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론
read 7062 vote 0 2003.12.11 (14:02:05)

인간의 행동은 자연스러움을 따라간다. 이 자연스러움에의 추구가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한가지 요인이 된다. 잘못에 익숙해지면 잘못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임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악당으로 규정하고 자신과 같은 악당에게는 악행이 어울린다고 믿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악인을 선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선행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인위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그 계기는 바깥에서 주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행동패턴을 갑자기 바꾸려면 어색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패턴이다. 하나의 패턴은 다른 여러 가지 패턴들과 연계되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패러다임을 이루고 있다. 이때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행동패턴을 바꾸려면 그 패러다임 전체를 다 바꿔주어야 한다.

전체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여러 가지 행동패턴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이때 인간은 자기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익숙한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에서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폭탄의 뇌관이 반드시 외부에서의 물리적 작용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것과 같다. 뇌관이 없는 폭탄은 절대로 없다. 뇌관을 때려주는 작용은 반드시 외부에서 가해져야만 한다.

찻잔에 물이 담겨 있다. 젓가락 끝으로 찻잔의 한 귀퉁이를 살짝 건드려보라. 미세한 파문이 찻잔 전체에 미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찾잔 안의 물을 살짝 건드려 보라. 파문이 일어나겠지만 그 파문은 내부의 다른 파동에 의해 상쇄되고 만다. 파문은 잔 전체에 미치지 않는다.

파문이 다른 파문에 의해 상쇄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외부에서 작용을 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찻잔 전체에 울려퍼진다. 외부에서 작용한 힘은 설사 아주 작은 힘이라도 그 찻잔 전체에 파동이 전달된다.

패러다임의 문제는 하나를 바꾸려면 전체가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체를 내버려두고 일부분만 바꾼다면 내부에서의 다른 행동과 충돌하여 그 진행과정에서 용해되어버린다. 곧 간섭효과다.

두 야꾸쟈가 전쟁을 벌인다. 이때 두 야꾸쟈는 싸움을 중단할 의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두 파의 보스가 전쟁의 중단을 약속했다 해도 부하들 중에 규율을 어기고 나오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이때 중재자가 필요하다. 중재자는 두 파벌보다 더 강한 세력을 가진 제 3의 대파벌이다. 여기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는 체면이다. 두 파벌 중 먼저 중재 약속을 어긴 쪽이 체면을 상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조직의 체면과 위신이라는 찻잔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파동이 생겨난다. 그것은 매우 작은 것이나 힘이 있다. 비로소 문제는 해결된다. 이를 위해서 야꾸쟈들은 수백년간 이어온 장중한 의식을 활용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가 화해의 맹세를 했다던 그 장중한 의식을 야꾸쟈들이 흉내내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각종 의식, 제사, 행사들은 외부에서의 개입할 통로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인간사회의 체면, 예의, 염치, 도덕의 본질은 외부에서 제 3자의 개입을 통한 분쟁해결의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선한 동물일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 외부에서의 개입이 단조화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더 많이 외부에서 개입할 수단을 획득하게 된다. 교통수단, 네트워크와 미디어의 발전, 각종 문화수단과 매체들을 통하여 인간은 점점 더 깊숙이 타인들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이 경우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단조화에 성공하게 된다.

곧 A B 두 집단 사이에 일어난 마찰이 외부집단 C의 개입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C는 아주 작은 힘으로도 A, B 두 집단의 매우 강력한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데 그 효율성의 잇점은 놀라울 정도여서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제어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 작은 힘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사회의 윤리, 도덕, 체면, 예의, 문화들은 이런 원리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 결과 각종 제전, 의식, 의례, 체면, 행사들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서 오히려 더 많은 비효율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제 3자가 개입하여 중재하는 방법으로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그것을 고정자산으로 생각하여 행사, 제의, 체면, 도덕 따위에 집착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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