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3700 vote 0 2002.09.10 (11:35:17)

論은 理를 사물에 적용하여 드러난 바를 언어로 정립한 것이다. 먼저 하나의 리(곧 眞理다)가 존재하고 그 리는 사물에 내재해 있으며 그 사물이 운행할 때 내재한 리가 드러나고 그 드러난 바를 언어로 정립하여 논이라 한다.

사물에 내재한 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 운행함에 있어서의 반복성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른 두개의 사실이 하나의 동일한 패턴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의 리를 발견해낼 수 있다.

무언가 실천하기에 앞서 반드시 그 결과를 예측하고서야 착수하게 되며 리는 그 예측하는데 쓰여지고 예측이 들어맞음으로서 검증된다. 그 동일한 패턴의 반복을 통하여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실을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이 맞아떨어짐을 통하여 리는 인정된다.

-어제 어떤 일이 일어났다.(어제의 태양이 떴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오늘의 태양이 떴다)
-고로 내일 역시 어제,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내일의 태양이 뜬다)

이것이 론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같게 된 근거가 리다. 리는 물리학을 통해서 발견되고 수학을 통해 정립되고 미학을 통해 적용되며 논리학을 통해 판단되고 언어학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므로 어떤 하나의 논(논리)를 주장하려면, 그것이 경제학이론이든 사회학이론이든 문예이론이든을 막론하고 반드시 언어학과 논리학과 미학과 수학과 최종적으로 물리학의 검증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케인즈가 투자승수이론을 주장한다든가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을 주장한다든가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주장한다든가를 막론하고 그것이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되기 위해선 먼저 물리학에서 근거를 댈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근거로 댄 유물론(양질전화)은 물리학자에 의해 인정되지 아니한 틀린 이론(엔트로피의 법칙과 충돌)임이 확인되며 여기서 명백히 마르크스주의는 사망한다. 마찬가지로 케인즈 역시 물리학에서 동일한 법칙을 찾아내어 입증해야 하고 주체사상을 주장하려면 김일성역시 주체물리법칙을 제시해야 한다.

물리학의 理는 만유의 물리적 등방성과 대칭성에서 출발한다. 뉴튼의 운동법칙이 여기서 기초하고 있다. 이 부분은 매우 쉬우므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그 어떤 견해이든 주장이든 사상이든 논리든 간에 이 기본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그것은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대칭되는 것이 있으며 여기서 최초의 A와 이에 대칭되는 B는 양자를 통일하는 집합 C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A가 요소가 되고 B를 만나 하나의 패턴이 되며 C가 더하여 구조가 되고 이 구조의 전개 D로 시스템이 되며 이 시스템의 작동 E에서 ‘일’을 얻는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다섯개의 성질이 발견되는데 다음과 같다.

요소A-어떤 뭔가가 있다.
대칭B-거기에 뭔가가 대칭되어 있다.
구조C-그 뭔가와 뭔가를 통일하는 뭔가가 있다.
시스템D-그 뭔가가 집적하여 하나의 얼개를 이루고 있다.
일E-그 얼개가 작동하여로 일을 해낸다.

최종적으로 일이 남으며 일은 시스템에 의해 가능하고 시스템은 구조들로 이루어져 있고 구조는 대칭에 의하여 성립하며 그 대칭을 이루는 것은 두개의 요소이다.

이것을 리(진리)라고 한다. 우리는 물리현상을 관찰하여 이를 발견해낼 수 있다.

하여 <신자유주의 논쟁> 이라던가 <제 3 의 길은 몰락했는가> 또는 <한국의 대동북아시아 외교에 대하여> 같은 주제를 가지고 논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거기서 먼저 일을 제시하고 그 일을 해내는 시스템을 규명해보이고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조를 드러내보이고 그 구조를 지지하는 대칭을 찾아내고 그 대칭하는 두 요소를 지적하는 데서 하나의 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 구체적이며 물리적인 성과로서의 일이 발견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시스템이 찾아지지 않고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구조가 보이지 않고 그 구조를 지지하는 대칭이 없으며 그 대칭을 이루는 두 요소가 없다면 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일’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류라는 것이 존재해서 문명이라는 ‘일’을 해내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문명이 없다면 우리는 자본주의고 사회주의고 간에 주장할 수 없다. 기독교라면 천국에 가는 것이 일이 되겠고 불교하면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일이 되겠고 하여간 무언가 일이 제시되지 않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민족주의라는 것을 주장할라치면 그것은 어떤 일을 해내는가를 물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아니해낸다면 그 민족주의란 것은 이론으로서 성립하지 않는다. 과연 민족주의는 뭔가 일을 해내고 있는가?

이렇게 먼저 일을 제시하고 그 일을 하는 시스템을 찾고 시스템을 지지하는 구조를 찾고 구조를 세우는 대칭을 찾고 대칭을 구성하는 요소를 제시하는 것이 연역적인 접근이다.

반대로 하나의 요소를 단서로 출발하여 또 하나의 요소를 더하여 대칭을 찾고 대칭을 더하다가 구조가 발견되고 시스템이 찾아지고 최종적으로 일을 발견하는 것이 귀납적 접근이다.

범죄수사를 한다면 그 일은 대개 돈이 되는 어떤 이익이다. 즉 그 사건으로 하여 가장 이익을 본 사람이 곧 범인인 것이다.

이렇게 먼저 일을 발견하고 시스템을 찾아가는 것이 연역적 수사요 반대로 담배꽁초 하나로부터 추론하여 마침내 그 일(범죄자가 얻으려한 이익)을 찾아내는 것이 귀납적 수사가 된다.

여기까지가 만유에 공통된 보편진리다. 이 진리에서 어긋나는 경우는 절대로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규칙을 적용하여 누가 맞는 말을 하는지 허튼소리를 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 규칙이 진리인 것은 인간의 언어가 또한 이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단어요소가 주어와 술어로 대칭하여 구(구조)을 형성하고 구조가 집적하여 문(시스템)을 형성하며 문이 구사하여 의미(일)를 실어 비로소 말이 되는 까닭이다.

의미가 없으면 그것은 말이 아니다. 일이 없으면 그것은 론이 아니다. 말이 아니면 헛소리요 론이 아니면 역시 허튼 주의, 주장이 된다.

또한 무슨 론을 주장하던지 간에 반드시 이 규칙을 충족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위 규칙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검사하므로서 우리는 이게 말이 되는 주장인지 아니면 불분명한 여러가지 증상들에 대한 두루뭉수리 정의에 불과한지 알수가 있다.

병으로 대자면 뭐뭐병(론이 되는)인지 뭐뭐증후군(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인지가 판단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신자유주의는 분명한 실체(일과 시스템과 구조와 대칭과 요소)가 없는 최근에 나타난 몇가지 세계경제적 현상에 대한 두루뭉수리접근이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무역의 필요성이 생겼는데 무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주의침략이 나타났고 양차세계대전 이후 기술발전으로 그 모순이 대거 해소되었는데 냉전시기 핵위기로 일정부분 무역이 억제되고 보호무역이 장려되다가 냉전이 해소되면서 최근의 첨단기술발전으로 새로이 시장에 의해 무역의 확대가 요청되면서 보호무역논리의 한 축이었던 냉전해소로 다시 국가간 무역을 위주로 하는 경제이론이 크게 주장되는 것이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이는 하나의 경향이거나 한 시대의 특성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명차원의 이론이 될수 없는 즉 의학으로 말하면 하나의 병이 아니라 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알맹이로서의 일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 조선업이 대거 수주에 성공한 것은 인터넷 덕분에 전자상거래가 증가하고 전자상거래는 무역을 증대하고 무역이 증대하면 컨테이너선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인데 요즘 한국인들이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직접 구매하듯이 인터넷 때문에 시장이 무역의 증대를 요청하고 있고 경제학자들도 정치가들도 이에 대응하려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다.

그것은 암이라거나 결핵이라거나 천연두라거나 하며 판단될 수 있는게 아니고 여러가지 건강상의 부주의에 의한 종합적인 허약체질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 곧 리를 적용하여 논을 찾아내거나 검증할 수 있다. 일이 없거나 시스템이 없거나 구조가 보이지 않거나 대칭이 찾아지지 않거나 요소가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무언가 론을 주장하려는가? 주체사상을 주장하든 미군철수를 주장하든 뭐를 주장하던 간에 반드시 그 일(성과)을 제시하고 일을 해내는 시스템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지지하는 구조를 드러내고 구조를 꾸미는 대칭을 제시하고 두 대칭요소를 증거해보이라. 그렇다면 그 론은 옳다.

내가 아는 진보, 혹은 좌파의 론은 그 일이 곧 문명의 진보로 최적의 다수가 최적의 행복에 이르는 것이며 시스템은 정치, 경제적으로 각론이 있을수 있고 구조에 있어서는 민주주의, 자본주의이며 대칭으로서 보수, 반동들이 있고 요소로서 인간이 있다. 그 얼개는 여러가지 언어로 설명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강준만의 작업을 지지하고 조선일보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일(성과)과 시스템(지식인의 행동통일)의 작동을 충분히 고려한 결과다.

뭐가 옳은가? 시스템을 작동하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뭐를 말하든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이 지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이며 시스템을 도외시하고 감정에 호소하거나 특정 인물을 추종하거나 구두선에 불과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이다.

일테면 일정부분 원칙과 명분을 넘어서 까지 김대중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시스템을 건드리기 위해선 파워가 필요한 까닭이다.

생산적인 일과 시스템의 작동을 도외시한채 말을 앞세우는 명분과 원칙의 구두선으로 되는 주장은 틀린 생각이다.

이렇게 우리는 진리에 의거 논을 세우고 제 사실들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미시적인 각론에 빠져서 총론, 원론, 거대이론을 보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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