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동영, 명계남 이명박이 말 실수를 했다고 한다. 과연 이명박은 말 실수를 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의 발언을 찬찬히 읽어보면 크게 잘못된 구석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구설수를 타는 것일까? 컨텍스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명계남이 남북열차 탑승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통일부에서는 탑승객 선정과정에 잘못이 없으며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도리어 문제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 같다. 과연 명계남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 명계남은 잘못이 없다. 명계남이라는 머저리는 대단한 잘못을 저지를 위인도 못 된다. 잘못은 다른 곳에 있다. 역시 컨텍스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정동영이 노인폄훼발언을 했다고 한다. 과연 정동영은 노인들을 폄훼할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정동영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동영은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의 투표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액면 그대로 볼 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정동영 개인의 의견이 그렇다면 ‘정동영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가? 컨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이명박이나 정동영의 말이 아니라 이명박과 정동영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을 보아야 한다. ### 진실을 말하자.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이명박은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실수한 것이다. 이명박은 자기 콘텐츠가 없다. 그러니 외부인이 이명박이라는 인간을 파악하려면 누군가가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오?’ 하고 물어야만 한다. 지금 장애인 단체가 이명박에게 묻고 있다. “당신 뭐요?”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명박이라는 정체불명의 인간 정체 파악하기. 자기 콘텐츠가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정체는 이미 파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왜 이명박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은 것일까? 이명박이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과 관련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이명박의 시각이 없으며, 그 약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장애인단체가 개입하여 이명박의 비뚤어진 시각을 교정하여 주려는 것이다. 정동영도 마찬가지다. 자기 콘텐츠가 분명한 사람은 결코 이런 구설에 휘말리지 않는다. 정동영의 콘텐츠 빈곤이 노인단체에 시비할 공간을 준 셈으로 되었기 때문에 시비를 당하는 것이다. 명계남도 마찬가지다. 보도에 의하면 연예인들 중의 다수가 대부분 열차탑승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연예인들 열차탑승을 거부해놓고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방송에서 꽝꽝 때릴지는 몰랐을 것이다. 무엇인가? 당초에는 이 행사가 부각되지 않았다. 조중동이 보도를 차단하니 다들 무관심했다. 명계남이 탄다니까 ‘어라? 명계남 자리는 있는데 왜 내 자리는 없나’ 하고 뒤늦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명계남은 주변머리 없이 그런 자리에 낀 것이다. 결론은 시스템이다. 장애인단체가 이명박의 비뚤어진 시각을 교정해줄 시스템이 없다. 채널이 없다. 만약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정책정당이라면 이명박을 꾸짖을 이유조차 없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에 그 부분이 이미 반영되어 있을 것이므로 이명박은 단지 한나라당의 정책을 암송하기만 하면 된다. 무엇인가? 이명박의 말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단체 입장에서 이명박을 갈구어 막대한 이득을 얻어낼 수 있는 절묘한 포지션에 철없는 이명박이 가 있었던 게 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문제다. 포지션이 문제다. 노동자 출신의 의원이 즐비한 노동자 정당의 대표가 노동자 비하발언을 했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왜? 그것은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노동자들은 ‘이 문제는 우리의 집안 내부의 문제요’ 하고 내부에서 경고를 하든 징계를 하든 투쟁을 하든 해결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당의 정강정책에 노인대책이 반영되어 있고 노인단체가 우리당에 이미 관여하고 있고 우리당에 원로들이 다수 있었다면 정동영은 해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왜? 그것은 이미 집안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그 시점에 우리당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채널이 없었던 것이다. 답은 나와있다.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고 장애인 대책을 해결하려면 장애인 출신 국회의원이 있어야 하고 노인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시 노인단체 출신의 의원이 있어야 한다.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정책이 있어야 한다. 세력이 있어야 한다. 채널이 있어야 한다. 왜 명계남이 문제인가? 당초에 통일부가 인터넷에 사이트를 열고 각계의 추천을 받는 절차를 거쳤다면 전혀 문제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 통일부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나? 조중동이 보도를 막았나? 방송국이 여당도 없는 약체정부라고 씹었나? 통일부의 마인드가 모자랐나? 통일부가 이 행사의 중대성을 몰랐던 것이 아닌가? ### 조선왕조 27왕 중에 무려 7명이나 죽고 난 뒤 독살설에 휘말렸다고 한다. 지금 대통령이 식사할 때 옆에서 음식을 대신 먹어보는 사람은 없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지도자를 독살하지 않는다. 왜? 독살한 쪽이 선거에 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는 왕을 독살하면 독살한 쪽이 이득을 봤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시스템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명박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경우 반드시 저격하려는 인간이 뜬다. 정동영도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드시 저격당한다. 그런 식으로 정치하면 저격당한다. 콘텐츠가 없으면, 시스템에 기반하지 않으면, 정책이 없으면, 세력이 약하면 반드시 저격수가 뜬다. 중요한건 저격수가 저격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포지션에 그가 가 있었던 것이다. 재수없게 하필 낚시에 걸린 것이 아니라 낚시꾼이 우글거리는 포인트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실수한 것이다. 이명박은 죽을 때 까지 그 낚시꾼의 포인트를 벗어날 수 없다. 명계남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이 전쟁터에 휩쓸려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른다. ‘정신차려! 거기는 지뢰밭이야! 제발 다른 데 가서 놀아.’ 명씨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 이명박과 정동영, 당신네들은 인생 자체가 실수다. 인간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저격당한다. 박정희가 왜 총맞아 죽었겠는가? 박정희만 제거하면 된다고 믿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정희가 제거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세상이 변했다. 박정희는 무모하게도 자신의 죽음이 타인의 이익이 되는 위치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간다면 그의 인생은 실수다. 세력을 키우고 콘텐츠를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의사소통 능력, 둘째 의사결집 능력, 셋째 의사결정 능력이다. 바로 그것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의사소통이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권력자와 채널을 가져야 한다. 노인도 장애인도 국민도 권력자와 채널을 가져야 한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채널이 없다고 믿을 때, 전혀 소통이 안된다고 느낄 때, 절벽앞에 선 것과 같은 암담함을 느낄 때 저격들어간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 결론적으로 정동영이 당한 것은.. 당시 우리당이 노인세대와 소통할 채널이 없다는 약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통의 채널이 만들어질 때 까지 씹히게 되어 있다. 이는 기계적인 법칙이다. 마찬가지로 명계남이 당한 것은.. 통일부가 이 엄청난 행사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을 참여시키는 채널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약점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민들은 특정인을 줄기차게 씹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채널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건 전적으로 행사의 의미를 과소평가하여 국민의 추천을 받는 중대한 절차를 생략한 통일부의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이 당한 것은.. 딴나라당이 사회의 소외된 약자그룹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채널이 만들어질 때 까지 지속적으로 씹히게 되어 있다. 이명박은 설사 대통령이 된다해도 임기말까지 줄기차게 씹힐 것이다. 왜? 씹어서 이득보는 사람이 있으니까.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외면하고 그냥 가리?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은 말을 조심할 것이 아니라 인생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소통의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쌍방향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채널을 마련하지 못했거든 아예 정치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