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건축법 만일 대재앙이 일어나 인류의 모든 과학지식을 잃게 되었는데 딱 한 문장만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면 거기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파인만은 원자설이라고 답했다. 틀렸다. 원자설은 여전히 가설이다. 더욱 양자역학의 성과는 원자개념을 깨뜨려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뉴턴은 물질을 두고 내부가 채워져 있고, 질량을 가지며, 단단하고, 관통할 수 없으며, 운동하는 입자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은 원자로 되어 있지 않다.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나 다른 무언가로 대체해도 마찬가지다. 뭐든지 다 틀렸다. 인간에 의해 가리켜져 지목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원자 혹은 입자는 자연의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의 방법론이다. 수학자가 좌표를 이용하는 것과 같다. 좌표는 자연에 없지만 평면 위에 좌표를 그려놓으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좌표는 시간적 진행과 공간의 변화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물론 꼼수다. 인간의 뇌가 바둑과 장기의 고수가 아닌 이상 두 가지 이상의 변화를 동시에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에 편의로 좌표를 쓰는 것이다. 인간의 눈이 평면을 인식하므로 평면에 좌표를 그리는 것이다. 좌표가 자연의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형편이듯이 원자설도 인간의 어떤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좌표를 도입한 데카르트는 세상은 좌표로 만들어져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편의상 원자나 입자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세상은 원자나 혹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수는 자연수가 좋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수나 무리수 같은게 나오면 피곤하다. 유리수는 분수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다. 분수는 나누는 수다. 쪼개진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가 없잖아. 그러므로 원자는 쪼개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피곤하니까. 나 수학 싫어! 이런 억지가 있다는 말인가? 자연이 불쌍한 우리 수포자들을 위해 자연수 같이 똑부러지는 원자로 인간을 특별대접을 해줄 리가 없잖아.
유리수는 비례수다. 비례는 둘의 연결이므로 말랑말랑해서 미끄러지기 딱 좋다. 신이 세상을 건축한다면 건축자재는 우수해야 한다. 물렁한 자재로 이 거대한 세상을 건축하기 어려우므로 원자는 단단한 것이어야 한다. 억지에 생떼다. 노자는 이유극강이라고 했다. 물렁한 진흙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단단하고, 관통할 수 없고, 내부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명품 우주를 건축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수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자연에 수가 있을까? 수는 셈하기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규칙이다. 수는 자연의 진실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최대한 근접하자는 것이다. 무한대는 자연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다. 자연은 자체동력이 있으므로 애초에 인간이 고민하는 그런 규칙에 구애되지 않는다. 외부동력을 쓰는 기계장치는 규격이 맞지 않으면 연결부위가 마모되어 고장나지만 자체동력을 쓰는 생물은 그런 고민이 없다. 무릎연골이 마모되어 관절염에 걸리는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인간이 벽돌로 집을 짓는 것은 짓기 좋기 때문이다. 벽돌 크기는 사람 손 크기를 반영한다. 인간의 신체에 최적화 되어 있으므로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을 위해 특별히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벽돌이 모여서 집이 되듯이 원자가 모여 세상이 된다는 것은 건축가의 싱거운 소리에 불과하다. 생물이 세포를 이어붙여 동물을 만들던가? 세포를 모아 포대에 담아놓고 영혼을 불어넣으면 동물이 되는가?
우주는 건축가의 방법을 쓰지 않는다. 건축가는 플러스법을 쓰지만 생물은 마이너스법을 쓴다. 건축가는 벽돌과 자재를 플러스하여 집을 짓지만 생물은 세포를 분열시켜 조직과 기관을 짓는다. 건축은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지만 세포는 처음부터 완전체로 시작한다. 달걀은 세포 하나가 완전하다. 있을 것은 다 있다. 부활절에 달걀을 먹는 이유다. 완전하니까. 벽돌은 완전하지 않다. 불완전한 원자를 모아 접착제로 붙이거나 나사못으로 박아서 우주를 이룬다면 터무니없다.
생명은 완전성을 갖추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각별하다. 우주는 건축가의 원자가 아니라 생명체의 무한복제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의 방법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 아이디어를 폐기하고 생물의 DNA구조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구조론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응답이다.
원자설이 중요한 개념인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단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벽돌 한장으로 시작하고 생물은 달걀 한 개로 시작한다. 수정란 한 개가 생명의 단위가 된다. 숫자는 1로 시작한다. 어떻든 출발점은 있어야만 하고 원자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원자는 공간상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존재의 정답은 사물의 공간단위가 아니고 사건의 시간단위에 있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단위가 아니라 사건의 연결단위로 조직된다. 사물의 원자론에서 사건의 구조론으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
"생명은 완전성을 갖추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각별하다. 우주는 건축가의 원자가 아니라 생명체의 무한복제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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