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 문제는 인간이 얼마나 추상적 사고에 약한 존재인지 알게 한다. 인간이 죄다 빡대가리라는 증거다. 일단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결정론이 참이든 아니든 자유의지와 연결되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아이큐 문제다. 어휘력이 딸리냐? 예컨대 이런 거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범죄자는 불운하게 범죄자로 태어났을 뿐이다. 범죄자는 치료 대상이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개소리다. 무는 개는 목줄을 채운다.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맞대응이다. 단순한 물리적 대응인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비난은 공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하여 시민을 학습시키는 장치에 불과하다. 경찰이나 교도관은 범죄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자기네 밥벌이 수단인데 왜 미워해? 치과의사는 충치를 미워하는가? 그냥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데 낚이면 바보다. 바보생각 - 알고 보면 불운하게 태어난 범죄자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바른 판단 - 아무도 범죄자를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조질 뿐. 범죄자를 미워하는 발언은 시민을 학습시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자유의지는 권력이다. 범죄자에게도 권력은 있다. 다른 말로는 인권이다.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권력이 박탈된다. 권력박탈은 범죄자 본인이 자유의지로 결정한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자유의지로 자살하는데 정신병원에 가둬서 자살을 막아야 하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신체에 대한 권력이 있다. 손발을 움직일 수 있다. 식물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 어떤 인간의 손에 흉기가 쥐어져 있고 그 사람이 흉기를 휘두를 힘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은 그 흉기를 빼앗아야 한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흉기가 있다는 말과 같다.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자유를 박탈할 수 있고 흉기가 있으므로 흉기를 빼앗을 수 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범죄자의 흉기를 빼앗을 수 없다. 개인의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이에 대응하는 집단의 자유의지도 있다. 집단의 자유의지로 범죄자의 자유의지를 압수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무는 개의 입질을 차단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권력이므로 당연히 인권이 있고, 신체의 자유가 있고 그러므로 자유를 박탈할 수도 있다. 흉기가 있으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압수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론은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1. 범죄자 문제 - 범죄자의 경우는 타고난 유전자가 그러하므로 불운한 사람이다.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신 치료할 수는 있다. 정답 – 범죄자는 범의라는 흉기를 쥐고 있다. 집단은 범죄자 손에서 흉기를 빼앗을 수 있다. 범죄자 인권을 제약할 수 있다. 범죄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데 매몰될 필요는 없지만 물리적 맞대응은 해야 한다. 해설 – 범죄자도 불운한 사람이라면 말로 타이를 필요는 없지만 몽둥이로 타이를 필요는 있다. 범죄자가 몽둥이를 쓰기 때문이다. 범죄자에 대한 비난은 국민을 교육시키는 수단일 뿐 비난이 아니라 대응이다. 2. 뇌과학 문제 - 리벳실험으로 밝혀진 진실은 인간의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먼저 행동하고 변명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 정답 - 말장난에 불과하다. 행동은 루틴을 따르는 것이며 루틴은 전략에 의해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 즉 훈련되어 있다. 좀도둑의 도둑질도 버릇이므로 죄가 없다는 말인데 그 버릇을 고쳐야 한다. 해설 - 자유의지는 인간 내부의 판단이 아니라 외부를 지배하는 권력이고 권력은 전략이므로 권력을 압수하여 전략을 바꾸게 하는 것은 정당하다. 버릇이 나쁜 자는 신분을 갈등시켜 버릇을 고치게 한다. 학교에 보내는 이유다. 3. 결정론 문제 - 라플라스의 악마로 보면 모든 것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 일란성 쌍둥이의 운명은 같다.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정답 –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아무 관련이 없고 결정적으로 어떤 의사결정에는 소립자 단위까지 조정할 이유가 없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단계적으로 확정되므로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 뉴턴의 착각인데 원자설의 오류다. 의사결정이 1회에 일어난다는 믿음인데 천만에. 의사결정은 점차 범위를 압축하므로 미리 결정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해설 - 신이 미래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면 소수점 이해 백만 자리까지 미세조정할 필요가 없고 큰 전략을 바꾸면 된다. 우주는 한 방에 해결된다. 에너지는 방향성이 있으므로 큰 것을 잡아주면 작은 것은 자동으로 해결된다. 자유의지를 논하는데 숙명론이니 결정론이니 하는 게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자유의지는 권력이고 권력은 단계적인 의사결정이다. 첫 단추가 두 번째 단추를 제한하는 것이 권력이다. 첫 단추에 의해 모두 결정되는 게 아니고 두 번째 단추도 나름대로 결정하고 있다. 첫 단추는 두 번째 단추의 범위를 제한하지만 전부 결정하지 않는다. 사주팔자 따위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축구선수에게 포지션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럼 포지션이 없겠냐? 당연히 있다. 역할이 있다. 권력이 있다. 뒷배가 있다.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 소속이 있고 집단이 있고 상부구조가 있다. 협회가 있고 가족이 있고 동호회도 있다. 의지하는 뒷배가 있으므로 권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고, 인권이 있고, 힘이 있다. 앞배도 있다. 따르는 무리가 있고 후손이 있고 부하가 있다. 자유의지에 반하는 것은? 행복, 쾌락, 사랑 – 인간들이 서로 만나게 하는 유전자의 장치. 만나면 흥분하고 흥분하면 개가 된다. 자유의지가 아니라 호르몬 의지다. 사랑은 해석에 따라 자유의지가 될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의 원인 측은 자유의지, 결과 측은 호르몬 의지다. 윤리, 도덕, 명성, 성공, 평판, 출세, 신분 – 개인을 사회로 유도하는 장치. 집단과 공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은 타인의 마음, 특히 집단의 무의식에 조종 받으므로 자유의지가 아니다. 집단이 개인을 조종하는 수단이 된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자유의지다. 자유, 민주, 평등, 평화, 의리, 공존.. 집단과 팀플레이를 하므로 자유의지가 있다. 인간은 자유, 민주, 평등, 평화, 공존, 의리에서 에너지를 빼먹는다. 사회주의는 자유의지가 있지만 개인 몫이 작고 자본주의는 몫이 크지만 위에 있는 대가리들만 자유의지가 있다. 자본주의 - 아꼈다가 몰아서 먹겠다. 각자 전략적인 판단을 하므로 장기적인 자유의지가 있다. 사회주의 - 짱박지 말고 남들 보는 앞에서 다 먹어 없애라. 단기적인 자유의지가 있으나 장기적인 자유의지가 없다. 자다가 새벽에 몰래 뽀글이 금지. 도구, 실력, 능력, 미모, 지능.. 힘이 있으면 당연히 자유의지가 있다. 무사는 칼이 자유의지고 병사는 총이 자유의지다. 기술자는 기술이 자유의지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도구가 없고 실력이 없다는 말과 같다. 도구도, 실력도, 힘도 없으면 자유의지가 없다. 노예, 아이돌, 알바, 성매매.. 노예는 자유의지가 없고 귀족은 자유의지가 있다. 노예가 일하는 동안은 자유의지가 없다. 사건의 이해 결과 측은 자유의지가 없고 원인 측은 자유의지가 있다. 불을 끄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고 불을 지르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다. 해군은 자유의지가 없고 해적은 자유의지가 있다. 시키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고 고용된 사람은 자유의지가 없다. 퇴근하면 자유다. 자유의지론은 사건의 원인 측이냐 결과 측이냐지 결정론과 무관하다. 자유의지는 자발성이다. 원인이 사건 내부에 있어야 한다. 내 마음 내부에 혹은 내가 소속된 집단 내부에 원인이 있으면 그게 자유의지다. 수비수는 원인이 상대방에 있으므로 자유의지가 없다. 적군의 침략을 방어해야 한다면 적군이 주도권을 쥔다. 아군은 상대가 뚫는 곳을 막기에 급급하므로 자유의지가 없다. 그러나 공격수는 자기가 공격할 지점과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한다. 패널티킥을 차는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고 골키퍼는 자유의지가 없는 거다. 비행기 타는 것은 내가 결정하고 타면 승무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원인은 자유의지이나 결과는 자유박탈이다. 아기를 낳는 것은 내 마음이고 키우는 것은 사회의 명령이다. 자유의지와 강제동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원인과 결과다. 원인 측을 주목해야 한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말과 같다. 안이 있는데 밖이 없을 수 없다. 자유의지를 뺏길 수 있는데 그 빼앗길 자유의지가 없을 수 있겠는가? 유치한 말장난이다. 자유의지와 자유의지의 박탈이 동시에 있다면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있으므로 앞면이 없다고 말하면 궤변이다. 남자와 여자가 있으므로 남자는 없다고 말하면 개소리다. 물론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인간도 있고 뇌사자도 있고 그들은 자유의지가 없다. 우주는 게임이고 전략이라는 본질이 중요하다. 우주는 정밀한 컴퓨터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 사전에 결정된 전략을 따라간다. 큰 틀거리를 정해놓고 세부를 확정해 가는 것이다. 세부가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자유의지는 있다. 결정적으로 자유의지는 우주론과 무관한 사회의 권력론으로 봐야 한다. 권력의 크기는 자신이 의지하는 뒷배의 크기, 소속된 집단의 크기, 자기가 틀어쥔 도구의 크기, 능력의 크기, 게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큰 팀에 들어 큰 게임을 벌이면 큰 자유의지가 있고 작은 팀에 들어 작은 게임을 벌이면 그만큼 자유의지는 사라지는 것이다.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이 다 도구입니다. 그런데 점차 약화됩니다. 인상주의 이후 새로운 미술 사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올 것은 다 나온 거지요. 시계 태엽이 다 풀려버린 거. 70년대 이후 새로운 미술사조는 없는듯.
춤은 맘보, 삼바, 지르박, 탱고, 고고, 디스코 이후 나온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있겠지만 큰 의미 없는듯. 음악도 그렇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다가 쇠퇴기가 도래하면 매너리즘에 의해 점차 지리멸렬해집니다. 그러나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므로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맞출 듯.
사람들은 자유의지냐 결정론이냐 흑백논리로 바라보는데 메커니즘으로 보면 권력으로 설명되는 게 명쾌합니다. 예전에 복권이나 확률, 계의 범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렴풋이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큰 틀에서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만, 그 안에서 단계적으로 범위를 좁혀가며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주체는 다음 단계에 대해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다. 첫 단추가 이후의 범위를 제한함. 역사책에 이름은 달리 등장하더라도 벌어질 일이 벌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에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예전에 결정해놓은 거. 우리는 그 다음 단계에 대해서 권력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거고. 우리 삶도 부모에 의해 태어남이 결정됨. 부모의 태어남은 그 이전의 이 땅에서 살고 있던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결정해옴. 비단 이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발전은 구석기같은 거 쓰던 시절에서 지금까지 지수법칙으로 도구의 등장 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단계가 계속 좁아지는 과정에 도구 등장의 시간도 같이 좁아지는 건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