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거병의 말에 짓밟히는 흉노인상 수염이 부채살 모양으로 뻑세게 뻗어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토우 수염이 일직선으로 뻗어있다.
훈족 아틸라왕, 전형적인 앵글로색슨 백인과 다른 이란계 호메이니 얼굴임을 알 수 있다.
흉노인=훈족
괘릉의 무인상. 콧수염이 없고 입술아래도 수염이 없다.
위구르노인.. 콧수염을 밀었다. 입술아래도 살짝 밀었다.
수염을 일부 밀었다.
콧수염과 입술아래 뺨의 수염을 밀고 가장자리만 남겨두면 괘릉의 무인상이 됨.
구레나룻의 일부를 밀고 아랫쪽만 남겨둬서 부채살처럼 뻗어나게 한 것이 흉노인의 수염이 아닐까?
결론.. 흉노는 유목민의 특성상 대규모 동맹을 만들므로 흉노 안에는 다양한 종족이 섞였겠지만
전형적인 흉노는 이란계 유목민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수염의 일부를 면도하여 구레나룻이
방사상으로 뻗어나게 만들었을 수 있다. 이에 흉노인의 특징적인 얼굴이 만들어졌다.
괘릉의 무인상에 보이는 수염은 일부러 다듬어 형태를 만든 것이다. 절대 저렇게 안 된다.
수염이 전투에 방해되므로 무인들이 일부러 수염을 다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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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역사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없으면 어차피 대화가 안 됩니다.
말해봤자 허무하다는 말이지요.
괘릉의 무인상은 돌인데 돌이 어떻게 말을 타고 오겠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석가모니 불상은 인도에서 석굴암까지 걸어왔겠습니까?
괘릉의 무인상은 고도로 양식화된 즉 복제된 것인데
같은 것이 중국에 많이 있습니다.
신라 사람을 거기에 새겼을 리가 없잖아요.
중국을 표절한 중국식 무덤양식에 불과합니다.
제가 논하는 것은 흉노의 수염이 일부러 형태를 다듬어
그렇게 만든 것이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수염은 없다는 겁니다.
수염이 방사형으로 뻗는게 이상하잖아요.
즉 위구르인이 이란계인데 흉노의 전통을 계승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석탈해가 토종 신라인인지는 왜 묻습니까?
자기 견해를 밝히고 말씀하시든가.
어차피 추정이고 우리는 기록을 따를 뿐이며
궁금하면 삼국유사라도 읽어보시든지.
삼국유사도 읽어보지 않은 분이면 제가 말해봤자 허무한 거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습군주는 중국 한족 관습이며
신라초기는 세습되지 않았고
그러므로 박석김이 돌아가며 왕을 했고
이는 추대로 왕을 선출하는 유목민의 보다 민주적인 전통이며
청나라와 몽골 임금들도 한족방식과 유목민 방식으로 두 번 즉위했습니다.
유목민은 세습 그런거 없고 추대를 받아야 되는 것이며
징기스칸도 세습한게 아니라 추대된 겁니다.
박석김이 왕을 했다는건 추대했다는 것이고
추대한 사람은 기록에 나오는 대왕 갈문왕 육부촌장까지 합이 8왕이며
외부에서 왔다 해도 세월이 흐르는 거지 바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김씨도 알지에서 내물왕까지 300년 세월이 흘러 왕이 된 것이며
세월이 흘렀으면 외부에서 왔다 해도 이미 신라인이 되어 있는 겁니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질문이 안 되는 겁니다.
신라역사가 일이백년이 아니고 천년입니다.
지금부터 천년전이면 왕건이 뛰어다닐때인데
김부식과 일연이 쓸 때는 천년전보다 옛날입니다.
처용이 아라비아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비슷한 말도 없습니다.
아마 처용탈 보고 누가 3초 정도 생각해서 지어낸 거짓말이겠죠.
처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인이 남의 아이를 임심하면 귀신을 범인으로 몰아서
책임을 피하는 기술이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괘릉의 무인상에 나오는 인물은
흉노족으로서 말을 타고 한반도에 도착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고려시대 벽란도에 삼각돛 달린 배를 타고온 아라비아 상인처럼
배를 타고 한반도에 도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와 비슷하게 신라 4대왕 석탈해 이사금의 신화에는
석탈해 아기가 있는 알과 금은보화가 배에 실려져 신라로 떠내려 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석탈해는 토종 신라인이었을까요 일본 주변의 표류자일까요
해양세력이었을까요 기마민족이었을까요.
(동렬 선생님께서 소그드 인쪽으로 추정하시는건 알고 있습니다.)
만약 외래인이었다면 신라 사회에서 어떻게 독자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일반적으로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은 아라비아 쪽의 외래인으로 알려졌는데
(삼국,고려,조선 사람들은 이란계와 아리비아계가 다르다는 걸 모르죠)
처용가의 내용을 자기 아내가 외간 남자와 통정하는 것을 용인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처용 개인의 특성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외래인 즉 돌아다녀본 사람,
유목민의 특징으로 봐야할까요?
동렬선생님께서 사파리모자 쓰고 돋보기 들고다니는 고고학자가 아니시니
동네 아해들에게 재밌는 이야기 해주시는 소탈한 마음으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