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

 

인과율은 모든 논리의 궁극적인 출발점이다. 논리는 어떤 둘을 연결지어 그 관계를 추적한다. 관계망의 좌표 안에서 성립하는 상대적인 위상이 계측된다. 이로써 모든 학문과 지식의 기초로 삼는다.

 

어떤 둘이 하나의 사건 안에서 필연의 고리로 이어질 때 둘 사이에 인과율이 성립한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관계망의 좌표 안에서 멀고 가까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필연의 고리 안에 있다.

 

여러 사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건이어야 인과율이 성립한다. 족보로 따지면 모든 인류가 친척이지만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 사이에 인과율이 성립한다. 하나가 형이면 하나는 반드시 아우다.

 

한 부모를 공유하는 친형제가 아닌데도 둘이 닮았다면 이는 필연이 아닌 우연이다. 이 때 인과율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과율의 이해는 자식 둘을 통일하는 어미 하나에서 필연성을 해명하는데 있다.

 

원인측과 결과측은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두 항이다. 많은 오류는 원인과 결과를 별개의 두 사건으로 착각하는데 따른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하나의 사건을 구성함이 인간 지식의 첫 번째 퍼즐이다.

 

인과율을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로 인식한다면 피상적인 인식이다. ‘있다’가 두 번 반복되므로 두 사건이다. 이미 오류다. ‘원인과 결과의 쌍이 하나의 사건을 구성한다’로 인식해야 바르다.

 

◎ 인과율 – 원인과 결과의 쌍이 하나의 사건을 구성한다.

 

계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사건이다. 에너지를 투입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논리 전개의 첫 단추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단일 에너지 투입에 대한 원인과 결과의 쌍이다.

 

원인과 결과의 쌍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쌍, 질과 량의 쌍, 탑 포지션과 바텀 포지션의 쌍으로 전개한다. 둘이 짝을 지은 쌍의 형태가 아닌 곧 상호작용의 구조를 가지지 않는 사건이나 존재는 없다.

 

여기서 도출되는 것이 세트 개념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세트, 곧 갖춤의 형태로 존재한다. 존재라는 단어도 자리 존(存)과 임자 재(在)의 쌍으로 성립한다. being 역시 사건의 진행개념이 있다.

 

인과율의 중핵은 일방향성이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로의 일방향적 이행만 있으며 결과에서 원인으로의 역방향 이행은 없다. 결과에서 원인으로 피드백 이 일어난다면 다른 사건으로 구분해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반드시 머리와 꼬리가 있으며 시간의 일방향성이 적용되어 머리에서 꼬리로만 진행한다. 이때 꼬리에서 머리로 되먹임이 되는듯이 착각되는 사건의 제 2회는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갈뿐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일은 없다. 1회의 사건과 2회의 사건 그리고 반복은 다르다. 이때 판정의 기준은 에너지의 투입이다. 1회의 에너지 투입에 따른 결과가 사건 1회다.

 

1회는 주사위를 던지되 1차례 에너지를 투입한 것이다. 반복은 한번 투입한 에너지로 여러번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1회, 점심식사는 2회, 아침식사 안에서 여러 숟갈은 반복이다.

 

이 셋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제 1회의 결과는 결코 제 2회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두 사건은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를 혼동하므로 양질전화의 착오가 일어나서 모든 오류의 원천이 된다.

 

엔진이 바퀴를 굴릴 뿐 결코 바퀴는 엔진을 굴리지 않는다. 봄에서 겨울로 갈뿐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는 가지 않는다. 양이 모여서 질이 되는 일은 결단코 없다. 이때 반드시 추가분의 에너지 투입이 있다.

 

이를 무시했다가 부족한 에너지를 추궁당하는 형태로 인간의 실패는 일어난다. 바퀴로 엔진을 굴리려는 하극상, 역주행, 거역의 형태로 모든 실패는 일어난다.  무엇이 엔진이고 바퀴인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