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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86 vote 0 2024.02.16 (11:11:19)

    올드보이 원작은 정말이지 대단한 괴작이다. 일본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들이 여간내기가 아니구나.' 물론 재미는 없다. 그림체도 괴악하고. 일본에서도 망했다. 박찬욱이 판권을 2천만 원에 사서 영화를 만들어 일본에 20억에 되팔았다고 하니 100배를 남긴 셈이다. 


    나무위키에 원작의 핵심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지 않아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사이에 업데이트가 된 모양이다. 하긴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카키누마는 인간들을 원숭이 정도로 보는 자칭 천재다. 그는 자신이 범인들과 다른 비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높은 위치에서 인간의 속내를 꿰뚫어 본다. 인간들의 수준 낮은 행동 패턴이 훤히 보인다. 그렇다면 거품경제를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다. 멍청한 인간들의 반대로 움직이기만 해도 돈을 번다. 


    떼돈을 벌었다. 그런데 돈을 벌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할 일이 없어지니 과거가 생각났다. 그는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들과 다른 비범한 존재, 깨달은 사람, 해탈한 부처의 마음, 초인의 경지에 올라서 진정한 쿨함에 도달하기는 개뿔 그 역시 자다가 군대꿈이나 꾸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거다. 


    인간 위의 초월적인 존재라면 사랑과 같은 동물적 감정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들켜버렸다. 초딩 시절 키도 크고 잘생겼고 이지메도 하지 않고 성실해서 자신이 마음속으로 숭배했던 고토가 카키누마의 속마음을 꿰뚫어 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카키누마가 전학을 왔는데 못생겼다는 이유로 왕따에 시달렸지만 쿨하게 무시하고 넘어갔다. 왜냐하면 나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이니까. 이런 하등동물의 하찮은 행동에는 적당히 맞춰주고 6개월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부르는데 감성이 폭발하여 너무 구성지게 불러버린 거였다. 긴장이 풀려서 순간 무장을 해제한 거. 


    다른 애들은 저 찐따녀석 하고 시큰둥한 편인데 고토가 그 노래의 의미를 알아챘다. 이지메 당해도 신경쓰지 않는 척하는 카키누마가 사실은 열등감 덩어리에 한 많은 인간이고, 켜켜이 쌓인 설움이 노래에 반영되어 감성폭발. 그것을 알아채고 고토는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 한 방울을 카키누마가 봤다.


    카키누마는 겉으로 태연했지만 왕따를 모른 척하는 여교사를 옥상에서 벽돌을 던져 죽이려고 했을 정도로 사실은 왕따를 일삼는 급우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교사는 범인이 카키누마임을 알았지만 증거가 없었고 굳이 문제를 확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사 역시 비겁하게 졸업 때까지만 버티려고 했던 것이다. 고토는 그냥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공부는 잘했지만 못생겼고, 작았던 카키누마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키 크고, 착하고, 잘 생기고, 활기찬 고토를 좋아했다는 점이다. 재벌급 부자가 된 카키누마는 고토가 요즘 뭣하고 지내는지 알아봤는데 성공은커녕 평범한 비렁뱅이로 살고 있었다. 저런 하등동물을 숭배했다니 참을 수 없다.


   1. 고토는 잘난 녀석이지만 내가 왕따당하는 것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
   2. 내 노래의 의미를 알아챌 정도의 대단한 녀석이 지금 평범한 월급쟁이다.
   3. 흑역사를 아는 녀석이 있다는게 트라우마가 되어 나의 활약을 방해한다.
   4. 내가 TV 나가서 잘난 척하면 저 녀석이 TV 보고 킥킥거리며 비웃겠지.
   5. 한 사람의 인생을 흔들어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면 용서할 수 없다.


    라는 말도 안 되는 괴논리로 10년간 사설감옥에 가둔다. 감옥 안에서 3년도 못 버티고 자살하겠지. 근데 자살 안 하고 버티네? 저 녀석이 그래도 평범한 원숭이는 아니었다는 거냐? 호기심 발동. 그렇다면 게임 스타트다. 10년씩 가둬놔도 멘탈이 붕괴되지 않고 버틴다면 내가 자살해 줄 수도 있다. 너의 내공을 인정해 준다. 그래 너도 내공을 숨기고 있었다 이런 거냐? 게임하는 맛이 찰지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는 점에 오히려 감칠맛이 있다. 말이 되면 그게 예술이냐고?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게 예술이지.


    근데 왜 이게 중요하냐? 98년에 연재종료된 원작은 박찬욱의 올드보이 덕분에 10년 후 뒤늦게 아이스너상을 받았다. 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지극히 적었다는 의미다.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쾌감이 있는 것이다.


    봉준호가 이 작품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보고 박찬욱에게 이거 네 스타일이잖아. 너 복수극 좋아하잖아. 네가 찍어봐. 이랬다는데. 어라? 봉준호 이 녀석 제법이네. 나와 통하잖아. 이런 친구라면 밤새 대화할 수 있지. 이런 느낌. 


    이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건 원작자도 모른다. 감으로 하는 이야기일 뿐. 사설감옥이라는 소재가 좋아서 영화가 히트했을 뿐 복수를 하는 이유는 말도 안 된다. 원작대로 찍었다면 완전 망했을 거. 내용을 뜯어고친다는 것을 알았다면 원작자가 허락을 안 해줘서 영화가 못나왔을 거라는 설도 있다.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다. 본질은 따로 있다. 그건 사랑이 뭐냐다.


    어두운 카키누마가 활기찬 고토를 좋아했다는게 본질이다. 못생긴 찐따 이우진이 잘나가는 일진 오대수를 좋아한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근데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거품경제의 결말을 예측한 천재 카키누마가 저런 별 볼 일 없는 원숭이 고토를 초딩 때 숭배했다니. 쪽팔려. 초인이 되기는 글렀다. TV 나가서 일본의 거품경제를 파헤치면 저 녀석이 밥 먹다가 킥킥거리며 밥상 걷어차겠지.


    이것도 사실 중요한게 아니다. 원작만화는 외모 콤플렉스에 방점을 찍었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콤플렉스는 누구나 다 있다. 원한관계가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뭐냐? 그것은 의지하는 마음이다. 그냥 예쁘다. 좋다. 반했다. 뿅갔다. 이건 어린애들이 하는 소리다. 


    사랑하는 것은 동물이 누워서 자기 배를 보이는 것과 같다. 홀딱 벗고 한 침대에 들어가는 것은 상대가 나를 잡아먹을지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배를 보이는 것은 엄마 품의 아기다. 즉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배를 드러내고 자신의 약점을 보이는 것이다. 


    아기 카키누마는 엄마 고토의 품에 아기처럼 안겨서 배를 보인 것이다. 엥?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감성이 폭발하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엄마가 아기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그럴 때 아기는 순수해진다.


    스티브 잡스라면 어떨까? 양부모가 지원해주는 학비를 거절하고 자퇴해 버렸다. 왜? 겉으로는 효도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는 엄마 품의 아기가 아니었다.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며 약점을 감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를 신뢰하지 않았다. 신뢰했다면 어리광을 부려야 한다. 돈을 뜯어내야 한다.


    왜? 엄마니까. 학비 뜯어내기를 미안해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한 것이며 그것은 견주의 품에 안긴 강아지가 배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올리버 쌤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는게 리트리버는 금방 배를 보여주는데 진돗개는 절대 배를 보여주지 않는다. 완전히 방심하지 않는다. 


    완전히 방심해야 진정한 사랑이다. 스티브 잡스는 친부모에게 복수한 것이다. 췌장암 치료를 거부하고 일찍 죽은 것도 마찬가지. 왜 의사 말을 안 들었을까? 그걸로 친부모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원작만화가 인간 심리의 어떤 심연을 파헤쳤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배를 보이는 것이다. 방심하는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흑역사를, 수치를, 창피를 공유하는 것이다. 민낯을 감추고 화장한 얼굴만 보여주겠다는 식이라면, 가발 쓰고 키높이 구두와 연탄재 칠한 얼굴만 보여주겠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방심하지 않은 것이며 갓난아기의 순수한 방심에 이르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카키누마는 초인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기행 역시 방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카키누마의 복수다. 돈 있고 명성 있고 여친 있고 다 있는데 왜 저러지? 아! 그는 방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구나. 자신의 약점인 배를 숨기고 있다. 정용진은 소인배라서 당연히 그렇고. 그렇다면 윤석열은? 아! 고시 9수 개망신을 사회에 복수하고 있구나. 한동훈 역시 가발 쓰고 대한민국에 복수하고 있다.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을 성공하게도 하고 실패하게도 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 고토를 사랑했기에 카키누마는 성공했고, 사실은 고토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서 환멸을 느꼈고, 감옥에서 10년 버티니까 역시 내가 제대로 본 건가? 하고 게임을 한 것이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가 지구에 몇이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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