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http://v.media.daum.net/v/20180521174033554 <- 안 봐도 되는 조선일보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한국어의 한계다. 무언가 잘못했다고 할 때 잘못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 부도덕하다. 2) 법을 어겼다. 3) 수순이 틀렸다. 여자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여자가 부도덕하다 혹은 여자가 규칙을 어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런데 수순이 틀렸다. 남자를 타격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고 여성그룹 내부에 스스로 질서와 권력을 만들어야 해결된다. 어떻게 여성집단 내부에 질서와 권력을 만들 수 있는가? 일단 시위를 하면 된다. 시위하고 있잖아. 시위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 과정에 지도부가 나와줘야 된다. 상호작용 과정에 비판되고 걸러져서 된다. 니좆내좆 하는 폭력적 표현은 집단 내부에서 가장 저급한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는 의미다. 이는 일베충이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는 셈이라서 한계가 있다. 구두닦이와 중국집 배달원이 시위대의 전위에 서곤 하지만 그들이 주도하면 안 된다. 한국이 일본에 침략을 당했다면 외국에서는 어떻게 볼까? 한국이 잘했으면 일본이 한국의 식민지가 되었겠지. 한국이 잘못했네. 이렇게 본다. 여기서 말하는 잘못이 부도덕이나 법을 어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은 규칙을 지켰는데 일본이 침략한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마찰한다. 제 3자는 약자의 편을 든다. 그러나 이는 제 3자의 이익을 꾀하는 방법일 뿐이다. 약자 편을 드는게 이익이기 때문에 약자 편을 드는 것이다. 독일과 러시아가 전쟁을 하는데 왜 미국은 소련 편을 들었는가? 사실 영국은 소련이 독일에 깨지는 상황을 즐겼다. 미국도 처음에 수수방관 했다. 소련을 돕지 않고 노르망디 상륙을 미루었다. 캐나다 지원병이 영국 와서 2년간 훈련만 받고 실전을 못 뛰며 괴로워하다가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전사하며 남긴 일기가 있다. 맛없는 영국음식을 2년간 먹어야 했다. 진흙덩이를 씹는 맛이었다고. 소련이 승리하니까 다급하게 참전했다. 만약 독일이 히틀러의 예상대로 싱겁게 소련을 이겼다면 일본은 태평양을 먹을 거고 미국은 고립되어 위태롭다. 패권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한다. 여성을 편드는 것이 남자에게 이익인가? 인류 중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을 뿐이고 객관적 위치에 선 제 3자는 없다. 그러므로 잘못했다는 말이 부도덕하다거나 규칙을 어겼다는 의미로 될 수 없고 수순이 틀렸다는 의미로만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부도덕하다거나 법을 어겼다는 말은 제 3자의 개입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제 3자는 없기 때문에 부도덕하다거나 규칙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다. 무인도에 단둘이 있다. 둘 중에 하나가 상대방을 향해 넌 부도덕해. 넌 법을 어겼어. 이런 말을 해봤자 의미 없다. 동물이 사람에게 넌 부도덕해. 너희 인간은 규칙을 어겼어. 해봤자다. 소가 인간에게 사람이 소를 먹다니 부도덕해. 식우종이냐? 이런다고 사람이 소를 먹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잘못은 수순의 잘못뿐이다. 바른 수순인가? 구조론의 답은 권력일원론이다. 모든 것은 권력담론으로 환원된다.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넌 부도덕해. 넌 규칙을 어겼어. 한다면 소가 사람에게 소고기 먹지마 하는 말과 같다. 오로지 권력담론으로 좁혀야 한다. 여자의 권력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권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남자의 폭력과 여자의 매력이 그것이다. 물론 남자에게도 매력이 있고 여자에게도 폭력이 있다. 권력을 쟁탈하는 방법은 매력과 폭력인데 남자가 폭력을 쓴다고 여자도 폭력으로 맞대응한다? 이것은 바른 전략이 될 수 없다. 니좆내좆 하는건 언어폭력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급한 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미러링이 그것이다. 남자의 폭력에 여자의 폭력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로 이길 수 없다. 이기려면 여자의 매력으로 이겨야 한다. 여자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있다. 그것을 조직화해야 한다. 이번 여성들의 시위가 여성들이 스스로 매력을 조직하여 권력화될 가능성을 비친 의미는 있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곤란하다. 이런 거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객관적인 제 3자 위치에서는 한국을 꾸짖고 싶어진다. 그게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얻어맞는 사람이 분발해야 해결되지 지배자가 참아봤자 해결 안 된다. 미국의 민권운동과 같다. 피해자인 흑인이 들고일어나야지 가해자인 백인이 흑인을 배려해봤자 해결 안 된다. 남자가 여자를 배려하는 거로는 절대 해결 안 된다. 이건 물리학이다. 도덕성이나 이런 것과 상관없다. 피해자가 움직여야 진짜 해결이 되는 거지 가해자가 어떻게 해도 해결은 안 된다. 일본이 한국을 지원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고 한국인이 스스로 분발해야 해결되는 것이다.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봤자 해결이 안 된다. 흑인들이 스스로 분발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약자들이 움직여야 해결된다. 그러나 남자가 훈수를 두어봤자 의미가 없다. 바른 답은 여성이 찾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니들이 분발해 봐 해봤자 약 올리는 말이 될 뿐이다. 여자가 분발해야 해결되지만 분발하지 않은 여자가 잘못했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건 레토릭이 힘든 거다. 남자가 대신 답을 찾아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건 자연에 없다. 상호작용 과정에서 해결되는 거지 그냥 일방적으로 남자가 양보하고 지하철에 임신부 좌석 만들고 이런 걸로 해결 안 된다.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한다. 지하철 임신부석 양보했으니 됐잖아 이런다. 그게 대항논리가 된다.
여자의 공격이나 남자의 양보 혹은 배려로 해결된다는 낭만주의는 버려야 한다. 그게 순진한 생각이다. 다만 티격태격하는 상호작용 과정에서 여자그룹 안에 지도부가 나오고 그 지도부가 신뢰를 얻어 스스로 권력화될 때 그리고 그 권력이 정당성을 가질 때 그때 가서 해결되는 것이다.
결론 1) 여자가 스스로 권력화되어야 한다. 2) 남자를 타격하는 수단이 전술적으로 쓰일 수는 있으나 답은 아니다. 3) 여성의 권력의지를 끌어내는 문화수단이 창발되어야 한다. 4) 남자의 양보나 배려는 생색내기용 가짜다. 5) 여성작가들이 신데렐라형 여성억압 드라마를 만드는게 진짜 문제다. 6) 남자가 여자에게 왜 마초주의 김수현드라마나 쳐만들고 쳐보느냐고 항의해봤자 화만 돋울 뿐 도움이 안 된다. 7) 여성주의에 맞는 여자캐릭터와 드라마의 전범이 나와야 한다. 8) 여성주의에 맞는 캐릭터와 드라마가 나오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9) 여성주의가 선진국 문화로 가는 문턱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10) 여자와 남자의 대결문제가 아니고 선진국의 매력논리냐 후진국의 폭력논리냐로 봐야 나아갈 방향이 나와준다. 반대로 여성이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면 평화가 벌어져 있어야 한다. 폭력과 권위와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매너와 교양과 평판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선진국 자격시험이라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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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이 답인 것은 구조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을 파괴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여성이 남성을 파괴하는 것도 잘못이다.
인간은 존엄으로 따져야 하고, 살리는 것으로 따져야 하고, 창발하는 것으로 따져야 한다.
여기서 존엄은 신의 뜻이기도 하고, 진선미이기도 하고, 인간 본질이기도 하다.
살리는 것은 단순히 몸뚱아리 속에 들어있는 목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권을 말함이다.
인권이 죽으면 그 사람은 살아도 산게 아니기 때문이다.
창발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말하는 거다.
방향은 내어주고 파괴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일시적으로 득을 얻었다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잃은 것같아도 얻게하는 그런 창의를 말한다. 이 공간에서는 창의, 창조, 창발보다는 구조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으니
여성이 남성을 구조하고,
남성이 여성을 구조하는,
방식의 운동이라야 맞다.
사회가 미투 운동에서 이랬다 저랬다,
남성이다 여성이다 조질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구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구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