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방향성이 있다. 그러므로 사건은 방향성이 있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방향성이 있다. 정지해 있는 것은 방향성이 없지만 대신 관측자가 있다. 둘이 나란히 가면 상대적으로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주 안에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관측자와 나란히 가는 것을 정지한 것으로 간주할 뿐이다. 에너지를 포함시켜 움직이는 사건으로 보거나 아니면 정지된 사물에 관측자를 포함시켜 판단해야 한다. 사건이 자체의 움직임을 통해 관측자에게 식별되는 과정이 방향성이다. 모든 변화는 한 점에서 시작된다. 딱 걸리는 지점이 있다. 에너지가 처음 닫힌계를 이루고 변화의 출발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방향성이다. 사건이 내부의 모순에 의해 변화를 일으키기까지 혹은 정지해 있는 사물이 인간의 눈에 포착되기까지가 차원이다. 차원은 다섯이 있다. 우리가 세상을 3차원으로 아는 이유는 사건 내부의 변화와 관측자인 인간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상해서 0차원 점이나 4차원 시간이나 혹은 N차원을 무한대로 추가하기도 한다. 관측대상과 관측자를 빼면 선, 면, 입체 3차원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0차원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 관측자가 있다는 것이다. 점은 종이를 펼쳐놓고 아무 데나 찍는 이유는 점이 관측자의 위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관측자가 있으면 관측대상이 있고 둘 사이의 관계가 있다. 관계는 둘 사이에서의 변화를 나타낸다. 선과 면과 입체는 변화의 내용이다. 사실은 관측자도 변하고 관측대상도 움직이므로 차원이 다섯이다. 변화는 5회에 걸쳐 일어나며 인간은 5회에 걸쳐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보통은 지구의 중력 때문에 관측대상과 나란히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며 관측자와 관측대상이 나란히 간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다. 우주 안에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 안에 둘이 들어갔을 때의 모순 때문이다. 모순이 해소되는 과정은 계를 지정하고 내부적으로 5회에 걸쳐 방향을 꺾어 변화가 일어나는 한 점을 도출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계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힘은 전자기력이며 전자기력은 둘의 상호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이므로 에너지의 방향이 둘이다. 확산의 두 방향에서 수렴의 한 방향으로 전환되면 입체다. 기차가 처음 출발할 때 한 번 덜컹한다. 그것이 변화를 촉발하는 한 점의 도출이다. 이때 기차는 중력에 의한 마찰력으로 지구에 붙어있으려는 에너지 방향과 엔진으로 바퀴를 밀어 움직이려는 방향으로 둘이다. 엔진의 힘이 마찰력을 이겨 한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이 입체다. 기차와 선로가 에너지적으로 분리된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돌고 있는 팽이와 죽은 팽이는 다르기 때문이다. 입체가 쓰러진 팽이라면 밀도는 회전하는 팽이다. 중력에 의해 선로에 붙은 기차와 동력에 의해 선로에서 떨어진 기차는 다르다. 살아 있는 새와 죽은 새는 다르다. 조립된 자동차와 부품의 합은 다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조립된 제품은 직접 조립해야 하는 이케아 가구보다 비싸다. 그 점을 드러내려면 입체 위에 차원을 추가해야 한다. 더 이상의 차원은 없다. 밀도는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이고 움직이면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연결이 끊어져 계가 깨지므로 차원을 추가할 수 없다. 밀도는 간단히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다. 계에 걸려 있는 에너지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체를 떠올리는데 유체로 보면 이해가 쉽다. 계 내부에 두 방향이 모순된 상태로 공존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보면 죄다 그렇다. 밀도 – 하나의 계 안에 둘이 들어와서 모순된 상태다. 기차는 선로와 결합해 있다. 중력과 동력의 두 방향이다. 입체 – 방향을 틀어 모순이 해소되어 하나 안에 하나가 있다. 기차가 선로와 분리된다. 동력이 중력을 이긴다. 각 – 각을 틀어야 하나가 된다. 기차가 선로에서 떨어져 앞으로 향한다. 동력의 방향은 전진으로 결정된다. 선 – 운동은 움직여야 방향이 하나가 된다. 기차가 최초의 출발점과 연결을 유지한 채로 진행한다. 점 – 이탈하는 순간의 접점이 하나다. 기차가 선로에서 이탈하는 지점의 도출이다. 사물이 형태를 가지는 것은 존재가 중력이나 외력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하나 안에 하나가 있다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다. 3차원 입체는 멈춰 있는 정적 존재 개념이지만 자연에 그런 것은 없다. 실제로는 반드시 관측자가 있고 변화가 있다. 계에 에너지가 걸려 있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지구가 태양을 도는게 아니라 태양도 내부에서 미세한 흔들림으로 지구를 돈다. 어떤 하나만으로는 존재가 불성립이며 반드시 둘 이상이 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변화의 지점은 하나다. 결혼식장에서 신부는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남편 쪽에 가서 붙어버린다. 그 떨어지고 붙는 지점이 있다. 차원 개념은 그 변화의 한 점이 어떻게 도출되는가이며 우리가 자를 대어 선을 긋고 작도하여 면을 그리고 입체를 다루는 것은 그 한 점을 역으로 되짚어가는 것이다. 에너지의 최초 작용측을 추적하는 것이다.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 중심의 한 점을 찾는다. 질량을 부담하는 무게중심의 한 점을 찾는 것이다. 입체는 그 중심점을 도출하는 과정에 필요한 것이다. 물체를 들어올리는 것은 그 한 점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물체를 들어올리려면 어떻게든 그 한 점을 장악해야 한다. 귀퉁이에 힘을 가하면 들리지 않는다. 지구 중력을 알아야 한 점을 장악할 수 있다. 특히 움직이는 것을 제압하려면 궤적을 읽어야 한다. 존재는 언제나 한 점이 전체를 대표한다. 한 점과 전체의 관계가 밀도를 이룬다. 밀도가 없으면 느슨해지고 그것을 들어올리려고 하면 깨져버린다. 선과 면과 입체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로봇이 달걀을 들 수 없다. 더욱 움직이는 달걀이라면 말이다. 손가락이 다섯 개라야 움직이는 물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
"존재는 언제나 한 점이 전체를 대표한다. 한 점과 전체의 관계가 밀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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