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수수께끼’라는 글이 보인다. 수수께끼는 무슨 얼어죽을 수수께끼람.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예견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상식에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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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자식 떡 안주려고 해도.. 너 말고 네 엄마!』 |
정치란 것이 그렇다. 누군가 나서야 할 상황이다. 남이 나서지 않으면 내라도 나서는 거다. 하필이면 추미애가 나설지는 필자도 예상을 못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추미애 입장에 있었어도 해볼 만한 배팅이다.
왜?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남이 안하니까 내가 한다.'
둘째 '남에게 맡기면 조질 위험이 있으니까
내가 수습을 책임진다.'
어떤 부부가 있었다.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 운전대를 잡지 않고 운전에 능숙하지 못한 아내가 운전을 한다고 한다. 왜 그러냐 했더니 남편이 운전하면 혹시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어서란다. 그럼 본인이 운전하면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걱정은 덜된다’는 거다.
이런 심리는 주위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내가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만 안심이 되는 거 말이다.
노무현이 대책없이 퍼질러 놓았다. 민주당이 전원 신당에 합류하면 간단히 해결이 되겠지만, 원래 이런 일은 원만하게 잘 해결이 안된다는 점은 경험칙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한 사람은 뒤에 남아서 수습을 해야한다.
추미애는 본인이 키를 잡아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추미애 마저 민주당을 버린다면 멋모르고 민주당에 남은 식솔들은 누가 책임지는가? 박상천에게 맡겨 놓으라구? 박상천, 정균환들에게 맡겨 놓으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추미애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다.
사실이지 추미애마저 없었다면 우리당과 민주당이 극한대결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정치를 잘 모르는 평당원들의 정신적 고통은 크다. 이 상황에서 우리당으로 간 사람의 판단은 간단하다.
‘잔류파들의 운명이야 지들 책임이지 우리랑은 상관없다. 내몰라라’
추미애의 판단은 다르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추미애 입장에선 민주당 사람들이 모두 내자식이다. 희생자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내 자식 희생되는 꼴을 못보는 것이 엄마 마음이다.
언어를 보지 말고 입장을 보라
정치의 세계는 그러하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처해있는 입장을 봐야 한다.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그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의 이치다. 우리당들이 떠나는
바람에 추미애에게 역할이 주어졌으며 추미애는 그 역할을 받아들인 것 뿐이다.
정치는 책임이다. 노무현이 끝내 추미애를 포용하지 못한다면 노무현의 무능이 되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추미애는 자기 기준으로는 일관성을 지켜왔다는 점이다. 추미애는 변하지 않았는데, 정치판이 변한 것이며, 추미애는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이 점 대통령을 꿈꾸는 ‘한 시대의 리더’로는 함량미달이지만 영국의 대처는 ‘진정한 리더’라서 수상이 된게 아니고 걍 고집이 세서 수상자리에 까지 오른 사람이다.
추미애의 고집이 먹히는 시대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고집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다만 이 나라 이 시대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추미애의 넉넉한 치마폭이 유익하게 쓰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조순형도 비슷하다. 충분히 예견되었어야 했다. 추미애와 조순형의 공통점은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고 방침의 변경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지난 이맘때로 돌아가보자.
● 기존의 방침 - 노무현이 민주당의 후보다.
● 새로운 방침 - 정몽준 신마로
갈아타자.
이때 추미애와 조순형은 기존의 방침을 고수하는 쪽에 섰다. 왜? 노무현을 지키면 선거에 져도 가족은 깨지지 않지만, 정몽준이 되면 선거에 이겨도 가족이 깨진다. 정몽준이 당선되었어도 서프라이저들이 민주당을 떠났을 것임은 분명하다. 추미애는 가족이 깨지지 않는 쪽에 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 기존의 방침 - DJ노선으로 계속가자.
● 새로운 방침 - 노무현 패치파일로
업그레이드 하자.
추미애, 조순형은 나름대로 일관되게 행동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주변특검에 대해서는 조순형이 특검에 찬성했고 추미애는 발을 뺐다. 왜?
● 조순형의 기존방침 - 무조건 법대로, 원칙 밖에 모른다.
● 추미애의 기존방침
- DJ노선 밖에 모른다.
두 사람이 기존의 방침이라고 믿는 원칙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존의 방침을 고수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렇다면 추미애는 이미 가족이 깨졌는데도 왜 신당으로 넘어오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일찍이 예수선생이 답한 바 있다.
“제 길을 찾은 우리당의 99마리 양 보다는 길 잃은 민주당의 한 마리 양을 찾겠노라고.”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목자의 역할이 무엇이냐다. 우리당이 옳고 민주당이 옳지 않은 점이 분명하지만, 목자의 역할은 길 잃은 민주양의 길을 찾아주는데 있다. 즉 옳고 그름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며 추미애는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주도권은 역할에서 나온다
정치는 주도권 잡기 시합이다. 두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선점하여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하나는 야당하며 상대방의 실수를
추궁하는 것이다.
공격이 능사는 아니다. 선점한 쪽의 시행착오를 기다렸다가 반격하는 작전도 방법이 된다. 단 선점한 자가 하수일 때만 먹히는 전략이다. 추미애는 후자를 선택한 것 뿐이며, 노무현이 하수라면 성공할 수도 있는 전략이다.
연애를 하더라도 그렇다. 남자는 경쟁자가 선수치기 전에 먼저 고백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고, 여자는 먼저 고백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먼저 고백하는 자가 선물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 선물이 미처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남자 - 어떤 선물을 원하는가?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겠다.
● 여자 - 무슨
선물이든지 다 내놔봐라. 그 중에서 고르겠다.
추미애는 여자 입장에 섰다. 노무현이 내미는 선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이때 선택의 기회는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노무현이 먼저 고백하기를 기다리는 방법으로 노무현의 선물을 파악한 다음 자기 입장을 표명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흔히들 이렇게 한다.
남자라면 반대다. 여자가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모른다. 먼저 선물을 내밀었다가 여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딱지 맞는 수 있다. 이 경우 일단 고백을 해서 접속상태를 유지한 다음 여자가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방법을 쓴다.
● 남자 - 일단 시도해보고 잘못되면 나중 수습한다.
● 여자 - 일단 기다려보고
상황이 분명해지면 그때가서 결심한다.
그렇다면 위 남자의 방법과 여자의 방법 중 어느 쪽이 현명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외곽세력과의 다양한 접점을 가진 쪽, 선택의 폭의 범위가 넓은 쪽은 남자역할을 하고 반대로 외곽세력과의 다양한 접점을 가지지 못한 쪽은 여자 역할을 한다.
주도권의 게임이다. 선제공격이 유리한가 반격작전이 유리한가? 이는 어느 쪽이 더 외부세력과의 접촉면이 넓은가에 따라 결정된다. 더 중심에 있는 쪽이 여자의 결정을 내리며 더 외곽에 위치한 자는 남자의 결정을 내린다. 누구든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문제는 과연 역할이 남아있는가이다. 박상천, 정균환은 그 역할이 없다. 그 무대 위에서 퇴장할 시점만 결정하면 된다. 추미애, 조순형은 아직 역할이 약간은 남아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의의 희생자는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는 위험하다.
추미애가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국의 파고가 높아갈수록 불의의 희생자가 될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본문에서 남자, 여자 하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또한 료해를 바람.)