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이었다. 감기기운을 핑계로 조퇴를 허락받아 교실문을 나섰다. 반은 꾀병이었다. 다들 사각상자에 갇혀 있는데 나 혼자 자유다. 무언가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날따라 넓어보이는 운동장을 달음박질로 가로지른다. 그렇게 교문을 나선다. 사위는 적막하고 볕은 따갑게 살을 찌른다. 나는 그만 화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태산같은 허무가 엄습해온다. 어디로 가지? 거리는 너무나 조용하고 들판은 침묵으로 나를 외면하였다. 하늘도 돌아앉았고 태양도 비웃고 있었다. 어디로 가지? 나는 그 때 신과 처음 만났다. [생각의 정석 9회] 내 안의 모든 기쁨과 슬픔들이 세상을 대하는 나의 입장과 태도라는 것을, 사회 안에서의 어떤 포지션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아버렸다. 세상과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대치하는 데 긴장이 있다. 삶은 그 긴장을 연주한다. 어린이는 받을 때 기쁘고, 어른은 베풀 때 기쁘다. 그 긴장된 전선을 툭 건드려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그 가로막고 있던 강이 사라져 버리면 당황하게 된다. 전선을 잃어버린 병사와 같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세상과 내가 일대일로 만나버렸다.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인생을 건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가두어 놓으면 나가려고 한다. 정작 나가면 갈 데가 없다. 인생의 기쁨들은 세상과의 게임이다. 게임에 이겨서 기쁘고 져서 슬픈 것이다. 게임 바깥으로 나가면 허무 뿐이다. 나의 게임을 설계하는 것만이 진실하다. 남의 게임 안에서 진정한 승리는 없다. 패배도 없다. 기쁨도 없다. 슬픔도 없다. 나의 게임으로 갈아타기 앞둔 예행연습에 불과하다. |
[생각의 정석 9회] 왜 병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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