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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80 vote 0 2021.08.24 (17:03:05)

    원래 수학은 불변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뉴턴의 미적분에 와서 처음으로 수학이 변화를 다루게 되었다고 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버린 셈이다. 미적분은 아리송하기 짝이 없는 무한대 개념을 도입하며 이데아의 고상함에서 멀어졌다. 수학은 계산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순결한 세계를 떠나 끝이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지저분한 세계로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근대과학의 질주가 시작된다.


    여기서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가 요청된다. 불변이냐 변화냐? 분명한 종착역이 있는 불변의 이데아를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끝없이 흐름이 이어지는 변화를 추적할 것이냐? 말이 앞뒤가 맞고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공산주의보다 변덕이 심하고 지저분한 민주주의가 낫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 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므로 꼬리가 남아야 하며 딱 맞아떨어지면 곤란하다. 여백이 필요한 것이다.


    고대의 원자론이 제시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은 계산이 맞아떨어지는 전통수학의 고정관념과 맞고, 현대의 양자역학은 아리송한 점에서 미적분의 지저분함과 맞다. 뉴턴이래 수학은 불변의 이데아에서 변화의 탐구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인류는 여전히 불변을 추구하는 원자론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음은 변화이니 해롭고 양은 불변이라서 좋다는 동중서의 음양론과 같다.


    이제 진실을 대면할 때다. 우주는 곧 변화다. 불변이 어떤 이유로 망가져서 일시적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며, 원래의 불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우주는 변화이며 변화 중에 우연의 일치로 두 변화가 나란해졌을 때 외부 관측자에게는 불변으로 보인다. 모든 불변은 관측자에 대한 상대적인 불변이다. 모든 불변에는 두 방향의 변화가 교착되어 있으며 잠금이 해제될 때 갑자기 변화가 튀어나온다.


    문제는 우리의 언어가 불변의 이데아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자유, 사랑, 정의, 평등, 평화, 이성, 영혼, 해탈, 중용, 생태 등의 맹랑하기 짝이 없는 관념어들은 모두 하나의 이데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다. 이곳저곳에 적용하여 칼라를 입힌 것이다. 해석된 것은 모두 가짜다. 관념은 유토피아에서 한 조각을 떼어낸 것이다. 관념어에는 원래의 고상한 이데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열망이 숨어 있는게 문제다.


    원시인 시절에는 자유로웠지. 이건 사는게 사는게 아냐. 우리는 원시인 시절의 진정한 삶으로 돌아가야만 해. 이런 식의 복고주의, 과거회귀, 보수꼴통 사고방식이다. 부족민의 삶은 평화롭지. 우리는 총을 내려놓고 부족민의 돌도끼 문화로 돌아가야 해. 원래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 아무 생각이 없는 순수한 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는게 장자와 혜능의 깨달음이야. 관념타령은 멍청해지기를 경쟁하는 것이다.


    모든 관념어에 불변의 요소가 숨어 있다. 원래는 좋았는데 변화가 일어나서 나빠졌다는 생각이다. 원래 인간은 원숭이였고, 그 이전에는 생쥐였으며, 더 오래전에는 짚신벌레였다. 과거가 좋냐? 짚신벌레가 되겠다는 것인가? 현대수학은 불변의 추구에서 변화의 탐구로 거대한 발상의 전환을 일으켰다. 우리는 불변을 추구하는 관념어를 버리고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계의 통제가능성이다. 통제가능성은 변화가 불변 안에서 일어난다는 말이다. 불변과 변화의 공존이다. 원인은 불변이며 결과도 불변이다. 그사이는 불변과 변화가 공존한다. 이데아는 결과의 불변을 추구한다. 원인은 불변이나 뒤에 변화가 따라붙는다. 결과는 그냥 불변이다. 그걸로 상황이 종료된다. 자유, 평등, 정의 따위 관념어는 상황의 종료를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다른 사건을 격발한다.


    권력의 본질은 동원력이다. 상대가 따르지 않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어떤 동원력이 있으면 그곳에 권력이 있다. 군대를 동원하든, 법을 동원하든, 군중을 동원하든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는 곳에는 권력이 있다. 아기는 울어버린다. 맞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권력이다. 권력은 현재고 결과는 미래다. 하나의 동원을 두고 아직 실행되지 않은 결과측을 살펴 자유, 사랑, 정의, 평등, 평화, 이성따위로 상상한다.


    자유, 평등, 정의는 개소리고 본질은 우리가 권력에 의해 동원된 상태 곧 소집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현실이다. 계의 통제되어야 하는 상태다. 그냥 놔두면 애들이 집에 간다. 집에 가려는 애들을 붙잡아 놓으려고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평화니 개소리를 시전하는 것이다. 인디언 전사들은 총을 쏘다가도 갑자기 집에 밥먹으러 간다. 야 가지마. 네가 가면 대오가 무너지잖아. 이때 자유와 평등을 떠들어야 한다.


    여러 가지 관념어는 권력의 동원상태를 유지하려고 감언이설로 꼬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집단의 무의식에 의해 동원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이 전시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움직이면 상대가 반드시 맞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다.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이성, 영혼, 해탈, 이데아는 승리의 전리품으로 따라온다.


    옛날 수학자가 불변의 이데아를 추구한다며 변화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미적분? 사탄의 수학이야. 악마의 속삭임이지. 모름지기 수학이라는 것은 비례로 정확히 나타낼 수 있어야 해. 뒤에 끝자리가 남으면 안 돼. 화장실에서 밑을 안 닦은 기분이 들잖아. 소수? 그건 고약한 놈들이지. 사탄과 결탁한 어둠의 무리야. 이런 식으로 어깃장을 놓는 것이었다. 과감하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전진해야 한다.


    옛날 사람들이 12진법과 60진법을 사용한 이유는 나누기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세 명이 나누든 네 명이 나누든 불화가 없다. 평화가 온다. 좋구나. 소수가 끼어들면 나누기가 잘 안 된다. 짜증난다. 이런 것은 그냥 기분이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학문을 기분으로 하면 안 된다. 관념은 이런 거다. 기분이다. 관념은 누구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므로 결말이 나지 않는다. 자유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다.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 지루한 교착상태를 즐기는 무리가 있다. 무능한 자들이다. 내가 못 먹는 것은 남도 못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발목을 잡고 심통을 부리는 것이다. 지금은 꼬였지만 먼 훗날에는 어떻게 되겠지. 막연히 결론을 뒤로 미루고 휴전을 선언하며 사용하는 용어가 자유 평등 평화 정의 따위 매가리없는 관념어들이다. 쓸모는 없지만 얼버무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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