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9096 vote 0 2008.07.16 (13:24:34)

“진보정당 실험할 거 없다”
대의제의 파산과 인터넷의 대안’

한국에서 대의제는 파산했다. 유권자들이 자기네의 권익을 옹호해주는 정당에 투표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손으로 귀족을 선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대의제의 본뜻에서 벗어나는 잘못된 투표행위를 한 것이다.

그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보정당 후보들이 ‘나는 귀족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나라당에 투표한 이유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나는 귀족이 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귀족을 원했던 것이다.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자! 그때 그 시절 왜 귀족이 존재했겠는가? 봉건왕조 시대에 빌어먹을 귀족집단이 존재했던 이유는 그 시대에 그 제도가 일정하게 기능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왕조는 절멸되고 봉건귀족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한국의 유권자들은 ‘자신을 돌봐줄 형님’을 필요로 한다. 정실과 연고가 판 치는 세상이다. 그들에게는 ‘빽’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유권자 개개인의 빽이 되어줄 것 처럼 말하고 다닌다. 진보정당 후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 차이다.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공적인 관계보다 사적인 관계를 선호한 것이다. 대의제는 공(公)이고 빽은 사(私)다. 왜 진보정당에 투표하지 않는가? 남이기 때문이다. 왜 한나라당에 투표하는가? 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정하게 경쟁하기를 꺼려하며 부패를 일삼고 한 편으로 뒤를 봐줄 사적인 커넥션을 필요로 했다.

한국에서 보수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공사구분이 안 되는 집단이다. 인류라는 공(公)의 개념보다는 한국이라는 사(私)에 집착하고, 한국이라는 공(公)의 개념보다는 기득권집단이라는 사(私)에 집착하고, 시민사회의 공론보다는 각종 님비현상으로 대표되는 이익집단의 파워에 집착한다.

왜인가? 사(私)는 어둠 속의 실질권력을 작동시켜 어떻게든 유권자 개개인을 심리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권력의 작동과정에 참여시켜 주지만 공(公)은 조금도 참여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모든 공적 조직은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차별의 표지를 부착하고 일반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유권자를 배척한다. 진보매체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혹시라도 유권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 한다.

그들은 암호로만 말한다. 고대 종교집단의 비밀스런 사제들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남이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남이고 마음이 안 통하기 때문에 남이다. 우리가 아니고 남이다. 오죽하면 당명을 우리당으로 한 정당까지 나왔겠는가?

사(私)가 동아리로 묶여 공(公)을 이룬다. 문제는 그 공을 묶어낼 구체적인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공은 공을 묶어낼 수 있는 물적 토대로서의 구체적인 매체와 수단이 존재할 때에 한해서 의미가 있다.

인터넷이 기능하는 이유는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그것이 얼마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상당한 참여가 가능하다. 적어도 공감이라는 형태로 최소한의 심리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클릭을 할 수도 있고 점수를 줄 수도 있다. 찬반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피드백이 있다.

반면 종이신문이 공론의 장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는 종이신문의 경우 사주와 권력자의 사적 커넥션이 가진 각별한 기능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신문사가 있다면 권력측이 그 언론사의 기자나 간부 개개인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 피곤하다. 그러나 조중동 사주 한 명을 상대한다면 편하다. 취임식날 흑석동 방씨 문중에 인사 한 번 올리는 것으로 해결된다.

문제는 이 점이 권력측의 편의일 뿐 아니라 종이신문 종사자의 편의이기도 하다는데 있다. 종이신문 종사자가 자기네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는 조중동의 권언유착으로 대표되는 봉건피라미드 구조가 더 유익한 것이다.

검찰이 노무현 정권 때는 강하게 독립을 주장하다가 이명박 정권에서는 시녀를 자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그러한 피라미드식 이익수렴이 불가능하다가 이명박 정권에 와서 비로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공론방식으로 하면 평검사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수단을 잃는다. 대통령과 평검사는 남남이다. 정실을 잃고 연고를 잃는다. 십여 년 간 선배를 섬기고 후배를 키워서 닦아놓은 무형의 자산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불안해진다. 권력과 유착해서 얻는 것이 없는 만큼 독립하려 한다.

반면 이명박의 사적채널이 작동을 개시하면 이익수렴 현상이 일어나서 평검사 개개인이 어떻게든 중앙과 연결된다. 뒷문으로 채널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유착한다. 결코 노무현은 만만하고 이명박은 무서워서 노무현에게는 대들고 이명박에게 복종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점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검찰조직의 집단이기주의로 볼 때 노무현 패러다임 하에서는 독립하는 것이 이익이므로 독립을 꾀하고, 이명박 패러다임 하에서는 유착하는 것이 이익이므로 유착을 꾀한다. 언제라도 이익을 좇아가는 것이다. 당연하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신문사 사주가 대통령과 핫라인으로 연결된다면 신문사 종업원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따뜻한 느낌을 얻는다. 분명히 이익이 있다. 그 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한 개혁의 외침은 헛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대의제가 작동하고 정당이 기능하는가는 당원과 지지자 개개인이 자기의 입장을 중앙과 연결시킬 소통의 채널이 확고하게 열려있는가에 달려있다. 동조하고 공감하고 열광할 그 무엇이 있는가이다.

현재 네티즌 세력은 민주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중앙과 소통할 채널이 없다. 꽉 막혔다. 발언할수도 없고 동조할 수도 없다. 정당 게시판에 몇 자를 남겨보지만 허무할 뿐이다. 메아리가 없다. 의욕을 잃는다.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원 박사의 인터뷰 '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와 그에 대한 반론글 최광은 사회당대표의 '진보정당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관련이 있다. 나의 견해는 이렇다.

한국에서 대의제는 실패다. 겉으로 표방한 이념을 보지 말고 그 안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보라. 그들은 언제라도 진보나 보수의 이념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뒷배를 봐줄 빽을 따라갈 뿐이다. 그 구조를 고치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풀뿌리 진보타령은 허무할 뿐이다.

오늘날 이명박 집단이 날로 친일하고 친미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보수주의 이념에 나라를 팔아먹으라고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나라팔기에 열심인 이유는 뒷배를 봐줄 형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폭세계는 형님의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 조폭언론과 조폭정당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본형님, 미국형님에 기대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수주의가 아니라 연고주의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한 채 전개되는 풀뿌리 진보담론은 허무할 뿐이다. 무엇이 풀뿌리 진보인가? 점조직이나 만들어 한 줌도 안 되는 동지들끼리 안면이나 닦고 맥주나 마시고 스킨십이나 해봤자 수구 기득권 집단의 연고주의와 같을 뿐이다.

수구집단은 룸살롱에서 배 맞추고 먹물좌파는 맥주집에서 배 맞추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이 같다.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들이 풀뿌리 진보라고 표방하는 그것이 실제로는 풀뿌리 보수의 모방과 아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풀뿌리 보수가 사(私)로 연고를 맺는 것이라면 풀뿌리 진보는 공(公)으로 매체를 장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다. 그러므로 길은 하나 뿐이다. 네티즌이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터넷 그 자체가 정당으로 진화하는 수 밖에 없다. 진보정당은 더 이상 실험할 게 남아있지 않지만 인터넷은 아직 실험할 게 남아있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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