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학의 바탕이 되는 칸토어의 집합론은 의외로 늦게 나왔다. 1918년에 칸토어가 사망했으니 집합론은 근래에 보급된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집합론이야말로 진정한 수학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2500년 전에 나왔어야 할 것이 최근에 나온 것이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구조론이야말로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라 하겠는데 이제서야 나오는 중이다. 늦게 팬 장작이 위에 올라간다고 했다. 순서가 바뀐다. 호텔이라면 스위트룸은 꼭대기층에 있고 일반회사라 해도 먼저 온 사장님이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한강조망권을 누린다. 그런데 수학은 거꾸로 신입사원이 펜트하우스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건물을 다 지어놓았더니 뒤늦게 설계도가 도착한 거다. 집합론이 수학의 설계도라면 구조론은 사유의 설계도다. 구조론은 이 역설을 존재론과 인식론의 차이로 설명한다. 계와 개의 차이다. 존재론이 사건의 계라면 인식론은 사물의 개다. 존재론은 자연의 본래모습이요 인식론은 인간이 알아채는 방식이다. 사건이 일어날 때는 범인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가 범인을 알아챘을 때는 사건이 끝나 있다. 영화가 끝나야만 범인이 드러나는게 유주얼 서스펙트다. 가장 먼저 오는 것을 가장 늦게 알아내는 거다. 왜 그러한가? 전달의 문제다. 칼을 다른 사람에게 줄 때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 칼의 손잡이를 쥐고 칼날을 내밀겠는가? 상대방은 당신을 강도로 오인할 것이다. 아니면 칼날을 쥐고 손잡이를 상대방에게 내밀겠는가? 그러다가 손 베이면 어쩌리? 모든 전달에는 이 문제가 생긴다. 비디오 테이프 되감기 문제다. 요즘은 스티리밍 기술 덕분에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지만 옛날 비디오는 되감기를 해야 다시 볼 수 있었다. 뭐든 전달할 때는 한 번 뒤집어야 한다. 양말을 벗을 때도 다시 뒤집어야 한다. 인간이 세상을 대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한 번 뒤집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사물을 뒤집기는 쉽다. 그런데 사건을 뒤집기는 상당히 골때리는 작업이다. 양말은 그냥 홀랑 뒤집으면 되는데 형사가 범인을 추적할 때는 교묘하게 뒤집어야 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단계로 뒤집어야 하기 때문에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 문제야말로 모든 사유의 근본의 근본이라 하겠다. 여기가 진정한 시작점이다. 수학은 집합론으로 시작하고 우주는 구조론으로 시작한다. 비디오 보기 전에 되감기해야하듯이 구조론해줘야 한다. 데카르트는 존재로 시작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유명해진 이유다. 모든 것을 의심했는데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절대근거를 찾았다는 거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존재는 개다. 구조론은 계로 시작한다. 계는 이을 계다. 부모와 자식은 이어져 있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사유의 최종근거가 되는 거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뒤집을 수 있나?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가 북극점이다. 곤란한 질문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다.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죠?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자가 있다. 아무리 맞는 답을 해줘도 근데요. 왜요? 하고 한 번 더 질문한다. 그럴 때는 재현이다. 과학자가 재현에 성공해 보이면 질문을 멈춰야 한다. 확실히 답이 나온 것이다. 재현했다는 것은 비디오를 되감기 해서 다시 틀었다는 거다. 구조론은 복제다. 복제가 되면 이미 맞은 것이다. 근데요. 왜죠? 하고 한 번 더 질문하면 안 된다. 더 이상 반복하면 안 되는 한계선이 있는 거다. 바로 거기서 인간은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는 개로 시작하지만 계로 시작해야 한다. 사건을 뒤집어 모두 연결되면 거기가 끝이다. 등산을 한다고 치자. 사방 전모가 보이면 거기가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사방이 모두 연결되는 거다. 근데요. 정상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거기는 뭐가 있죠? 이런 소리 하는 자는 입을 때려줘야 한다. 다 연결되었다면 거기가 끝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쪼개려고 한다. 양자단계까지 갔는데 거기서 막혀 있다. 아무리 쪼개도 더 작은게 계속 나온다. 환장한다. 집합론이 수학의 시작이다. 물질의 최종단계 집합은? 아직 못찾았다. 가장 힘든게 중력찾기다. 중력이란 우주 안의 모든 존재가 죄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연결되었다면 중간에서 이어주는 매질이 있을 것인데 없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물리학은 여전히 정상을 찍지 못하고 있다. 북극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어쨌든 태초의 정상은 반드시 있다. 만약 찾았다면 거기서부터 물리학을 다시 기술해야 한다. 거기가 출발점이다. 중력을 해명했다면 물리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 그리고 첫 페이지는 중력이 어떻게 만유를 연결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와야 한다. 우주의 설계도가 된다. 건물이라면 설계도가 맨 먼저 오는데 인간의 비극은 그 설계도를 가장 늦게 온 자가 보게 된다는 역설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계다. 닫힌계라고 한다. 하나의 사건은 계의 확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개는 공간의 사물이고 계는 시간의 사건이다. 여기 사과 한 개가 있다고 하면서 말을 시작하면 안 되고 여기에 사건 한 계가 있다고 하면서 말을 시작해야 한다. 개로 시작하면 뭔가 점점 늘어나서 종잡을 수 없게 되지만 계로 시작하면 연결이 끊기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주인공이 죽으면 이야기가 끝나는 영화와 같다. 사건은 연결로 시작하고 단절로 종결한다. 스위치를 눌러 전원을 연결하면 불이 들어오고 전원을 단절하면 불이 꺼진다. 성경을 새로 쓰더라도 태초에 연결이 있었다로 시작해야 맞다. 엄마와 아빠의 연결 없이 당신은 태어나지도 못했다. 만약 당신이 자서전을 쓰려면 바로 그 지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 사실을 당신은 뒤늦게 안다. 엄마 아빠가 말해주지 않으니까. 알거 다 알고 태어나는 아기는 없다. 당신이 자신의 아기를 가질때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아! 엄마와 아빠가 이렇게 연결해서 나를 탄생시켰구나.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처럼. 하느님과 아담의 손끝이 연결될 때 사건은 비로소 일어난다. 거기가 시작이다. 그 이전단계를 물을 수 없는 최종지점. |
마지막 '최종지점' 이라는 단어를 '최초지점'으로 바꾸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러신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