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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8087 vote 0 2007.06.14 (18:52:34)

<개인적인 글입니다>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수학은 과학의 언어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타인과 정보를 교류하고 성과를 공유한다. 과학은 수학을 통해 학문분야 사이의 경계를 넘어 타 분야와 정보를 교류하고 성과를 공유한다.

뉴튼 이전은 연금술의 시대였다. 뉴튼의 고전역학이 표준을 제시하자 곧 수학이 과학의 언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학문분야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과학은 연금술의 한계를 극복하여 근대과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뉴튼의 고전역학이 모범을 제시한 이후 수학의 ‘언어 역할’에 의해 물리, 생물, 천문, 화학, 의학 등으로 제각기 흩어져 있던 과학의 제 분야를 하나의 통합적인 시선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 것이 근대과학의 출발점이다.

이렇듯 서로 떨어져 있는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있다. 반드시 언어가 되고 매개가 되는 연결고리가 있다. 그것이 방아쇠 역할을 할 때 비로소 표준이 제시되고 정보가 교류되어 거대한 진보가 일시에 일어난다.

떨어져 있는 둘을 연결시키는 문제. 그것이 구조론이다. 건물의 기둥과 들보를 연결하는 것이 건축의 구조다. 구조는 이와 같이 따로 떨어져 있는 둘 사이의 연결지점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을 탐색한다.

구조론은 수학의 언어다. 물리와 천문과 화학을 수학이 연결한다면 대수와 기하, 해석학과 위상수학은 구조론이 연결한다. 구조론에 의해 수학의 제 분야는 전체적으로 조망되고 하나의 일관된 논리체계로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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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연이 먼저 있었다. 인간이 와서 그 자연과 맞선다. 자연과 인간의 맞섬에 의해 자연의 내부에 숨은 결이 드러난다. 그것이 진리다. 진리로 부터 수학을 유도하는 원리가 구조론이다. 구조로부터 과학을 유도하는 논리가 수학이다.

자연은 진리의 결을 드러내고, 진리는 구조로 조직되며, 구조는 수학이라는 표준을 성립시키고, 수학은 사물에 침투하여 과학으로 전개한다.‘ 자연≫진리≫구조≫수학≫과학’으로 전개하여 최종적으로 인간의 손에 결과물이 주어진다.

세상은 이러한 ‘유도와 전개’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되어 있다. 진리는 구조를, 구조는 수학을, 수학은 과학을 유도한다. 유도한다는 것은 ‘잇는다’는 것이다. 앞 단계의 유도에 의해 다음 단계가 전개된다.

세상은 전부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한 쪽을 잡아당기면 다른 부분들도 줄줄이 따라온다. 이때 끌어내는 것이 ‘유도’면 함께 따라오는 것이 ‘전개’다. 어떤 둘이 만나면 그 안에서 셋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은 새로운 수학이다. 수학이 과학의 언어라면 구조는 수학의 언어다. 컴퓨터 언어가 인간의 의지를 해석하고 명령을 수행하듯이 구조는 자연의 의지를 해석하고 그 명령을 수행한다.

컴퓨터의 정보처리는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일 사이클을 가진다. 자연이 입력하면 진리로 저장되고, 구조로 제어되고, 수학으로 연산되고, 과학으로 출력된다. 이로서 학문의 생성하고 소멸하는 일 사이클이 완성된다.

입력과 저장이 컴퓨터 밖에서 안으로 진입하는 유도과정이라면 제어와 연산과 출력은 컴퓨터 안에서 밖으로 되돌아나가는 전개과정이다. 이렇듯 구조론은 자연의 존재와 인간의 학문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유도 ≪-≫  전개

● 자연≫진리≫구조≫수학≫과학
●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

수학은 고대의 대수와 기하에서 근래의 위상수학과 해석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집합을 규명하는 대수학과 도형을 규명하는 기하학이 서로 통한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려져 있지만 그 원리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

곡면을 규명하는 위상수학과 극한을 규명하는 해석학도 하나의 울타리 안에 통일될 수 있다. 수학의 제 분야가 하나의 기준에 의해 일관되게 해석되어야 한다. 구조론이 할 수 있다. 구조론에 의해 수학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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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른 체계 내 ‘대칭과 평형의 원리’를 규명한다. 이 하나의 원리는 기하와 대수, 위상수학과 해석학을 비롯한 기존의 모든 수학분야에 두루 적용될 수 있다.

‘대칭과 평형의 원리’를 간략하면 ‘~이면 ~이다’로 정의될 수 있다. ‘~이면’이 작용이면 ‘~이다’는 반작용이다. 이때 작용과 반작용의 대칭에 따른 평형은 서로를 물리적으로 구속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맞섬이 대칭이면 작용과 반작용의 상대적인 구속은 평형이다. 천칭저울의 두 접시가 마주보고 대칭을 이룰 때 한쪽 접시에서 일어난 물리량의 변화가 맞은편 접시에 영향을 주는 성질이 평형이다.

대칭을 이룬 둘은 서로 구속한다. 대수에서는 집합이 원소를 구속하고 기하에서는 선이 점을 혹은 입체가 각을 구속한다. 이렇듯 존재는 대칭과 평형의 원리에 의해 서로 물고 물리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도형을 구성하는 세 각이 서로를 구속하는 성질을 나타낸다. 직각삼각형을 구성하는 세 각들 중 한 각의 위상이 제곱으로 변하면 다른 두 각들도 이에 연동되어 함께 제곱으로 변한다.

수학의 근본 문제는 ‘1의 정의’다. 1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가 출발점이며 다른 모든 사항들은 여기에 연동되어 결정된다. 구조론은 대칭과 평형의 원리로 1을 정의하고 다른 모든 수학분야들을 여기에 연동시켜 설명한다.

어떤 주장이든 유도과정이 명석하게 밝혀져야 한다. 유도과정이 없이 ‘원래부터 그렇다’는 식의 ‘선언’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모든 이론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법칙에서 유도되어 나와야 한다.

구조론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서 유도된다. 작용 반작용에서 대칭과 평형의 원리가 유도되고, 여기서 구조론이 유도되고, 구조론에서 수학이, 수학에서 과학이 전개되며, 과학의 성과가 인간의 손에 구체적인 결과물을 안겨준다.

구조론에 따르면 숫자 1은 작용과 반작용의 평형에 따른 상호구속의 1이다. 하나의 사과가 1인 이유는 사과를 바라보는 인간과 정대칭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이때 사과와 인간의 대칭은 평형에 이르러 서로를 물리적으로 구속한다.

사과의 수량에서 일어난 변동은 인간의 인식에서도 같은 비례로 변동을 일으킨다. 사과의 수량과 인간의 인식 사이에는 ‘~이면 ~이다’라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성립한다. ‘~이면’이 유도하면 ‘~이다’로 전개된다.

기하라면 ‘×’로 설명할 수 있다. 각 ‘>’가 커지면 각 ‘<’도 같은 비례로 커진다. 둘은 작용 반작용에 의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물리적으로 구속하고 있다. ‘>’의 정보가 ‘<’로 전달된다.

1보다 작거나 큰 수는 사과와 인식 사이의 대칭이 평형을 이루는데 필요한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 1보다 크거나 작은 수는 그 주어진 수치의 비례조건을 충족시킬 때 한해서 둘의 대칭이 평형에 도달한다.

● 0 .. 평형이 존재하나 대칭되지 않는 수.

● 1 .. 정대칭에 의하여 평형에 도달한 수.

● 0, 1 이외의 수.. 대칭되나 그 비례의 조건을 충족해야 평형인 수.

어떤 수는 그 수가 가리키는 비례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1이 되는 수인 것이다. 2나 3이라는 수는 2분(分)이나 3분(分)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한해서 정대칭의 평형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듯 구조론은 기존의 모든 수학 분야를 새롭게 정의하고 통일한다. 하나의 기준에 맞추어 일관되게 설명한다. 수학의 제 분야가 구조론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의해 통일적으로 조망되는 것이다.

어떤 분야이든 초기조건의 규명이 중요하다. 하나의 존재가 처음으로 유도되어 자리를 잡는 과정이 정립되어야 한다.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이후 전개될 모든 양상이 전체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0은 평형, 1은 정대칭에 의한 평형, 2 이상의 모든 수는 1의 전개다. 0은 대저울을 거는 중심축이며 1은 대저울의 추다. 2와 3은 저울이 평형에 이르기 위해 추를 움직여가야 하는 거리다.

구조가 저울이다. 수학의 여러 분야는 저울의 눈금이고 과학은 그 저울로 계량할 사물이다. 우리는 구조라는 저울에 수학이라는 눈금을 읽어 과학이라는 사물을 계량한다. 0이라는 저울에 1이라는 추를 움직여 2와 3이라는 눈금을 읽는다.

하나의 태양광이 프리즘을 만나 일곱빛깔 무지개로 전개되듯이 하나의 진리가 구조론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대수와 기하, 해석학과 위상수학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구조론은 수학이 자연의 진리로부터 유도되는 과정을 규명한다.

패러다임의 교체

근대과학을 뒷받침하는 세계관은 원자론과 인과율에 기반한 요소환원주의와 결정론의 세계관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은 20세기 들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결정론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아직 제안되지 않았다. 과학계는 여전히 원자론-환원주의-인과율-결정론의 근대적 패러다임을 버리지 못하면서 양자역학의 확률론과 불분명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구조론은 원자론을 대체한다. 요소환원주의를 구성하는 인과율 역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충족시키는 ‘유도와 전개의 논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구성된다.

● 결정론 : 원자론 - 요소환원주의 - 원인과 결과 - 귀납법 - 에너지

● 확률론 : 구조론 - 엔트로피증가 - 유도와 전개 - 연역법 - 정보

요소환원주의는 원자론에 기초하고 있다.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논리에 따라 원자 알갱이의 집합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르면 부분의 합은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

‘원자론-인과율-결정론-환원주의’로 구성된 재래의 패러다임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는 ‘정보’라는 변수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조론에 따르면 하나의 정보는 최대 다섯 방향으로 동시에 전달될 수 있다.

하나의 정보가 최대 5방향으로 동시에 전달될 수 있음은 구조체가 계 내에 어떤 질서를 가지는가에 따라 더 효율적인 구성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구조론은 구조적 최적화에 따른 효율성의 증가라는 ‘플러스 알파’를 제시한다.

구조론이 제시하는 최적화에 따른 효율성의 증가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부분의 합과 전체 사이에 질량의 증가나 감소는 없다. 그러나 정보의 증가와 감소는 명백히 존재한다.

부분이 1의 정보를 가질 때 전체는 구조적 최적화의 정도에 따라 최대 5의 정보를 가지므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 그러므로 계를 해체할 때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순증가한다.  

다섯개의 사과를 낱낱이 운반하면 5회의 작용이 필요하나 전체를 한꺼번에 움직이면 일회로 가능하다. 1백그램 짜리 사과를 5회 운반하나 5백그램짜리 사과꾸러미를 1회 운반하나 드는 에너지는 같지만 시간과 거리는 줄어든다.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은 에너지와 정보다. 에너지는 순환되나 정보는 손실된다. 인과-원자-환원-귀납-에너지로 보는 결정론적 패러다임은 에너지의 성질을 규명할 뿐 정보의 성질은 규명하지 못한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이론물리학의 중심개념이라 할 에너지 개념이 부분의 합과 전체 사이에 정보량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질량은 보존되지만 정보는 보존되지 않는다.

구조론이 제시하는 새 패러다임은 에너지의 쌍방향성과는 다른 정보의 일방향성에 기반한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모든 존재는 짝을 지어 대칭상태로 존재하며 짝짓기의 방법에 따라 최소 1에서 최대 5의 정보를 가진다.  

1 이하의 정보를 가진 에너지는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시키려면 추가로 에너지를 투입해야 하므로 사용가치가 없다. 많은 정보를 가진 농축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경유와 휘발유와 LPG를 비교하면 경유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다. 경유가 휘발유나 LPG보다 동일한 조건에서 더 많은 출력을 낼 수 있다. LPG, 휘발유, 경유 순으로 무질서도가 높기 때문이다.     

세상은 에너지와 정보로 되어 있다

재래의 패러다임이 가지는 결함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추론하는 귀납적 사고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이를 연역적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가 아닌 유도와 전개의 논리로 보는 것이다.

확보된 결과를 토대로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며 원인을 추궁하는 귀납적 사고로는 사건의 현재 진행과정을 볼 수 없다. 예컨대 감기환자를 보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원인을 찾아내는 식이다. 이러한 되짚기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감기바이러스의 인체 내 침투는 밖에서 안으로 ‘유도’된 것이다. 그리고 감기가 발병하는 과정은 인체 내 면역체계에 의하여 전개된 것이다. 인체 내부에 이미 예비되어 있던 것이 어떤 계기로 촉발되어 전개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은 원래 감기의 발병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면역시스템 내에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 반작용의 법칙에 따른 바이러스의 작용이 면역체계의 반작용을 촉발하는 형태로 감기의 증상이 전개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감기에 걸리지는 않는다. 원인의 작용이 반드시 감기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유도와 전개의 연역논리로 볼 때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현재진행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인과율은 과정을 생략하는 오류를 범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유도와 전개에 의해 일어난다. 작용과 반작용이 유도하여 내부에 감추어진 촉발과 진행과 종결의 셋을 전개시켜 다섯을 이룸으로써 완성된다.   

인과율은 원인을 제공한 바이러스에 100퍼센트 책임을 전가한다. 원인의 작용에 맞서 반작용한 인체의 면역시스템에 대해서는 책이믈 추궁하지 않는다. 유도와 전개로 볼 때 중간과정이 파악되고 양쪽에 고르게 책임이 돌아간다.

세상의 많은 편견들은 먼저 원인을 제공한 작용 쪽에만 책임을 묻는 인과율의 오류에 의한 것이다. 가난의 책임은 게으른 빈자에게 있고 폭력의 책임은 무능력한 약자에게 있다는 식이다. 모든 오류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바르게 말하면 모든 원인은 구조에 있다. 작용과 반작용이 어떻게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느냐에 달려 있다. 잘못된 만남이 문제를 만든다. 바른 만남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그 만남의 접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곧 구조조정이다.

인과율로 보면 문제의 원인은 제거하는 수 밖에 없다. 부시가 후세인을 제거하는 식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굳이 제거할 필요는 없다. 구조개선으로 문제를 해소한다. 물리력의 충돌없이도 해결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구조론은 왜 5인가?

하나의 사건은 작용, 반작용으로 유도되고 촉발, 진행, 종결로 전개된다. 유도의 2와 전개의 3을 합쳐 구성요소 5를 이룬다. 수학상의 난제인 4색문제를 대입하여 이를 증명할 수 있다. 4색문제의 4는 구조론의 5와 같다.

4색문제는 왜 4인가? 선과 면으로 구획된 지도에 대칭과 평형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왜 5인가? 마찬가지로 구조론은 구성요소 5로 체계 내의 대칭과 평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4색문제는 지도에서 국경을 맞대고 인접한 나라들을 색깔로 구분하여 표시할 때 네가지 색으로 모든 나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제다. 1976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귀납적 방법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귀납적 증명은 ‘결과의 제시’일 뿐 ‘원인의 설명’이 아니므로 불완전하다. 불완전하나 4색으로 구분하여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증명되었으므로 이에 연동되어 있는 구조론의 5 역시 일단은 증명되었다.

컴퓨터에 의존한 귀납적 증명을 논리에 기초한 연역적 증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 기하에 사용되는 대칭과 평형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4색문제란 간단히 도형에서 중복을 배제할 때 대칭과 평형이 가능한 최대한을 의미한다.

4색문제.. ‘대칭과 평형의 원리’에 따라 국경선을 맞댄 모든 나라가 같은 숫자의 국경선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한 나라가 국경선의 수를 하나씩 늘려갈 때 마다 인접하여 있는 다른 나라들도 같은 숫자로 국경선의 수를 늘려간다면 그 나라들이 가질 수 있는 국경선의 최대 숫자는?

러시아처럼 영토가 넓은 나라는 많은 작은 나라들과 국경을 맞댈 수 있지만 이때 몽골이나 우크라이나 같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다른 나라와 인접할 수 있는 권리를 덩치 큰 러시아에 빼앗긴다.

이탈리아 내부에 고립된 바티칸시국을 예로 들 수 있다. 이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바티칸시국으로 갈 수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국경을 통과하지 않고는 육로로 몽골을 갈 수 없다.

한 나라가 국경선의 수 하나를 늘릴 때 마다 인접한 다른 나라의 국경선 하나를 빼앗는 것이 대칭과 평형의 원리다. 대칭과 평형에 따라 모든 나라가 동등한 숫자의 국경선을 가질 때 단지 세 나라와만 국경을 인접할 수 있다.

4면체를 생각할 수 있다. 네 나라가 4면체와 같이 평등하게 맞물린 구조에서 모든 나라는 동일한 세 국경선을 가진다. 이 중 한 나라가 국경을 넷으로 늘릴 때 인접한 나라들 모두가 같은 숫자로 국경을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사다리타기 게임을 연상할 수 있다. 입구와 출구가 있다. 어느 입구를 선택하든 균등하게 출구가 배분된다. 이를 교란하기 위해 사다리의 가지의 수를 늘려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간 만큼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므로 결과는 같다.

사다리타기 게임은 입구와 출구의 숫자가 같고 모든 게임의 참가자에게 균등하게 하나의 입구와 출구를 제공한다. 사색문제는 사다리타기와 같이 균등한 국경선의 수를 가지려면 4면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색문제는 면과 선에서 성립한다. 국가가 평면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 선, 면, 입체, 공간’으로 각각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 하에 같은 원리로 1색, 2색, 3색, 4색, 5색문제가 성립할 수 있다.

4색문제의 풀이와 증명은 필연적으로 1색, 2색, 3색, 5색문제의 풀이와 증명을 요구한다. 이들은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점, 선, 각, 입체, 공간에 따라 1색, 2색, 3색, 4색, 5색문제를 합쳐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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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은 하나의 점에 몇 개의 다른 점이 대칭과 평형을 유지하며 동시에 인접할 수 있느냐는 개념으로 출발한다. 4색문제와 구조론은 본질이 같다. 단지 평면으로 보느냐 점, 선, 각, 입체, 공간을 전부 보느냐의 차이 뿐이다.   

어떤 대상에 외부작용이 가해지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대칭이 성립된다. 대칭구조는 작용과 반작용 양자를 물리적으로 구속한다. 이때 하나의 개체는 특정한 수 이상의 작용과 동시에 반작용할 수 없다.

■□■□

두 번째 □는 왼쪽 ■와 대칭되면서 동시에 오른쪽 ■와 대칭될 수 없다. 대칭된다는 것은 작용하여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인데, 작용과 동시에 반작용된 정보를 전달받아야 하므로 이쪽과 작용하면서 동시에 저쪽과 작용할 수 없다.  

색깔의 구분은 작용 반작용의 대칭성을 나타내므로 대칭되지 않는 첫째의 ■와 셋째의 ■는 같은 색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는 별개의 대칭되는 두 쌍으로 구분된다. 실제로는 ■□ - ■□인 것이다.

대칭된다는 것은 짝 지어 쌍을 이룬다는 것이다. 두 색은 하나의 쌍이다. 하나의 쌍은 하나의 정보를 구성한다. 구조론은 최대 5 쌍이 성립함이며 이는 구조체 내에서 하나의 작용이 최대 5의 정보를 생산함을 의미한다.

 ▥
■ □

■는 오른쪽의 □와 대칭을 유지하면서 그 대칭구조 전체로서 동시에 위 ▥와 대칭될 수 있다. 그러므로 3색으로 나타낼 수 있다. 평면에 성립한 이 3대칭 위에 하나를 포개어 입체를 성립시키면 4대칭이 된다.

동일한 크기에 동일한 형태의 국가라면 평면에서는 3대칭이 한계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다면 평면에 4대칭은 없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4면체의 입체라면 4대칭이 성립할 수 있다.

국가는 평면 위에 존재하지만 지구는 둥글므로 엄밀히 말하면 국가는 입체 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4색문제가 성립한다. 만약 공중에 떠 있거나 혹은 땅 속에 숨어 있는 국가가 있다면 5색문제가 성립한다.  

● 1색문제 - 점

● 2색문제 - 선상에 성립

● 3색문제 - 평면에 성립 (국가의 크기와 모양이 같을 때)

● 4색문제 - 입체에 성립 (지구는 구를 구성하므로 입체다.)

● 5색문제 - 공간에 성립 (지하국가나 공중국가가 있을 때.)

살펴보았듯이 4색문제는 5색문제의 일부인 것이다. 구조론은 5로 설명한다. 물리공간은 지하와 공중이 존재하므로 3차원 입체를 넘어 4차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물리공간에서는 5대칭이 성립한다.  

지하국가나 공중국가가 없으므로 세계지도는 4색으로 구분하여 전부 나타낼 수 있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 지하국가나 공중국가가 출현한다는 가정 하에 5색으로 구분하는 홀로그램 지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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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나의 점에 얼마나 많은 다른 점들을 인접시킬 수 있을까? 무한히 많은 점을 인접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점의 크기와 모양이 균일하다면?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대칭의 둘은 크기와 모양이 같아야 한다.

크기가 같은 당구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의 공에 인접시킬 수 있는 공의 수는? 기술적으로 최대 14개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정지상태에서의 인접이다. 당구공에 특정 방향으로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 ←

구조론은 정보의 전달경로를 규명한다. 정보의 전달은 방향성을 가진다. 인접한 두 당구공 중 하나를 친다면 당구공을 치는 방향에 따라 인접여부가 결정된다. 화살표 방향으로 치면 두 당구공은 인접상태를 유지하며 정보를 전달한다.

화살표 방향에서 작용된 힘이 ○를 지나 ●에 전달되는 것이다. ←라는 정보가  ○를 지나 ●까지 전달되었다. 이렇듯 1회의 작용으로 힘이나 정보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는?

●○
 ↑

화살표 방향으로 친다면 두 공에 동시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세개의 당구공에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려면 세 당구공을 삼각형 모양으로 모아놓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내려찍는 ↓의 방법으로 3개의 공에 동시에 동일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때 정보를 전달받는 3개의 공은 평면에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3개의 공에 정보를 전달하는 네번째 공은 입체의 성질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점에서 선, 선에서 면, 면에서 입체로 차원이 상승할 때 마다 정보가 하나씩 증가한다. 입체는 3차원이고 물리 공간은 4차원이다. 4개의 공에 동시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5번째 공은 4차원 상에 있다.

평면 위에 ‘┬’자 모양으로 배치된 3개의 공에 정보를 전달하는 4번째 공을 올려놓으면 4면체의 모양이 된다. 4색문제는 이 4면체의 입체구조를 평면 상에 풀어놓은 것이다.

4색문제를 구성하는 지도 위의 나라들이 어떤 형태로 배치되더라도 기본적인 하나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고무풍선으로 만든 4면체에 바람을 집어넣어 부풀려놓은 모양이다.

작용 반작용에 따라 모든 존재는 힘의 전달방향에 대한 정보를 가진다. 힘은 한 방향으로 작용하며 작용은 반작용과 통일되어 새 정보를 구성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정보는 순증가한다.

존재가 힘의 전달에 있어서 작용 반작용의 대칭과 평형으로 구성할 수 있는 정보의 최대량은 5다. 정보 생산자인 자신을 포함 최대 5 방향으로 동시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여기서 구조적 최적화에 따른 효율성이 성립한다.

배로 사람을 실어나른다. 조금씩 싣고 여러번 오가기 보다 한 척의 배에 많은 인원을 태워 한 번에 운반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큰 배에 피란민을 마구 태우면 가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인간과 달리 자연은 5를 초과하여 인식할 수 없다. 자연에서는 식구 다섯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다시 가족 5로 마을을 구성하며, 마을 5로 부족을 구성하여 탑승시켜야 정보의 손실을 방지하면서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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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에 따라 이쪽이 작용하면 저쪽은 반작용해야 하므로 저쪽은 이쪽에 의해 통제된다. 존재는 정보생산자인 자신을 포함하여 한꺼번에 최대 5를 통제할 수 있다.

5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물리공간이다. 점에서는 1, 선에서는 2, 각에서는 3, 입체에서는 4, 공간에서는 5를 통제할 수 있다. 이때 정보의 통제방법에 따라 점, 선, 각, 입체, 공간이 성립한다.

지구는 입체이므로 우리는 4면체 입체인 대칭 4를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다. 이를 평면에 풀어놓은 것이 4색문제다. 물리공간에는 밀도가 작용하므로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이 추가되어 대칭 5를 성립시킨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은 4면체의 집적으로 설명된다. 우리는 우주공간이나 입체가 정육면체나 구(球)로 되어 있다고 여기지만 이는 인간의 눈이라는 평면구조가 빚어낸 착각이고 수학적으로 입체는 4면체다.

4면체는 더 작은 사면체의 집합으로 분할된다. 이는 모든 도형을 3각형의 집합으로 분할하여 나타낼 수 있음과 같다. 4각형은 두 개의 3각형으로 나눠진다. 육각형이든 팔각형이든 백각형이든 결국 3각형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더 작은 4면체의 집합으로 분할된 4면체를 집적하여 큰 4면체를 만들 때 그 중심점이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점이다. 이는 구(球)의 중심점과 같다. 구(球)는 둥글지만 실제로는 무한히 많은 4면체들의 집적이다.

정육면체를 4면체로 나누면 5개의 4면체가 된다. 이때 육면체의 여덟 귀는 4개의 사면체로 분할된다. 나머지 한 개의 4면체는 그 네개의 4면체들 속에 숨어 있다.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숨은 4면체 하나와 표면에 드러난 4개의 사면체가 이루는 겉과 속의 대칭이 원심력과 구심력의 평형을 성립시킨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4차원 공간이다. 이때 하나의 대칭점이 내부에 숨으므로 포착하기 어렵다.

● 점 구조 (대칭 없음 - 1대칭)
● 선 구조 (점의 대칭 - 2대칭)
● 각 구조 (선의 대칭 - 3대칭)
● 입체구조(각의 대칭 - 4대칭)
● 공간구조(입체 대칭 - 5대칭)

정보가 전달될 때 이것과 짝지으면서 동시에 저것과 짝지을 수 없다. 이쪽으로 정보가 가면 저쪽으로는 정보가 가지 않는다. 정보는 일방향성을 가진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때문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서로 마주본다. 정보를 전달해 주면서 동시에 전달받는다. 왼쪽으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오른쪽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다. 왼쪽으로 정보를 준 만큼 다시 왼쪽에서 돌려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정보의 일방향성에 따라 잇달아 있는 3개의 당구공 중에서 가운데의 ●는 왼쪽 ○로 정보를 주면서 동시에 오른쪽 ○로는 정보를 줄 수 없다. 이러한 성질에 따라 작용 반작용은 서로를 구속하고 통제한다.

그러한 구속과 통제의 성질을 칼라 구분으로 나타낸다. 4색문제는 특정한 구성에서 4가 동시에 서로를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을 나타낸다. 입체에서는 4지만 공간에서는 ‘밀도 차’에 다른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에 의해 5다.

4면체의 중심에 핵이 있다면 그 핵은 4개의 꼭지점, 4개의 면에 동시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는 5다. 이는 정육면체를 5개의 4면체로 분할할 때 하나의 사면체가 내부에 숨어 핵을 이룬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입체구조에서 4면체의 꼭지점과 면들이 내부의 핵을 가두었으므로 대칭의 기준점인 구심점은 외부로 부터 격리된다. 오직 밀도증가의 방법으로만 내부에 숨은 핵에 정보전달이 가능하다.

중력이 지구의 중심에 가하는 힘이 밀도에 의한 정보전달이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그 정보는 정확하게 지구 중심에 전달된다. 이때 외부의 원심력이 구심력과 대칭을 이루려면 계의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외부를 빈틈없이 둘러싸서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칭 5를 초과하는 대칭은 자연계에서 존재할 수 없다. 외부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5로 완성된다.

구조는 안정을 지향한다. 불안정한 구조는 외부의 충격에 약해 그 형태를 지탱할 수 없고 따라서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이라면 더 안정된 구조의 공법을 추구한다.

자연계에서 표면의 4가 내부의  핵 1을 감싸는 형태가 가장 안정된 구조다. 밀도가 작용하는 유체의 성질에서 이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인체가 높은 대기압 속에 존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안정된 구조이다.

이러한 구조는 내부의 핵 1이 표면을 둘러싼 외피의 4에 고르게 힘을 분산시킬 수 있으므로 외부충격에 강하다. 뼈가 겉으로 나온 갑각류보다 뼈가 속에 있는 포유류가 더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쇠파이프처럼 속을 비운 야구배트가 더 탄력이 좋은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파이프의 속은 비었지만 겉과 속의 양면이 존재하므로 파이프의 안쪽면이 핵의 역할을 수행하여 배트 전체에 균일하게 힘을 분산시킨다.  

조약돌을 손에 쥐고 주먹질을 하면 펀치력이 몇 배로 강해진다. 다윗과 같은 어린 소년이라 할지라도 주먹 속에 조약돌 하나를 감추고 있으면 골리앗 같은 거인을 한 주먹에 때려뉘일 수 있다.

에밀레종을 거는 종고리는 신라시대의 장인이 여러겹의 얇은 철판을 두루마리처럼 감아서 만들었다. 종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몇 배로 강해진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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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색문제는 동시에 1색문제와 2색, 3색 그리고 5색문제를 낳는다. 점은 당연히 1색이다. 선에서는 2색문제가 성립하고 각에서는 3색, 입체에서는 4색, 공간에서는 5색문제가 성립한다.

선상(線上)의 ○●○●○●식 전개에서 ○●-○●-○●와 같이 몇 개의 2대칭으로 분할되므로 2색으로 모두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선의 2색문제다. 같은 원리로 각(角)은 3색, 입체는 4색, 공간은 5색으로 모두 나타낼 수 있다.

구조론으로 보면 면(面)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구조론의 점, 선, 면, 입체는 우리가 머리 속으로 그리는 점, 선, 면, 입체와 다르다. 다만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면(面) 하나만 각(角)으로 대체한다.

지도는 면이고 면은 각이므로 3색이어야 한다. 지도가 4색인 이유는 면이 각과 입체의 중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면은 실은 각의 집합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선은 선들의 집합이고 입체는 입체들의 집합이다.

입체라 하면 보통 정육면체를 머리 속에 그린다. 그런데 4면체가 6면체보다 작다. 구조론은 순수한 입체를 논한다. 순수한 입체는 가장 작은 크기의 입체여야 하므로 입체라 하면 4면체를 생각해야 한다.

면이라 하면 우리는 보통 사각형의 면을 상상한다. 면이 사각이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순수한 면은 삼각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장 순수한 선과 가장 순수한 점을 떠올릴 수 있다.

수학은 정의로 부터 출발한다. 점과 선과 각을 정의한다면 가장 순수한 점과 선과 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장 작은 크기다. 아니 아예 크기 자체가 없어야 한다. 단지 정보로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수학에서 ‘1의 정의’가 없는 예와 마찬가지로 ‘점의 정의’는 없다. 이를 무정의술어라 한다. 이는 귀납적 사고에 기반한 오류이다. 연역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대칭과 평형의 원리에 따라 정의될 수 있다.

정의는 의미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의미는 가치를 배달한다. 모든 의미는 가치의 배달경로를 따라 유도된다. 모든 존재는 어딘가로 부터 배달되어 온 것이다. 그 유도과정을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

생물 종은 진화에 의해 유도되었다. 생물은 진화단계를 따라 정의되고 분류되어야 한다. 인간은 부모의 인연에 의해 태어났고 상품은 용도에 따라 유도되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그 자체를 성립시키는 과정이 있다.

작용 반작용이 대칭과 평형을 유도하고 대칭과 평형이 점, 선, 각, 입체, 공간을 유도한다. 그러므로 대칭과 평형의 원리에 따라 공간을 구성하는 각 요소의 위상은 정의되어야 한다.  

점의 집합이 선을 이룬다는 생각은 귀납적 사고의 오류다.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집합할 수 없다. 0+0=0이므로 집합해도 0이다. 선의 집합은 면이 아니라 ‘긴 선’이다. 면의 집합은 입체가 아니라 다면이다.

4차원 물리공간은 밀도의 평형계로 정의된다. 밀도의 평형계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대칭으로 해체된다. 각의 대칭이 평형계를 이룬 것이 입체이며 선의 대칭이 평형계를 이루면 각이고 점의 대칭이 평형계를 이루면 선이다.

면은 인간의 눈이 시각정보를 평면으로 구성한데 따른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눈은 초음파가 아니므로 입체를 꿰뚫어볼 수 없어서 면을 조직한다. 면은 각의 집합이다. 집합은 순수하지 않으므로 배제된다.  

구조론은 정보의 전달형태를 논하므로 질량을 나타내는 집합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면은 제외되고 각을 채택한다. 마찬가지로 점, 선, 입체, 공간의 개념도 집합개념을 배제하고 새로이 해석되어야 한다.

공간구성의 위상차를 집합으로 보는 관점은 인과율에 따른 환원주의 논리다. 구조론에 따르면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으므로 집합과 원소의 관점으로는 공간구조의 정보량을 측정할 수 없다.

공간은 점, 선, 각, 입체, 공간의 다섯 가지 위상을 가진다. 각 위상은 작용과 반작용의 대칭이 계의 평형을 성립시킬 때 평형계가 몇 개의 정보를 가졌는가에 따라 판별된다. 각 위상에 따라 1,2,3,4,5의 정보를 가진다.

● 공간 - 밀도의 평형(원심력과 구심력) - 두 입체의 대칭
● 입체 - 전체와 부분의 평형(부피) - 두 각의 대칭
● 각 - 힘의 굴절에서 핵과 날개의 평형(너비) - 두 선의 대칭
● 선 - 운동에서 진행방향과 역방향의 평형(길이) - 두 점의 대칭
● 점 - 운동의 해체에서 각 단위 정보량의 평형(위치) - 대칭없음.

구조론으로 보면 입체와 면은 육면체나 사각형이 아니라 X나 ⊥가 된다. 어떤 크기의 입체나 각이 아니라 순수한 입체나 각이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집적하지 않고 단지 대칭구조로 설명할 뿐이다. 뼈만 있고 살이 없다.

우리가 아는 ‘점,선,면,입체’는 구조의 뼈에 살을 더한 것이다. 이는 구분을 쉽게 할 목적으로 시각화하여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순수 추상이 아니라 허구를 보태어 구체화 시킨 것이다. 모든 오류와 착각이 여기서 비롯된다.

구조론의 ‘점, 선, 각, 입체, 공간’은 각각의 레벨의 준위에서 성립하는 평형계다. 평형계란 작용 반작용의 대칭성이 요소들을 구속하고 통제함을 의미한다. 대칭은 맞섬이고 평형은 맞물림이다. 맞물려 있기 때문에 통제된다.

점(點)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완전히 해체되어 균일한 상태에서 모든 위치가 동일한 정보량을 가져 계의 평형을 이룬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점의 상태에서 각 요소는 정보 1을 가지고 밀도에서 균일해진다.

크기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크기는 인간의 상상에 불과하며 우주 공간에 절대적인 크기는 없다. 모든 크기는 상대적이며 비례로만 나타낼 수 있다. 가장 작은 것 따위는 없다. 원자 따위는 없다.

공간에 원초적으로 크기가 없으므로 점은 크기가 없다. 우리가 크기라고 믿는 것은 공간이 가지는 상대적인 정보량이다. 정보량은 ‘~이면 ~이다’는 유도와 전개에 따라 ‘X가 ~이면 Y가 ~일 뿐’ 절대적인 크기는 없다.

점(點)은 입방체에 1기압의 개스를 주입했을 때 개스들이 균일하게 분포한다는 가정 하에 그 균일한 성질 자체를 의미한다. 점은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상대적 위치가 균일하게 정보 1을 가지는 상태에서의 평형계다.

점이 점인 이유는 선이나 각 혹은 입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기 때문이다. 점과 비교했을 때 균일하지 않다. 하나의 꼭지점과 두 날개의 대칭으로 구성된 ∠에서 꼭지점은 두 날개 각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다.

운동은 언제 멈추는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진행하던 운동이 반작용에 의해 교착될 때, 공간을 구성하는 각 위치의 정보량이 계의 평형에 도달하는 지점에서 정지한다. 운동을 정지시키는 계의 평형의 위치가 점(點)이다.  

선은 운동의 진행에 따라 성립되는 앞과 뒤, 곧 진행방향과 역방향 사이의 대칭이다. 이때 선은 직선이다. 두 당구공이 닿아서 만드는 선은 무조건 직선이다. 곡선은 직선의 집합일 뿐 순수한 선이 아니다.

각은 힘의 굴절에서 L를 구성하는 세 지점 중 꼭지점 1과 수직 수평의 양 날개가 동일한 정보량을 가지고 대칭됨을 의미한다. 두 날개가 1의 정보를 가져 2를 이룰 때 꼭지점은 정보의 중첩에 따라 역시 2의 정보를 가진다.

꼭지점은 ┃와 대칭되면서 동시에 ━와 대칭된다. 2대칭이므로 정보량은 2다. ┃와 ━는 각각 꼭지점과 대칭되므로 각각 정보 1을 가진다. 둘 합쳐서 2다. 꼭지점 하나가 ┃와 ━ 둘과 동시에 대칭을 성립시키는 것이 각이다.  


□■

■는 날개이고 □는 핵이다. 날개 둘이 핵 하나와 대칭과 평형을 성립시킨다. 대칭점은 둘이나 평형계는 하나다. 이 구조에서 정보의 입력이 □의 1일 때 출력은 ■의 2다. 입력과 출력사이에 정보가 순증가한다.

태풍의 중심이 주변보다 풍속이 빠르지만 전체적으로는 평형계를 이룬다. 소용돌이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서 전체적으로는 평형이지만 각 지점은 명백히 정보량의 차이를 가진다. 그것이 각(角)이다.

직각으로 꺾인 물체가 있다면 그 꺾이는 관절부분에 큰 힘을 받는다. 많은 기기장치의 고장이 관절에서 일어난다. 건축구조에서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부분, 기둥과 들보가 교차하는 지점은 큰 하중을 견뎌야 한다.

재래의 면 개념은 이러한 정보량의 차이를 포착하지 못하므로 오류를 유발한다. 구조론의 면은 각의 집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순수한 구조는 각이며 각은 핵과 날개 사이에서 정보량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이 유난하다.

입체는 부분과 전체 사이에 성립하는 평형계다. 두 당구공이 충돌할 때 그 당구공 전체의 질량과 충돌하는 접점이 받는 압력은 일정한 비례로 평형을 이룬다. 한 점이 계 전체의 정보량를 대표하는 것이다.

야구선수가 배트를 휘두를 때는 하체의 힘을 활용한다. 권투선수가 단지 팔힘만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펀치에 체중 전부를 싣는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도 마찬가지다. 한 점이 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입체다.  

두 당구공이 충돌한다면 그 충돌지점은 무한히 작지만 그 작은 점이 그 당구공 전체의 질량을 100퍼센트 대표해야 한다. 이때 그 작은 한 지점과 당구공 전체의 질량 사이에 작용 반작용의 평형계가 성립한다.

점, 선, 각, 입체가 계 내부의 평형을 나타낸다면 공간은 계와 외계 사이의 평형을 나타낸다. 외계에서 높은 압력의 밀도가 작용할 때 외계의 작용과 계 내의 반작용이 평형계를 이루는 것이다.

점, 선, 각, 입체, 공간의 차원들은 정보량에 따라 각 레벨의 준위에서의 작용 반작용에 따른 계의 평형을 성립시킨다. 공간은 최대의 정보량을 가지는 평형계이며, 입체, 각, 선, 점으로 갈수록 정보량이 감소한다.

순수한 진공이라면 그 공간은 각 단위가 최소한의 정보를 가져야 한다. 이때 공간은 완전히 균일해진다. 그러나 우주공간의 많은 부분들에 밀도차가 있다. 즉 어떤 공간은 주변부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는 것이다.

공간의 밀도차에 따라 공간의 휨이 발생한다. 그것이 역으로 보상된 것이 물질이다. 그 물질이 집적되어 별을 구성한다. 대칭과 평형의 원리에 따라 공간은 되도록 균일해지려 하므로 이를 운동으로 보상한 것이 중력이다.   

중력이 미치는 지상에서의 자유낙하는 공간의 밀도차에 따른 휨이 유도하는 보상원리가 운동으로 전개된 것이다. 무거운 물체가 상대적으로 지구 중심에 가까울 때 공간의 총정보량은 더 균일해진다.

만유인력 개념은 귀납적 발상이다. 연역으로 보면 공간은 밀도차를 가지며 균일해지는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고 이를 선으로 보상한 것이 자유낙하, 각으로 보상한 것이 중력, 입체로 보상한 것이 물질이다.

● 공간 - 밀도차에 의해 휨이 발생한다.
● 물질 - 공간의 휨을 물질로 보상한다.
● 중력 - 공간의 휨이 운동으로의 보상을 촉발한다.
● 자유낙하 - 공간의 휨이 운동으로의 보상을 진행한다.
● 질량 - 반작용으로 교착되어 운동이 종결된다.

만유인력이 아니라 만유균일, 만유평형이다. 만유는 서로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균일한 평형에 도달하려고 할 뿐이다. 매질이 균일할 때 파동이 가장 잘 전해지기 때문이다.

공간은 균일하지 않으며 평형의 원리에 따라 불균일성은 어떻게든 보상된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믿는 것은 그러한 보상의 결과이거나 보상의 촉발 혹은 보상의 현재 진행이다. 우주가 완전히 균일해졌을 때 별도 죽고 우주도 죽는다.      

만유는 평형을 지향한다

수학에서 점은 무정의술어라 하여 정의하지 않는다. 이는 선을 점의 집합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방식이 오류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다. 집합과 원소의 관계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정보의 유도경로를 통해 정의해야 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4면체의 뾰족한 꼭지점이 점(點)이다. 두 개의 당구공이 충돌하는 접점이 점이다. 점은 힘의 전달 혹은 정보의 전달경로로서의 점인 것이다. 전달되는 정보의 집적도에 따라 점,선,각,입체,공간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아는 점, 선, 면, 입체와 다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면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책상과 모니터와 노트가 사각형이기 때문에 면은 당연히 사각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착각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면은 원도 아니고 사각형도 삼각형도 아니다. 우리는 또 면이 납작하다고 생각한다. 납작한 것은 종이다. 종이로 된 노트와 책으로 공부하다 보니 종이처럼 납작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역시 착각이다.

또 우리는 면이 평평하다고 생각한다. 평평한 것은 인공물이다. 자연은 대략 울퉁불퉁하다. 진실로 말하면 면은 납작하거나 평평하지 않다. 납작하거나 평평한 것은 많은 면들의 집합이다. 순수한 면이 아니다.

참된 면은 표면이다. 표면은 외부와 닿는다. 면은 작용 반작용을 성립시키는 접촉면이다. 인간은 눈으로 사물의 표면을 본다. 빛은 사물의 표면에서 꺾인다. 꺽이는 것은 각이다. 각이 공간의 진실이고 면은 그 각의 집합이다.

면은 외력의 작용이 접점에서 굴절되는 성질을 나타낸다. 빛이 반사되는 지점이 면이다. 빛의 반사는 각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구조로 보면 면이 아니라 각이고 각은 힘의 굴절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점은 접점이고 선은 경계선이며 면은 굴절면이고 입체 역시 경계에서 성립하는 ‘힘의 걸림’이다.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다가 방아쇠처럼 힘이 딱 걸리는 공간의 구성이 입체인 것이다.

점은 점에 걸리고, 선은 선에 걸리고, 각은 각에 걸리고, 입체는 입체에 걸린다. 각각의 평형을 성립시킨다. 서 있는 물체를 밀면 물체 전체에 힘이 걸린다. 파동이 걸리는 공간의 구성이 면이고 입체가 걸리는 공간의 구성이 입체다.

파동은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통과한다. 거울은 반사하고 유리는 통과시킨다. 파동은 면에서 걸리되 입체에서는 걸림이 없다. 그러므로 순수한 입체는 입체의 힘이 걸리는 모서리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뾰족한 4면체로 보아야 한다.

회전하는 팽이의 회전축이 바닥과 닿는 접점은 뾰족하다. 그 뾰족한 쇠붙이가 팽이 전체의 질량과 속도를 대표하여 정보를 전달한다. 점은 뾰족한 접점이고 선은 뾰족한 경계선이며 면은 뾰족한 굴절면이고 입체는 뾰족한 삼각뿔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입체가 뾰족하지 않은 것은 집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입체들이 모여 덩어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혹은 뾰족한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서 뭉툭해졌기 때문일 뿐 실제로 일어나는 정보의 전달은 뾰족하다.

소총의 방아쇠, 혹은 뇌관을 때리는 공이, 절구공이, 바늘, 각종 손잡이, 연필이나 볼펜의 촉, 전축의 바늘, 시계의 톱니,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접촉부분은 뾰족하다. 그렇게 뾰족한 것이 입체다.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천지창조를 떠올릴 수 있다. 신의 손과 인간의 손이 맞닿는다. 뾰족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글씨의 정보를 연필의 끝, 손동작의 정보를 전달하는 손가락 끝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입체는 뾰족하다.  

뾰족한 철(凸)이 있으면 그것을 감싸는 요(凹)도 있어야 한다. 요와 철이 결합하여 정보를 전달하되 핵이 내부로 진입하여 들어간 것이 공간이다. 자동차의 기어를 조작하는 인간의 손은 그 기어를 감싼다. 공간은 핵을 감싼다.  

수컷의 뾰족함을 암컷의 오목한 자궁이 감싸는 형태로 공간에서 정보는 전달된다. 그것이 공간이다. 구조는 뾰족한 점, 뾰족한 경계선, 뾰족한 굴절각, 뾰족한 입체, 그리고 뾰족한 핵을 감싸안은 공간으로 다섯 위상을 가진다.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 정보의 전달은 어떻게든 대상에 작용한다. 작용하면서 동시에 반작용을 이끌어낸다. 작용과 반작용이 평형을 이룰 때 정보가 전달된다. 입자인가 파동인가 정보의 내용에 따라 전달방법이 달라야 한다.

점, 선, 각, 입체, 공간은 1대칭에서 5대칭까지의 정보를 구성하는 각각의 평형계다. 순수한 점, 선, 각, 입체는 평면 위에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다. 진실로 보면 공간은 단지 정보의 전달형태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작은 바늘의 끝단과 같다. 전축의 뾰족한 바늘로도 충분히 정보를 전달한다. 뾰족함은 오목함과 만나 5대칭을 만들어야 한다. 핵이 내부로 들어가고 외피가 핵을 둥글게 감싸야 한다. 그럴 때 완전하다.

공간의 불균일에 따른 각 단계의 단계적 보상원리가 가지는 정보량의 차이가 본질이다. 공간을 특정한 형태로 조직할 때 더 많이 보상된다. 이는 한 명의 병사가 관문을 지키면서 1만 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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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 "인간이 그립다" 김동렬 2007-05-31 10577
1760 마주 서기(수정) 김동렬 2007-05-28 12853
1759 노동은 과연 신성한 것인가?(수정) 김동렬 2007-05-28 12955
1758 유시민이 어때서? 김동렬 2007-05-21 12216
1757 현대성이란 무엇인가(계속) 김동렬 2007-05-17 12450
1756 현대성이란 무엇인가?(업데) 김동렬 2007-05-17 11734
1755 이명박 정동영 명계남 김동렬 2007-05-17 13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