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은 성질이 없다. 존재는 변화의 존재다. 변화는 관계의 변화다. 관계는 둘의 관계다. 수학은 관계를 추적한다. 생각은 상수를 단서로 그 변화인 미지수를 추적한다. 미지수는 스칼라, 벡터, 매트릭스, 텐서 순으로 변화의 복잡도가 높아진다. 이는 기하의 점, 선, 각, 체, 계와 대응된다. 대칭이 연결고리가 되고 비대칭이 추론방향이 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과 같다. 단계적으로 범위를 좁혀간다.
질 - 계 - 텐서 선은 두 점의 대칭이다. 곧 나란함이다. 수평선처럼 간격을 두고 떨어져서 나란한 것이 아니라 한 점에 모이는 것이다. 각은 두 선이 한 점에 모인다. 체는 두 각이 한 점에 모인다. 계는 두 체가 한 점에 모인다. 에너지적으로 작용힘과 반작용힘이 코어에서 만난다. 수학은 집합이라고 한다. 집합이 아니라 두 점의 만남이다. 방향이 문제다. 컴퓨터를 뻗게 만드는 무한대를 피해야 한다. 집합이라고 하면 무한대가 등장한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의 잘못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잘못이기도 하다. 모두의 잘못이라는 말은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당장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운전기사 한 명을 지목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려고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모두를 제압하려는 것이다. 두 선의 만남이 힘, 두 각의 만남이 입자, 두 체의 만남이 질이다. 만남은 공유다. 계는 두 체가 한 점을 공유한다. 에너지적으로 그러하다. 에너지가 걸려 있는 모든 존재는 계다. 굴러다니는 돌도 지구의 중력이 걸려 있다. 돌의 형태는 중력에 버티는 형태다. 두 에너지의 방향이 겹쳐 있는 것이다. 체는 두 각이 한 점을 공유한다. 손가락으로 플레밍의 왼손법칙과 오른손법칙을 만들면 입체의 모서리가 만들어진다. 두 각이 만나서 하나의 체를 이룬다. 구조론의 체는 꼭짓점을 의미한다. 각은 두 선이 한 점을 공유한다. 선은 두 점이 서로를 공유한다. 점은 자기 자신을 관측자와 공유한다. 유도탄과 같다. 화살에 눈이 달려 과녁을 찾아간다. 단계적으로 공유를 하나씩 벗겨서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목표에 도달한다. |
만남의 시작은 고착된 대칭이고, 공유는 만남을 통해 호응되는 비대칭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만남은 공유다 라는 의미가 자주 비유하신 "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