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질량과 무게의 차이라고 생각할 텐데, 여기에 과학자들이 설명을 제대로 하는 꼴을 내가 못 봤다. 이런 건 설명하려면 어렵다. 왜냐하면 기준자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실패는 언제나 결과를 중심하여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원인자를 가리킬 때 뿐이다.
둘의 차이는 절대성과 상대성이라고 한다. 질량은 절대적이고 무게는 (중력에) 상대적이라는 건데, 상식적으로 질량이 절대적일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잖아. 인간이 해명을 못 하니깐 그냥 절대적이라고 치는 거지, 당연히 질량도 상대적이어야 한다. 그럼 뭐에 의해 상대적일까? 어떤 원인자에 의해 상대적이다. 뉴턴이 말하는 관성은 결과적인 표현이다. 질량의 원인, 혹은 기준자는 다른데 있다.
자이로볼을 돌려보거나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핸들을 살짝 꺾어보면 관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움직이면 못 느끼고 빨리 달릴 때만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왜 빠르게 움직일 때만 각운동량이 느껴지는 지 잘 생각을 해봐야 한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라고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어떤 게 "보존"된다면 그 보존을 정의할 바탕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보존이라면 그 에너지를 담보할 바탕이 필요하다.
그 바탕을 정의하는 게 중력까지는 쉬웠다. 지구와 사과 사이에 중력이라는 게 있다고 말하면 되니깐. 근데 관성을 설명하려니 중력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중력도 운동에 의해 상대적인 개념이다. 빠르게 움직이면 중력이 결과적으로 발생한다는 걸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이 괜히 말한 게 아니다. 관성은 저혼자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에 의해서 성립한다.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상대성 이론의 핵심은 빛의 속도가 아니라 빛의 속도와 질량을 담보하는 그 무엇이다. 새가 날 수 있는 것이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나 고양이가 자세를 바꾸는 것이나 모두 뭔가에 기대어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 결과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그건 물을 수 없다. 원래 이런 건 있다고 치는 거다.
질량 = 내부 방향전환 총량.
자동차가 정지해 있어도 시동이 걸려 있어서 엔진이 돌고 있다고 치고
사람이 정지해 있어도 심장이 뛰고 있다고 치고
물질이 정지해 있어도 겉보기로 정지했을 뿐 내부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고 치고
우리가 보는 물질은 내부 방향전환의 결맞음에 의한 나란함.
우리가 보는 물질은 자이로볼의 관성을 느낀 것.
관성을 느낀다는 것은 결어긋남을 느끼는 것.
정지질량이 없을 뿐 빛도 질량이 있고
질량을 숫자로 표현하면 그게 에너지.
하여간 구조론으로는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