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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6068 vote 0 2010.05.06 (17:20:53)

1. 어른이날 맥도날드


더이상 어린이는 아니지만, 내게 5월 5일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날 중에 하나다. 공휴일이라서가 아니라, 어린이날은 어른이날이기 때문, 어딜가도 사람이 많고, 어디에도 꺼리가 많다. 재미있는 꺼리는 내게 재미있는 소재를 안겨준다. 작년 어른이날에는 안국동에서 '슴가누나' 의 퍼포먼스를 보고, 사진과 글을 올렸는데, 네티즌으로부터 꽤나 반응이 좋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기대하던 어른이 날이 왔다. 정말이지 온 세상 아이들이 어디 꼭꼭 숨겨두었다가 이날만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곳곳에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 만큼이나 어른들도 많았다.


갑자기 여름이 온듯 날은 며칠전과는 다르게 후덥지근 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여름에 가까웠다. 나역시 반 팔 티셔츠에 숄더백 하나만 달랑매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관훈동의 맥도날드 본사 1층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뒤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들어갔는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뒤에 어느 손님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자, 매니저가 와서 카운터와 주방을 촬영하면 안된다고 한다.


내가 매니저에게 말했다.


"왜 촬영하면 안되지요? 뭐 먹으면 안될 거라도 들어가나요?"


"..."


그는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크푸드에 대단한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표정과 흐지부지한 대답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앞에두고 어째 영 찝찝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포장도 성의없게 하였다. 은박포장지를 벗겨내자, 양배추가 한 일주일은 묵힌듯 보이는 양배추 조각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궁해도 정크푸드는 먹지 말아야겠다.

 

 



2. 생각의 나무



1년 전에 만났던 그 '슴가누나'와 거리의 시인을 만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길이 닿는 곳, 발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어디든 가버렸다. 눈이 이끌린 곳은 인사동의 한 화랑. 나무 그림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무작정 들어가서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자작나무.jpg


근래에는 나무에 관심이 많다. 굵은 줄기가 먼저나고, 가는 줄기가 나중에 난다. 두 개의 줄기가 동시에, 같은 굵기로 나는 법이 없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가지의 개 수와 전체 크기의 밸런스가 맞는다. 사람은 나무를 열매(꽃) > 잎 > 가지 > 줄기 > 뿌리 순서로 바라보지만, 나무의 에너지는 그 반대로 흐른다.


계기가 되어서, 지정자 작가님과 나무에 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무가 성장하는 모습과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이번 전시회의 도록을 선물로 주었다. 어른이날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근사했다.

 

 




3. FREE HUGS 체험기





이날 나는 광화문, 종각, 인사동, 을지로, 명동, 홍대 등을 돌아다녔다. 꽤 먼 길을 걸은 것 같은데, 맥도날드 햄버거가 소화 될 때까지 걷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물론 명동에서 홍대로 갈 때엔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말이다.



20100505 019.jpg 



명동에는 늘 사람이 많지만, 이 날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아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FREE HUGS'라고 씌여진 종이를 들고 있는 학생들이 었다. 공짜로 안아준단다. 피켓의 내용도 갖가지다. "조건 없이 안아드려요.",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따듯하게 안아드려요." 등... 그들은 벌이라도 서듯이 종이를 높이 치켜올렸고, 목이 터져라고 "안아드립니다!" 를 외쳤다. 그래서 냉큼 달려갔다. 그리고 물었다.


 

"이걸 왜 하는 거죠?"


"그게... 저...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왜 좋아하는데요?"


"오늘 같은 날 아이들 안아주면 기분이 좋잖아요."


"안아주세요."


"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으로 바뀌었다. 이런... 내가 몹쓸 짓을 한 게 분명하다. 아차! 조건 없이 안아준다더니, 사실을 조건이 있었던 것이군. 그녀는 나이제한이라도 있다고 어디에 좀 써두었으면 좋을 것을... 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소녀의 품 속으로 와락 안겼고, 그녀는 어딘지 경직되어 있었다.



20100505 021.jpg 


결국 이날 두 명의 처녀를 안았고, 한 명의 총각을 안아보았지만, 왜 안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나는 정말로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이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 그 답을 구하려고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원래 감이 좀 느린편이다. 누군가 내게 나쁜 짓을 하더라도, 그 때문에 화가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 특이체질 때문이었을까? 소녀와 뻣뻣하게 포옹을 하고 한 참이 지나서야 목구멍이 콱 막힌다. 뭔가 당한것이 분명하다. 에너지다. 그리고 그 여운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누군가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두 팔을 열어야만 한다는 것. 언어는 때로 공격적일 수 있고, 수비 적일 수 있다. 하지만 두 팔을 열면 인간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다. AT필드 완전 소멸이다.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가 아닐까? 아기는 작다. 작아서 안아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한테 무방비가 되어버린다. FREE HUGS를 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어떤 원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서울대를 나왔건, 고졸 백수이건, 돈이 많건, 적건 누군가를 안아주는 순간 그녀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5.06 (20:20:55)

안아드려요~
이 멘트는 분명,
피켓여 보다는 연장자를 대상을 한 것이오.
나이제한의 문제는 절대루 아니라 보오!!!
암만^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0.05.06 (23:20:54)

프리허그. 그 뜻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별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어쨎든 뭐.. 아무나 안아도 되는 세상이면 유토피아고 그러면 프리허그도 필요없겠지만 (그래서 프리허그 하자는 건가... )
난 아무나 안을 생각이 절대로 없고 안기고 싶지도 않음.
교회가서 크리스마스 선물, 부활절 달걀 챙기고 절에가서 밥 얻어먹는 게 더 남는 장사지 뭐.
군인들이 초코파이 얻으먹으러 가는 것처럼.

[레벨:15]르페

2010.05.06 (23:57:15)

프리허그 꼭 해보시오. 해보지 않음 해방의 그 느낌을 모르오.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가운데 느끼는 같은 인간들만의 따스함..
<아무나>에서 <안아무나>가 되는 순간이 있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0.05.07 (00:16:53)

구조론연구소 오프모임의 대단원은 늘 프리허그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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