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남이 노무현을 찔렀다.
안진사(안중근의 부친)가 김홍집 내각의 단발령에 응하여 머리를 깎을 의향을 표시하였다. 그 말을 듣자 고선생(백범의 스승)은 두말 않고, “진사, 오늘부터 자네와 끊네.” 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나갔다. 끊는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예로부터 선비가 절교를 선언하는 말이다. (백범일지) |
우리나라 선비들은 참으로 쿨 하게 살았다. '진사, 오늘부터 끊네' 이 한마디로 끊었던 것이다. 마땅히 그럴 수 있어야 한다.
탄핵범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반역자들이다. 옛날이라면 능지처참하여 시구문 앞에 효수되었을 일이다. 탄핵범들과 내통하고도 모자라 반역자들과의 합체를 주장한 염동연을 지지했다는 것..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명계남이 노무현 대통령을 칼로 찌른 것이다. 이런 때.. 기억해야 한다. 브루투스와 14인의 배신자 중에서 살아남은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명계남은 범죄의 소극적 동조자일수도 있다. 하기사 14인의 배신자 중에는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도매금으로 처단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우리나라 선비들은 그런거 봐주는 일 없었다. 끊을 때는 확실히 끊는 것이 맞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수 많은 선비들이 줄기차게 토론하여 내린 최종결론이 그러하다.
백범도 길에서 우연히 토왜와 진왜을 동시에 만날 시에는 토왜(매국노)를 먼저 죽이고 진왜(일본인)를 나중 죽였다고 한다.
죄질로 논하면 최병렬 보다 한화갑이 더 나쁘고, 한화갑 보다 염동연이 더 나쁘고, 염동연 보다 명계남이 더 나쁘다. 이 순서대로 처분하는 것이 맞다.
진왜는 단지 자신의 이익을 향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 자체로 죄는 아니다. 최병렬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토왜는?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해를 한 것이다. 그것은 몸 속의 암종과도 같다. 암이 신체를 죽이듯이 자기 자신을 칼로 찌른 것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본받아 적은 용서할 수 있다. 전투가 끝나면 적과도 화해를 해야한다. 그러나 몸 속의 암종은 용서가 없다. 도려내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배반하여 우리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깨뜨렸다면?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원칙도 기준도 없는 너절한 집단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손톱 밑의 가시와 같고 뱃속의 종양과 같다. 잘라내야 한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정치는 무한 책임이다. 봐주고 그런거 없다. 우량한 하나를 기르기 위해서 불량한 열을 솎아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찌른 뱃속의 암종 명계남.. 처분되어야 한다.
세상이 우리에 대한 신뢰를 거두기 전에. 세상이 우리를 너절한 집단으로 오해하기 전에. 단호함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노짱방에서 Bud White님 글을 인용하면..
차이가 뭐냐고? 지나간 과거의 이력을 먹고 사는 사람들과 앞으로 만들어가야할-지금 그것은 매우 미약한 실낫과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먹고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다.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약속하려고 하는 미래.. 그것은 희망이라는 이름.. 그러나 어떻게 약속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우리의 신용을 보증할 수 있을까? 혜가가 왼팔을 잘랐듯이 단호하게 잘라보이므로써 우리는 약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