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은 집단을 결속하는 장치다. 이념은 집단에 목적을 제시한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사랑, 천국, 해탈의 다양한 목적지가 있다. 다 좋은 말인데 종류가 많다. 이념이 많다는게 문제다. 모순이다. 이념이 인간을 결속하여 하나로 뭉치는데 왜 다양한가? 자유, 평등, 평화, 행복, 사랑, 천국, 해탈은 인간을 동원하는 구호에 불과하다. 본질은 동원이다. 이념은 동원기술이다. 일단 사람을 한 자리에 많이 모아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식이다. 사이비나 음모론이 사람을 쉽게 모으지만 전진하지는 못한다. 하나의 목적지만 강조하면 전체주의다. 평등만 중요하고, 자유만 중요하고, 천국만 중요하다는 식이다. 이러면 리스크가 커진다. 무리가 한 곳에 모여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밥을 먹으면 통제하기 편하다. 이념은 독재자가 통치의 편의를 위해 판 함정이다. 이념을 버리고 조절을 얻어야 한다. 조절장치는 여럿이다. 다양성이 있다. 조절방법은 이기는 것이다. 인간은 환경을 이기고, 도구를 이기고, 자신을 이겨야 한다. 환경에 지면 춥고 배고프다. 도구에 지면 교통사고다. 나 자신에 지면 각종 중독에 걸린다. 인간은 부단히 이겨야 한다. 핸들을 장악하고, 도로를 지배하고, 방해자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목적지에 도달한다. 조절은 이겨가는 과정이 목적이라는 말이다. 서울이나 부산에 도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차인가, 차를 잘 운전하느냐가 중요하다.
### 어떤 사람이 옳은 말을 하는지 그른 말을 하는지는 간단히 알 수 있다. 조절장치가 있으면 참이고 조절장치가 없으면 거짓이다. 음모론과 사이비는 조절장치가 없다. 조절장치가 있으면 과연 조절되는지 테스트를 하므로 거짓은 조절장치가 있으면 안된다. 이념은 갈데까지 가지만 조절은 균형에서 멈춘다. 이념은 폭주하지만 조절은 대칭된다. 적당한 사랑, 적당한 행복, 적당한 평등, 적당한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이념은 속임수다. 본질은 사람을 동원하는 것이고 사람의 동원은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금리, 환율, 보험, 재정, 임금의 조절장치가 있으므로 참이다. 민주주의는 언론, 시민, 정당, 사법부, 지방자치라는 조절장치가 있으므로 참이다. 자동차는 클러치, 핸들, 가속페달, 브레이크, 기어가 조절하므로 참이다. 고장도 나지만 조절하면 된다. 공산주의는 조절장치가 없다. 결정적으로 사람을 선발하는 방법이 없다.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천이나 발탁은 최악이다. 자신을 추천해준 사람에게 충성하고 발탁해준 사람에게 충성한다. 한국도 검사, 기자, 의사, 교수, 관료는 경쟁이 없어서 고약하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사회주의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자본주의가 하드웨어라면 사회주의는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사용하는게 목적이다. 조절개념을 앞세우면 우선순위가 드러나고 문제가 해결된다.
### 구조주의는 도구주의다. 도구는 효율성, 안정성, 지속성, 역동성, 완결성이 받쳐줘야 한다. 도구가 맨손보다 못할 수 있다. 과연 효율적이냐를 따져봐야 한다. 가성비가 뛰어나야 한다. 안정성도 중요하다. 자동차가 좋은 도구라지만 갑자기 고장나면 피곤하다. 자본주의는 금리 환율 보험, 재정, 임금이 조절하고 민주주의는 언론, 시민, 정당, 사법부, 지방자치가 조절한다. 도구는 효율성, 안정성, 지속성, 역동성, 완결성이 조절하는데 이념은 자유, 평등, 평화, 행복, 사랑, 천국, 해탈에 조절장치가 없으므로 거짓이다. 자본주의는 국가를 잘살게 만들어야 하고, 민주주의는 국가를 다스려야 하며, 도구는 목적을 달성해야 하므로 조절된다. 낫은 풀을 베어야 하고, 곡괭이는 땅을 파야 하고, 톱은 나무를 잘라야 하고, 칼은 과일을 깎아야 한다. 모든 조절장치는 밸런스가 있다. 도구는 객체를 이겨야 한다. 이기되 비용이 초과하면 안 되고, 지속가능성이 없으면 안 되고, 안정성이 무너져도 안 된다. 밸런스는 인간이 판단해야 한다. 이념은 권력이고 권력은 폭주하므로 조절할 수 없지만 도구는 인간이 밸런스를 관리하므로 안전하다. 도구의 사용은 경로가 있다. 최적화가 있다. 같은 재료를 같은 도구로 요리해도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맛이 다르다. 대칭과 상호작용이 있어서 상호작용 과정에 문제가 용해된다. 내부에서 스스로 조절된다. 너죽고 나죽기로 가지 않는다. 극단주의를 막는다. ### 우리는 비뚤어진 계몽주의와 싸워야 한다. 계몽주의가 다 나쁜 것은 아니나 계몽에 권력이 따른다는 점이 문제다. 계몽주의는 어린이를 구슬리는 방법이다. 무지한 사람을 선동하여 권력을 창출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플러스다. 플러스가 인간을 흥분시킨다. 서부에 금광이 터졌다고 선동하면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온다. 금을 캐려는 광부들에게 청바지만 팔아도 이익이 남는다. 거기에 선점한 자의 권력이 있다. 그 권력이 인간을 흥분시킨다. 사람이 늘어날수록 미쳐 날뛴다. 인간은 선점한 자의 권력에 복종한다. 뒤에 온 사람은 먼저 와서 빈 땅에 말뚝 박은 사람에게 복종한다. 모든 이념, 모든 계몽이 지식을 선점한 자의 말뚝박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식 투기꾼이나 부동산 투기꾼이나 같다. 계몽주의는 지식으로 사람을 줄세우는 지식 알박기다. 도구는 마이너스다. 도구는 무언가를 제거한다. 낫으로 풀을 제거하고, 톱으로 나무의 죽은 가지를 자른다. 집은 더위를 막고 추위를 막는다. 도구는 무언가를 줄인다. 도구를 쓰면 열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해서 인원이 줄고 권력이 사라져서 차분해진다. 계몽주의 플러스 - 사람이 계몽될수록 권력이 생겨서 인간들이 흥분한다. 도구주의 마이너스 - 도구를 쓰면 인원이 줄고 권력이 감소하므로 차분해진다. 여기서 관점의 문제다. 얻는 자의 포지션이냐 주는 자의 포지션이냐다. 계몽주의는 가진 것 없는 소년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주는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구세주를 기다리고 기적을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사실을.
### 계몽주의는 본질주의다. 본질주의는 목적주의다. 본질주의는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사람을 비난하고 감정을 소비한다. 무언가를 얻으려는 아기는 울어야 한다. 노동자는 사용자를 비난해야 한다. 약자는 감정을 소모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약자 - 얻어야 한다. 얻는 것이 본질이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울어야 하므로 감정을 소비한다. 강자 - 주어야 한다. 주는 사람은 적당히 조절해서 주면 되므로 감정의 소비가 없다. 조삼모사와 같다. 얻으려고 하는 원숭이는 무조건 꺅꺅댄다. 무조건 불만을 터뜨린다. 도토리가 넉넉해도 누가 훔쳐갈지 모르므로 부족하다고 운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떠넘길 수 있었다. 칼자루를 쥔 자의 승리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추다. 저울을 쥔 자가 권력을 쥔다. 도구주의는 권력을 쥐었으므로 사람을 씹지 않는다. 충성도 복종도 필요없다. 묵묵히 도구를 사용하여 조절하면 된다. 계몽주의가 충성을 증명하려고 과잉행동을 해서 감정을 소모하는 것과는 다르다. 계몽주의 : 약자가 강자에게 무언가를 바란다. 본질주의 : 강자가 약자에게 주는 것이 본질이다. 구성주의 : 기능은 여렷이 힘을 합쳐야 이루어진다. 도구주의는 구성주의다. 문제가 있으면 도구를 수리하면 되므로 감정의 소모가 없다. 요리사는 칼을 갈아두면 된다.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 정 안되면 비싼 재료를 쓰면 된다. 트러플을 사용하면 요리의 품격이 올라간다. 얼굴 붉히며 사람과 충돌하지 않는다. 본질주의는 받는 사람 포지션이다. 받으려는 사람은 본질에 집중한다. 주는 사람은 부모다. 부모에게 복종한다. 주는 사람은 군주다. 군주에게 충성한다. 주는 사람은 스승이다. 스승에게 제압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데아다. 계몽주의는 이데아에 과몰입한다. 구성주의는 주는 사람 포지션이다. 도구는 능동적으로 행한다. 칼은 도구다. 칼은 선제공격한다. 총은 도구다. 총은 선제공격한다. 도구는 조절해야 한다. 이발사가 너무 짧게 자르면 안 되고 너무 길게 잘라도 안 된다. 도구는 환경과 맞추어 나란히 가야 한다.
### 구조주의 관점이 쉽게 응용되는 분야가 지정학이다. 구조주의는 도구주의에 기능주의다. 국가는 하나의 도구다. 전쟁도 하나의 도구다. 권력도 하나의 도구다. 민족도 하나의 도구다. 민족주의가 목적이 되면 위태롭지만 도구가 되면 방어에 이용할 수 있다. 도구는 선악이 없다. 도구는 균형원리에 의해 조절된다. 권력이 목적이 되면 폭주하지만 문제해결의 도구가 되면 조절된다. 도구는 효율성, 안정성, 역동성, 지속성, 완결성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관념의 언어로 도피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도구는 방해자를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만 피로스의 승리는 곤란하다. 전술에서 이기고 전략에서 지면 피곤하다. 종횡가, 법가, 마키아벨리즘은 선악논리를 배제하고 건조하게 국가라는 도구, 전쟁이라는 도구를 다룬다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다. 지정학은 국가라는 자동차, 전쟁이라는 자동차의 운전기술이다. 로마군이 건축가의 방법으로 전투를 차근차근 지어가는 것과 같다. 바보들은 군중을 선동하고 사기를 높여서 권력을 창출하고 권력의 기세로 이기려고 하지만 방해자를 만나면 쉽게 무너진다. 기능주의는 기세의 플러스보다 방해자의 마이너스에 집중한다. 보급로를 확보하고, 요충지를 장악하고, 적정을 탐지하고, 예비대를 편성하고, 주력을 강화한다. 공격전은 종심에 집중하여 일점을 타격하고 방어전은 횡으로 연결하여 배후의 안전을 확보한다. 자동차에 핸들과, 브레이크와, 가속페달과, 기어와, 클러치가 있듯이 자본주의에 금융과, 환율과, 재정과, 임금과, 보험이 있듯이 민주주의에 언론과, 시민과, 정당과, 사법부와, 지방자치가 있듯이 기능주의 관점은 빌드업과 협력수비의 갖추어짐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