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방송한 내용의 2부입니다. 게이는 이성애자 남자를 좋아하지 게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제약에 의해 게이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파트너가 쉽게 바뀐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지조가 없어서 그런게 아니고 원래 본능과 충돌하는 모순된 부분이 있다. 이런 발언은 위험하다. 그러나 내친 걸음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한 꺼풀 더 벗겨보자. 페미니즘은 여성주의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주도하는게 잘못되었다면 여자가 여자를 지배하거나 주도하는 것은 정당한가? 레즈비언이 여성주의를 주도한다면? 그 레즈비언이 남자의 뇌를 가졌다면? 페미니즘이 잘못 가면 결국 남자의 뇌를 가진 사람이 여자를 지배하는 결과로 되어버린다. 소수파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뒤틀릴 위험이 있다. 이상하게 왜곡되고 변질된다. 진보는 반드시 다수파를 지향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들면 판이 왜곡된다. 소수파 안에서 더 소수파가 권력을 잡는 것이다. 점차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폭주한다. 본질에서 벗어나 점차 산으로 간다. 강자와 약자라는 큰 틀 안에서 진보의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초를 비판하다가 울산 창원의 남자 노동자가 정의당을 떠나게 만든다. 약자의 연대라는 대의를 저버리고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다가 꼴이 우습게 된다. 소수자의 딜레마다. 소수파에게 권력을 주면 감당하지 못한다. '거 봐 안되잖아.' 이렇게 된다. 내부의 역량을 기르는게 먼저다. 인간은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에 의해 진보하는 동물이므로 감당을 못해도 일단 도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위험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소수파의 승리>시행착오 의한 개혁실패>반동의 등장. 반동과의 투쟁>역량의 강화>소수파의 재도전>개혁의 성공이라는 코스를 밟으며 우여곡절 끝에 진보하게 되는게 보통이다. 역사는 언제나 일직선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중간에 한 번 뒤틀렸다가 실패를 맛 보고 주저앉았다가 다시 부활해서 겨우 간다. ### 게이를 좋아하는 게이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게이성애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