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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418 vote 0 2010.04.12 (20:17:52)

내일자 동영상강의 요약입니다.

모든 구조는 강점과 약점이 있다. 구조는 본질에서 모순되고 시스템은 그 모순의 중첩이다. 구조는 모순의 힘으로 낙차를 유발하여 에너지를 일으키고, 그 모순의 중첩으로 진보의 방향성을 얻는다.

 

그러므로 모순의 존재와 그 모순의 타파야말로 위대한 진보의 힘이자 동력원이다. 단순히 모순의 타파로 끝낸다는 마르크스의 평면적 관점은 틀렸다. 모순의 타파는 새로운 모순을 불러 일으킨다.

 

모순없는 구조는 있을 수 없으며, 참된 완전성은 그 모순조차 포용하는 것이며 그것이 개체의 자유도이다. 모순이 있으므로 폭넓은 개인의 자유가 숨 쉴 수 있는 것이며 도리어 미래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미션이 지속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모순으로 기존의 모순을 덮으며 계속 진도나가주는 것이 완전하며, 어떤 경우에도 멈추는 것은 죽는다. 동력조달이 끊겨서 죽는다.

 

이상적인 사회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는 식은 곤란하다. 구조는 계속 전진할 뿐이다. 그것이 생명성이다. 부단한 에너지 공급에 의해 가능하다. 그 생명성을 얻는 것이 완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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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양이 많으면 이긴다. 그러나 둔해진다. 양이 많을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운동으로 양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움직이면 엷어지고 마침내 끊긴다. 힘으로 운동을 끊을 수 있다.

 

힘은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중하면 고립된다. 세력을 잃고 바둑판 네 귀에 포도송이로 말려서 집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고립되면 전체적인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정보전달에 실패한다.

 

고립되지 않으려면 구조를 이원화 해야 한다. 하부구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배후에 상부구조를 건설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협력하여 공격하고 협력하여 수비하는 형태로 입체화 해야 한다.

 

용맹한 선발대를 앞으로 보내 공격하게 하고, 뒤에 있는 본부에서 지속적인 정보소통으로 지휘해 주어야 한다. 앞에 나가 있는 손발과 뒤에 있는 머리를 구분함으로써 고립을 피한다.

 

일선의 손발은 순발력있게 상황변화에 대응하고 후방의 안전한 본부에서 돌아가는 판 전체를 보고 즉시 결정을 내려서 일선에 지령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원화 되면 머리가 취약해 진다.

 

뒤에 남아있는 본부가 유격될 위험이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져야 한다. 지휘부 뒤에 예비대와 예비지휘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민주주의 시스템, 혹은 민주주의에 근접한 시스템이 가장 세다.

 

고대 이집트군은 30겹의 중갑보병 밀집대형으로 승리했다. 오직 양으로 승리한 것이다. 알렉산더는 기병을 동원하여 포위전을 구사했다. 기병은 말을 타고 있어서 불리할 경우 도망쳐 버리는 위험이 있다.

 

기병은 도망치지 않아야 하므로 용병이거나 귀족 혹은 직업군인이어야 한다. 용병은 임금 때문에, 귀족은 명예 때문에, 직업군인은 경험많은 베테랑이므로 도망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우수한 군대는 항상 용병이나 귀족출신의 기병대 혹은 직업군인을 동원했다.

 

고대 이집트군이 양으로 승부했다면 알렉산더는 운동으로 승리했다. 나폴레옹은 힘으로 승리했다. 일점포격으로 적을 양분시켰다.

 

종심을 돌파해서 적군의 밀집대형을 양분한 다음, 아군을 7 대 3으로 기울게 나눈 뒤 그 중에서 소수인 3의 병력으로 양단된 적의 한쪽을 막아 교착시키고, 남은 다수인 7의 병력으로 둘로 쪼개어진 적의 5를 포위하여 차례로 각개격파한다. 승리의 요체는 일관되게 숫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서구의 전쟁은 넓은 들판에서 회전을 하는 형태가 많지만 동양의 군대는 좌군과 우군이 양날개를 벌리고 포위전을 한다. 동양이 전술적으로 더 앞서있다. 나폴레옹의 일점포격도 동양식 전술에는 먹히지 않는다.

 

동양식 진법은 처음부터 부대를 좌군과 중군 우군 그리고 후군과 유격군으로 나누어 놓고 유기적인 협력전투를 벌이므로 일점포격이 불가능하다. 그 포격할 일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양은 넓은 들판에서의 회전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이용한 매복, 기습, 포위, 농성전이 많았다. 고도의 입체적인 전쟁을 수행한 것이다. 회전 자체가 거의 없으므로 원시적인 양의 대결, 운동의 대결, 힘의 대결은 거의 없었다.

 

알렉산더가 운동으로 양을 제압했다면, 나폴레옹은 힘으로 운동을 제압했고, 동양식 전쟁은 입자로 힘을 제압했다. 입자는 센터와 팔다리가 구분되어 있다. 좌군과 우군을 팔다리로 삼아 폭넓게 전개시키고, 중군이 센터가 되어 지령을 내린다. 배후에 후군을 예비되로 두었다가 상황변화에 따라 유격한다.

 

1차대전시기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머저리 처칠과 해밀턴의 영국군은 병력의 축차투입으로 영국,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 25만 대군을 전멸시켰다. 이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과달카날 섬에 병력을 축차투입했다가 전멸한 것과 같다.

 

2만여명의 미 해병이 지키는 섬을 이찌기 지대 900명이 공격하다가 전멸하자 계속 병력을 추가투입하여 계속 전멸했다. 결국 일본군 2만 3천여명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이 되었다.

 

갈리폴리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는 입체적인 전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 거점에 병력을 분산배치하고 영국군이 상륙하는 곳마다, 신속하게 예비병력을 신규로 투입함으로써 함포사격의 우세를 믿고 밀고 들어오는 영국군을 궤멸시켰다.

 

센터에서 전체 전황을 내려다보며 적재적소에 병력을 투입하여 유격하는 전술이야말로 배후에 예비병력을 남겨놓았다가 전황을 보아가며 약한 곳에 투입하는 동양식 전쟁이다.

 

나폴레옹의 전술은 동양식 전쟁에는 치명적이다. 동양식 전쟁은 우선 지형지물을 이용하므로 들판에서 회전을 하지 않고, 또 회전한다 해도 애초에 포격할 일점을 두지 않고, 양날개를 폭넓게 벌려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적군이 일점을 제압하기 위하여 요지에 병력을 집중할 때 예비병력을 추가로 투입하여 막아내는 것이다.

 

영국군은 가공할 함포사격으로 터키군을 압박하였고 이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탄환이 부족한 터키군을 패퇴시킬 찬스가 무수히 있었지만 병력의 축차투입에 의한 소모전으로 체력이 탈진하여 패주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군은 처음부터 20만대군을 투입하여 전격전을 벌여 터키군을 분단 하고 우회기동하여 고립시키는 외에 승산이 없었다. 이 전쟁은 과달카날에서의 일본군과 너무나 닮았다.

 

이찌기 지대가 변변한 대포도 없이 소총으로 무장한 900명으로 인명희생을 겁내는 겁쟁이 미군을 상대로 육박전을 해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듯이 처칠은 5000명의 병력으로 무능한 터키군을 박살내고 일주일 안에 이스탄불을 접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연합군 25만명이 죽었다. 너무나 어리석은 전쟁이었다. 처칠은 이 외에도 식민지에 대한 집착으로 무수한 오판과 잘못을 저질러 대영제국을 와해시킨 공훈이 있다.

 

멍청이 처칠이 없었다면 연합군이 러시아군에 앞서 베를린을 해방하게 되고 동유럽이라는 것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릴라부대 역시 입체적인 전쟁 개념이다. 스페인이 게릴라전으로 나폴레옹을 막아낸 것과 케말 파샤의 전술은 비슷하다. 게릴라전은 병력이 소규모로 분산되어 있어서 나폴레옹이 대규모 포격을 실시할 실체가 없었다. 나폴레옹의 패배는 게릴라전을 최초로 수행한 스페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문제는 게릴라를 지도할 지휘부가 있느냐다. 지휘부가 있어야 지속적인 전쟁수행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모택동의 전술은 앞서있다. 병력을 흩어놓고도 흩어진 병력이 반역하거나 도주하지 않게 심리적으로 묶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념교육이나 종교적 열정, 민족주의에 따른 애국심 따위로 가능하다.

 

전술의 기본은 모든 포지션에서 우위를 이루는 것이다. 양의 우위가 중요하며 그 다음은 운동의 우위 곧 스피드이며, 그 다음은 힘의 우위 곧 집중력이며, 그 다음은 본부의 우위, 사령실의 우위다.

 

최후에는 정보력의 우위, 지정학적 조건의 우위, 이념의 우위, 총체적인 전쟁수행능력의 우위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져야 한다. 여러개의 머리 사이에 이심전심이 되어야 한다.

 

머리가 한개 뿐이라면 머리가 잘렸을 경우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

 

양을 잡으려면 속도가 필요하고, 속도를 잡으려면 일점에 힘을 집중하여야 하고, 힘을 집중하다가는 고립되어 머리와 팔다리로 나눈 입체적, 유기적 대응에 궤멸되며, 머리와 팔다리를 나눈 입체적 대응은 결정적으로 머리가 잘릴 위험이 있다. 최후의 전투는 머리가 여러개인 것이다.

 

왜군이 임진왜란에서 실패한 것은 선조임금을 추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강한 이유는 왕이 없으므로, 왕이 사로잡힐 위험이 없는 것이다. 로마군이 그러하다.

 

로마군은 기본적으로 왕이 없으며, 실질적으로 왕이 두명 이상인 때가 많았고, 황제는 대개 유능한 실력자를 양자로 들여서 전장에 파견해 놓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왕이 두명 이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습황제 시대에도 명목이 그러할 뿐 실제로는 실력자가 왕위를 이어받거나 혹은 왕위를 찬탈하고 권력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유력자를 양자로 들이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로마식 관행을 무시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 코모두스에게 권력을 위임할 때부터 로마는 망하기 시작했다. 친아들에게 물려주기 보다는 차라리 왕위를 찬탈당하는 것이 로마에 유익했다.

 

최후의 방법은 적의 전쟁수행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보급을 끊고 자원을 없애며 외교를 구사하여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세계대전을 벌이는 것이다. 적의 머리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외교를 전개하여 머리의 숫자를 늘려서 전쟁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여러개의 머리를 가진 경우는 징기스칸 사후 아들들의 경쟁, 누르하치 사후 도르곤과 정적들의 경쟁을 들 수 있다. 유목민 특유의 내부갈등이 외부정복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몽고군이 강한 이유는

1) 양이 많고 - 유목민은 언제든 전사가 될 수 있다. 모든 성인남자가 군인이다. 2) 속도가 빠르고 -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므로

3) 한 곳에 힘을 집중시킬 수 있고(힘을 집중할 경우 내부반란이 일어나거나 고립될 위험이 높다. 그러나 몽고군은 흉노의 전설적인 영웅 선우 묵특 이후 전통이 된 엄격한 군법시행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4) 회교도의 공성기술을 빌리는 등 여러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입체적 전쟁에 능했으며

5) 징기스칸 사후 또 누르하치 사후에 결정적인 영토확장이 이루어진데서 보듯이 징기스칸 자식들 간의 내부경쟁으로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형태가 되어 최강의 군대가 되었다.

 

그러마 몽골군과 청나라 군대의 최강은 일시적 현상이었다. 지휘부가 소규모 씨족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휘부를 지속적으로 양성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식으로 민주적으로 지도자가 선출되거나 로마식으로 유능한 자를 양자를 들이거나 아니면 형제들 중 뛰어난 자가 찬탈해야 하는데 몽고와 청나라는 일시적으로 형제들간의 내부경쟁이 성립했을 뿐이다.  

 

구조론적으로 전쟁은 다섯가지 포지션에 따른 다섯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으며 몽고군은 특정 시기에 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머리가 하나라서 알렉산더가 죽자 제국이 내분에 빠졌고, 나폴레옹은 역시 위장병에 시달리며 판단력이 흐려지자 워털루에서 패전했으며, 히틀러 억시 전쟁초반 부하들의 창의력에 의존해서 성공했던 예와 달리 뒤로 갈수록 혼자서 독단적인 결정을 내려 패배를 차조했다.

 

일본군 역시 초기에 초슈의 육군과 사츠마의 해군이 내부에서 경쟁하는 형태로 창의적인 전쟁을 수행하여 성과를 올렸으나, 뒤로 갈수록 엇박자가 되어 머리가 없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여러개의 머리를 두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다. 둔해진 머리를 교체할 수 있는 구조가 독일과 일본에 없었다.

 

 

1) 양이 많으면 이긴다.(그러나 느려서 운동에 포위된다.)

- 고대 이집트의 30겹 중갑보병 방진

 

2) 운동이 빠르면 이긴다.(그러나 엷어져서 힘에 끊긴다.)

- 알렉산더의 포위전.

 

3) 힘을 집중하면 이긴다.(그러나 입자에 고립된다.)  

- 나폴레옹의 일점포격

 

4) 입자로 센터의 지휘로 유기적 대응하면 이긴다.(그러나 질에 머리가 잘린다.)

- 동양식 전쟁.

 

5) 총체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 양차 세계대전.

 

입자는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유기적인 협력플레이를 위한 빠른 정보전달은 필수적이다. 성능이 우수한 일본의 제로기를 미군의 둔중한 와일드캣으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두 대씩 짝지어서 편대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방면의 최고수는 원앙진을 발명하여 왜구를 소탕한 척계광이다. 기효신서의 원앙진은 보통 12명이 한 조가 되는데(대장 1명, 등패수 2명, 낭선수 2명, 장창수 4명, 당파수 2명, 취사병1명) 먼저 낭선수 2인이 왜구의 좌우를 막아 행동반경을 좁히면, 등패수 2이 방패를 앞세워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장창수와 당파수가 결단내는 식이다. 요는 배후에서 이 모두를 조정하는 조장이 있다는 점이다.

 

원앙은 암수가 짝을 지어 항상 함께 다닌다. 원앙진의 핵심은 동료를 보호하는 것이다. 만약 조장이 되는 장교가 죽으면 나머지 조원들은 모두 처형된다. 조원들은 필사적으로 조장을 지켜야 하므로 전공을 세우기 위한 무모한 공격을 삼가고 조장의 지휘를 따르는 것이다. 원앙진이야말로 유사이래 최강의 보병전술이다. 최강의 보병인 왜구를 잡기 위해서 발명한 전술이기 때문이다.

 

‘질은 밀도가 있어서 복제가 되는 것이다. 첫째는 외국군대를 끌어들이는 것이며, 둘째는 복제를 못하도록 적의 자원을 파괴하는 것이고, 셋째는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며, 넷째는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여러 개의 머리를 두는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은 많은 나라가 전쟁에 참여하여 여러 개의 머리가 되었다. 국가들 간의 연합은 저절로 민주적인 구조가 된다. 그리고 끝없는 소모전으로 적의 전쟁수행능력을 해체하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쟁의 다섯가지 포지션을 모두 갖춘 군대는 로마군과 몽고군이었다. 로마군은 지형적 잇점과 무수한 실전경험, 그리고 민주적인 전통에 따라 이러한 구조를 얻게 되었으며, 몽고군은 유목민 특유의 장점과 흉노선우 묵특의 엄격한 법률집행, 그리고 징기스칸 사후에 일어난 내부경쟁 때문에 이러한 구조가 일시적으로 얻어졌다.

 

그러므로 항구적으로 최강의 전술은 로마군대이다. 엄격한 법률과 백인장을 중심으로 한 피라밋구조의 입체적 디자인, 그리고 공병을 중요시 한 것은 몽고군과 비슷하다. 몽고군은 거기에다 심리전까지 더했다.

 

몽고군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심리전, 이간질, 전염병 기타등등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10.04.12 (21:52:00)

입체와 질 전략에 대하여 좀 더 명료해졌습니다.
잼있네요. 세력과 전쟁, 민주세력과 선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됩니다.
근데, 오랜만에 시리즌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0.04.13 (02:19:54)

사본 -1.jpg 
*원앙진 동영상-애들이 시연
 -애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4603174&q=%C3%B4%B0%E8%B1%A4%20%B1%E2%C8%BF%BD%C5%BC%AD

-시범단-
http://blog.daum.net/manbal329/15957533?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manbal329%2F15957533

-사진자료(임진왜란 관련)-
http://cafe.daum.net/alhc/4xOO/13719?docid=CxSE|4xOO|13719|20090812131940&q=%BF%F8%BE%D3%C1%F8%20%C0%D3%C1%F8%BF%D6%B6%F5&srchid=CCBCxSE|4xOO|13719|20090812131940


*척계광의 기효신서* 

‘기효신서(1562)’ 18권은 명나라의 걸출한 군사 전문가였던 척계광(戚繼光)이 쓴 병서입니다. 중국의 군사학 관련 고전 중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책입니다. 척계광은 군인의 집안에 태어나 남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북으로는 달단(??)의 침입을 막는 등 큰 공적을 세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척계광은 개혁적인 군사상가로 문무를 겸비한 중국의 영웅으로 제갈량이나 악비 등과 어깨를 겨루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기효신서’는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척계광 자신의 군대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책입니다.
  
  이 ‘기효신서’에 진법 훈련이 소상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훈련의 모습들은 내용이 복잡하여 이해하시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진법 훈련들이 진행되었는지를 보시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먼저 ‘기효신서’에서 말하는 진법 훈련은 주로 깃발과 징 및 북소리를 통하여 군령을 전달합니다.
  
  “중군(中軍)에서 나팔을 불면 모두 일어난다(各起身). 나팔을 한번 불면 주의하고(必警), 두 번 불면 대열을 가지런히 정렬한다(必劑). 다시 나팔을 불면 중군에서 북과 깃발을 배치하고 기수(掌旗者)가 원래 대열에서 두 행으로 있는 기를 취하여 하나는 장대(將臺)에 올리고 다른 하나는 배치한 후에 양 변의 장교와 병사들이 장대 앞에서 (군령을 전하는) 북소리에 들어야 한다. 길이 넓으면, 한 초소에 네 줄이 서고 길이 좁으면 각 초소의 대가 대를 이어 원앙진법(鴛鴦陣法)으로 행진하여 맨 앞에 가서 정렬을 완료하면 북소리 징소리가 멈춘다(기효신서 : 권제8).”
  
  척계광은 이 훈련이 실전에 효과가 있으며 원앙진이야 말로 아군이 포위되었거나 적의 공격을 받을 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대열이 난잡하거나 싸움할 때 후퇴하는 자는 즉각 군법(軍法)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여러 번 강조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군진을 배치할 때는 절반에 가까운 병력을 반드시 매복(埋伏)시킬 것을 주문합니다.
  
  적과 1리 이내에 대치할 때는 맨 앞[전영(前營)]에 도열한 주력군은 즉각 원앙(鴛鴦)의 모양으로 한 일(一)자 대형을 갖추고 전초(前哨)를 제1겹으로, 후초(後哨)를 제2겹으로 좌초(左哨)는 좌익, 우초는 우익으로 변형한다고 합니다. 적이 50보 가까이 왔을 때는 불을 놓아 신호를 하고 이어 활·쇠뇌·불화살 등을 쏘고 기러기 나팔 소리가 들리면 각 대오(隊伍)는 용감하게 앞으로 진격합니다. 전영(前營)에 위치한 주력군은 길 한가운데서 앞장 서 적을 막으며 왼쪽 영은 적의 우측을 강타하고 오른쪽 영은 적의 왼 좌측을 강타합니다. 모두 원앙의 모양을 한 진을 만들고 1개의 대(隊)가 두 줄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원앙진 전술이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즉 수시로 흩어졌다가 상황이 종료되면 이내 다시 되돌아가야 합니다(기효신서 : 권제8).

 사본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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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진*

중국 명나라 척계광(戚繼光)이 고안한 진법의 하나.

척계광이 저술한 병서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수록되어 있는데, 진의 정면에 방패를 든 군사 2명을 앞세우고서 군사 10명이 2열 종대로 대오를 이룬 진형을 취하고 있어 마치 짝을 찾아 사는 새인 원앙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척계광은 당시 중국의 가장 큰 근심의 하나였던 남방의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새로운 근접전 무기인 낭선, 당파, 장창, 등패 등을 채택하여 왜구의 장기인 큰 칼을 이용한 근접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무기를 장비한 12명으로 이루어진 최소 부대 단위인 대(隊)를 편성하였다.

한 대에는 지휘자인 대장 1명과 등패와 표창을 가진 등패수 2명, 낭선을 가진 낭선수 2명, 장창을 든 장창수 4명, 당파와 화전(火箭)으로 무장한 당파수 2명, 그리고 취사 등 잡일을 담당하는 화병(火兵) 1명이 편성되어 있었다. 전투시에는 이 대의 군사 중에서 화병은 빠지고 대장을 선두로 하여 등패수-낭선수-장창수-당파수의 순으로 서서 적군을 향해 나아가 낭선, 장창, 당파 등을 이용하여 격투를 벌이게 된다.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0.04.13 (02:42:56)

*위와 비슷한 내용이나 설명이 보다 체계적이라...퍼왔습니다. 참고하세요.

조선 최고의 보병진: 원앙진
역사 속 군대

2009/01/25 04:19

복사 http://blog.naver.com/kimms0414/70041047263

1557년 척계광은 소흥에서 모집한 3천명의 병력을 훈련시켰다. 다음해인 1558년 주산 군도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전투에서 그의 군대는 승리하지 못했으며 척계광은 소흥 토박이들에 대해서 실망한다. 그는 도회지 청년들을 뛰어난 병사로 훈련시키는 것이 힘들다는 판단하에 오직 농촌 출신 청년만 병사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다음해 여름 척계광은 자신이 수비하는 지역에서 왜구를 몰아내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파면당한다. 윗사람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척계광은 항주에서 60마일 가량 떨어진 이우 지역에서 지원자 3천명을 모집해 자신의 방식대로 훈련시킨다.

 

척계광이 발명해낸 훈련체계들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대장 1, 등패수 2, 낭선수 2, 장창수 4, 당파수 2, 화병(취사병)1, 도합 12명으로 구성된 전술 대형 원앙진(鴛鴦陣)이다.  새로 설립된 보병분대가 원앙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앙은 암수 한쌍 중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마리도 따라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척계광은 각 원앙진의 대장이 부상을 입지않도록 엄격한 군율을 적용했다. 만약 전투 도중 대장이 전사하고 패배를 당할 경우 대장이 전사한 원앙진 분대의 나머지 생존자들도 모조리 처형당했다. 그러므로 원앙진을 이루고 있는 각개병사들은 대장이 전사하는 것을 막기위해 전투내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적과 싸워야만 했다.

 

 

 

1) 분대장 1 (분대의 깃발을 들고있다.)

 

2) 만곡도와 등패로 무장한 병사 2

 

3) 낭선으로 무장한 병사 2

 

4) 장창으로 무장한 병사 4

 

5) 당파로 무장한 병사 2

 

6) 취사 및 잡일을 담당한 화병(火兵) 1 (병참 업무 담당)

 

나이가 어리고 몸집이 중간이며 신체가 유연한 자 두 명을 제1 2로 삼아서 등패수로 충원하고, 나이가 장성하고 신체가 커서 힘이 센 두 사람은 제3 4로 삼아서 낭선수로 충원하며, 정신과 골력이 있는 네 명을 제5 6 7 8로 삼아서 장창수로 충원하고, 살기와 담력이 있는 자 두 명을 제9 10으로 삼아서 당파수로 충원하며, 사람이 용렬하고 녹록하여 남의 부하가 되기를 좋아하는 자 한 명을 제11로 삼아서 화병(火兵)으로 충원한다.

 

- 기효신서(紀效新書)중에서 -

 

척계광은 개인의 적성에 맞게 장비를 지급해서 훈련시켜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는 개인의 기량을 중시하던 그 이전의 병학사상에서 한 걸은 나아가 다소 기량이 떨어지는 개인을 적성에 따라 묶어 집단적으로 운용하려는 특징을 보여준다.

 

 

 

 

 

 

등나무로 만든 둥근 방패(rattan shield). 또는 이 방패를 사용하는 무예를 가리켜 등패라고도 한다. 방패는 등나무의 줄기를 휘어서 둥글게 바탕을 만들고 뼈대를 엮어 대나무껍질로 얽는데, 바깥쪽은 가운데 거죽으로 불룩 나오게 하여 중심에 귀면(鬼面)을 붙이고 안쪽에는 등나무 줄기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소쿠리의 뚜껑을 짜는 것과도 유사하다.

 

적 방향으로 향한 부분은 둥그렇게 융기되고 그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휘어 있어 적의 화살이나 창 공격이 뚫지 못하며 빗겨가게끔 세밀하게 설계가 되어 있다. 등패를 왼손에 지니고 오른손으로 칼을 사용하여 적의 칼이나 창,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는 데에 사용했다.

 

 

 

 

 

 

 

낭선은 노다치(野太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개발된  병기이다. 낭선을 이용해 적의 칼날이나 왜구를 움직이기 어렵도록 옭아매는 동안 다른 원앙진 부대원들이 왜구를 해치웠다. 낭선에는 단단한 나뭇가지와 강철 발톱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노다치로는 낭선을 잘라내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위의 그림(어디??)은 전술 상황과 지형에 따라 각기 다른 3가지 방식의 대열을 갖춘 원앙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원앙진의 병사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에 따라 상호 병사들간에 협동하고 보조하면서 싸우도록 훈련받았다. 규모가 작은 원앙진의 경우 5명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장까지 포함해서)

 

원앙진의 전투 방식은 아래와 같다.

 

A) 낭선수 1명은 등패수 1명 옆에 붙어 낭선을 이용해 왜구와 그의 무기를 얽어매서 등패수를 보호한다.

 

B) 장창수 2명은 낭선수가 공격에 노출되지 않도록 적을 창으로 찌른다.

 

C) 만곡도와 등패로 무장한 병사는 장창수가 창을 너무 깊게 짤러 적의 공격에 노출될 경우를 대비해 그를 보호한다.

 

D) 당파수들은 후미에서 지원한다.

 

 

척계광이 창안한 절강병법으로 훈련받은 절강, 복건성 지역의 병사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해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점령하고 있는 평양성 탈환당시 매우 큰 활약상을 보였다.

 

절강병이 압록강을 건너왔을 때 이들이 사용하는 방패와 낭선, 장창과  당파등의 기예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보는 것으로  명군이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뒤이어 화전을 발사하여 왜적의 기를 꺾고 말았다. 명군은 곧 장창과 당파를 사용하는 병사를 동원하여 각기 운용 방식에 따라 사용하였는데, 만약 적이 먼저 돌진해 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만약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등패를 들고 전진한 결과 적은 크게 패주하고 말았다.

 

왜군의 장기는 원거리에서는 조총부대에 의한 연속사격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후에 근접전투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병접전으로 조선군을 압도했던 것이다. 왜군의 육전에서의 연전연승은 전술과 무기체계상에 있어서의 우월성의 경과였다. 그런데  절강병들은 원거리에서는 화포로 일본군의 조총부대를 압도했으며, 근접 백병전에서는 다양한 무기체계로 단병접전에 강한 왜병을 압도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병서(兵書)인 ‘병학지남연의’에는 원앙진의 위력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명나라 군대가 평양으로 진입한 다음 먼저 화포를 발사하고 뒤이어 화전(火箭)을 발사하니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왜적들은 마침내 기가 꺾이고 말았다. 적이 먼저 돌진해오면 낭선부대를 집중시켜 대기하고,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등패수들이 등패를 들고 전진하니 왜적이 패하여 도망갔다. 천하무적이다.

 

 

 

실제로 원앙진은 매우 효과적인 진입니다. 단점이라면 역시 훈력시간이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4.13 (12:55:38)

원앙진이 훈련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원앙진 뿐만 아니라 모든 근대전은 공통적으로, 그리고 나폴레옹이나 구스타프 아돌프나 알렉산더나 카이사르 등 영웅들의 공통점은 훈련되지 않은 농민을 선발하여 단기간에 강군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재래식 전쟁은 병사 개개인이 무술고수가 되도록 수련을 해야하지만 원앙진은 대장이 시키는대로 하면 됩니다. 물론 제식훈련은 해야하지만 그건 쉬운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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