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아란도님의 글과 관련하여 썼습니다. 리플로 달았다가 길어져서.- 아랍의 ‘명예살인’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딸을 살해하고 오빠가 여동생을 살해합니다. 문명사회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야만적 풍속입니다. 심지어 딸이 성폭력의 피해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딸이 윤리, 도덕을 어긴 것이 아니라 피해자인데도 살해를 합니다. 이건 윤리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지요. 미개인의 야만적인 관습?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야만적인 관습이지만 단순히 관습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고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논리가 있다는 거지요. 현실의 문제, 생존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가 끼어있습니다. 백인 지식인이 가서 돕는다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왜? 먹고 사는 문제가 끼어 있으니까. 항상 그렇듯이 이건 답이 없는 겁니다. 왜? 먹고살아야 하니까. ‘돈 줄께 사람 죽이지마’ 하면 안죽입니다. 백인 언론인이 아랍의 시골마을에 가서 인터뷰를 합니다. ‘경찰에 잡혀가서 처벌을 받을텐데 왜 딸을 살해했는가?’ ‘나는 돈도 없다. 권력도 없다. 딱 하나 남은 것이 명예인데 명예마저 잃으면 우리 가족은 이 마을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즉 가족을 살리기 위해 딸을 희생시켰다는 겁니다. 가족을 살리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명예’라는 단어가 우리가 아는 그 명예와 다르다는 점을 포착해야 합니다. 명예살인은 유럽으로 이주한 아랍인 가족에서도 일어납니다. 심지어는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왜? 아랍인에게서 명예라는 것은 ‘이지메 공격을 당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일종의 ‘까임방지권’이지요. 이승엽이 야구월드컵에서 홈런치고 얻었다는 그거. 그들에게 약자로 찍히는 순간 집단의 공격을 받아 바로 죽게 됩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살 수가 없는 거지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뭣도 없는 사람들은 집단의 관습에 복종함으로써 공동체의 타겟으로 찍히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유럽으로 이주해도 아랍인 커뮤니티 안에서 이지메는 작동합니다. 명예살인이 있기 전에 집단의 폭력, 이지메가 있었다 이게 중요합니다. 폭력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니까 백인 지식인이 아무리 설교를 늘어놓아도 악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을 장로들이 모여 ‘어느 집안이 좀 아니다’고 쑥덕공론 나오면 바로 쳐들어가서 사람을 패고 세간을 다 털어가버립니다. 기본적인 공민권 보호가 안 되는 거지요. 다 강탈해버립니다. 농경민은 땅만 꽉 붙잡고 늘어지면 최소한 목숨만은 안뺏길 수 있지만 유목민들은 하루아침에 생존권 박탈당합니다. 장로가 ‘저 집안은 명예가 없다’고 선언하는 즉시 동네사람들이 그 집안의 양떼를 나눠가져버리면 상황 끝. 자기 딸이 피해자인데 왜 딸을 살해하는가? 가해자에게 복수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딸을 죽여 명예(?)를 얻어놓고, 가해자 집안을 ‘불명예’를 씌운다음 마을사람들을 끌고가서 집단 린치를 하겠다는 겁니다. 재산을 강탈하겠다는 거죠. 최종적인 목표는 그겁니다. 왜 중세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일어났는가? 상당부분은 재산강탈이 목적입니다. 홀로 사는 과부를 죽이고 재산을 나눠가지겠다는 거지요. 며칠전 아랍 어느지역에서 돌팔매형으로 처형한 보도가 있었지만, 귀족 중에 그런 식으로 처형되는 일은 없습니다. 귀족 중에 마녀로 몰려 죽은 사람 없습니다. 마녀의 조건은 돕는 친척이 없다는 거지요. 한국은 유교국가라 집단린치, 재산강탈이 일어나면 친척들이 다 들고일어나서 난리가 나겠지만 그 지역은 친척이라는 것이 없고 집단린치, 재산강탈이 관습으로 일반화 되어 있는 거지요. 결론적으로 윤리, 도덕이라는 것의 본질은 집단린치, 재산강탈을 통한 인구감소가 생산력의 일부로 인정되었던 암흑시대에 생존권을 보장받는 수단으로 고안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거지요. 족보있는 근세 유럽귀족의 무덤을 발굴했는데 부자관계로 알려진 무덤들을 발굴해서 DNA를 조사해보니 1/4이 남의 자식이더라고 합니다. 귀족들은 윤리고 도덕이고 해당사항 없지요. 까마득한 원시가 아니라 불과 몇 백년 전 일. 생존문제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은 번드레하게 하지만 본질은 ‘내가 이 바닥에서 얼굴들고 살 수 있는가?’ ‘어려울 때 주변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게 본질. 유목민 사회에서 윤리, 도덕이란 초원에 인구가 늘면 양떼에게 먹일 풀이 부족해지고, 자연히 사람들 마음에 스트레스가 늘고, 다들 눈에 핏발이 서고,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절로 깨닫게 될 때. 공기가 험악해질 때, 집단린치, 재산강탈이 정당한 생산력의 일부로 인정되던 시대에, 린치와, 강탈의 무제한적인 폭주를 막는 안전장치로 기능했던 것입니다. 린치는 요 정도만, 강탈은 여기서 그쳐. 살인은 딱 요정도만. 소먹이 풀이 부족해도 인구는 적당히 줄여라. 너무 죽이면 사람이 남아나겠냐 이거지요. 본질에서는 농경사회나 현대사회나 다를바 없습니다. 생산력의 한계를 느끼면 린치와 강탈을 해야한다고 느낍니다.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느끼지요. 하층민일수록 오히려 그런거 따집니다. 수표교 다리밑에 거지들도 빌어온 밥이 모자라면 평소에 안 따지던 서열 따집니다. 밥이 풍족하면 그런거 없이 잘 놉니다. 결국 인간이 그냥 있는데, 그 위에 억압적인 윤리, 도덕이 달려들어 공연히 인간의 목을 조이는게 아니라, 인간의 유전자에는 인구감소를 통해 상대적인 생산력 향상을 꾀하던 원시의 유전자가 남아있는 것이며. 수렵채집 시대에는 인구감소가 유일한 생산력 증대 방법이었으므로, 인구감소를 위해 린치와 강탈이 발명되었고, 이 사악한 범죄의 무제한적인 폭주와 광란을 통제할 목적으로 윤리가 고안된 겁니다. 물론 모든 윤리, 도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가만 있는데 갑자기 윤리, 도덕이 목을 조르고 달려든 것이 아니라 먼저 린치, 강탈, 살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범죄가 먼저 있었고 방어하기 위해 2차적으로 윤리, 도덕이 고안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1차적 원인이라 할 린치, 강탈, 살인을 막지 못하면 인간은 계속 윤리, 도덕이라는 불편한 갑옷을 입고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부자들은 말로만 윤리, 도덕 하면서 자기네들끼리는 싹 다 빠져나갑니다. 예술가들이 특별히 무절제한 게 아니라, 예술가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서 딱걸린거고 정주영 같은 자들이 결코 타이거 우즈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윤리, 도덕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있어야 할 것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윤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한 목적의 윤리입니다. 아랍인이 말하는 ‘명예’라는 말은 우리말로 직설하면 ‘강도권’입니다. 명예를 잃으면 동네사람들에게 집단으로 강도질을 당하고, 명예를 얻으면 남의 재산을 강도질하는 마을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표현들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강조한 거고 윤리, 도덕에 반드시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도 그런 못된 짓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전통이 분명히 있습니다. 윤리, 도덕이 인간 위에 군림하며 인간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진짜 이유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누군가를 타겟으로 찍어서 합법적으로 강도질할 의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터넷 악플러들의 행동에도 그런 본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모두의 마음 속에 강도가 있습니다. 인구가 늘고, 흉년이 들고, 소먹이 풀이 부족해지면 다들 눈에 핏발이 섭니다. 음험한 공기가 마을을 감돌게 됩니다. 그 눈에 선 핏발이 증명합니다. 모두의 마음에 강도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그게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 풍족해지면 그 강도는 사라집니다. 윤리를 논하기 전에 강도유전자의 존재를 정면으로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생산력의 저하라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와질 때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뭔가가 부족하다’는 내 머리 위를 감도는 심리적 압박감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은 죽을때까지 항상 '뭔가 부족해' 하며 살지요. 그게 원인. ∑ |
○○○ “윤리와 도덕에 딱 걸려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은 결국 윤리와 도덕에 기대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걸까요...?”
●●● 무슨 말씀인지 명료하게 접수가 안 되네요.. 딱걸려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란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스포츠맨일테고.. 그 사람들이 혼쭐나는 것은 대중의 바보게임에 동참해서 일류바보라고 자신을 위장했으므로 당할만 하지요. 바보의 난이 일어나면 바보 중에 왕바보가 몽땅 뒤집어 쓰는 거.
미국 대중들은 클린턴 하나 박살내놓고 자기들이 도덕군자라도 된 양, 모든 죄가 사면된 양 의기양양해 하지요. 즉 원죄의식을 가진 자들이 누군가에게 돌을 던짐으로써 자신은 무죄가 되었다. 결백해졌다고 여기는 겁니다.
제 발이 저린 도둑들이 제일 큰 돌을 던지지요. 사면받고 싶으니까.(클린턴 죽이기 앞장섰다가 나중 거리 동성애 헌팅이 들통난 공화당의 모 의원처럼) 예술가들은 대중의 바보게임에 동참하지 않으므로 돌맞는 일도 적지만 대신 대중들이 미워하기도 하지요. 대중은 미워해도 역사가 알아주니까 괜찮은거고. 김기덕처럼.
○○○ “결국 윤리와 도덕에 지나치게 목매고 사는 사람들은 약자와,하층민,생산력의 압박을 받는 부류 혹은 대중이고 그와 동시에 이들은 윤리와 도덕의 보호를 받는다.라는 말씀이신지요.?”
●●● 약자일수록 윤리와 도덕의 억압을 받는 것은 사실이나 그 약자라는 표현이 사회 안에서 약자가 아니고 어느 집단에 가도 그 그룹 안의 막내는 있습니다. 귀족집단 안에도 신참귀족만 에티켓을 따집니다. 고참귀족은 에티켓이고 매너고 없어요. 제 맘대로 놀지요. 서울 기생집을 가도 처음 가는 촌놈 선비만 딱걸려서 혼자 옴팡 뒤집어 씁니다. 기생매너 모르면 몰매 맞습니다. 신윤복 그림에도 나오지만 별감에게 딱걸려서 다리몽둥이 부러져 나가는건 흔히 있는 일.
윤리와 도덕의 보호를 받는게 아니라 윤리와 도덕이라는 거짓 연극의 보호를 받는데 고참들만 보호받습니다. 즉 고참들은 윤리고 도덕이고 나발이고 없지만 있는것처럼 위장을 쳐주므로 보호받는 겁니다. 수표교 다리밑의 거지도 고참거지는 전혀 도덕이 없지만 도덕왕으로 칭송받고 정치판이나 재벌판이나 귀족판도 마찬가지로 전혀 도덕이 없는 왕들만 도덕군자로 묘사됩니다. 어느 집단이나 고참들은 하는짓이 말년병장인데 다 존경받아요.
○○○ “그럼 윤리나 도덕이(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윤리와 도덕말구요) 그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지,아니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지,집단에 따라 혹은 사회에 따라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대략 설명이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윤리 도덕이란 고참은 편하고 신참은 개고생인 겁니다. 어느 집단을 가도 그렇지요. 대중의 바보놀이에 동참하면 그렇게 됩니다.
○○○ 그리고 부자들의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어떻게 지키고 안지키는지에 대한 설명도 첨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역시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약자들이 서로 돕고 살려고 하니 윤리가 필요하고 도덕이 필요하지요. 강자는 이미 잘 살고 있는데 뭘 돕습니까? 도울 일이 없는데 무슨 도덕이 필요한가요? 떡이 한 덩이인데 먹을 입이 열이면 장유유서로 아버지가 먼저, 형님이 먼저, 사내가 먼저 이렇게 말이 많아지지만 떡이 열 덩이면 고루 나눠먹어도 됩니다. 윤리고 도덕이고 불필요. 널찍한 저택에 혼자 살면 도덕이고 뭐고 불필요. 좁은 집에 올챙이처럼 오골오골 사니까 마찰이 일어나고 마찰을 해결하려고 도덕이 필요한 것. 결국 부자의 부라는 것은 그 피곤한 도덕없이 좀 살아보세 이거 아니겠습니까? 도덕으로부터의 탈출수단이 부.
○○○ 그리고 우리는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요.(너무 어리석은 질문이 될까요.?)
●●● 윤리라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만약 부모와 자식이 결혼한다면? 설사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다 했더라도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겁니다. 인간의 독립성을 해치게 되지요. 왜냐하면 부모는 우월하고 자녀는 약하므로 강자와 약자의 결혼은 이병헌과 권아무개의 연애처럼 비극으로 끝나게 세팅되어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모든 결혼은 독립적이고 대등한 지위에서 일어나야 하며 강자가 약자와 결혼하려면 자신을 낮출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약자가 강자와 결혼하려면 자신을 높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거 없이 그냥 사랑했다 하다가 믿었다고 덤볐다가 나중엔 속았다 그러고 징징짜고 그러면 최악이지요.
이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연법칙이며 구조론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게 윤리에요. 윤리의 기본은 관계맺기에 있어서 서로 대등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차등하면 그 차등한 가운데 대등한 만큼만 소통이 일어납니다. 또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고갱이 타이티 소녀하고 결혼한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장모하고 결혼한 셈이더라 하는 거지요. 장모가 딸을 고리로 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지옥끝까지 따라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엉켜 있으면 관계는 깨지고 그러므로 관계맺기가 되려면 관계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지켜야 하며 그 대등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조건들이 윤리입니다.
말하자면 조상들이 정해놓은 장유유서 남존여비 따위는 개소리고 합리성을 따르는 것이 윤리입니다. 타이거우즈와 그 부인의 결혼이 과연 합리적인 결혼이었을까요? 찰스왕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도 마찬가지. 제가 보기엔 정략결혼이었습니다. 타이거우즈는 대중들에게 점수따기 위하여 언론에 내세울 결혼이 필요했던 것이며 찰스도 사랑과는 별개로 국민이 원하는 사람에게 장가를 들어준다는 대국민 서비스의 일환이었던 거지요. 비합리적인 행동이 비윤리적인 행동입니다.
대부분 불행해진 결혼들은 자기가 원하는 결혼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대로 억지 연극을 해준 것입니다. 서비스죠. 그건 윤리처럼 보여도 전혀 윤리가 아닙니다. 독립성과 대등함이 윤리입니다.
도덕이란 것은 공존의 룰입니다. 가난할수록 공존의 룰이 복잡해집니다. 군대와 교도소에서 제일 심하겠지요. 사찰이나 수도회 같은 곳도 마찬가지고. 단체생활 해야 하는 곳에서 단체생활의 룰을 따르는게 도덕입니다.
문제는 그런 단체생활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나 한다는 겁니다. 원정출산해서 군대 안 가게 되는 신의 아들들은 도덕이 불필요. 왜? 단체생활을 안 하니까. 외제차타고 다니는 사람은 무단주차 해도 차가 안끌려가. 자가용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니까 공중도덕이 필요. 부자들은 공중도덕 전혀 무필요. 대중교통을 아예 이용을 하지 않으니. 결국 의존하면서 공동생활하면서 가난하게 살면서 도덕적으로 살든지 아니면 돈 벌어서 외국나가서 맘대로 살든지 아니면 산 속에서 혼자 살면서 멋대로 살든지죠.
문제는 도덕이라는 올가미를 피할 수 있는데(피하는 방법은 돈 벌든가 산 속으로 들어가든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고참이 되면 도덕의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고 신참을 열심히 갈구며 그러한 도덕게임에 빠져서 그것을 즐기는 인간군상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라는 겁니다. 군대 가면 그런거 많이 봅니다. 존나 갈궈요. 그 빌미가 도덕입니다. 몇 달만 참으면 제대할 것인데 왜 그렇게 집요하게 갈구는지. 그게 다 허상입니다. 외국군대처럼 다 침대생활하게 하면 그런 갈굼질이고 짬밥도덕이고 다 없어집니다. 다 바보들의 바보놀이에요.
하여간 군대의 ‘짬도’는 군인들이 스스로 자기 목을 옭아매는 억지로 만들어진 도덕입니다. 그리고 이런 ‘짬도’는 사회 어느 집단을 가나 있어서 고참이 신참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알고보면 세상 모든 도덕이 다 ‘짬도’에요. 짬있으면 무죄, 짬없으면 유죄. 눈치 빠르면 무죄, 눈치 없으면 유죄.
후련하오.
두려움에 기댄 강요이거나, 설레임에 바탕한 합의이거나,
노예노동과 노예제도에(독재&독점) 기댄 체제유지를 공동작업과 자유제도의(민주) 확립으로 바꿔갈 수 있어야지요.
큰발견이 큰자유를 낳을 것이니,
설레이고, 즐겁소.
사람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과 괴로움이 왜 일어나는가 했더니..이런 작동원리가 숨어 있었네요.
그리고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돈이었군요.
그래서 모두 돈에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면 자유를 찾고 윤리의 구속을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돈인데...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같구요.
또한, 사랑이 그 사회가 혹은 집단이 원하는 윤리속에서 갈등하는 것이구요.
결국은 눈높이를 맞줘야 하고 관계맺기가 원활하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구요.
결국 윤리란 대등함과 독립성이란 전제하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구요.'짬도'를 당했던 사람이 '짬도'를 행하는 사회는 피곤한 사회가 되겠네요.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역시나 어렵다는 것이구요.
그런 사회속에서 돈도없고 빽도없는 사람들이 그걸 거부하는 데에는 참 힘이 들겠네요.그걸 거부하면 많은 질타와 왕따를 당할 것이 뻔하기에...그래서 대등하고 독립적인 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집단지성이 필요하고 이상주의와 미학이 필요한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짬으로 돌리고 선진국은 메뉴얼로 돌리지요. 다 동기로 만들고 다 메뉴얼로 가면 도덕갈등이 없어집니다. 어쨌든 한국은 프로야구선수도 고참과 신참을 짝지어서 신참이 고참의 수발을 들게 합니다. 호텔에서 한 방을 같이 쓰며 하인노릇 시키는 거지요. 고참이 신참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니 좋다나 어쨌다나. 억대연봉받고 하인노릇 하다니. 참 나 원.
사회를 정교하게 세팅하면 도덕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팁을 주게 하면 택시기사가 난폭운전 안 합니다. 자동차를 제작할 때 디자인을 잘 해놓으면 차주들이 차를 곱게 써서 길거리에서 찌그러진 차를 볼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회를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세팅해서 도덕고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관계가 수직이 되면 안되고 수평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런뜻인가 봅니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느낌으로만 느끼고 그 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여서 괴로움이 유발되는것 같습니다.
표면적인 것만을 가지고 깊게 들어가지 못한채 제가 글을 쓴듯합니다.
글을 써놓고도 뭔가 애매한듯한 생각이 들었는데..이런것이었는가 봅니다.
정작 윤리와 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윤리를 강조하는 세상이다보니..너무나 혼란스럽기도 하여...^^;
그런 사람들이 주장하는 윤리와 도덕은 합리성과 공존의 룰이 아니라 "짬도"였나 봅니다.길들이기,하인노릇 시키기,짖게하기,합법적(돈,연장자,고참,권력 등등)으로 노예 부리기... 끝이 없네요.ㅋㅋ^^;
세상의 방향에서 윤리와 도덕이 반드시 부조리한 방향만으로는 흐르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보면...
세상을 제대로 보는데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쫙 꿰어져야 하는데...때로는 퍼즐을 맞춰가는 느낌입니다.그래도 하나하나 맞춰져가는 퍼즐이 즐거움입니다.^^()
글과 댓글 가져갑니다.()
많은 괴로움이 일어났던 원인을 살펴보는 과정중에 이렇게 여기서 이런 대화를 나누니 마음이 참 가벼워집니다.
뭔가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지 않고 살려고 고민했고,그러한 것에 종속되지 않기위해서 고민했고
나와는 다른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주는 영향에서 균형을 잡기위해서 고민했고,
억지로 끌려가지 않기위해서 고민했고, 그 고민의 합류하지 않은채 자신의 생각만을 내놓고 덮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했고,
대등해져야 하는데 대등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고, 합리적이지 않는 방안을 놓고 합리적인것처럼 우겨버리는 것에 대해 맞서야 하는 고민을 했고,결국 이 모든 것들이 내안에서 나의 문제로 귀결되어버려 크나큰 무게에 억눌려 버림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거기에서 진짜 윤리가 무엇인지 도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비를 가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에 관심이 갔던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내안의 많은 위선들이 이 사회가 암묵적으로 밀약해놓은 것의 영향속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도 되구요.
그런데 나를 허물어 뜨리고 나만 아니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발견하게 되구요.
관계속의 있는 나를 떼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은...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있는 그 무엇도 나에겐 없다는 것이 더 절망이었지요.
그런데 사회에 작동하는 메카니즘의 속성을 보니....그런 고민도 부질없었다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는 것과 보인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제대로 놀려면,살려면 사람판에서 놀고 살아야 하는데...세상은 사람판도 있고 개판도 있으니...잘 가려볼 혜안은 필요한듯 싶구요.
어느판에 끼던지 그판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고 보면...
이왕지사 벌어진 판이라면 사람판에 끼여서 사람판을 벌려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요즘 좀 덜그러던데 이유없이 계속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는 인격적인 문제도 있지않을까요.. 다른직원은 저에게 않그런데
이사람만그래요 얼굴이 동안이었는데 (일하기전에) 지금 한10년 더늙은거 같애요 (제얼굴이)
머리가 좀 아플것 같습니다.
구조론!!!
많이 배울수, 배우는 방법을 배울수있을것 같습니다.
아마도..그런가 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특히나 사람관계들을 보면 강도질할 의사들이 많음을 보게됩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는데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것을 뜻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고 표현하기도 애매하고,뭔가 그런 느낌들이 오류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려웠었는데...이리 정리하여 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노골적인 그런것들 속에서 사람은 다시 윤리와 도덕에 의존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윤리를 피해가는 사람들은 생산력의 압박을 받지 않기에 그렇고,
윤리를 끌어들이거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생산력의 압박을 받기에 그렇다는 말씀이신것 같고,그렇다고 인간사회에 윤리와 도덕이 아예 필요없다는 말씀은 아니시구요.
윤리와 도덕을 피해가는자들과 윤리와 도덕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자들 중에서...
윤리와 도덕에 딱 걸려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은 결국 윤리와 도덕에 기대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걸까요...?
결국 윤리와 도덕에 지나치게 목매고 사는 사람들은 약자와,하층민,생산력의 압박을 받는 부류 혹은 대중이고 그와 동시에 이들은 윤리와 도덕의 보호를 받는다.라는 말씀이신지요.?
그럼 윤리나 도덕이(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윤리와 도덕말구요) 그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지,아니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지,집단에 따라 혹은 사회에 따라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자들의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어떻게 지키고 안지키는지에 대한 설명도 첨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요.(너무 어리석은 질문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