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chow
read 3309 vote 0 2022.12.04 (17:43:14)

벤투와 한국인이 한국이 브라질을 이긴다고 믿는지 아닌지가 가장 중요한데, 내가 벤투와 한국인의 머리에 꿀밤 500방을 놔서 뉴런의 배선을 바꿔줄 수도 없고 참.

이기려면 알고도 당하는 전략을 써야 하는데, 그건 인간의 학습본능을 이용하는 겁니다. 상대가 패턴을 학습하게 강요한 뒤 그 패턴을 흔드는 방법. 축구에서 약팀이 선택 가능한 건 선수비후역습이겠죠. 한국이 이렇게 할 거라는 건 너무 당연한데, 이번 월드컵에서야 한국이 이렇게 안 했으니 상대가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별로 안 중요하고,

중요한 건 전반전에 브라질 선수들이 한국이 수비만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줘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득점이 가능한 손흥민을 후반에만 투입해야 합니다. 이강인(=케인)은 선발로 두어 계속 뛰게 하고. 에이스를 빼라니, 뭔 개소리냐 싶겠지만, 토트넘에서도 먹혔던 전략입니다. 


손흥민이 알려지기 전에는 손흥민 역습전략이 잘 먹혔는데, 득점왕 이후에는 너무 알려져서 손흥민, 케인을 막기만 하면 토트넘이 삽질 한다는 걸 상대팀들이 알아버렸거든요. 이후로 한동안 토트넘은 방황. 손흥민이 부진하자 할 수없이 감독은 그를 두 경기 정도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후반에 교체 투입했는데, 한 경기에서 들어간지 10분만에 헤트트릭을 했습니다.

하여간 손흥민은 전반전부터 넣으면 별 도움 안 됩니다. 후반전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두어야 하는데, 파트너는 이강인. 전반전엔 공격수를 빼고 수비 위주의 선발 11명으로 틀어막는 동시에 브라질 선수들의 머리에 패턴을 강제 학습하게 하고, 후반전에 그 패턴을 정면으로 흔들면 의외로 다득점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많이 쓸 수 있는 전략은 아니고 한두번 가능. 근데 어차피 월드컵은 토너먼트라 무상관. 전반에는 B급으로 막고 후반에는 A급으로 찌르는 게 삼사법.


어설프게 호주나 미국, 폴란드, 세네갈처럼 간간히 공격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패턴을 뒤집어 씌우는 게 잘 안 돼요. 학습은 일관성이 중요하니깐. 수비할 때도 공격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철저하게 길만 막겠다는 생각으로 수비를 해야 하는데, 포르투갈 전에서 봤다시피 괜히 공 뺐으려고 상대에게 달려들면 바로 제껴집니다. 무슨 말이냐, 공격할 때는 동적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수비할 때는 정적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보통 인간들이 수비할 때 공간을 틀어막는 정적 전술만 써야 하는데, 실제로 시켜보면 이기려는 마음에 자꾸만 공을 뺏으려고 섣불리 달려들다가 (실제로는 동적 전술을 써서) 뚫리거든요. 이게 인간들한테 시켜보면 본능적으로 잘 안 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되려면 감독이 경기 중간에도 수비수들에게 계속 소리질러서 각인을 시켜야 합니다. 


"뺏으려고 하지말고 공간만 지키라고 새끼들아!", "몰려있지 말고 간격 벌리라고 병신들아." 이런 건 본능을 뛰어넘어야 하는 거라 누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쌍욕을 섞어서 개지랄을 안 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을 쫓아갑니다. 고양이가 레이저 쫓듯이 되는 거죠. 훌륭한 수비수들은 본능을 이긴 애들이고. 네델란드의 판다이크한테 좀 배워야 하는데, 한국선수들은 분명히 이게 안 됩니다. 단순히 피지컬이 딸려서 수비를 못 하는 게 아니라, 본능에 충실하다가 자동문이 된다는 말입니다.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수비가 훨씬 쉽습니다. 근데 당연히 수비만 해서는 이길 수 없고, 전환기에 결정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날리는 전술을 써야 합니다. 근데 보통 이렇게 잘 안 하죠. 인간은 보통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려는 전략을 씁니다. 감독이 손흥민을 선발에서 빼고 지면 5000만명한테 쌍욕을 먹을 테니깐. 5000만명을 앞에 두고 광화문에 자기 목을 내걸면서 무리수 아닌 무리수를 두어야하는데,

대포르투갈전에야 감독에게 그럴 동기가 있었지만, 대브라질전에는 그럴 동기가 있을지 애매합니다. 벤투와 한국인는 이미 복수를 성공한 표정이라. 브라질 이기기는 어렵지 않지만, 진짜로 어려운 건 한국인들의 각성입니다. 과연 한국이 브라질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 일본도 제끼고 중국도 제끼고 미국도 제끼고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 그게 궁금합니다.


그거 안 되면 그냥 16강에 자축해야지. 그래 당신들은 소매를 자를 수 있겠는가?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구조론 매월 1만원 정기 후원 회원 모집 image 29 오리 2020-06-05 134722
2045 무한과 연속성의 차이 chow 2023-01-12 2478
2044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3-01-11 2236
2043 수학의 기원과, 아랍 (페르시아)의 역할 image dksnow 2023-01-07 2723
2042 법과 현실의 특성에서 본 괴리, 불확정성원리 SimplyRed 2022-12-31 2997
2041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28 2877
2040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14 3030
2039 2002-2022 dksnow 2022-12-12 3173
2038 가설연역법에 기반한 상호작용 시스템 chow 2022-12-11 3229
2037 손주은이나 대치동 똥강사들보다 100배 낳은 최겸 image 3 dksnow 2022-12-07 5577
2036 장안의 화제 Open AI chatbot (ChatGPT) image 6 오리 2022-12-06 3706
» 한국이 브라질을 작살내는 법 chow 2022-12-04 3309
2034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2-01 3024
2033 12/1 유튜브 의견 dksnow 2022-12-01 2912
2032 대항해 시대 kamal 툴 dksnow 2022-11-21 3169
2031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1 오리 2022-11-17 3095
2030 중국 농촌의 토지정책 1 mowl 2022-11-13 3444
2029 나의 발견 SimplyRed 2022-11-06 3615
2028 심폐소생술과 하인리히법 chow 2022-11-04 3682
2027 장안생활 격주 목요모임 image 오리 2022-11-03 3494
2026 현 시대에 관한 개인적일 수 있는 생각들.. SimplyRed 2022-10-29 4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