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이 야만한 이유는
본능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하고 싶다. 장소 가리지 않고 섹스를 한다..
그게 야만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게 문명.
그럼 이 약자혐오의 야만이 왜 그동안 은폐되어 왔는가?
하나는 종교와 계몽주의 및 이데올로기 영향입니다.
유교.. 군자는 점잖아야 하므로 혐오하지 않는다.
기독교 .. 약자를 돕는 사상이므로 혐오하지 않는다.
계몽주의.. 신사는 약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양성은 동등해야 한다.
그럼 왜 지금 약자혐오가 나타나는가?
약자혐오가 갑자기 나타난게 아니고
다른 이슈에 묻혀 잠복해 있다가 지금 이슈화 되는 거죠.
그 이유는
1) 사회주의 멸망.. 자본주의 경쟁논리 강조
2) 계몽주의 멸망.. 신사와 양아치 개념의 소멸.. 전 국민의 양아치화
3) 유교, 기독교 멸망.. 종교의 나쁜 점, 가부장제만 잔존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지식 상층부가 침묵하고
신문에 칼럼을 쓰지 못하여 발언권이 없던 하층민이
일제히 발언할 기회를 얻은 거죠.
문명의 진보란 의사결정 참여자 숫자의 절대적 증가를 수반합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
개나 소나 다 한 마디씩 하면 나라가 멸망.
이에 대한 해법은
1) 일베박멸교육 강화
2) 스마트 시대에 맞는 대안 이데올로기 제시.
3) 신사와 양아치를 구분하는 문화국가의 비전 제시.
4) 쓰레기 목사 등 종교폐습 퇴출
부모가 잘못을 한 건 나쁩니다. 근데 그게 꼭 나쁘지 않습니다. 인간의 관계는 일단 한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야 시작합니다. 나도 너도 잘못이 없다면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겁니다.
인간은 대개 완전무결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헛된 겁니다.
전범국 일본의 잘못에 대응하는 후손들의 바른 방법은 그것을 보상하는 겁니다.
부모가 죄를 지었다면 자식이 그것을 갚는게 잘하는 겁니다. 근데 그게 실은 나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그걸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세상과 관계는 잘못을 하고 또 사과를 하며 뒤뚱거리는 완전성에 이름에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이 원죄를 떠안았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겁니다.
현대의 남성집단이 떠 안은 원죄는 그것을 사과하고 갚음으로써 여성집단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