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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66 vote 0 2023.01.23 (00:15:02)

    피타고라스는 대장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망치 소리에서 화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만 그 소리를 들었을까? 들을 귀 있는 다른 많은 사람은 왜 그냥 지나쳤을까?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고, 아낙사고라스는 '정신'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고,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했다. 다들 하나씩 밀고 있었던 것이다. 뭐라도 하나 해야 하는 분위기다.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소리를 들었다. 왜 그 소리가 들렸을까? 그에게는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델피의 신전에서 신탁을 받고 오더니 사람이 이상해졌다. 아테네 시민들은 광장에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고개를 돌리고 모르는 척했다. 소크라테스에게 붙잡히면 곤란한 질문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현명하다는게 뭐지? 그는 지와 무지 사이에 금을 그었다. 대단한건 아니다. 그는 '지'를 엄격하게 정의했을 뿐이다. '자네는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강자의 이익이 정의다.' '강자도 사람이고 그러므로 실수할 때가 있겠군. 정의도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분격하여 곧바로 반격에 들어간다. '그럼 소크라테스 자네가 내 질문에 대답해보게?' '나는 무지한 사람이야. 나는 아는게 없다네.' 그는 남들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져 놓고 자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스 형님들은 다들 만물의 근원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혹자는 물을, 혹자는 불을, 혹자는 수를, 혹자는 정신을, 혹자는 공기를, 혹자는 이데아를 내세웠다. 소크라테스는 지를 말했다. 아테네 시민 중에 소크라테스가 가장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아테네 시민 전체와 각을 세운 것이다. 남들은 만물의 근원을 찾는가 본데 나는 만지혜의 근원을 찾아볼 테야.

   

    보려고 하면 보인다. 소크라테스는 신탁을 듣고 흥분해서 그랬겠지만 적극적으로 보려고 했기 때문에 본 것이다. 들으려고 하면 들린다. 피타고라스는 들으려고 했기 때문에 들은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성취 중에 하나는 소실점의 발견이다. 플라톤 이래 서구인들은 우주가 완벽한 질서 아래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 완전성의 증거가 되는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천동설은 행성이 왔다갔다 하는게 신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눈이 어지러운 복잡한 공식을 만들었다. 절박했던 것이다.

   

    공자는 그러지 않았다. 석가도 그러지 않았다. 노자도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치나 돔은 돌 하나만 빠져도 전부 무너진다. 모두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의 목조건물은 잘못 지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옆으로 틀어져서 돌아가다가 서서히 주저앉을 뿐.

   

    르네상스인들이 소실점을 발견한 것은 그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으로 우주의 완벽한 질서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화려한 건축은 신의 무오류성을 상징한다. 신의 이데아를 드러내려고 한 것이다. 소실점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본 것이다.

   

    구조론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다. 나는 아홉 살 때부터 작심하고 증거를 수집했다. 결어긋남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불화였다. 피타고라스가 화음을 들었다면 나는 불화를 느꼈다. 인류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내게는 다이몬의 소리였다.

   

    소크라테스가 본 것은 지와 무지의 경계다. 그 경계가 흐릿하다.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자네는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정의에 포함되는 여러 가지 조건 중에 하나만 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더 엄격한 조건을 부여한다. 하나라도 빠져나가는 구멍이 있으면 안되지. 상대성과 절대성이다.

   

    사실이지 이것은 언어의 문제다. 사람들은 지혜가 없는게 아니고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숫자가 없으면 수학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소피스트들에게는 법정에서 상대를 이겨먹는 상대성의 언어가 있었을 뿐 서로 다른 관점을 통일하여 서로 간에 대화가 되게 하는 절대성의 언어가 없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인간들이 이 문제를 대강 뭉개고 있었기 때문이다. 빛은 있지만 어둠은 없다. 빛은 입자가 있고 어둠은 암자가 없다. 선은 있지만 악은 없다. 선은 사회성이 있고 악은 사회성과 대칭되는 그 무엇이 없다. 악은 선을 설명하는 말에 불과하다. 진보는 있고 보수는 없다. 진보는 도달해야 할 문명이 있고 보수는 문명에 반대되는 그 무엇이 없다. 야만은 문명을 설명하는 말이다. 야만인은 있는데 왜 야만돼지, 야만소, 야만말은 없는가?

   

    이런 식으로 낱낱이 따지고 들면 인간들이 아는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대칭을 고리로 사유를 이끌어가지만 틀렸다. 기슭에는 대칭이 있는데 정상에는 대칭이 없다. 골문 앞까지 도달하면 패스를 받아줄 동료가 없다. 그 지점에서는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절대성의 세계, 비대칭성의 세계다.

   

    기슭에서는 대충 해도 된다. 정상에 도달하면 상대성의 언어, 대칭성의 언어를 버리고 절대성의 언어, 비대칭성의 언어로 갈아타야 한다. 골대 앞에서는 자력으로 한계를 넘어야 한다.

   

    양질전환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 무수히 양질전환을 경험한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헷갈릴 만하다. 무한동력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 무수히 무한동력을 본다. 태양은 100억 년 후에 작동을 정지한다. 100년을 못하는 인생과 비교하면 거의 무한이다. 풍력, 수력, 태양광 발전 또한 마찬가지다. 옛날 어부들은 바다에 무한히 많은 고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무한이지만 백 퍼센트 무한은 아니다. 헤겔이 양질전환이 있다고 믿은 것은 거의 무한이나 진짜 무한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느낌이 무한이면 대략 무한이지. 이런 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이렇게 대강 해도 되는가?

   

    우리는 줄다리기라고 한다. 줄로 당긴다고 믿지만 사실은 발로 땅을 민다. 엄격하게 따지면 줄다리기가 아니라 발로 땅밀기 시합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대충 뭉갠다.

   

    유는 있고 무는 없다. 무가 있다면 없음이 있는 것이다. 없음이 있다면 그게 없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무도 있고 유도 있다고 착각한다. 무는 없으므로 유와 대칭되지 않는다. 이런 막연한 생각은 모두 틀렸다.

   

    엄격하게 따지면 인력은 없다. 우주 안의 모든 힘은 척력이다. 힘은 밸런스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밸런스의 복원에는 공간이 필요하고 공간을 확보하면 밀게 된다. 인력은 척력이 꼬여 교착된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귀납은 없다. 지식의 조립에는 오직 연역이 있을 뿐. 지식은 원리의 복제다. 연역은 복제다. 귀납은 연역에 필요한 단서조달이다. 귀납은 연역의 하부구조다. 거의 양질전환이지만 사실은 양질전환은 아니고, 거의 무한동력이지만 사실 무한동력은 아니고, 거의 귀납이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귀납은 아니다. 귀납을 부리는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귀납은 발굴한 단서를 원리 앞으로 데려갈 뿐이고 지식은 원리에 의해 복제될 때 그 연역에 의해 완성된다.

   

    물을 끓여보자. 물의 온도가 올라간게 아니라 사실은 불의 온도가 물로 이동한 것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을 뿐이다. 정확히는 분자의 진동이다. 물의 양이 증가한 것도 아니고 물의 온도가 증가한 것도 아니고 이동한 것이다. 물에 설탕을 타면 설탕물이다. 물에 열을 타는 것과 물에 설탕을 타는 것이 다른가? 양질전환은 우주 안에 없다. 이건 무한동력 착각과 구조가 같다.

   

    우리가 언어를 대충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 아테네 시민이 무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언어를 대강 사용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현명한 것이 아니다. 그는 언어를 엄격하게 정의했을 뿐이다. 그는 언어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수학자는 수를 대강 사용하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파이값을 대충 3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피곤하니까. 그거 일일이 따지고 싶겠냐고. 한옥을 지을 때는 그래도 된다. 돌로 성당을 그렇게 대충 지으면 노틀담이 무너진다. 동양은 대충 해도 되니까 대충 한 것이고 그래서 대충 하다가 서양에 밀렸다. 기슭에서는 대충 해도 되는데 정상에서는 제대로 해야 한다.

   

    왜 동양인들은 5천 년 동안 소실점을 눈으로 뻔히 보고도 보지 못했을까?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거 본다고 쌀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서양은 달랐다. 피타고라스는 정리를 발견하고 황소 백 마리를 신전에 바쳤다. 그들은 신의 숙제를 끝내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돌집에 살았기 때문이다. 현대문명도 그렇다. 기슭에서는 대충 그래도 되는데 정상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대충 뭉개고 넘어온 것을 이제는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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