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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106 vote 0 2024.07.10 (11:14:36)

    언어는 전제와 진술이다. 전제 없이 진술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못 알아먹기 때문에 자기소개 하지 마라 하고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다. 진짜 자기소개를 금지하는 걸로 착각하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백번쯤 했을 텐데 오해하는 사람이 꼭 있더라고.


    자기소개를 할 수도 있는데 얼굴이 좀 화끈거려야 한다. 자기소개를 안 하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수준을 들키는 거다. 초딩 일기 맨 앞부분에 '나는 오늘'을 쓰지 마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근데 나는 오늘을 안 쓰면 일기 자체를 못 쓰는게 딜레마다.


    초딩은 일기가 뭔지 모른다. 일기는 선생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천편일률. 나는 오늘 접시를 깼다. 꾸지람 듣고 반성했다. 다시는 접시를 깨지 말아야지. 나는 오늘 화분을 깼다. 나는 오늘 컵을 깼다. 일기는 선생님께 보이는 반성문인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정해 버린다. 이렇게 삐딱선을 타면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고가 경직되어 버린다. 결국 일베충이 되고 보수꼴통이 된다. 뇌의 사용법을 모르는 거다. 죽을 때까지 이걸 모르는 사람 있다. 왜? 학교에서 이걸 가르치지 않으니까.


    자기소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소설가의 데뷔작을 보면 아 이게 자기 경험이구나. 자서전을 소설이라고. 흠. 그런거 있다. 뽕짝만 그런게 아니라 힙합도 가사가 전부 자기소개이거나 자기소개 형식.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도 일종의 독백. 지하철 시도 다 자기소개. 


    자기 느낌을 시라고 쓰고 있어. 미쳤지. 누가 니 느낌 궁금하댔냐? 아줌마들은 주로 조선일보 문예반 같은 데서 시를 배워서 시는 자기 느낌을 쓰는 걸로 착각하고 있어. 시가 뭔지 모름. 아이디어가 없으면 자기 느낌이라도 쓰게 되는 거지만 그건 쓸게 없어 그렇고.


    시를 쓰려면 먼저 아이디어를 잡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음. 자기소개는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의 행동인 거. 최근에 알아낸 사실이다. 역사 과목은 날로먹는 과목이라 교과서 받고 한번 읽어보면 끝. 그런데 역사 과목이 어렵다는 사람 있어. 이유를 알아냈어.


    알고 보니 단어 뜻을 몰라. 아무개가 자기 장인을 죽였다. 근데 장인이 뭐지? 모름. 어휘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일병 이병 삼병.. 이러고 있어. 하루, 이틀, 삼틀, 사틀 하는 수준. 지구력이 떨어지면 중력이 감소하지. 무료하다면 공짜지, 연세 많으면 연세대 나왔지.


    금일휴업은 금~일 주말 내내 휴업이지. 고지식하면 서울대지. 이러고 있음. 이러니 역사 공부가 안 되는걸 내가 이제 알았어. 즉 그 이전 단계가 안 된다는 말임. 과학자들이 지들끼리 통하는 용어 쓰면 일반인이 못 알아듣는 것처럼. 역사 과목이 전문용어집이야. 


    ‘자기소개 하지 마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 자기소개를 해야지 왜 하지 마라고 할까? 그러니까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하라는 거지. 뭐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전제와 진술로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전제 부분을 숨기니까 대화가 겉돌고 뭔가 진행되지 않아.


    예컨대 이런 거. 사죄해(사죄하면 용서해줄게. 그러나 실제로는 녹음해서 고소함) 실제로 용서해줄 생각이 있었는데 진정성이 없어서 고소. 원래 그렇게 됨. 사죄를 듣고 있으면 열이 뻗쳐서 꼭지가 돌거든. 당연히 고소하지. 이런 부분을 말로 할 수 없다는 거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네가 사죄하면 용서해줄 의사가 분명히 있지만 네 사죄를 듣다가 꼭지가 돌아서 혹은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에 의해서 너를 고소할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을 고려해서 진정성 있게 사죄해 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하는 것도 숨기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아군이냐 적군이냐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고. 개고기 먹지 마라고 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을 아군으로 생각하고 설득하려고 하거든. 사실은 적으로 간주하고 상대방 약점 잡으려고 하는 말인데?


    인간이 언제나 전제를 숨긴다. 왜냐면 화자 자신도 자기주장의 전제가 뭔지 몰라. 자기소개 하는 사람은 유책주의로 전제를 깔고 들어가거든. 우리는 다 한 가족이다, 우리는 한 편이다 하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가는데 뭐가 한 편이야? 너 나를 언제 봤다고? 


    너 나 알아? 서로 모르는 사이잖아. 근데 이 부분을 학교에서도 안 알랴줌. 예컨대 군부대 위병소에서는 장군이라도 자기 신분을 밝혀야 보초가 문을 열어준다고. 그러나 실제로는 얼굴 익혀서 아는 얼굴이면 문을 열어줌. 별 달고 있는 사람이 너 내 얼굴 몰라? 


    이래버리면 보초가 쫄아서, 왜냐하면 안면인식 장애거든. 얼굴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겨라. 얼굴 아는 척하고 간첩한테 문 열어줌. 이러다가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 뚫려서 비상 걸린 적 있다고. 사회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겉보기 형식과 실제 하는게 달라. 


    행정병은 전화 받을 때 상대방 목소리 톤을 듣고 누구 전화구나 하고 알아내야 하거든. 목소리 칼라를 기억해야 한다. 왜 이걸 진작에 말해주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사회생활에 중요한건 하나도 학교에서 안 알랴줌. 굳이 말하면 이게 사회적 기술이라는 거지.


    굉장히 중요한 지식인데 각자 눈치껏 알아서 하는 거. 사회생활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눈치껏 하면 되는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냐?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냐? 자기 의견을 어떻게 발표해야 하냐? 이런 것도 눈치껏 해야 하는 걸로 되어서 망했다는 거지.


    그런 메타지식이 없이 소설 쓰고, 시를 쓰고, 칼럼을 쓰면 자동으로 자기소개가 되어버리는 것. 초딩일기처럼 쓰지 마라는 나는 오늘을 꼭 쓰거든. 초등학교 교과서에 사회적 기술 과목이 있어야 한다고. 문을 노크하라고만 하지 문을 왜 노크하는지 안 알랴줌. 


    들어오세요 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하나? 갑자기 문을 벌컥 열면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이 놀라니까 안에서 대답이 없으면 약간 뜸을 들이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인사를 하라고만 말하지 인사를 하면서 얼굴을 익혀라고는 말해주지 않음.


    1. 세상은 전제와 진술인데 전제를 숨기거나 전제를 모른다.

    2. 전제 부분은 사회적 기술이 되어서 눈치껏 알아서 행동한다.

    3. 시와 소설, 음악, 예술, 회의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4. 회의에서 굥이 혼자 떠드는 이유는 끼어드는 방법을 몰라서.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으니 성격이 이상한 사람 중에는 꼭 시비하는 형태로만 말 거는 사람 있음. 얌마! 씨바! 하고 욕설을 해야만 말이 나와줘 버려. 중딩만 되면 씨바씨바 하는게 이유가 있어. 씨바를 안 하면 말이 입에서 안 나와줘. 여기서 일진과 찐따가 갈리지.


    굳모닝 하고 인사를 하면 오늘은 날이 흐린데 어떻게 굳모닝이냐 배드모닝이지 하고 시비 붙는 사람 있어. 이건 외국 서적에 나온 이야기. 근데 이 양반도 아스퍼거인거. 회의석상에서 시비하는 형태로만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상당수. 굥 앞에서 이러다가 짤림.


    결국 아무도 말을 안 함. 회의는 멸망. 메타인지와 같이 메타행동이 있음. 인사가 대표적인 메타행동. 메타행동은 사회적 기술로 되어 눈치껏. 인사는 눈치껏 되는데 시를 쓴다면? 시의 메타가 뭔데? 의견을 발표하면? 전제가 뭔데? 가르치지 않으니 자기소개.


    내가 느낀 감상은 일기장에나 쓰라고. 시는 개인의 감상을 쓰는게 아냐. 이육사의 시를 읽어보면 시를 어떻게 써야 되는지 알 수 있음. 서로 공유하는 토대 드러내기. 자기소개 말고 메타소개. 서로 공유하는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 시와 소설과 그림과 음악의 목적.


    이발소 그림은 왜 그림으로 안 치냐? 뽕짝은 왜 음악으로 안 치냐? 다 이유가 있어. 관객이 그림을 보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그림을 왜 그리는지 이유를 모른다는 것. 예술은 과학이라는 말씀. 예술의 목적은 새로운 긴장감의 개척에 있어.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긴장, 전율, 카타르시스를 내가 발명했다는 게 예술. 그게 예술의 목적이라고. 이런 것을 학교에서 절대 안 가르친다는 거. 그래서 예술은 꽃을 그려 놓고 예쁘지? 예쁘지? 예쁘지? 하는 거라 착각. 그게 이발소 그림.


    사람들은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게 대화가 아닌 거다. 대화는 원래 의견이 맞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다. 적과 무슨 대화를 해? 잡담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담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에 없다시피 하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이다.


    초딩이 일기를 쓰려니 스트레스받는다. 스트레스받으니 괴롭다. 괴로우니 벌을 받는 느낌이다. 일기는 선생님이 나를 벌 주는 것이라는 직관적 판단이 든다. 벌을 받는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아! 화분을 깼구나. 그걸 일기에 쓴다.


    이런 식으로 많은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잡담은 되는데 진지한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소설가도 첫 작품은 자기소개가 대부분이지만 실력이 늘어서 나중에는 곧잘 쓴다. 그사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게 뭔지 말하는 사람 없다.


    포지션이 바뀐 것이다. 사회가 질문하고 나는 대답한다. 작품이 성공하면 작가 포지션에 서게 된다. 내가 질문하고 독자가 대답한다. 대답하는 사람에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바뀔 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뒤샹이 변기를 갖다 놓은 이유다. 예술이 뭐지? 질문한다.


    주유소 습격사건이다. 주인공들은 사회에 불만이 있다. 대답하는 포지션이다. 나는 이래서 화가 났다. 그건 사인방의 자기소개다. 그런데 주유소를 접수한 다음에는? 권력을 틀어쥔다. 꼬맹이들 앞에서 니들 중에 누가 쌈 대장이야? 질문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관객의 신분 역시 바뀐다. 무대뽀가 애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 때 관객들 역시 권력자가 된 느낌이 든다. 구구절절 과거 사연을 털어놓으며 동정심을 호소하던 찌질이 캐릭터에서 주유소라는 작은 나라의 왕으로 신분상승한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이라야 진짜다.



[레벨:5]윤민

2024.07.10 (12:26:42)

진술을 할 때,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전제를 살피고 발언하라는 말씀

그 전제가 자신의 막연한 감정, 자신의 포지션이 되서는 안되며

그 전제는 최종적으로는 진리, 즉 구조론의 원리여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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