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소설 오후 네 시가 한국에서 영화화되었나 보다. 영화는 원작의 느낌을 십분 살리지 못했다. 무대를 경치 좋은 시골로 설정해서 어색하다. 시골에는 피할 곳이 많은데 왜 옆집으로 피신을 와? 영화는 망쳤지만, 원작의 메시지는 곱씹어볼 만도 하다. 이웃집 사람이 오후 네 시만 되면 우리집에 찾아오는 이유는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어서 얻으려고 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 집에 있는 최악을 피하여 피난을 온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 아니라 회피의 동물이다. 이러한 본질을 알아야 한다. 윤석열은 왜? 처세술로 돈벌이하는 사람은 무언가 플러스를 주문한다. 삼천 배를 해라. 108배를 해라. 1만 번 반복해라. 스님은 루틴을 만들어 준다. 기도를 하거나 하면 교회에 가면 마음이 안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무언가를 회피하는 것이다. 본질은 자존감 문제다. 묵을 쑤라고 하는 스님도 있는데 묵을 쑬 때 타지 않게 쉬지 않고 주걱으로 저어야 하므로 무념무상이 된다. 교회에 가는 것도 구원을 얻으러 가는 게 아니라 그게 회피행동이다. 플러스로 가면 자꾸 숫자가 늘어난다. 결국 라마교가 되어 마니차를 돌려야 한다. 일련정종의 '나무묘호렝게교'도 같은 수법을 쓰고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고. 그게 임시피난은 되지만 근본치료는 아니다. 자기가 무엇을 회피하는지 알고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 무의식적인 회피를 정면으로 맞서면 결국 자존감의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의지할 형님과 대화할 동료와 부려먹을 아우와 실천할 액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존감의 본질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존감이 있다. 의지할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은 엘리트 집단의 보호를 받으므로 자존감이 있다. 우리가 엘리트의식, 귀족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존감이 없으면 속물행동을 하게 된다. 외제, 명품, 골프, 오마카세, 호캉스, 해외여행 따위에 집착하는 사람이 자존감 낮은 사람이다. 윤석열의 허세도 그게 일종의 갑옷이다. 명품이나 성형수술도 심리적 갑옷이다.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이다. 왜 방어하려고 할까? 무언가에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집착은 자기 자신에게 상을 주려고 하는 행동이다. 타인에게 인정을 못 받으므로 스스로 인정받으려는 행동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게 바로 자위행위다. 차지철을 검색해 보면 이 자가 얼마나 자존감이 낮은 인간인지 잘 드러난다. 괴상한 나치제복을 만들어 부하들에게 입히고 경호원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하고 각종 기행을 한다. 옷도 깨끗하게 머리도 단정하게 한다. 123 사태 때 굥과 추경호가 이발소 간 이유다. 한동훈의 각종 뽕시리즈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전형적인 행동이다. 자존감을 높이려면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팀, 신의 팀, 자연의 팀, 진보의 팀, 문명의 팀에 들어서 선수로 뛰면서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동료와 손발이 척척 맞을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 어려서 박정희가 망가질 것을 예측하고 박정희 처단의 날에 혼자 만세를 불렀다. 예측이 맞아졌다. 나의 기대대로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과 내가 엇나가지 않고 서로 톱니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자존감은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에서 나온다. 물론 헛헛한 구석도 있다. 자식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지할 부모가 있고, 대화할 동료가 있고, 심부름 시켜먹을 자녀가 있어야 자존감을 얻는 것이다. 사람을 사귀고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을 거느리고 인류에 기여하는 미션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단순히 징크스와 루틴을 지키는 행동과 혹은 여러 가지 터부 행동도 이 문제를 우회하는 편법이 된다. 자존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며 결국 자기를 공격하는게 문제다. 루틴이 있으면 일단 망설이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으면 여러 기행을 한다. 상대방이 내게 말을 걸어주도록 관종행동을 하는 거다. 그게 지나치면 범죄가 된다. 한동훈의 셀카행동도 그런 기행이다. 어떤 조폭이 자기를 체포하면서 가족들 앞에서 편의를 봐주는 경찰을 엿먹이고 갑자기 도주했다가 나중에 잡힌 일이 있다. 왜 도주했을까? 자기를 도와주는데도? 경찰을 이겨먹었다는 자부심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기를 경멸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큰소리는 칠 수 있다. 나 그때 말이야. 경찰을 엿먹이고 내뺐지. 나의 달리기 실력이 살아있었다니까. 믿어져?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구태여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윤석열은 기어코 국민을 이겨먹으려고 한다. 이재명을 이겨먹으려고 한다. 왜 이기려고 할까? 이준석이 싸가지 일화는 유명하다. 모든 회의를 깽판쳐서 결론을 내지 못하게 방해하고 뗑깡 부린다. 왜 양보를 투자하여 신뢰를 벌지 않을까? 정치인은 신뢰가 자산인데? 자신을 양아치로 보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자존감이 없다. 자신을 등신 취급한다. 찬스만 있으면 먹는다. 세상과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게 자존감이다. 세상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낀다. 자존감 높은 사람은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와서 피곤하다. 발명가나 모험가나 스타는 자존감이 높다. 임영웅은 자존감이 낮다.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고 잔머리 굴린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자존감이 높다. 트럼프 윤석열은 아버지에 복수한다. 자존감이 낮은 자가 관종행동을 하고 이겨먹으려고 이상한 짓을 한다. 이겨봤자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또 사고를 친다. 자존감 높이는 방법은 어린이 시절로 돌아가 아빠한테 머리 쓰다듬을 받는 것이다. 윤석열이 돌아가신 아빠를 호출하려고 사고를 친다. |
노무현이 탄핵당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울었고
노무현이 서거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울었고
박근혜가 당선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울었고
윤석열이 당선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울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랐다.
역사는 시점이 아니라 흐름이라는 걸.
언젠가 구조론에서 읽은 '나무에 올려놓는 이유는 흔들기 위해서'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야 진짜 나쁜 놈임을 안다.
윤석열이 개라는 건 대통령을 해서 알게 된 사실이고
이명박이 잡놈이라는 건 대통령을 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역사를 시점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라는 비극의 연속
역사를 흐름으로 보면 결국 박정희는 총 맞아 뒤졌고 전두환은 감옥갔고 이명박은 감옥갔고 박근혜는 감옥갔고
윤석열은 김건희와 나란히 감옥갈 상황이다.
역사는 반드시 올바르게 흘러간다. 그 올바른 흐름을 위해서 각각의 시점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하지만 역사는 시점이 아닌 흐름이라는 점. 그렇게 올바르게 흘러간다. 그게 자연의 이치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 봐야 누가 진짜배기인줄 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지금 이재명도 나무위에 올려놓고 흔들림을 당했다.
역사는 바르게 흐르고 바른 평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