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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63 vote 1 2022.12.23 (20:37:23)

    Pilsung Kim 5분 · [페북 펌] <- 모르는 분이지만 맞는 말을 페이스북에서 자주 보게 된다. 


    뜬금없...지는 않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갑자기 내켜서 양자역학 이야기 한번 써볼까 합니다. 양자역학은 일반상대론과 함께 어려운 과학의 대명사처럼 불립니다. 


    유명한 과학자 이름과 함께 “그 과학자도 이해 못했다”라는 말이 따라다니죠. “유명한 과학자 이름”에 아인슈타인이 거론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비전공자들에게도 유명하니까요.


    그런데 양자역학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과학일까요? 양자역학이 발견된지는 100년이 훨씸 넘었고, 비상대론적 양자역학도 체계가 완성된 것은 100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양자역학이라는 “과목”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물리학 전공자들은 양자역학이 물리하 진입의 가장 큰 장벽이라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만, 그렇다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과목은 아닙니다. 이건 학부 이상 수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자역학은 이미 확립된지 오래된 학문이어서, 중요 케이스들은 대체로 다 검토가 끝났다고 보셔도 됩니다. 계산을 위한 도구들도 많이 연구되었고, 수치적 해석을 위한 기법들도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물리학 비전공자들 사이에서 천재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폰 노이만의 중요 공헌 중 하나가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수학적 도구들을 만들어낸 겁니다. 


    물론 사용되는 수학의 수준이 쉽지 않고, 기본기를 차근차근 다지면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도 어렵지만, 많은 전공자들이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갑니다. 어렵기는 하지만 정복이 불가능한 고지는 아니고,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도 양자역학을 사용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영자역학이 정복 불가능한 고지안 것처럼 언급되는 것은 틀렸습니다.
    그렇지만 좀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모든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직관입니다. 아무리 추상적이고 난해한 학문이라도 그 시작은 직관에서 시작합니다. 수학도 예외는 아닙니다. 뭔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기호들이 난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이디어의 시작은 수학자 머리 속에 떠오른 간단한 직관입니다. 이건 예외가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이 직관을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를 온전히 직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의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가 머리속에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수학적 직관에서 이런 저런 변형을 가하면서 추상화됩니다. 요 며칠 주목받았던 칸트는 이런 점에 주목해서 수학의 본질을 “선험적 종합판단”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양자역학은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속 직관과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진짜 심각한 문제가 빌생합니다. 양자역학은 자연과학이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맞다는 말은 우주가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직관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가 됩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던 이유가 이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상 우주에 대한 직관이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자신의 직관과 어긋나는 양자역학의 결론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가장 잘 아는 물리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은 계속 양자역학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양자역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문제제기에 답변을 하면서 양자역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양자역학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이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직관적” 문제제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이 EPR 패러독스입니다. 이 아이디어가 발전해 이른바 벨의 부등식이 나왔습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도 이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EPR은 아인슈타인-로젠버그- 포돌스키 3명의 물리학자 이름의 앞자를 딴 겁니다. 아인슈타인-로젠버그는 두어주 전 이슈가 되었던 웜홀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PR 패러독스는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버전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양자 하나가 있습니다. 이 양자는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두 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양자가 어느 한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이 양자가 우주 끝까지 이동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제 이 양자의 상태를 측정했더니, 양자가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걸 우리의 직관대로 이해하면 이렇게 됩니다.

    “입자가 오른쪽이나 왼쪽 둘 중 하나로 이동할 수 있는데, 확인을 해보니 오른쪽으로 이동했군” 이렇게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 양자는 오른쪽으로 가는 상태와 왼쪽으로 가는 상태 두 가지 상태를 가질 수 있는데,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오른쪽으로 가는 상태와 왼쪽으로 가는 상태가 서로 양자적 중첩을 이룬다. 그런데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측정을 했더니, 양자적 중첩상태가 오른쪽 상태로 붕괴하였다”

    말이 어려운데, 본질적으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겁니다.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뒤섞였다는 말처럼, 우주의 오른쪽 끝으로 간 상태와 왼쪽 끝으로 간 상태가 뒤섞여 있는데, 측정을 했더니 오른쪽 상태로 양자적 중첩이 붕괴되었다는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해석이 우리의 직관에 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주의 오른쪽 끝으로 간 상태와 왼쪽 끝으로 간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오른쪽으로 붕괴한다는 해석은, 양자적 중첩상태가 우주 전체에 걸쳐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첩상태가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걸쳐있다가,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주에 걸쳐있는 그 중첩상태가 한번에 붕괴(collapse)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주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측정이 발생했다는 정보가 시간지연 없이 한번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상대론에 의하면 정보가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으므로, 우주 전체에 걸친 순간적인 붕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게 EPR패러독스의 지적입니다.

    설명이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이른바 국소성(locality)에 대한 직관을 지적하는 겁니다. 말이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 우리의 우주에 대한 직관에 대한 이야기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국소성이란 어떤 변화는 그 근처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부채로 바람을 부치면 부채에 가까이 있으면 바람이 느껴지지만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부채가 있는지도 모르겠죠. 이런 게 국소성입니다.


    부채만이 아니라 모든 물리현상은 국소성을 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비국소성을 갖는 현상들이 있지만, 그런 현상들은 예외적이고, 설사 비국소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정보의 전달은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이게 양자역학을 제외한 다른 물리학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양자역학의 표준이론은 국소성에 위배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걸 지적한 겁니다. EPR 패러독스의 문제제기는 물리학자들에게 강하게 와닿았고,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물리학자 벨에 의해 벨의 부등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벨 부등식이 발견되면서, 원래는 사고실험이었던 EPR 패러독스를 실제 싧험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EPR 패러독스는 실험으로 검증되었습니다. 결론은 양자역학의 승리였습니다. 중첩상태의 붕괴는 국소성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우리들의 직관과 달리, 양자적 중첩상태의 붕괴는 우주 전체를 가로질러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왜 우리가 보는 우주, 우리가 직관하는 자연과 양자역학은 다른 걸까요? 우리는 아직 그 이유를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양자역학의 세계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연결하는 이론들이 있고, 대체로 “결어긋남” (decoher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상론적 접근일 뿐입니다. 양자역학이 진짜 우주를 제대로 기술하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진리가 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이상 날씨도 춥고 일하기는 싫어서 괜히 써본 양자역학 이야기였습니다.


    ###


    좋은 글이다. 전부 맞는 말일 게다. 그런데 말이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찰리 멍거'의 뒤집어 생각하기를 적용해보자. 왜 뒤집어보지 않는가? 뭐든 반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반대로 봐야 소문난 어깃장의 달인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어릴 때는 어김쟁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깃장 놓는 말을 많이 해서다. 재밌잖아. 


    나는 원자론을 처음 듣는 순간 이건 아니지 하고 반발했다. 나의 직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쪼개지지 않는다는게 내부가 없다는 말인지 그냥 단위를 그렇게 정한다는 말인지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내부가 없다면 외부도 없다는 말인가? 그럼 존재가 없다는 말이네? 


    양자역학이라는 것의 존재에 대해서는 서른이 넘어 뒤늦게 알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경험적 직관과 일치해서 유쾌했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야말로 경험적 직관과 맞지 않아서 뇌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어렵다.  


    빛보다 빠른게 없다면 빛은 어떻게 움직이지? 빛이 파동이라면 파동은 직진보다 많이 움직인다. 파동은 빛보다 빠르다. 파도가 진행한 거리와 상하로 움직인 거리를 곱하면? 모든 파동은 파동보다 빠르다. 빛은 빛보다 빠르다. 이런 판단은 1초 만에 나오는데 어떻게 빛보다 빠른게 없냐? 이건 고딩이 생각한 것이다.


    의사결정의 연출속도는 의사결정의 결과속도보다 빠르다. 배가 노보다 빠르면 노를 저을 수 없다. 노를 젓는 속도는 배가 달리는 속도 + 노를 당긴는 속도다. 우사인볼트의 다리가 진행한 거리는 몸통이 진행한 거리보다 멀다. 이건 경험적 직관으로 1초 만에 나오는 것이다.


    운동이 뭐지? 운동은 자리바꿈이다.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내 앞에 비켜주고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크를 해야 한다. 노크를 하면 안에서 방문을 열어주고 그다음 빛이 움직인다. 빛이 움직이는 속도는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느리다. A 에서 B로 간다는 것은 동시에 B에서 A로 온다는 것이다.


    그냥 A에서 B로 간다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너무 잘 이해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아귀가 딱딱 맞으면 불안하지. 유드리도 있고 숨은 변수도 있고 여백도 있어야지 우리가 아는 세계가 전부라면? 답답하잖아.


    칸트는 섬 우주론을 주장했다. 왜? 상식적으로 은하계가 있으려면 당연히 더 있어야 한다. 그냥 하나만 있다면 하느님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종교를 부정하고 창조설을 부정한다면 당연히 은하는 복수로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보자. 초기에 사람들이 빅뱅을 부정했던 것은 창세기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라면 성경과 다르게 갈 것이다. 신도 하나요, 우주도 하나요, 은하도 하나요, 태양도 하나요, 지구도 하나요, 메시아도 하나이니라. 할렐루야. 아멘. 하나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주는 다중우주요, 은하는 섬우주론이요, 태양은 우리은하에 1천억 개이니라. 이게 재미지잖아. 아따. 꼬방시다.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나?


    나의 직관으로 보면 우주는 수학이다. 수학에 1은 없다. 1은 인간의 관념일 뿐 자연에 1이 없다. 자연에 있는 것은 비례다. 수학은 둘의 비례다. 어떤 것이 하나이면 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둘을 비교하는 것이 수다. 1은 둘을 연결하는 라인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중딩수학이다.


    1이 없으므로 원자는 없고 우리가 원자라고 믿는 것은 상호작용하는 둘의 밸런스다. 상호작용계가 있다. 국소성은 부정될 수 있다. 니가 하느님이라고 치고 원자론을 던져주면 그걸로 우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냐? 시뮬레이션이라면 가능하다.


    간단하다. 뭐든 뒤집어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앞을 보여주면 뒤가 궁금하잖아. 뒤집으려면 둘이라야 한다. 앞면만 있고 뒷면이 없다면 뒤집을 수 없다. 양자역학은 둘의역학이다. 원자론은 하나역학이다. 양자역학과 원자론은 모순된다. 


    양자역학이 맞다면 원자론적 발상은 폐기되어야 한다. 물론 원자 개념은 유효하다. 원자 입자는 없지만 의사결정단위는 있다. 원자는 내부가 없는 어떤 물질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를 정하는 단위로 해석되어야 한다. 


    등가원리에 따른 둘의 상호작용, 곧 거리와 속도의 상보성을 머릿속에 그리면 양자역학은 자동으로 직관된다. 나의 경험적 직관과 잘 들어맞는다. 


    찰리 멍거의 뒤집기로 돌아가자. 무엇을 뒤집지? 공간을 뒤집어야 한다. 우리는 공간이 원래 있다고 착각한다. 원래 있는게 어딨어. 공간은 둘의 합의다. 둘의 상호작용이 공간을 만든다.


    뒤집으면 보인다. 사람들은 뒤집지 않고 직관과 어긋난다고 말한다. 극장에 가면 당연히 영사기를 보게 된다. 왜 스크린만 쳐다보냐? 영사기가 돌아가는게 궁금하지도 않냐? 뭐든 반대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냥 반대로 끝나지 말고 밸런스의 축을 찾아 더 높은 의사결정 단위로 올라서야 한다.


    빛이 간다는 것은 구조론적으로 보면 장을 만들고 장을 빛의 진행방향으로 붕괴시키는 것이다. 빛 입자는 사실은 존재가 없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장의 밸런스의 붕괴를 우리가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리가 깨지는 선은 직선이다. 그러나 그 직선을 만드는 에너지의 진행은? 에너지는 우리가 보는 깨진 유리창의 금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그 선에서 두 방향의 힘이 만나서 방향을 꺾은 것이다. 두 방향의 힘이 충돌한 경계선이다.


    장이 붕괴하는 경계선이 만들어지는 속도를 우리가 광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의 의사결정속도는 당연히 빛보다 빠르다. 사인곡선과 같다. 바퀴의 표면이 간 거리는 바퀴축이 간 거리보다 멀다.


    아는 사람이라면 뒤집기의 뒤집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뒤집기는 수평적 교체다. 수직적 교체도 있다. 대칭은 수평이다. 축은 수직이다. 배꼽은 비대칭이다. 배꼽과 대칭돠는 짝은 엄마의 자궁이다. 왼손과 오른손의 수평대칭은 알지만 배꼽과 자궁의 수직대칭은 모른다. 


    수평뒤집기 말고 수직뒤집기로 가야 아, 이넘이 좀 뒤집었구나. 파전은 네가 뒤집어라 하는 말이 나와주는 것이다. 씨름판이라도 털보장사 이승삼 정도나 되어야 뒤집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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