다.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이긴 것은 결코 전투력이 우세해서가 아니었다. 로마의 국가시스템이 카르타고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다. 80년대 동서냉전에서 서방세계가 동구공산권을 꺾은 것은 전투력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국가체제가 우수했기 때문이다. 1회의 전투에서는 뛰어난 전술가의 솜씨로 조직전을 구사해서 필승할 수 있지만, 계속되는 전투에서는 결국 국가체제가 앞서있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다. 그것이 세력전의 의미다.


임진왜란때 왜가 압도적인 전투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국가시스템이 낙후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낙후된 봉건국가는 왕이 도주할 수 없다. 왕이 도주하면 민중이 적의 편에 붙기 때문이다. 왕이 도주했는데도 국가가 유지되고, 자발적으로 의병이 일어나 활약한 것은 국가체제가 왜국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조선인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 노예들이 탈주하여 왜군 편을 들기도 했다. 노예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체제에 모순이 있다는 의미다. 조선은 국민이 가진 에너지의 백퍼센트를 동원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으며 바로 그 이유로 500년만에 망했다.


노예는 적의 편에 가담하므로 동원할 수 없다. 노예의 전투력을 동원할 수 없으므로 고대 노예제 국가는 중세 봉건국가와의 전쟁에서 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계급차별이 있는 나라, 성차별이 있는 나라, 장애인 차별이 있는 나라, 인종차별과 지역차별이 있는 나라는 동원력이 낙후되어 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시스템에서 정의와 불의가 가려지는 것이다.


국민 전체의 에너지를 빠짐없이 동원할 수 있는 나라가 이상적인 국가이며 이상국가는 최대의 힘을 가져서 무조건 승리한다. 일체의 차별이 없어야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능력있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재능있는 사람들이 국가를 떠나버린다. 인재가 떠난다면 이상국가라 할 수 없다.


근래에 미국이 흥한 이유는 유럽의 인재들이 자국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불만에 빠진 나머지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사에는 인재들이 자기나라보다 남의 나라에 가서 능력을 발휘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 중에는 상업론을 쓴 캉티용이나 파리시장을 역임하며 일종의 다단계 투기를 했던 존 로처럼 다분히 사기꾼 근성이 있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부도덕했으나 각별한 재능이 있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재능을 발휘하는 한 편으로 부패를 저질러 탄핵을 당하고 외국으로 도주하곤 했다. 그들은 부도덕했으나 그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자본주의는 이상적인 천재의 완벽한 설계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실상 그런 떠돌이들의 수상한 실험이 반복되며 조금씩 데이터가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인격에 결함이 있어도 그들이 가진 데이터는 정직하다. 그 데이터를 믿고 능력있는 인물을 슬그머니 빼온 나라는 흥했다. 결함있는 인물을 돈으로 매수해서 영입한 것이다. 훌륭한 인격자라면 조국을 버리고 남의 나라로 갈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춘추시대의 재사들도 남의 나라에서 성공하는 예가 많았다. 오자병법의 오기나 법가의 이사나, 세치 혀로 6국을 들었다 놓았다 한 소진, 장의나 공자 선생이나 다 남의 나라에서 출세한 인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군주를 찾아 떠돌아 다녔다. 결함있는 인물의 능력까지도 끌어내야 이상국가다.


동원전, 기동전, 돌파전, 조직전은 승부처가 되는 전장의 어느 한 지점에 자원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것이며 세력은 전장을 떠나 더 넓은 지평에서의 동원가능성을 판가름한다. 그것이 전략과 전술의 차이다. 전술은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 안에서의 포지션 경쟁이며, 전략은 전장 바깥에서의 포지션 경쟁이다. 세력전은 전장 안에서의 무력경쟁을 넘어 전장 바깥에서의 마음과 지혜까지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느냐를 겨루는 것이며 이 부분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국가체제의 문제다. 좋은 국가가 동원력이 높아서 세력경쟁에 승리한다.


세력전은 1회의 전투가 아니라 여러 전투가 연결되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로마교범식 전투나 고조 유방의 승리, 징기스칸의 전술, 2차대전의 대규모 군사동맹, 민주주의 방식은 일정부분 세력전에 해당한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 및 한국야구를 비교한다면 1회의 승부에서는 일본야구나 한국야구가 조직전을 구사하여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가 우승했다고 해서 한국이 최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이 세력전의 의미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한다 해도 프리미어리그를 가진 영국을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고의 리그를 가져야 최강이다. K리그가 형편없는데 대표팀이 이기면 뭐하냐 말이다.


전술 ↑ (상대전쟁)
◎ 동원전 - 원시적인 전술
◎ 기동전 - 전투의 특정한 국면.
◎ 돌파전 - 공격일변도의 용맹한 전술
◎ 조직전 - 선수비 후공격의 필승하는 전술
◎ 세력전 - 전쟁을 끝막고 평화를 끌어내는 원리.
전략 ↓ (절대전쟁)


동원전으로 갈수록 전장 안에서 결판내는 전술이고, 세력전으로 가면 전장 바깥에서 싸우지 않고 승부를 결정하는 전략이다. 동원전은 원시적인 전쟁이니 이렇다 할 것이 없고, 기동전은 승부처가 되는 전투의 특정 국면을 논함이며, 실질적으로는 거의 모든 전쟁이 돌파전과 조직전의 대결로 된다. 대개 공격력이 있는 군대는 돌파전을 구사하고 수비력이 있는 군대는 조직전을 구사한다.


처음에는 항우와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돌파전을 구사하여 승리하지만 전쟁이 장기화 되면 수비전술의 비중이 커져서 유방과 스키피오와 웰링턴이 이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칙은 이 다섯가지 전쟁형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처음 세력전으로 폭넓게 시작하여 조직전, 돌파전, 기동전, 동원전으로 점점 좁혀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세력을 이루고 대치하다가 전투가 발발하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적과 전장에서 대결하면 헛점을 찾아 바로 돌파하고 빠르게 기동하여 승부처가 되는 핵심에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숫적 우위를 이룸으로써 승리를 끌어낸다.


세력전은 대개 전투가 벌어지기 전의 냉전상황, 신경전 상황이며, 실전은 조직전으로 시작된다. 2차대전 이후 서방진영과 공산진영이 냉전으로 대치한 것이 일종의 세력전이다. 이 전쟁에서 서방이 승리하고 공산권이 패했다. 세력전을 구사하려면 머리가 여럿이어야 하는데 공산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원리상 하나의 머리만을 가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패배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력전의 진정한 의미는 전쟁의 종결에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나 혹은 고려시대 무신의 난, 일본의 전국시대, 서구의 100년전쟁이나 30년전쟁과 같은 대혼란기에는 전쟁이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는 바보가 항상 나타나서 무모한 모험을 계속하기 때문에 전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전쟁이 아니라 상대적인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 상대전쟁은 상대보다 조금 더 세면 된다고 믿고 끝없이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다. 절대전쟁은 동원가능한 전체의 힘이 견적서에 계산되어 뽑아지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를 미리 알 수 있고 따라서 전쟁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전쟁이 종결되고 평화가 오는 이유는 조직전, 세력전의 방어기술이 돌파전, 기동전의 공격기술을 이기기 때문이다. 신무기가 나타나거나 신전술이 창안되면 꼭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처음 한 지역에서 일어나지만 차츰 전역에 파급되어 마침내 세계대전으로 치닫는다. 처음에는 무기와 전술로 겨루지만 곧 지는 쪽이 상대방의 무기와 전술을 모방하게 되므로 더 이상 신무기, 신전술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때 전쟁은 세력전 양상으로 전개되어 대규모 외교동맹이 성립한다.


세력전이 진전되어 중립을 지키는 나라가 없이 모든 국가가 전쟁에 가담하였을 때 전선은 팽팽하게 교착된다. 이 단계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무조건 불리하다. 625 종전 직전과 같다. 방어하는 쪽이 유리하고 공격하는 쪽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을 뿐 전혀 얻는 것이 없다. 그 시점에 1차세계대전은 종전되었다. 계속 싸우다 보면 어느 쪽도 먼저 공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세력전의 의미는 내부경쟁을 통한 진화형 생장구조의 건설에 있다. 독재국가는 내부경쟁이 없으므로 반드시 지게 되어 있고, 민주국가는 내부경쟁이 있으므로 시스템이 진화하여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내부경쟁이 있지만 공산주의는 내부경쟁이 없다. 장기간의 대결에서 내부경쟁이 없는 시스템은 항상 패배해 왔다. 고조 유방은 내부에서 한신, 경포, 팽월과 대결하고 있었으므로 항우를 꺾을 수 있었지만 항우는 내부에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패배했다.


지금 민주세력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도 영남의 유시민에 필적할 호남인물이 없고, 호남이 가진 많은 표에 필적할 영남개혁의 득표력이 없기 때문이다.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언밸런스가 오히려 절묘한 밸런스로 반전될 수도 있다. 호남과 영남의 불균형에 서울과 충청이 가세하여 삼각구도를 이루고 절묘한 균형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기본적으로 집정권 두 명이 교대로 지휘를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내부경쟁이 있어서 한니발을 이길 수 있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양김씨가 단결하지 못했지만 내부경쟁으로 인해 민주세력의 파이를 키운 것은 명백하다. 두 김씨의 경쟁 때문에 적어도 군사독재세력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와해되었다. 만약 두 김씨가 경쟁하지 않았다면 쿠데타 가능성은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사보이호텔 사건은 양은이파가 선배들의 중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쳐들어가서 하극상을 일으킨 사건이다. 건달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패륜이 벌어진 것이다. 세간에는 이 사건으로 양은이파가 단번에 명동의 신상사파를 제압하고 재기불능 상태에 빠뜨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건 조직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고 이후로도 상당기간 신상사의 위신은 유지되었다. 조직세계에서는 서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양은이파가 하극상을 일으키자 이를 응징하기 위해 태촌파가 움직였고 두 세력은 물고 물리는 대결을 벌이면서 서울 일대를 전부 장악했다.


중요한 것은 두 조직이 치고받고 하는 바람에 둘 다 이득을 봤다는 점이다. 두 패가 싸움을 벌이면 중간에서 눈치를 보는 세력은 약한 쪽에 붙는다. 어둠의 세계가 작동하는 법칙은, 없는 넘이 작당하여 있는 넘을 털어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가진 자를 털어야 먹을 것이 있다. 이 때문에 한 번 세가 형성되면 약자 쪽에 돕겠다는 사람이 몰려들어 엇비슷한 형세가 되어 팽팽하게 교착되어 서로 이득을 본다. 적대적 의존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쪽은 언제라도 제 3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법이다. 승리하면 많은 이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때문에 제 3자가 계속 끼어들어서 싸움은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세는 더욱 불어난다. 두 조직의 끝없는 싸움을 종식시킨 것은 광주항쟁 이후 정치 허무주의에 빠져 건달을 우상화 하는 분위기에 질투심을 느낀 전두환 정권이었다.


이러한 세력대결을 위해서는 본인이 사생결단의 비장한 각오를 보여야 한다. 이때 약자는 영웅전에 나오는 공식대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부당함을 호소하며 만인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언론플레이를 한다. 그 과정에서 계백장군이 처자를 베고 전장에 나서듯 비장한 결의를 보여준다. 본인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만 보여주면 진화형 생장구조의 핵이 형성되고 한번 핵이 형성되면 방계의 가지가 연결되어 외부쪽으로 크게 세력이 만들어진다. 서울에서 서방파와 태촌파가 대결하는 와중에 순천시민파가 곁가지로 서방파에 붙은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득을 노리고 일시적으로 제휴한 곁가지는 곧 배신한다.


징기스칸도 이와 같은 내부의 반목과 경쟁 때문에 도리어 세를 불린 경우다. 처음 징기스칸이 아버지가 죽고 타이치우트 족에 쫓겨다니며 생사의 고비를 여러번 넘나들 때 집요한 생존력을 보여주었다. 지켜보며 관망하든 몽골족이 일제히 모여들어 나이도 어린 징기스칸을 일찌감치 칸으로 추대했다. 징기스칸은 아직 어리고 장래성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본인이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투자하기에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 징기스칸에게 가담했던 세력들 중 상당수가 나중 이탈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징기스칸에게로 되돌아오곤 했다.


주식회사라도 마찬가지다. 장래성이 있는 회사에 투자해야 한다. 대형우량주를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소액주주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적다. 장외에서 알토란 같은 주식을 발굴해서 상장시키는 것이 더 크게 남는 장사다.


몽골족 다수는 징기스칸을 이용하여 고원에 질서를 만들고자 했을 뿐 진정으로 징기스칸을 지도자로 섬길 생각은 없었다. 징기스칸이 어려서 물정을 모르니까 칸으로 추대한다며 부추겨서 헛바람을 심어놓고 뒤로 이용해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많은 무리가 징기스칸을 떠났을 때 그의 주위에는 3천명의 병력이 남아있었다. 징기스칸은 자무카와 토오릴칸의 협격을 받아 궁지에 몰렸으나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징기스칸이 살아서 돌아오자 무리는 다시 징기스칸 주위로 몰려들었다. 먼저 배신한 주제에 염치불구하고 다시 모여든 것이다.


왜인가? 징기스칸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체재가 탄생한 것이다. 한 차례 탈바꿈을 해서 진화형 생장구조에 곁가지가 자리잡을 만큼 많은 생장점들이 형성된 것이다. 초기 단계에는 징기스칸의 직계가 동생 카사르와 벨구테이 테무게 등 형제 위주로 되어 있어서 외부세력이 빌붙을 근거가 없었는데 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전공을 세운 장수들의 입지가 강화되어 곁가지가 접목될만큼 충분히 구조가 성장한 것이다.


고원의 민중들은 다시 생각을 바꾸어 징기스칸을 지도자로 옹립했다. 이런 패턴은 영웅담에 흔히 나오는 것이다. 민중은 지도자를 갈망하지만 중간에 한 번은 변덕을 부려 그 지도자를 버린다. 그리고 지도자가 살아서 다시 돌아오면 환대한다. 민중의 변덕에는 이유가 있다.


◎ 약자편에 서기.. 민중은 약자편에 서서 이득을 얻으려 한다.
◎ 삼각구도 형성.. 약자가 강해지면 통제수단이 없음을 깨닫고 견제한다.
◎ 새 질서 구축.. 그래도 살아남으면 새로운 질서를 추구한다.
이러한 전개과정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중의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빈털터리였을 때 모두 지지하여 단번에 대통령후보로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견제할 수단이 없음을 깨닫고 다들 배신했다. 그들이 처음 노무현 대통령 주변으로 모여든 이유는 자신이 노무현 대통령을 독점할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주변에 아무도 없었을 때는 무주공산과 같아서 아무나 먼저 덤비는 사람이 이득을 본다. 그러나 와보니 이미 노사모가 있었고 부산팀이 있었고 우광재 좌희정이 있었다. 끼어들 구조가 없었던 거다.


일정한 세가 형성되면 지지를 해서 이득을 얻기 보다는 반대를 하며 조건부로 협상카드를 내미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빈털터리일 때는 협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지만, 세를 얻어서 가진 것이 있을 때는 그것을 방해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도와서 얻는 생색은 작고 방해를 암시하며 협상을 시도해서 얻는 이익은 크다. 다 이익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들 징기스칸을 떠나갔다. 그러자 그 떨거지들 참 잘 갔다고 속시원해 하는 자들이 끝까지 남아 강한 핵을 형성했다. 파괴되지 않는 구심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들과 함께 끝까지 갈 결의를 보여주었음은 물론이다. 진화형 생장구조 탄생이다. 민중의 마음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스케일이 달라졌다. 이제 징기스칸은 민중의 통제대상이 아니다. 격이 높아졌다. 이미 가속도를 얻은 만큼 통제하고 견제하고 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까지는 내전이었는데 이제 정복이다. 다시 한번 달려보세 하고 다들 모여드는 것이다.


◎ 1단계 - 키워준다.. 초기에 투자한 소수가 이득을 본다.
◎ 2단계 - 견제한다.. 방해하며 협상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 3단계 - 의존한다.. 외부로 뻗어가면 더 큰 이익이 돌아온다.


가축을 키워도 그렇다. 작은 짐승은 먹을 것이 없으므로 일단 키우고 본다. 적당히 크면 잡아먹든가 아니면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달아 부려먹으며 통제한다. 코끼리처럼 아주 커버리면 이건 뭐 잡아먹을 수도 없고 멍에를 씌울 수도 없다. 코끼리는 정글의 관목을 짓밟아 초원에 길을 내는 역할이다. 이제는 부쩍 커버린 코끼리를 앞세우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간다. 생장의 단계에 따라 민중의 태도가 변하는 것이며 언제라도 이득을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 민중은 배반한 것이 아니라 이득을 얻는 방식을 바꾸었을 뿐이다.


리더가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이러한 신고식이 있다. 민중은 반드시 한 번은 리더를 배신하여 시험한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댄다. 리더가 만약 내부에서 아웅다웅하며 남탓이나 일삼고, 외부로 뻗어가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바로 잡아먹는다. 반면 리더가 내부 일에 무관심한 척 하며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길을 열어가면 리더를 따른다. 내부의 것은 자기네가 빨대 꽂아놓고 빼먹을 요량이니 리더가 내부의 일에 무관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몽골족 내부에서 토오릴 칸과 자무카와 징기스칸이 경쟁하는 삼각구도에서 판갈이를 하여 몽골족을 통일하고 외부의 나이만족과 금나라를 끼워 새로운 삼각구도를 만드는 것이 더 속시원한 게임이 된다. 무리는 다시 모여들었다.


약자편들기≫삼각구도 형성≫새 질서 구축이라는 3단계 패턴은 역사에 무수히 반복된다. 패왕 항우와 고조 유방의 대결에서는 한신이 세번째 축이 되어야 했는데, 거의 3각구도로 갔다가 막판에 괴철의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한신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삼국지 시대에는 위, 촉, 오가 솥발처럼 나누어 대결상태를 유지했고, 남송때도 고려와 금나라, 남송이 삼각구도를 이루었다. 양은이파와 태촌파의 대결에도 오비파가 끼어들어 삼각구도가 되었고, 자무카와 토오릴칸, 징기스칸도 한때 삼각구도를 이루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도 민주당과 군소정당 한나라당이 불완전하나마 삼각구도를 이루었다.


삼각구도라 했지만 실제로는 약한 2가 결사하여 강한 1에 맞서는 것이 보통이다. 고구려가 강할 때는 나제동맹이 이루어졌고 신라가 강할 때는 여제동맹이 이루어졌다. 삼국지도 실제로는 오와 촉이 연대하여 위에 맞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당 및 군소정당과 민주당이 연대하여 한나라에 맞서는 구도는 불완전하나마 전통적인 삼각구도가 맞다. 로마시대의 3두정치도 마찬가지다. 외형적으로는 3각구도지만 실제로는 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핵심이 있고 나머지 둘은 끌려다니는 것이다. 로마의 삼두정치는 실제로 카이사르 1인을 위한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각구도는 내부용이고 리더가 외부를 향한 비전을 던져주면 삼각구도는 곧바로 붕괴된다.


세력전의 의미는 일정한 정도의 내부분열이 일어나야 도리어 흥한다는 점이다. 큰 나무가 되려면 가지가 옆으로 폭넓게 벌려줘야 한다. 화단의 화양목처럼 가지가 뻗어나가지 않고 가운데 똘똘뭉쳐 있으면 비전이 없다. 외부세력과 연대하지 않고 제 식구만 챙기는 군대는 장래성이 없다. 진화형 생장구조의 특성이다.


고조 유방이 세력전을 구사하여 패왕 항우를 물리칠 수 있었던 배경은 약했다는 점이다. 유방은 시골의 정장으로 별것아닌 존재였기 때문에 소하나 조참이 이용해먹을 요량으로 그를 따라나선 것이다. 유방의 초기 멤버 중에서 번쾌나 주발 하후영, 관영 등은 뒷골목 출신이었고, 그나마 소하와 조참이 좀 아는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적당한 시기에 유방을 팽하고 자기네 세력을 만드는게 역사에 무수히 등장하는 공식이지만, 이들은 뜻밖에 항우라는 강적을 만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유방에게 끌려다녔다.


이후 한신과 진평을 비롯하여 영포, 팽월 등 재능있는 사람들이 유방 주변에 모여들었는데 이들이 유방을 존경하여 복종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절대강자인 항우와 맞서는 상황에서 여건이 마땅치 않았을 뿐이다. 이들은 단지 유방이 약했기 때문에 유방 편에 선 것이다. 항우편에 들어가봤자 알아줄 리도 없는 데다가 유방이 항우와 싸우다 죽으면 잔존세력을 물려받는게 더 나았던 것이다.


단지 노무현이 약하다는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 편에 가담한 자들은 당선되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 떠났다. 더 이상 일거리가 없다고 믿은 것이다. 그들 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연히 패배할 줄로 알고, ‘노무현이 깨지면 다음 타자는 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자가 많았다. 노무현이 적을 이기지는 못해도 상당히 적을 약화시켜 놓으면 뒤따라가며 주워먹기를 기대한 것이다.


유방패밀리는 단단한 조직이 아니었다. 영포, 팽월, 한신 등은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배신하는 것이 역사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강적 항우와 대결하느라 너무 아슬아슬하게 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이런 식의 아슬아슬한 조직이 성공한다. 지금 참여당과 민주당, 민노당이 아슬아슬한 상태다. 이래야 성공한다. 한나라당도 박근혜와 이명박이 내부에서 아슬아슬한 대치상태를 이루었기 때문에 강해진 측면이 있다.


결론적으로 항우가 건설한 국가시스템과 유방이 건설한 국가시스템의 대결에서 유방쪽이 외부로 뻗어가는 촉수가 더 많은 우수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항우는 자신의 무력만으로 지배할 수 있었으므로 제후나 백성의 지지를 끌어낼 필요가 없었다. 동원할 필요조차 없었다. 반면 유방은 약했으므로 동원해야 했고 동원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건설해야 했으며 그러므로 우수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시스템이 좋은 유방이 더 많이 동원해서 이긴 것이다.


로마군이 상승한 비결도 우수한 국가시스템에 있다. 일단 로마는 민회와 원로원으로 국가가 이원화 되어 있다. 내부에 불안정한 대결구조가 있는 것이다. 이런 내부대결에 의해 불안요소는 사전에 걸러진다.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느라 약점을 들추기 때문에 국가의 약점이 모두 노출되고 보완되어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내부분열이 없이 똘똘 뭉친 국가는 약점을 외국이 먼저 간파한다. 그 결과는 멸망이다. 한국이 IMF를 맞은 것도 외국이 먼저 약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조중동이 내부에서 사고도느라 김영삼을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등에서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운용하므로 막대한 배상금을 노리고 타인의 약점을 들추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국가발전에 좋은 것이다. 예방주사를 미리 맞아두는 것과 같다. 전 국민이 삼성과 현대의 오만을 비판하면 삼성과 현대는 세계 최강이 된다. 삼성은 칠할을 진보가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로마는 집정관도 2인이 선출되고 해마다 교대하는 편이어서 복잡한 내부경쟁이 일어난다. 그러한 경쟁구조에 의해 진화형 생장구조가 세팅되어 강해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부경쟁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한니발과의 칸나에 전투에서 집정관 바로의 실책이 대표적이다. 바로와 파울루스는 서로 자기가 지휘하는 날자에 한니발과 대결하려 했다. 특히 바로가 전공에 욕심을 부려 무리하게 한니발을 상대하는 바람에 6만병사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몰살되었다.


세력전의 장점은 장기전에서 나타난다. 내부경쟁이 있는 군대는 초반 한 두번은 대패하기도 하지만 점차 약점을 보완하여 점점 강해진다. 세력전, 조직전은 수비에 강점이 있고 돌파전, 기동전은 공격에 강점이 있다. 내부분열이 있는 나라는 세력전, 조직전을 통해 우선 수비를 강화하며 전쟁을 장기화 시킨다. 이때 적이 약점을 보이면 돌파전, 기동전으로 전략을 변경하여 일시에 들이친다.


로마군은 교범식 전투를 하므로 임기응변에 약하다. 그러므로 돌파전, 기동전에 약하고 세력전, 조직전에 능하다. 그들은 참호를 파고 보루를 쌓아 국면을 교착시키고 전쟁을 장기화 한 다음 성미급한 상대가 약점을 노출하면 바로 들이쳐서 상대의 전쟁수행능력 자체를 완전히 해체해 버린다.


로마는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국으로 변한 다음에도 황제들은 일선의 장군들을 양자로 입양하여 시이저라는 이름을 물려주며 실제로는 공동통치라 하여 2인지배, 혹은 3인체제를 유지했다. 그 과정에 정략결혼과 암살이 난무하여 내부가 늘 긴장과 갈등상태였으므로 시스템의 약점은 여지없이 노출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로마군은 점차 약점없는 군대가 되어갔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로마의 5현제 시대에는 특히 양자상속제도가 정착하여 내부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작동하였는데 가장 뛰어난 황제로 숭배되는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친자식 콤무두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그것이 로마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멋있게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흔히 비판되는 궁중의 암투와 독살, 정략결혼이 난무할 때 로마는 오히려 건강했다. 철학자 황자가 너무나 잘 통치하는 바람에 천하가 태평해지고 아슬아슬한 긴장이 사라져서 로마는 망조가 들었다. 우리가 흔히 좋다고 말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너무나 많다.


세력전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오르는 언론전의 명수인 촉주 유비를 들 수 있다. 삼국지 인물 중 대다수 호걸들이 아비 잘 만난덕에 일찌감치 많은 자본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유비는 유씨라는 성씨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 유씨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흔했다. 유씨정권 치하에서 지방의 제후들도 모두 유씨였고 이들이 대거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유비의 성공원인은 단 하나다. 그것은 철저한 언론전이다.


유비 드라마의 제 1기는 어려울 때 인재들이 스스로 유비를 찾아 모여오는 시기다. 관우, 장비, 손건, 미축, 간옹 등은 일종의 창업멤버로 지분을 차지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약자를 돕는 시기에 해당한다.


제 2기는 공손찬, 도겸, 공융, 동승, 여포, 조조, 원소, 유표, 손권 등이 한차례씩 유비를 찾아왔는데 이들은 대개 유비를 만만이 보고 이용하려 했다. 유비 정도는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 중심으로 삼각구도를 만들기 위해, 제법 명성이 있었던 유비를 날개로 붙이려 한 것이다. 폼 날줄 알고 말이다. 이들은 대개 유비를 배반할 마음이 있었으며 유비나 자기네나 서로 상대를 이용하는 관계로 보았다. 어쨌든 유비의 명성은 누구에게나 이용가치가 있었다.


제 3기는 조운, 제갈량, 서서, 방통, 손권, 마초, 황충 등과 손잡은 시기로 크게 세가 일어나 탄력을 받은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유비에게로 모여들었을까? 유비 외에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유비가 유일하게 살아남았기 때문에 달리 갈 데도 없고 해서 유비에게 한 번 기대를 걸어본 것이다.


중요한 점은 유비가 세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즉 유비는 무력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 세력을 얻으려 한 것이다. 그 세력은 민중의 지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며, 그 민중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은 지식인 집단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낙양성이 불타고 흉년이 겹쳐 살수없게 되자 도겸이 있던 서주로 많이 모여들었는데 조조가 황건적 출신의 청주병을 데리고 들어가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바람에 그 와중에 지식인이 많이 죽어서 지식인 집단은 조조를 원망하고 대항마로 이용해 먹기에 만만한 유비를 물색한 것이다.


그 후 유비가 형주로 찾아왔고 당시 양양성에는 낙양에서 내려온 지식인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지식인을 학살한 조조를 적대하고 구원자로 유비를 선택했다. 마침 유비가 스스로 조조의 라이벌이라며 떠들고 다녔기 때문에 자연히 유비의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유비는 외연확대가 가능한 진화형 생장구조를 세팅하고 세력을 얻은 것이다. 비전의 제시가 된 것이다.


우리는 나관중이 삼국지를 쓴 걸로 알고 있지만 삼국지는 고대부터 거리의 소설가들이 이야기하고 다녔다. 소설가는 제자백가 중의 하나로 거리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돈을 벌었다. 그들은 유비를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갔으며 그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왜 소설가들이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첫째는 조조의 학살에 원한을 가진 지식인 집단이 유비를 지지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야기꾼 유비가 자신을 조조의 라이벌로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 많은 에피소드들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연의의 몇몇 인상적인 장면은 유비의 말솜씨가 아니면 생겨나기 어려운 것이다. 도원결의 에피소드라든가 조조와 영웅담을 나누는 중에 천둥소리에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든가, 관우가 조조를 죽이려는 것을 넌지시 말렸다든가, 적로가 강을 뛰어 건넜다든가 하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나관중의 창작이 아니라 유비 본인의 각색이라 보아야 한다.


“조조는 다그치지만 나는 너그러우며, 조조는 사납지만 나는 어질며, 조조는 속임수를 쓰지만 나는 정성스럽다.”


이 말은 유비 스스로가 한 말이다. 자신을 조조의 라이벌로 규정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비는 초기부터 활약을 했지만 군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권력의 중심부인 황제 주변을 맴돌거나 당시 사태를 주도하고 있던 조조 주변을 맴돌고자 했기 때문이다. 멀리 외곽으로 나갔다면 기회가 있었다. 제갈량이 익주 정벌을 주장하자 유비가 망설인 것은 같은 유씨 종친이라서가 아니라 실은 중앙에 자리잡아야 찬스를 얻는다는 동물적인 생존감각 때문이었다. 궁벽한 곳에 있다가 외통수로 몰리면 살아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당시 판도는 조조가 주도하고 있었고 조조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주워먹을 찬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조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만났으므로 운이 좋으면 유비에게도 주워먹기 찬스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포가 압도적인 군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죽은 이유는 너무 조조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냥개가 안방으로 기어들어온 격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용맹한 장수는 멀리 변방에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조조는 불안요소인 여포부터 일단 해결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약한 유비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제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고보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해 유비는 군사를 기르는 대신 조조 주변을 맴돌며 명성을 얻으려 했다. 그 명성은 조조는 물론 조조와 대적하려 하는 군소세력들도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화근덩어리가 된 셈이니 유비가 가는 곳마다 전쟁이 일어났다. 실제로 유비는 삼국지 최고의 방화범이며 재앙을 불러오는 자였던 것이다.


도겸, 공융, 동승, 여포, 원소, 유표, 손권 등은 모두 유비와 손잡다가 죽임을 당했거나 혹은 유비 때문에 재앙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군웅들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유비를 살려놓고, 큰 적인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 유비를 추켜세워 주었다. 결국 그들의 희생이 쌓이고 쌓여 그 이득을 모두 유비가 차지했다. 엉뚱하게도 유비가 상속해가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비는 조조의 힘을 이용해서 군웅들을 싹쓸이로 청소한 셈이다. 자연히 자신이 조조를 제압할 수 있는 라이벌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유비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가장 영민한 인물이며 그의 바보스러움은 영웅전에 흔히 나오는 공식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노짱이라고 부르듯이 민중들은 그저 자신의 정서를 투사하기 위하여 바보라고 여기는 것이다. 유비는 철저하게 계산했고 민중의 정서를 이용했다.


세력전은 내부에 경쟁구도를 두고 불안한 가운데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외부를 쳐서 내부를 불려나가는 것이다. 외부로 뻗어가는 세력의 생장점은 그 아슬아슬한 밸런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아슬아슬함이 없이 안전해지면 달팽이처럼 안으로 말려버린다. 등껍질을 쓴 거북이처럼 자라지 못하고 성장은 정체된다. 사람의 근육이 크는 이유는 운동에 의해 근육이 찢어질 때 새 살이 그 찢어진 곳을 봉합하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졌다 붙으면 더 단단해진다고 한다. 고통이 없이는 성장도 없다. 고통을 즐겨야 한다. 긴장을 즐겨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가야 한다. 안전빵을 추구하다가는 외통수로 몰린다.


유비는 공손찬, 도겸, 공융, 동승, 여포, 조조, 원소, 유표, 손권 등과 한 차례씩 불안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내부경쟁을 일으켰고, 그 경쟁파트너는 대개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유비는 살아남아 그 잔여세력을 흡수했다. 여기에는 언론의 도움이 있었다. 유비는 비겁하게도 무수히 도망다녔지만 여전히 비전이 있었기에 지식인이 지지해준 것이다. 비전있는 배신은 용서된다.


동원전, 기동전, 돌파전, 조직전은 군사력으로 말하지만 세력전은 종교와 문화 그리고 언론과 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결정적으로 국가시스템의 대결이 된다. 독재하는 조조시스템에 비해 권력을 나누는 유비시스템이 더 민주적으로 보인 것이다. 유비가 민중의 여론을 듣고 자기 노선을 정하는 척 했기 때문이다. 민중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조조국보다 유비국이 더 우월한 시스템이었다. 물론 실제로 우월했다기 보다는 유비가 언론을 이용하여 제시한 비전이 그러했을 뿐이다. 어쨌든 유비는 비전을 제시했고 이것이 먹혔다. 물론 유비의 성공은 제한적이다. 그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형적으로 세력전의 공식이다.


유비 개인은 성공반 실패반이지만 유비를 지지한 지식인의 전략은 확실히 성공했다. 지식인들의 세력논리는 이후 중국사에 무수히 등장한 독재자를 견제하는 논리가 되었다. 역대 왕조의 폭군들은 지식인들이 자기를 조조로 낙인찍을까봐 몸조심을 하게 되었다. 지식인들에게 아부하는 정치를 한 것이다. 특히 청나라때지식인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펼친 대학술사업이 그러하다. 강희, 건륭 연간에 명사, 강희자전, 고금도서집성, 통감집람, 속문헌통고, 사고전서 등 무수한 도서를 편찬했는데 이는 지식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조로 낙인찍지 말고 유비로 보아달라 이거다.


토오릴 칸과 자무카, 징기스칸이 대결할 때 다른 군웅들은 내부경쟁에서 승리를 꾀했을 뿐이지만 징기스칸이 유일하게 세계정복의 비전을 제시했고 그 때문에 삼각구도의 균형을 기대하던 몽골족들이 갑자기 징기스칸 단일체제로 돌아섰다. 삼각구도의 성립초기에는 약탈하여 전리품을 얻을 수 있지만 삼각구도가 안정되어 팽팽해져버리면 교착되어 더 이상 약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에 힘을 몰아주다가 폭군에게 끌려다니게 될까봐 힘을 몰아주기를 주저하던 민중들이 상황이 심심하게 돌아가자 더 이상 못 참고 비전있는 징기스칸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다. 이런 패턴은 카이사르가 로마를 집어삼킬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 삼각구도가 교착될 때나 원로원이 카이사르를 견제할 때는 폭군의 지배를 받게될까바 견제하든 민중들이 카이사르가 게르만 정복을 통한 세계국가의 비전을 제시하자 바로 마음을 바꾸었던 것이다.


◎ 1기 - 초기 단계에서 약자에게 지분을 투자하면 이익이 크다.
◎ 2기 - 삼각구도로 팽팽하게 교착시켜야 중간에서 이득을 챙긴다.
◎ 3기 - 비전있는 한 명에게 몰아주어야 외부로 활로를 열어간다.
시스템의 발전단계에 따라 대중은 변덕을 부리며 그때그때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선택한다. 대중의 이러한 요구에 리더가 끌려다니게 되면 히틀러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처럼 세계정복이라는 무리한 비전을 발표하여 천하를 재앙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넣게 된다. 히틀러나 히로히또가 이러한 세력전의 원리를 알고 터무니없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포지셔닝에 대응하다보니 자기네들도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길을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단하지 못한 비겁자였던 것이다.


징기스칸은 몽골고원을 통일했을 뿐 세계정복은 그의 아들 대에 와서 이루어졌다. 징기스칸의 아들들이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내부의 반목 때문이었다. 유목민들은 신뢰를 중시하지만 그 신뢰의 강조는 오히려 철저한 불신에 기초하는 것이다. 징기스칸과 자무카, 토오릴 칸의 대립에서 보듯이 배신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었다. 유목민 세계에서는 배신할 수 밖에 없다.


자무카와 징기스칸은 안다(의형제)관계로 토오릴 칸과 징기스칸은 의부와 양자관계로 그들 서로간의 의리는 견고한 것이었다. 징기스칸이 먼저 자신을 도와준 자무카의 곁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는 부인 보르테와 어머니 허엘룬의 요구사항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몽골부족에서는 여성의 권한이 높아서 어머니의 명령과 부인의 요구는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에 징기스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동생 카사르와 벨구테이, 테무게 등은 어머니의 입장에 따라 바로 적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징기스칸의 삼촌들도 세력에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다가는 졸지에 외롭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동생 카사르는 징기스칸과 몇 차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징기스칸의 부인 보르테도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장기스칸이 장성한 아들들에게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남 주치는 친아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활약을 했는데 징기스칸이 주치(손님)라는 이름을 준 것을 보면 분명 탐탁치 않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 허엘룬이 자무카와 싸울 때 13쿠리엥(원진을 치는 부대단위)의 일대를 맡아 전투에서 활약하고 1만호를 챙긴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어머니를 서럽게 하면 형제들과 틀어지고, 부인을 무시하면 자식들과 원수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국이라면 유교주의 관습 때문에 가부장의 지시를 어길 수 없지만 몽골 고원에서는 가족과도 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가족을 융합시키는 여성의 권위가 컸던 것이다.


토오릴 칸이 자무카와 징기스칸을 필요로 한 것은 삼촌들과 자식들이 자기의 왕위를 뺏으려고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오릴 칸은 숙부인 구르 칸과 아들 닐카 셍굼을 견제하기 위해 자무카와 동맹하였고, 자무카가 배신할까봐 징기스칸을 끌어들여 다시 자무카를 견제하려 한 것이다. 이중의 안전장치다.


친자식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니 여성의 발언권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징기스칸 역시 주치가 친자식도 아닌 상황이니 보르테를 괄시했다가는 아들에게 맞아죽는 불행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흉노 선우 묵특이 아버지 두만을 죽인 이래 몽골 고원에서 아버지 살해는 흔한 일이었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전국시대도 비슷한데 심지어 부인과도 적대관계인 경우는 매우 많았다.


적대관계인 국가와 화해할 때 정략결혼을 하기 때문이다. 봉건영주의 부인은 몰래 아버지와 내통하여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 그 남편을 살해하게 할 목적으로 시집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 지경이니 부인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남자간의 의리라는 것은 위태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징기스칸와 자무카의 관계는 의형제이지만 부인 보르테 입장에서는 옹기라트족과 자다란족의 복잡한 사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고원에서는 삶이 곧 전쟁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곧 죽어도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세력을 만들려면 반드시 여성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형제와 자식과 틀어지면 만사휴의가 되기 때문이다. 텝 탱그리가 징기스칸과 동생 카사르 사이를 이간질 했을 때, 어머니 허엘룬이 말린 것이 대표적이다. 자칫 형제간에 적이 될 뻔 한 것이다. 텝 탱그리가 신탁을 빌어 동생 카사르가 징기스칸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을 것처럼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이든 날조든 한번 말이 나오면 의심의 공기가 초원을 감돌게 되고 수습은 불능이다.


징기스칸은 심지어 어머니 허엘룬과도 대립적인 관계가 있었다. 징기스칸은 세계정복을 꾀했지만 허엘룬은 혈족의 영광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믿을 수 없는 고원에서 배신은 일상사였다. 배신당하지 않는 방법은 등 뒤에 적을 남겨두지 않는 것 뿐이다. 애초에 화근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다.


징기스칸의 형제와 자식들 중 누군가가 세를 불리면 다른 분파들도 그에 상응하는 힘을 길러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징기스칸은 친아들도 아닌 장남 주치에게 서쪽 땅을 주고 우대했지만 아랍을 침공했을 때 다른 형제들은 반목하여 주치의 군대에게 보급해 주지 않았다. 주치의 아들 바투는 유럽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첫째는 풀도 없는 아랍의 사막에서 보급이 안 되니까 말먹이풀을 구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충분히 세력을 넓혀두어야 형제간의 대결에서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의 반목과 경쟁 때문에 점차 세력이 불어나는 것이다. 내부에 아슬아슬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끝없이 외부를 지향하는 것이 세력전의 요체이다. 내부에 계급이 층층이 나누어져 서로 소통이 단절되어 아무런 긴장구조가 없고 외부와의 소통도 단절한 봉건국가는 패망하고 만다.


지금 한국을 보라.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은 지나갔다. 강남은 확실히 학생의 성적이 높다. 점차 단층과 절리가 일어나고 있다. 내부적으로 단절하고 있다. 차별하고 장벽을 세우고 갈라서려고 한다. 그 이유는 긴장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안이함 때문이다. 긴장하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다. 자식을 서울대 보내는 것이다. 판검사 만드는 것이다. 의사로 키우는 것이다. 외국유학을 시켜 영어에 능통하게 하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 하면 모든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해방이다 하며 모두 그 길로 달려간다. 그 결과는 구조의 붕괴다. 긴장을 견뎌야 한다.


모든 아이디어와 창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이질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에서 얻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일찍이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와 접촉했다. 인도는 특히 수 많은 신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가장 많은 침략을 받은 나라이다. 다양한 종교가 대립하고 있는 나라이다. 스티브 잡스는 거기서 서로 다른 것을 공존하게 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은 직관적인 소통이다.


어차피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회교도는 대화가 안 통한다. 전혀 대화가 안 통하는 바라문 계급과 불가촉 천민을 서로 소통하게 하려면? 직관이다. 스티브 잡스의 모든 것은 직관적 의사소통 하나로 집약된다. 스티브 잡스가 발명한 모든 창의들은 직관적인 이해와 조작을 가능케 한다. 마우스로 커서를 움직여 아이콘을 누르고 폴더를 여는 것이 대표적이다. MS의 도스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반면 MS나 한국의 삼성이라면 어떤가? 소통의 문제에 부닥치지 않는다. 비슷한 인간들만 모여 있으니 서로간에 소통이 되지 않을 리 없고, 소통되지 않은 이질적인 분자가 틈입하면 왕따시켜 버리면 된다. 이질적인 존재와 소통하려고 골머리를 싸매느니 간단히 배척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문을 닫아거는 방법으로 1초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뭐하러 아이콘과 마우스와 폴더 같은 복잡한 것을 도입하느냐 말이다. 삼성이 제법 노력하고 있으나 스티브 잡스의 직관적 소통이라는 본질을 이해하려면 아직 원시인 수준이라 하겠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 이해할 수준도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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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구조가 새로 나왔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동물이며, 마음은 언제라도 그대를 공동체의 중심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공동체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존엄이 있습니다. 존엄을 얻을 때 마음은 진정으로 다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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