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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117 vote 0 2010.12.16 (12:55:12)

 


   승부의 법칙


  승부는 포지셔닝의 우위에 의해 결정된다. 승부가 결정되는 그라운드 안에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있다. 여러 가지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확 트인 자리가 좋은 자리다. 상대적으로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은 자리가 좋은 자리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쪽이 승부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낱낱이 분석해 보면 모두 ‘포지셔닝의 우위’ 하나로 환원된다. 축구시합이라면 개인기에 의해 승부가 날 수도 있고, 조직력에 의해서 승부가 날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반드시 포지셔닝의 우위라는 관문을 거쳐가게 되어 있다.


  개인기는 특정 국면에서의 포지셔닝 우위다. 조직력은 전체적인 포지셔닝 우위다. 어느 쪽이든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에 포지셔닝의 우위는 달성된다. 순전히 우연에 의해 승부가 결정될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도 포지셔닝의 우위라는 형식은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온라인 게임이라면 전투력, 지력, 매력, 재력 등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이를 모두 에너지 개념 하나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있다. 하나의 에너지가 열역학 제 1법칙에 따라 위치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운동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포지셔닝의 우위는 열역학 제 2법칙에서 말하는 무질서도의 증가와 같다. 질서도가 높은 것이 포지셔닝의 우위다. 더 많은 질서를 가진 쪽이 승리한다.


  이기는 위치와 지는 위치가 사전에 정해져 있다. 네거리에 자리잡은 쪽이 유리하고 막다른 곳에 자리잡는 쪽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권투시합이라면 코너에 몰린 쪽이 불리하다. 전투기 공중전에서는 꼬리를 잡힌 쪽이 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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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위치를 잡고도 패배할 수 있다. 의사결정의 문제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선택지가 많은 쪽이 유리하지만, 너무 많은 카드를 손에 쥐면, 그 중에서 어느 카드를 선택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그 경우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실전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절차를 번거롭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의사결정의 문제 역시 포지셔닝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는 포지션들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승부의 결정요인은 오직 포지셔닝의 우위 하나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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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형은 두 코스 중에서 하나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사각형은 세 코스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오각형은 네 코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오각형이 유리하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필살기를 구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럿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선택의 속도는 느려진다.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할 때 내부의 반대파와 의견을 조율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게 되며 적은 그 허점을 파고든다. 아군의 내부 연결고리를 끊고 분리한 다음 각개격파 하는 것이다. 그 연결부위의 헛점이 조직의 급소가 된다. 그러므로 포지셔닝의 우위와 의사결정의 속도 사이에 일정한 균형이 생겨난다.


  축구선수가 화려한 개인기를 발휘할수록 포지셔닝의 우위를 달성하지만 대신 공을 끌게 된다. 이 때는 협력수비로 막아낼 수 있다. 포지셔닝의 우위를 달성하려다가 의사결정이 늦어져서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축구에서는 화려한 드리블보다 빠른 패스를 더 중요시한다.


  의사결정 속도 역시 포지셔닝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진정한 포지셔닝의 우위를 달성할 때는 의사결정속도가 빨라진다. 진정한 고수는 개인기를 발휘하면서도 공을 끌지 않는다. 박지성의 논스톱 슛과 같다. 개인기가 없는 선수가 주제에 드리블을 한답시고 공을 오래 끄는 것이다.


  1) 공간 - 포지셔닝 우위는 효율적인 공간배치다.

  2) 시간 - 효율적인 배치를 추구하다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진다.

  3) 시공 - 진정한 포지셔닝의 우위는 시공간 양 측면에서 동시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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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팔만 사용하는 권투선수와 두 팔을 다 사용하는 권투선수가 시합을 한다면 어떨까? 당연히 두 팔을 다 사용하는 선수가 승리한다. 만약 팔이 세 개나 네 개인 권투선수가 있다면 어떨까? 이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 개 혹은 네 개의 팔 중에서 어느 팔을 사용할지 뇌가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팔과 한 팔 중에서 뇌가 결정하기에는 어느 쪽이 빠를까? 전혀 차이가 없다. 과연 그럴까? 갓난 아기라면 하나의 팔을 쓰는 것이 더 낫다. 하나의 팔이라야 더 집중하여 잘 판단한다. 이는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연필을 쥐고 글자를 쓴대서 숙제를 두 배로 빨리 해치울 수는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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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손으로 먹는다고 해서 식사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두 손을 사용하는 선수가 한 손만 사용하는 선수보다 훨씬 더 많은 펀치를 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는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모듈화다. 모듈화가 되었을 때 연속동작이 하나의 명령에 의해 소화된다.


  권투선수는 두 팔을 교대로 내밀지만 뇌에서는 하나의 명령이 내려간다. 우사인볼트가 일초에 열 걸음을 달린다고 해서 뇌에서 열 번 명령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피아니스트는 반복된 훈련에 의해 1초에 열개 이상의 음을 칠 수 있지만 뇌에서 내려오는 명령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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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듈화는 하나의 명령으로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을 하는 것이다. 이때 두 동작은 연동되어야 한다. 이는 체조를 할 때 두 팔을 함께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모듈화에는 반드시 밸런스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모듈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모듈화를 통하여 포지셔닝의 우위와, 의사결정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모듈화는 밸런스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듈화를 이루었을 때 뇌는 두 팔을 하나의 팔처럼 사용하므로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완전한 모듈화는 체조선수와 같이 충분한 연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사각형이 삼각형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져 더 유리한 포지션이 되지만 그만큼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므로 의미가 없다. 포지셔닝의 우위는 공간과 시간 양 측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더 유리한 포지션의 차지는 오직 더 높은 층위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그것은 점에서 선으로, 각으로, 입체로, 밀도로 차원을 높여가는 것이다. 이때 시간과 공간 양 측면에서 동시에 우위를 이루게 된다.


  두 개의 점이 모듈화 되어 선을 이루고, 두 선이 모듈화 되어 각을 이루고, 두 각이 모듈화 되어 입체를 이루고, 두 입체가 모듈화 되어 밀도를 이룬다. 이때 하나의 명령에 의해 계 전체가 통제되므로 의사결정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군대의 편제에 이 원리를 반영하면 백만대군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


  체조선수가 충분한 훈련을 통해 모듈화에 성공하듯이, 군대에서는 잘 편제된 부대의 진법훈련에 의해서 모듈화가 달성된다. 훈련된 군대는 여러 개의 손과 발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한몸뚱이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 반면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은 모듈화에 실패하므로 뭉치면 포위되고 흩어지면 각개격파된다.


  그라운드에서 축구선수들은 폭넓게 전개해야 한다. 한 곳에 몰려있으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므로 패배하게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지만 축구시합에서는 적절히 흩어져야 이긴다. 너무 뭉치면 선택지가 좁아지고 너무 흩어지면 의사결정이 안 된다. 빠른 패스와 순간적인 돌파를 통한 유기적인 협력플레이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뭉치기와 흩어지기


  화장품 가게는 명동과 같이 번화한 네거리에 있는 것이 좋다. 고객은 화장품도 사고, 가방도 사고, 신발도 구입하려 한다. 네거리는 여럿 중에서 선택하기에 유리한 위치다. 이는 뭉치기의 잇점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아베크족이 모텔을 찾는다면 어떨까? 번화가가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모텔행은 두 사람이 합의해야 한다. 자동차는 빠르게 운행되는데 두 사람의 에로틱한 합의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모텔은 바닷가처럼 막다른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이 자동차가 멈추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흩어지기의 잇점이다.


  창고형 대형매장도 복잡한 도심보다는 자동차가 진입하기 쉬운 교외에 있는 것이 낫다. 식당가는 한식과 중식, 일식, 양식이 다양하게 모여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떡볶이골목, 순대골목, 족발골목처럼 한 가지 메뉴로 획일화 된 곳도 있다. 전자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후자는 반대로 선택하기 쉽게 해준다. 두 가지 상반되는 가치 중에서 균형이 중요하다. 매일 먹는 점심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좋고 가끔 하는 외식은 반대로 선택의 폭을 좁혀주는 것이 좋다.


  읍참마속의 고사를 상기할 수 있다. 마속이 산꼭대기에 진을 친 것은 권투선수가 스스로 코너로 들어간 것과 같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좁은 산꼭대기에서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마속은 전투경험 부족으로 부하장수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부하들을 통제하기 쉬운 곳에 진을 친 것이다.


  만약 넓은 곳에 진을 쳤다가는 마속의 지휘능력을 불신하는 부하장수들이 지휘관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흩어져버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편의를 전투에서의 승리보다 더 중요시한 것이다. 보통 경험없는 하수가 패배하는 것이 이런 식이다. 모듈화를 추구하다가 포지셔닝의 우위를 잃은 것이다.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도 전투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아날까봐 이를 염려한 때문이었다. 지휘능력이 부족한 장수들이 흔히 이런 식의 오판을 저지른다. 뒷날을 생각하지 않고 당장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하는 것이며 그것은 부하들을 억압하여 통제하는 것이다.


  보통 무능한 리더들이 적과 싸워 이기는 것 보다는 자기 부하들을 장악하는 문제로 시간을 보낸다. 장개석은 적인 일본과 싸우지 않고 같은 중국편인 공산군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허비했다. 그 결과 민중의 신임을 잃게 되어 오히려 공산군에 힘을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다.


  무능한 히틀러는 러시아와 싸워 이기는 것보다 자기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하여 현장에 있는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는가 하면 번번히 부하들의 건의를 묵살하곤 했다. 무능한 선조가 이순신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은 것과 같다. 외부방어보다 내부통제에 골몰한 것이다.


  이는 유리한 포지션의 차지보다 내부적인 의사결정 속도를 더 중요시 하는 것이며, 오늘날 국회에서 여당이 날치기를 하는 것도 합리적인 절차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더 중요시 하는 것이며 이는 무능한 리더가 자멸하는 공식이다. 유능한 리더는 밸런스를 통한 모듈화에 성공하므로 저절로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의사결정 속도를 위해 절차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한신은 마속과 달리 배수진을 치고도 승리했다. 당시 한신은 급하게 모은 신병이라 오합지졸이었으므로 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한신의 배수진으로 승리한 것은 그의 탁월한 지휘능력 때문이었다.


  마속이 역시 같은 진형으로 대패한 것은 지휘능력 부족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신과 맞선 조나라의 진여가 신중한 사람이었다면 한신이 배수진을 쳤을 때 서서히 포위하여 고사시킬 수 있었다. 한신은 상대편 지휘관의 능력까지 꿰뚫어본 것이며 실제로는 위험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진여는 어리석게도 성을 비워두고 있는 병사를 다끌고 나와 단숨에 쓸어버리려 했던 것이며, 한신은 배수진을 치는 한편 별동대를 보내 비어있는 성을 점령하고 적을 양쪽에서 공격하여 섬멸했다. 사마의가 제갈량을 상대하듯 서서히 포위하여 진을 빼놓는 방법을 썼다면 한신의 배수진은 최악의 전술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포지션의 우위라는 본질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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