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어제 심던 사과나무를 계속 심는 일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참이다. 버킷리스트 아이디어가 있지만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로 죽음을 앞둔 사람은 '이웃집 철수엄마에게 빌린 돈 5만 원을 대신 갚아달라.'는 식의 사소한 부탁이나 할 뿐 그런 거창한 계획은 세우지 못한다. 그만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왕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동물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하느냐 아니면 당하느냐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떠밀리며 당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알면 일관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환경의 변덕에 맞대응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길 수 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나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는지는 구조론으로 알 수 있다. 나는 그냥 태어났다. 승낙한 바 없고 사인한 바도 없다. 태어나 보니 출발선에 서 있었다. 총성이 울렸다. 남들이 뛰어나가길래 나도 뛰어갔다. 그러다가 금새 뒤처졌다. 이것들이 다들 어디로 몰려가는 거지? 경쟁은 자신이 없고 지름길을 찾기 시작했다. 씨앗은 그냥 주어졌다. 싹이 트면 가꾸고 꽃 피우는 절차는 알 수 있다. 이 우주가 왜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알 수 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갈 수 없는 곳으로는 당연히 못 간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이 오답인지는 알 수 있다. 오답을 전부 쳐내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거기서 방향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단히 거짓을 타파할 뿐이다. 최초에 완전성이 있었다. 환경의 변화에 맞게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있고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다. 1이 왜 1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1을 정해주면 2는 내가 알 수 있다. 3도 알아낼 수 있다. 첫 단추를 끼워주면 두 번째 단추를 스스로 끼울 수 있다. 세 번째 단추도 끼울 수 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나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어디로 가는지를 헤아리면 그 이어지는 선들의 소실점에서 어디서 왔는지도 희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출발점을 가늠할 수 있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몇 사람이 이 기록을 보는가는 그들의 역량과 수준에 달린 것이다. 수준이 안되는 자들이 본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볼 사람이 봐야 한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들어야 한다. 갈 사람이 가야 한다. 할 사람이 해야 한다. 남들을 쳐다보고 조바심 내는 일이 없이 태연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다지 성공이다. 세상 별거 아니고 인생 별거 아니더라.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더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것은 못 해도 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나쁜 것을 피하지 않아도 무방하나 할 수 없는 것은 피해 가야 한다. 인생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때로는 좋은 것을 먹고 때로는 나쁜 것도 먹게 되더라만 못 먹는 것은 안 먹는게 맞다. 나는 많은 좋은 것들을 차지하지 못했고 많은 나쁜 것들을 피해 가지도 못했다. 구조론은 내가 할 수 있기에 하는 것이다. 포기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지혜가 된다. 하면서 깨닫는 것은 내가 등판하기 전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나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더 좋은 길은 선택할 수 없으나 갈 수 있는 길은 끝까지 가보는 거다. |
또한 내가 사는 이유겠구요 ^^
"인생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 선택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선택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나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는지는 구조론으로 알 수 있다" _오늘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