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적균형의 관점 관측은 기본적으로 동의 관측이며 모든 관측은 동사로 진술된다. 정지해 있는 사물이라도 눈으로 빛이 들어와서 관측되므로 동이다. 사물은 기본적으로 동적환경인 시공간 안에서 상하좌우로 전개하는 크기를 가진다. 동이 없다면 크기와 형태가 생기지 않으므로, 동이 없는 존재는 없으며, 인식은 기본적으로 동을 관측하는 것이고 동사로 진술된다. 관측대상이 정지해 있다 해도 역시 시공간이라는 동적환경 안에서 상호작용하므로 동이다. 정지한 물체는 기본적으로 동적환경인 시공간의 장 안에서 그 정지상태를 도출하므로 역시 동이다. 동은 정확히 말하면 밸런스다. 관측은 밸런스의 관측이며 밸런스는 대칭을 이루므로 대칭의 판단기준인 주체가 있다. 정지한 물체는 동적 밸런스의 정지상태다. 문제는 관측자 자신도 동의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데 있다. 그것이 주의해야 할 역설이다. 더 나아가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도 역시 동의 상태라는 점이 깨달음이다.
◎ 일반적 진술 - 주체의 정에서 대상의 동을 본다.
말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진술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뒤로 물러가는 전봇대를 보고 그것이 사실은 전봇대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역설이다.
말에 올라타고 말의 움직임을 보는 것은 동적균형의 깨달음이다. 주체의 동에서 대상의 동을 본다. 정확하게는 주체와 대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동을 보는 것이다. 말과 기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끈이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면서 관계를 조율하는 동을 본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밸런스를 본다. 그 밸런스가 관측자인 자기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존재함을 본다. 자신이 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밸런스가 말을 다룬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1인칭인 자기를 3인칭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달리는 말의 동을, 역시 말을 달리는 기수인 자신의 동에 포함시켜 본다는 점에서 1인칭이지만, 그 말과 기수의 관계를 조율하는 밸런스를 떼어놓고 보면 3인칭이다. 보이지 않는 끈의 밸런스를 보면 3인칭이 된다. ◎ 대상의 동 .. 3인칭 ◎ 주체의 동 .. 2인칭 ◎ 관계의 동 .. 1인칭 (1인칭을 객관화 한다는 점에서 3인칭으로 말할 수 있으나, 대상을 보는 3인칭과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는 1인칭으로 표현한다.) 이때 관측자는 관측대상보다 커야 한다. 자신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잡아야 전모를 볼 수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알아본다. 자신이 신이어야 신을 볼 수 있고, 자신이 우주여야 우주를 볼 수 있다. 공간의 크기 뿐 아니라 시간의 길이도 마찬가지다. 느린 것은 빠른 것을 볼 수 없고, 짧은 시간은 긴 시간을 볼 수 없다. 작은 것은 큰 것을 볼 수 없고 정지한 것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수학을 도입하여 자신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자신의 시선이 닿는 한도까지를 자신에 포함시켜 보아야 한다. 그러한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호연지기의 마음이다. 관측대상이 주체인 자기 안에 포함될때 진정한 인식은 가능하다. 우주의 눈으로 보고, 인류의 눈으로 보고, 진리의 눈으로 봐야 전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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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이 가지고 있는 큰 무게에 그만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