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와 송윤아 어이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황석영, 김지하의 뻘짓 뿐이랴. 그야말로 유인촌이 황지우를 짓밟고, 깡패가 시인을 죽이고, 새들도 둥지를 떠나는 시대. 글쟁이가 붓을 놓고 속세를 등져야 하는 타이밍은 지금. 최진실의 죽음 이후 썼던 일련의 글 기억하시는지. 깊은 슬픔. 한국인의 수준낮음에 대해서. 참 할말이 없다. 얼척이 없다. 이런건 원래 안 통하는 거다. 꽉 막혔다. 말로 해결될 성질의 것 아니다. 문을 걸어 잠글 수 밖에. 나가라. 제발 이 사이트 방문하지 말아달라. 당신네 쓰레기들과는 대화 안한다. 면상 치워라. 안 보고 살자. 수준이하들과는 대화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소통법. ‘당신네들과는 대화가 안 통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그나마 약간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다.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는 시대. 사람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돼지들을 반길 사람은 없다. ### 베트남 오지나 혹은 그와 비슷한 곳을 여행한 사람들이 쓰는 여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시골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네사람들의 멱살잡이 싸움.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는 충격적이다. 한쪽에서는 ‘동네방네 사람들아. 이내말씀 들어보소! 저 인간이 날 죽이려 하네’하고 고함치며 달아난다. 슬리퍼는 벗어지고 머리칼은 헝클어졌다. 눈동자는 촛점 잃었다. 그 뒤로 한 사내 쫓아온다. 역시 눈동자 돌아갔다. 입에 거품 물었다. ‘저 년을 오늘 꼭 죽이고 말지’ 소리 지르며 쫓아오는데 한 손에 식칼이 들려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속도는 빠르지 않다. 뒤뚱거리며 주변을 계속 둘러본다. ‘왜 안말려, 나 좀 말려줘’ 하는 표정. 동네사람들 슬금슬금 나온다. 말린다고 말리는데 그게 더 싸움을 부추기는 셈. 실랑이는 한 시간이나 계속된다.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른다. 퍼질러 운다. 그 엉망이 된 꼬라지 보라지. 인간의 추악함이라니. 환멸이다. 구토다. 문제는 그 희한한 연극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지나가는 마을사람 있고. 구경났다고 자리깔고 앉아 쳐다보는 꼬맹이들도 있고. 그 사이로 농부가 몰고가는 무심한 황소 한 마리 어슬렁거리고 지나가면 잠시 싸움은 중단되고. 그리고 또 계속되는 악다구니와 멱살잡이. 웃기는 슬픈 연극. 희망은 없다. 암담함의 극.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완벽한 절망. 가난과 무지. 추태와 살풍경. 문제는 그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 70년대만 해도 우리 시골에 흔한 풍경이었다. ### 80년대 이후 사회에 ‘희망’이라는 신선한 공기가 보급되자, 그런 추한 풍경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졌다. 하루에 한 건씩은 구경하던 골목길 멱살잡이 싸움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싸움판 벌일 젊은이들 도시로 갔다. 금새 도시문화에 정착하더니 넥타이에 양복 잡숫고 의젓한 신사 흉내를 내곤 하는 것이었다. 부부싸움을 해도 언성이 담을 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사람됐나 싶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 본질은 남아 있었다. 오프라인에선 남들 보는 눈을 의식하여 사람인척 하지만,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는 본래의 짐승으로 돌아가버리는 거. 30년의 진보를 하루아침에 까먹고 말이다. 인간들 수준이 이러하니 이명박도 과분하다. 그렇다. 지난 10년은 상당히 거품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때문에 일어난 착시현상. 한국인들 수준이 원래 이 정도다. 설경구와 송윤아를 시비하는 군상들 보라지. 그런 문화지체의 쓰레기들이 이 땅에 있다는건 큰 슬픔이다. 도무지 우리가 베트남 오지보다 낫다는 증거가 없다. 조금 더 진보했다는 증거가 없다. 나야 TV를 안 보니 설경구, 송윤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걸 안다고 떠벌이는 자체로 큰 슬픔이다. 쓰레기들아! 알면 말하냐? 너희는! 응! 그 수준이냐? 그렇게 배웠느냐? 아무리 야만하기로서니. 그런 쓰레기들과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내쫓아야 한다. 베트남 오지의 그 군상들 아닌가. 왜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여 왈가왈부하며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21세기 하고도 2009년 지금에 말이다. 점잖은 사람이라면 알아도 몰라야 하는 법. 선비라면 그걸 안다고 아는척 하는 사람과는 대화도 하지 않는게 교양. 마주치지도 말아야 한다. 혹시 나타나면 얼른 쫓아내야 한다. 인간다움이 따로 있으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비슷한 일은 많다. 군가산점 문제와 관련해 TV토론에 나온 페미니스트들을 적으로 삼아 전쟁 벌이는 마초들 꼬라지 보라. 그런 쓰레기들이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유감천만. 부끄럽지도 않는가? 세상에 바보가 많지만 이마에 ‘나 바보요’ 하고 떡 써붙이고 다닌다는건 정말 혐오감을 주는 거다. 왜 이런 무식한 일이 일어날까? 구한말의 ‘형평사운동’과 비슷하다. 그때 그시절 ‘백정들 쳐죽이겠다’고 설치고 다닌 상놈들과, 페미니스트 죽이겠다고 설치는 마초들과, 송윤아, 설경구 씹는 쓰레기들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멀쩡한 엘리트에, 지식인에, 상류층에, 교수에, 판사라도 불가촉천민이 집무하던 사무실을 인계받으면 불가촉천민의 더러움을 정화하는 푸닥거리 한바탕 하고 난 다음에 사무실을 쓴다. 못 배운 사람이 몰라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멀쩡하게 배운 사람이 그런 짓을 한다. 무엇인가? 한국의 못배운 아줌마들은 자기보다 낮은 신분으로 이혼녀와, 과부와, 첩과, 고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전처와 아이들의 신분이 하락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개인의 행복이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정도의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신의 행복이 자신의 판단 아닌 곳에 있다고 주장하며, 엉뚱한 권리를 내세우지? 그것은 한국에 신분제도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에는 아줌마 밑에 첩이 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클린턴은 이혼을 네번 한 엄마의 아들이요. 오바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불행해졌나? 대통령만 잘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신분제사회이므로 설경구 때문에 신분하락 일어났다는 거다. 구한말 상놈들이 백정잡아 몰매주듯 일제히 궐기한다. 불가촉천민 거주지에 난입하여 구타를 일삼는 후진국 인도의 폭도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수준이하의 행태는 배운 사람도 예외가 없다. 김기덕의 나쁜남자가 왜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토되는가? 난 정말 이해를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황당한 이유가 있었다. 된장녀페미니즘 혹은 공주병페미니즘에 중독된 쓰레기들 있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에는 창녀라는 신분제도가 있다. 창녀는 평민보다 신분이 낮다. 나쁜남자가 평민을 창녀로 신분하락시켰으니 괘씸하다. 이건 정말 상상 밖의 쇼킹한 접근법이었다. 그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하다니. 허를 찔렸다는 느낌. 아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구나! 그러고보니 그 광란의 비토가 이해가 되네. 지금도 똑 같다. 이 시대에 설경구, 송윤아가 무엇인가? 윤원형의 첩 난정이 첩실 주제에 감히 본부인 독살하고, 정실부인 자리 꿰차는 드라마보고 주먹을 불끈 쥐며 ‘저 저 저 저 쳐죽일 년!’ 하고 몸을 부르르 떤다. 그 광기.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얼마나 추한가! 문화지체다. 그들은 아직도 봉건사회를 살고 있다. 네번 결혼한 사람의 자식이 미국 대통령 되는 이 개명시대에 그들은 문화의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백년이 지났는데도. 왜 인도는 변하지 않는가? 왜 아직도 불가촉천민이 존재하는가? 왜 아랍은 변하지 않는가? 왜 아직도 더러운 명예살인이 자행되는가? 남의 나라 후진 행태에 고개를 갸웃했던 내 과거가 부끄럽다. 그게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었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여러번 결혼, 피카소의 무수한 이혼, 존 레넌의 시끄러운 이혼과 재혼. 한국인들에게는 쳐죽일 윤원형과 독살스런 난정이었던 거다. 하긴 서구인들도 ‘오노 요꼬’를 마녀라 욕하며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다니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쓰레기들은 서구에도 숱하게 있었던 것이다. 정말 한심하다. 그래서 당신들은 어쩌려는가? 찰리 채플린은 몰매놓아 죽이고, 피카소는 사지를 찢어죽이고, 존 레넌은 조리돌림으로 죽이고, 송윤아와 설경구를 죽이고 행복해지겠는가? 이 기준을 들이댄다면 유럽에 문화인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몰죽음이다. 이런 희망이 없는 나라에, 이런 암담한 나라에, 이런 식으로 눈에 핏발 세우고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하는 나라에, 이렇게 남의 발목잡고 방해하고 시기하고 심통부리는 나라에서 노벨상을 꿈꾼다고라고라? 자유가 없는 곳에 행복이 없다. 자유가 없는 곳에 미래가 없다. 독재가 권력자의 물리력에 의해서만 자행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이라면 어떨까? 설경구, 송윤아는 당장 외국으로 날라버렸을 것이다. ‘나 이런 더러운 나라에 안 살아’ 하고 공항에 침뱉고 떠날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유럽의 천재들이 전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덕분에 미국이 유럽을 앞질러 버렸다. 유럽 낙후되었다. 유럽사람들 깨달았다. 한국사람처럼 무식하게 남의 사적영역에 침범하면 안 되는구나. 그건 인간이 아니라 돼지나 하는 짓이구나. 그런건 알아도 몰라야 하는구나. 안다고 말하면 바보되고 상종 못할놈 되는구나. 인간취급 받으려면 신사처럼 점잖게 행동해야 하는구나. 그게 교양이구나. 그렇게 살짝 깨우쳐서 제법 진보했다. 그런데 한국은 나라가 고립되었다. 문화인이 사고치고 도망갈 이웃나라가 없다. 일본가랴 중국가랴? 사실이지 18세기 이후 유럽 예술가들 중에 남의 나라에 정착하지 않고, 제 고향 지킨 사람 몇이나 되나.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제게 주어진 몫의 자유를 반납하고 자청하여 노예가 되는 쓰레기들은 어디에나 있다. 제발 인간이 되고 볼 일이다. 행복이 주체적인 자기 삶 바깥의 어떤 신분제도에 있다고 믿는 한 인간 되기는 영 글렀다. 신분제도를 용인하고 편승하는 한 당신들은 상종못할 불가촉 천민이다. 분명히 말하자. 지구 상에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다. 백정이란 것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마녀가 없듯이 그건 없는 거다. 마녀가 없으므로 마녀사냥은 안 된다. 백정이 없으므로 백정사냥은 안 된다. 뿐이랴. 첩은 없다. 첩이 없으므로 첩사냥은 안 된다. 정실부인도 없다. 과부도 없고 이혼녀도 없고 고아도 없다. 그런 것은 원래 없다. 고아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말라. 꼭 구분하고 싶으면 소년가장이라 불러라. 지금은 자기 이름으로 말하는 시대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자식, 이런 식으로 남의 이름 팔지 말라. 부끄러운 봉건시대 잔재다. 그게 신분제도다. 창피하지도 않는가. 말을 말자. 쓰레기들을 내 입으로 언급해봤자 내 입만 더러워질 뿐. 그래도 계절마다 한번씩 대청소는 해야 하겠지만. 좀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은 알아서 나가주세요. 이곳은 인간의 공간이랍니다. ∑ |
치솟는 힘찬 홈런볼~
'이곳은 인간의 공간이랍니다.'... 이 대목이 바로 홈런입니다. 아침이 상쾌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 백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