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read 14171 vote 0 2009.01.01 (10:37:14)

 

다섯가지 갈피

깨달음은 영성의 혁명이다. 인간에게는 다섯가지 능력이 있다. 본능과 감성과 지성과 이성과 영성이 그것이다. 깨달음은 영성의 영역에 속한다.

본능이 자기보호 능력이면 감성은 자기표현 능력이다. 지성이 학습능력이면 이성은 가치판단 능력이고 영성은 의사소통 능력이다.

본능의 목적이 생존이면 감성의 목적은 생활이다. 지성의 목적은 진보라면 이성의 목적은 완성이고 영성의 목적은 전파다. 전파하기 위해 소통한다.

본능은 타고나고 감성은 훈련된다. 지성은 학문에서 닦고 이성은 철학에서 닦는다. 영성의 계발은 깨달음을 통해 가능하다.

소통을 위해서는 자기통제가 필요하고 세상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자기통제로 얻는 것은 자유다. 세상과의 교감으로 얻는 것은 사랑이다.

깨달음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 자유가 나와 너 사이에 막힌 것을 뚫어 소통하게 하고 사랑이 너와 나 사이에 끊어진 것을 이어 소통하게 한다.

자유를 통해 나의 깨달음은 완성되고 사랑을 통해 너의 깨달음은 결실을 맺는다. 그대에게는 사랑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

깨달음이란 맞물려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은 크게 맞물려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서 관계를 맺고 있다.  

밤과 낮이 서로 맞물려 하루를 이루고, 암컷과 수컷이 서로 맞물려 한 둥지를 이루고, 하늘과 땅이 서로 맞물려 한 세상을 이룬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각자 자기 짝을 가지며 더불어 더 큰 하나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서로는 만나야 한다. 만나서 관계맺기에 성공해야 한다.

칼은 도마와 만나 한 그릇의 요리를 이루고, 연필은 종이를 만나 한 자(字)의 글씨를 이루고, 산은 강과 만나 한 누리의 자연을 이룬다.  

존재는 그렇게 스스로를 완성해 간다. 처음은 불완전 하지만 서로 만나고 맞물려서 관계를 맺고 소통함으로써 마침내 완성될 수 있다.

만남

깨달음은 인생을 깨닫는 것이다. 인생은 커다란 만남이다. 그 만남의 의미와, 가치와, 미학과, 소통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 앎의 지식과 구분하여 깨달음이라 일컫는 뜻은 의미와 가치와 미학과 소통은 현실에서의 경험과 실천으로만 터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사이에 있다. 지식은 내 안에 축적된다. 깨달음은 나와 너 사이에 소통한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를 나를 넘어 너를 만나야 한다.

나를 넘어섬이 자유라면 너를 만남은 사랑이다. 나를 넘어서기 위하여 그리고 너를 만나기 위하여 학문적 지식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상대성의 세계다. 상대가 있다. 그 상대를 만나야 한다. 의미와 가치와 미학과 소통은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만남에 의하여 얻어진다.

자동차의 핸들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운전을 할줄 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인식의 영역에는 반드시 경험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다. 세상에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경험을 대체하기 위하여 깨달음이 필요하다.

우화

철학은 우화(寓話)다. 깨달음은 우화와 같다. 우화는 빗대어 말한다. 빗대어 말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의 경험을 빌려쓴다는 것이다.

의미와 가치와 미학은 만나서 소통할 때 드러난다. 소통하지 않을 때 의미와 가치는 모습을 숨기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쓰이지 않는 칼은 쇠붙이에 불과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만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을 때 존재는 의미를 잃고 가치를 잃는다.

만남의 형식은 하나다. 붓이 화가를 만남이나 바이얼린이 연주자를 만남이나 같다. 그러므로 하나를 온전히 만나면 세상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진리의 특성은 보편성이다. 보편성은 막히지 않고 두루 통하는 성질이다. 소통은 통한다. 통하므로 이곳에서 얻은 경험을 저곳에 응용할 수 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익숙한 사람은 자동차 운전을 쉽게 배운다. 자전거와의 만남이나 자동차와의 만남이나 세상 모든 만남의 형식은 같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저곳에서도 통함이 깨달음이다. 그러한 호환(互換)을 가능케 하는 근거는? 맞물려 있음이다. 그것은 구조다.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부분과 전체가 맞물려 있음이다. 세상은 크게 맞물려 있다. 존재는 만남이고 만남은 곧 맞물려 있음에 의해 성립한다.

맞물려 있으므로 통한다. 부분과 전체가 소통할 때 오르가즘을 느낀다. 거기에 전율함이 있다. 울림과 떨림이 전파된다. 공명함이 있다.

하나되기

만남에는 기쁨이 있다. 만나고 맞물려서 하나됨은 아름답다. 하나되어 소통함은 즐겁다. 깨달음에는 기쁨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다.

이는 학문적 지식에 없는 것이다. 철학은 만남과 맞물림과 하나됨과 소통의 원리에 대한 이해다. 깨달음은 소통 그 자체다.

지식은 쌓이는 것이고 깨달음은 통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과 어떤 사람과 잘 통한다는 것은 다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통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만남이 없고 통함이 없다면 죽은 지식이다. 거기에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의외로 통하는 친구가 있다. 연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러나 단번에 통한다.

맞물림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는 역할을 통해 맞물릴 수 있고 연인과는 사랑을 통해 맞물릴 수 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갈 때 통한다.

존재는 만나고 맞물려 하나가 된다. 그럴 때 아름답다. 꽃은 나비를 만나 아름다움을 더하고 갈대숲은 바람을 만나 아름다움을 더한다.  

맞물리기

존재는 크게 맞물려 있다. 맞물리는 것은 요(凹)와 철(凸)의 톱나바퀴다. 요철(凹凸)은 서로 닮아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구조는 같다.

구조의 동일성이 패턴이다. 만유는 패턴이다. 패턴으로 알 수 있다. 눈앞에 닥친 사실이 과거의 경험과 닮았음을 알아챌 때 무릎을 치고 깨닫는다.

존재는 구조다. 구조로 하여 세상은 크게 맞물려 있고 그러한 맞물림으로 해서 의미와 가치가 배달되고 미(美)는 이루어진다. 소통한다.

미(美)는 통한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아름답다. 일본에서도 아름답고 중국에서도 아름답고 프랑스에서도 아름답다.

미(美)는 존재의 완전성에서 얻어진다. 모든 존재는 자끼 짝을 가진다. 존재가 짝을 찾아 더불어 함께 설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칼을 도마와 짝이고 연필은 종이와 짝이고 잔은 음료와 짝이다. 바이얼린은 연주자와 짝이고 붓은 화가와 짝이다.

짝과 만나고 맞물려서 하나될 때 완전해지며 완전에 도달할 때 찬연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 아름다움의 빛에 의해 소통한다.

아름답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그리지 못한 그림은 관람객을 감동시킬 수 없고 실패한 연주는 청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의미도 가치도 통하지 않는다.

나아가기

나무가 부분이면 숲이 전체다. 숲이 부분이면 산이 전체다. 산이 부분이면 자연이 전체다. 자연이 부분이면 세상이 전체다.

우리는 세상의 작은 한 귀퉁이 부분을 구성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모든 부분적인 존재는 불완전하다. 심 없는 연필, 날 없는 칼처럼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부분의 존재가 마침내 자기 짝을 찾아 하나되어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더불어 소통할 때 더 큰 완전의 세계로 나아간다.

칼은 도마를 만나 요리의 세계로 나아가고, 연필은 종이를 만나 글씨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렇게 더 큰 세계로 나아갈 때 아름답다.

미(美)의 완전성을 매개로 부분과 전체는 통한다. 그러므로 존재가 미(美)에 이를 때 부분을 앎으로써 곧 전체에 도달할 수 있다. 통달할 수 있다.

세상은 크게 맞물려 있다. 우리는 맞물려 있는 큰 세상의 작은 한 귀퉁이 부분으로 존재한다. 부분의 존재는 불완전하다. 불완전하므로 허무하다.

의미와 가치와 미학과 소통은 조각난 부스러기 같이 불완전한 존재가 톱니처럼 맞물려 스스로를 완성함으로써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소통의 체계

수학수업에서는 수학사가 아닌 수학을 배운다. 과학수업에서는 과학사가 아닌 과학을 배운다. 그런데 철학수업에서는 철학 대신에 철학사를 배운다.

공자와 맹자와 석가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운다 한들 그것은 옛날 사람의 철학일 뿐이다. 그것은 철학의 실패다.  

강단에서 이루어지는 지식 위주 학습에는 철학이 없고 깨달음이 없다. 거기에 소통이 없고, 미학적 완전성이 없고, 가치와 의미의 배달이 없다.

강단의 어떤 학자도 말하지 않았다. 소통을 말하지 않았고 깨달음을 말하지 않았다. 허무와 비참이라는 존재의 진실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았다.

거기에 만남이 없고 맞물림이 없고 함께 섬이 없고 하나됨이 없고 아름다움이 없다. 그러므로 소통이 없고 깨달음도 없다.

깨달음은 깨달음의 체계를 가진다. 깨달음의 체계는 소통의 체계다. 강단의 지식체계와 다르다. 진리와 대면하는 지점이 다르다.

지식이 절대성의 세계라면 깨달음은 상대성의 세계다. 소통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함께 서기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이 깨달음이다. 가치는 곧 값이다. 값(cost)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같이 선다’는 뜻이 있다.  

의미가 맞물림이면 가치는 함께 섬이다. 수요와 공급은 맞물려 있다.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도 증가한다. 둘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함께 섬이다.

처음은 물물교환이었다. 값(cost)은 함께(com)+서다(stand)로 물물교환에서 파는 사람의 상품과 사는 사람의 상품을 같이 세우는 것이다.

판매자의 상품이 카트에 쌓이면(stand) 구매자의 화폐는 계산대에 쌓인다. 수요와 공급은 둘이 마주보고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모든 존재는 서로 정교하게 맞물려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 마주보고 대칭되는 한 쌍에서 하나가 일어서면 다른 쪽도 함께 일어선다.

하늘과 땅, 밤과 낮, 산과 강, 여자와 남자처럼 존재는 서로 마주보고 짝 지어 쌍을 이루고 함께 일어선다. 이 원리로 가치는 의미를 배달한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대칭과 평형이다. 대칭이 맞물림이면 평형은 함께 섬이다. 구조와 평형의 원리에 의해 의미가 배달되고 가치가 보존된다.

금광에서 노다지가 쏟아지면 금값이 하락한다. 반대로 시장에서 상품의 생산과 유통이 늘어나면 금의 수요도 함께 상승한다.

금의 가치는 그 사회에 존재하는 자산의 총량과 함께 선다. 사회가 부유해지면 그만큼 금값이 올라가고 사회가 가난해지면 그만큼 금값이 하락한다.

이러한 함께 서기의 원리에 의해 금의 가치는 보존된다. 시장이 존재하는 한 금의 가치는 변함없이 보존되는 것이다.  

천칭저울의 두 접시는 함께 선다. 왼쪽 접시에 1그램이 증가하면 오른쪽 저울도 1그램이 증가해야 한다. 함께 서지 않을 때 평형은 무너진다.

의미가 맞물림이면 가치는 함께 섬이다. 의미는 맞물림에 의해 배달되고 가치는 함께 섬에 의해 보존된다. 이 원리로 세상 모두는 관계를 맺는다.

맞물려 있으므로 하나가 결정되면 다른 하나도 결정된다. 내가 바뀌어야 천하가 바뀐다. 천하가 바뀌려 할 때 잠든 나를 일깨워 불러낸다.

내가 나아갈 때 역사가 진보하고 내가 물러설 때 역사가 퇴보한다. 내가 일어서면 세상이 일어서고 내가 물러서면 세상이 물러선다.

세상과 맞물려 하나의 방향으로 함께 움직인다.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다. 세상과 나는 언제라도 함께 선다. 그것이 내 존재의 가치다.

소통하기

무릇 가치있다는 것은 이렇듯 함께 서 주는 짝이 있다는 것이고, 무릇 의미있다는 함께 설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떠나 고립될 때 의미를 잃는다. 세상과 맞물리지 않고 역사와 맞물리지 않고, 역사의 진보와 함께 호흡하지 않을 때 의미를 잃는다.

세상과 함께 서지 않고 역사와 함께 서지 않을 때 가치를 잃는다. 함께 서는 짝을 잃을 때 존재는 불완전해진다. 그만 아름다움을 잃는다.

의미는 가치의 배달이고 가치는 의미의 보존이다. 짝을 찾아 함께 맞물려 있음으로 의미를 획득하고 짝과 함께 섬으로써 가치를 보존한다.

그 방법으로 존재가 스스로를 완성시킬 때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아름다울 때 공명한다. 울림과 떨림이 전파된다. 비로소 소통한다.  

짝을 잃으면, 세상과 맞물리지 못하면, 역사의 진보와 함께 서지 못하면 의미를 잃고 가치를 잃고 불완전해진다. 소통하지 못한다. 허무와 비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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